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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남녀 관계라는 것이 생리적,감정적 면에서 참으로 대조적이면서 난해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누마타 마호카루 작가가 여성이다 보니 여성의 심리를 잘 해부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과정도 묘미였다고 생각한다.성격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궁합이 맞지 않으면 쉽게 헤어지는 세상인데 이 글에 나오는 도와코(十和子)와 진지(陣治)는 표면적으로는 궁상맞게 사는 유형이고 속은 정반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둘 다 어떻게 해서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사는 인간군상이 우리 주위에도 있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도와코는 8년 전에 몸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구로사키라는 남자에게 차였으면서도 끝내 잊지를 못하는 여성이다.도와코는 구로사키가 마음으로 물질적으로 잘 해 주었던 것이 현재 동거남인 진지와는 영 딴판인 거라 억지로 사는 상황인 것 같다.T건설사의 직원으로 당당하게 폼나던 진지의 모습에 반해 동거를 했겠지만 살다 보니 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특히 생활습관도 맘에 들지 않고 잠자리마저 불만인 도와코는 끝내 진지에게 '올챙이와 같은 무정자 소유자'라고 쏘아 댄다.
남편 진지는 그래도 도와코에게 음식도 만들어 주고 돈도 벌어 오면서 그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안간 힘을 쓰는 속 깊은 사람인데,8년 전에 헤어진 구로사키가 3년 전에 실종되고 경찰이 찾아오면서 살해당했을 거라는 추측과 함께 살인자는 남편 진지라고 의심을 하게 된다.구로사키로부터 받은 귀고리를 진지가 빼앗아 가는데 그것은 도와코의 의심스러운 행동에서 비롯된다.시계수리를 맡기면서 알게 된 미즈시마씨와도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이러한 행동이 길게 꼬리를 치면서 진지는 도와코의 주변을 탐색하고 미행하게 된다.
진지의 돈으로 보증금과 집세를 내는 상황에서 도와코는 손 하나도 꿈적 하지 않는 좀비족과 같다.진지와 옷가지,피다 남은 꽁초들이 온 집안에 뒹글고 있어도 정리도 하지 않는 도와코는 정신이상자에 가깝다.심심하면 DVD를 보다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 먹는 비생산적인 일상이 반복되는데,그녀의 머리 속에는 구로사키를 죽인 사람이 진지의 소행으로 단정하고,새로 사귄 미즈시마와는 떨어져서는 안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소를 키우며 생계를 꾸리던 시골 출신 진지는 고교 졸업장이지만 대형건설사에 입사하면서 당당한 사회생활을 꾸려 가는데,그의 생활습관과 잠자리,언행 등을 꼬투리 잡고 한 발 양보하면서 부부의 연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자꾸 과거의 일에 매달리고 외간 남자를 만나 짧은 시간 동안의 쾌락을 즐기고 또 그러한 생각과 행동이 반복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결국 진지는 도와코의 애인이었던 구로사키를 공사장에서 살해했다는 것을 도와코에게 이실직고하면서 말쑥하고 인간적인 정이 없는 부류보다는 좀 더 제대로 된 남자를 찾고 행복하게 살면서 자신을 낳고 자신을 많이 사랑해 달라고 고백한다.
도와코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외간 남자들은 그녀를 스쳐 지나간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좋든 싫든 몇 년을 함께 살면서 잊혀지지 않는 정념을 지워 버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도와코는 생활습관은 비록 좋지 않지만 도와코만을 생각하고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가정을 일구어 가겠다는 연인 진지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고 현실을 제대로 수용하는 처세라고 생각한다.그렇지 않고 진지의 생활습관,잠자리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만나 보고 어느 정도 머리 속으로 진지와 살 것인지 말 것인지가 판단되었다면 일찍 결정을 했어야 마땅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