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나에게 "결혼하여 살아 보니 행복하세요?"라고 물어 보면 대답은 그저 웃고 말 것이다.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은 냉엄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좋아서 만났던 나이가 차고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서 만나 결혼을 했든 만남과 결혼에서 오는 느낌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나의 경우는 중학교 동창 소개로 만난 커플이다.중학시절 남녀공학이었고 남친과 여친이 캠퍼스 커플로 만나고 여친은 처형과 절친한 사이인지라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소개를 해 주었던 것이다.또한 우리는 나이가 꽉 찬 시기였기에 커다란 결핍이 없다면 결혼하자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만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인식을 올렸다.
당시 사회초년 시절이었지만 해외무역을 하는 업무였기에 좀 바빠서 아내를 잘 챙기지 못한 점이 아내에게는 무뚝뚝하고 관심이 없는 것으로 비쳐졌을 지도 모른다.만날 약속을 하면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고,결혼을 하여 신혼살림을 할 때에는 그야말로 둘만의 세상이었기에 근무시간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직행을 했다.없는 애교 있는 애교를 부리고,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었던 사이이고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내게도 IMF라는 된서리를 맞고 힘겨운 시절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지만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집안 일도 반이상은 내가 챙기고 아이들에게도 교육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기에 큰 불만은 갖지 않은거 같다.다만 사십 대가 넘으면서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사회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어느 새 내 마음에 꽈리를 틀면서 이런 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쌓여 가고,형제 간에 돈거래 아닌 돈거래가 오래도록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속만 썩어 간다.
결혼 할 당시의 짜릿하고 달콤했던 시절들이 지금은 많이 무디어 가는 거 같다.핑크 빛과 같은 시절이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부부간의 사랑과 애정은 끓는 찌개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데,아프고 어렵고 심심할 때 함께 놀러 가고 애정을 다시 확인하며 부부라는 존재의 색깔을 되찾아야 마땅한데 실상 그러하지를 못하여 부부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를 수없이 되뇌이고 생각해 본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잉꼬부부이고 멋지게 오래도록 잘 살아갈 거 같은 지인 중에는 이런 저런 사연으로 헤어졌다는 소식을 접한다.귀에 들어 오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성격차이가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지고,경제적 위기,한파로 남편이 장기 실직상태로 무능함을 탓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무엇이 부부간을 갈라 놓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맘에 들지 않더라도 믿음과 양보라는 차선책을 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처음 만나 기대와 설레임이 컸던 만큼 현실 속에서의 그 기대와 설렘이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본다.그렇기에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은 낮추는 대신 함께 오래도록 가겠다는 의지와 믿음을 평소에 보여 주는 것이 부부간에 오래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제적 위기 속에 결혼을 망설이는 청년층이 늘어 가고 있으며 이혼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풍토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또한 기성세대가 자식들을 결혼시킨 뒤에 황혼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억압받고 사느니 노후 만큼은 훌훨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진정한 자유를 찾고 싶다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그러나 부부의 인연을 맺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피치 못한 사연은 누구나 있을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도 수없이 발견된다.이러한 것들을 모두 문제 삼아 헤어지기로 마음 먹는다면 성이 다른 남녀 간이 만나 결합하고 살아간다는 의미는 퇴색되어 버리고,그 사회의 행복지수는 블랙홀로 빠져 버릴 것이다.
부부 관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다.사랑이라는 경계를 넘어 시대 감각과 의사전달 방식을 고려한 파트너십,우정 어린 관용,상호 존중 등의 다양한 시도를 포괄하는 부부관계의 창조가 필요한 시대인 거 같다.서로에게 부족한 점은 채워 주는 연민의 정신과 배려와 이분법적(남자는 이것을 해야 하고,여자는 저것을 해야 한다)인 구태연한 사고 방식도 현시대에서는 불필요한 거 같다.본래의 젠더를 존중하고 더 나은 삶을 구가하기 위해 부부가 챙기고 의논하는 성숙된 관계창출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