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하작가가 존재하는 줄을 몰랐다.등단 56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하니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그간 편독만 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두루 관심을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사랑의 시작을 위한 '판타지물이라고 하니 기대와 설레임이 밀려왔다.사랑의 시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연애가 싹트기 시작할 무렵에는 상대의 모든 것이 좋아보인다.자신에게 필이 오는 사람이면 곰보도 좋고 에꾸눈도 좋을 것이다.일종의 '콩깍지 씌운 듯'한 사랑의 씨앗은 오래가는 것이 좋게 보이고 그 열매도 크고 위대할 터이다.
상대방 남자의 코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 결혼했다는 K라는 여친은 이미 전 남자와 헤어지고 새롭게 맞이한 남자와 함께 커피숍에 나타나 그간의 사정을 털어 놓는다.속궁합보다는 겉궁합으로 시작하는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속설이 딱 맞는다.나 역시 살아가면서 겉모습으로 판단했던 부분이 살다보면 좋지 않은 속마음 예를 들어,생활습관,언행 등의 본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티격태격할 경우가 많다.서로가 좋아해서 시작한 결혼이라면 관용과 양보의 미덕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하는 것이 부부간의 도리라는 것도 이즈음에 깨닫는 바이다.
낙타가 한 마리가 있고 치세.앞 등에 튀어나온 혹이 노래라면 뒷등에 붙은 혹은 역시 사랑일세. - 본문 -
이 글은 39편의 이야기들이 이제하작가가 살아온 세월 만큼 작가의 단상과 에피소드,시대의 아픔과 희망,사랑의 레시피가 물이 흐르듯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한다.광풍과 같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먼 나라의 이야기도 아닌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 생생한 현장감으로 다가오고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그럴듯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환상적인 스토리의 전개이다.
새끼 곰을 훈련시켜 담배나 막걸리나 하는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면서 - 본문 -
이러한 생동감 있는 환상적 요소를 더해 지난 군사독재 시절의 아픔도 느껴보게 하는 대목도 있었다.이를테면 박정희대통령의 시해사건, 전두환정권 시절 정풍운동 차원에서 치뤄진 섬뜩한 '삼청교육대'의 인권탄압과 한국이 통일이 된다면 가장 먼저 반기를 들 세력들을 풍자한 대목도 인상적이다.요즘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없어진거 같다.아니 현실성이 없어서인지 부르지를 않는다.남북통일은 당연히 경제적 부담,후유증이 있기 마련이기에 이를 감수하려는 마음가짐과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면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딱부러지게 다가오는 주제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이제하작가께서 살아오면서 사랑,열망,엉뚱함,질투,속물근성,순정,욕심,엇갈림,환상 등이 골고루 배합되어 있다.이는 다분히 속세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점이 커다란 반향으로 다가온다.이제하작가만의 사랑법이 환상적인 리얼리즘으로 투사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백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