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
나카 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타임머신을 타고 철모르던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을 때가 있다.그 어린 시절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신비스러웠고 무엇인지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었으리라.집에서는 부모님의 한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하고,밖에서는 자연을 벗삼아 친구들과 마음껏 뛰고 놀던 것이 마음의 스승이고 벗이었던 것이다.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배움과 예절,사회 규칙을 익혀 가기도 하면서,그 속에서 자아의식과 사물,사람에 대한 관점을 터득해 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린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생각과 감정을 가감없이 들려주고 있는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는 1890년대 일본의 사회적 배경을 무대로 주인공 나(아마 저자가 아닐까 싶다)를 중심으로 이모님과,친구들,학교 선생님,그리고 전통적인 일본인의 사고관념 등이 잘 나타나 있다.그중에 무엇보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점은 나무,꽃,벌레,풀,음식 등에 대해 기억을 되살려 촘촘하게 서술하고 있는 점이다.이 작품은 일본 문학의 거장 나쓰메소세키가 적극 추천했다고 할 정도로,나카 간스케는 일본문학계에서 어느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았을 정도로 독보적인 글쓰기를 해왔다고 한다.

 

어머니의 난산으로 한의원한테 산후 조리를 맡기고 나는 이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몸에 종기가 생기면서 아이 입크기에 맞는 은수저로 이모님은 약을 떠먹이게 하면서 은수저를 보면 어린 시절 이모님과 함께 지냈던 달콤하고 쓸쓸한 추억이 교차한다고 한다.

 

일본 동경의 간다에서 태어난 나는 북쩍대는 도회지를 떠나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자연에서 서식하는 온갖 풀과 꽃,나무,새,벌레 등을 관찰하면서 그들과 가까워지게 된다.넓은 들판,어머니의 품과 같은 산이 나를 감싸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사귀며 성장해 간다.술레잡기 놀이,팽이 돌리기,연날리기,고철을 팔아 엿 사먹기 등이 내 어린 시절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많이 일어났다.

 

일본은 어린이의 건강과 성장을 축원하는 축제도 많다.히나마쓰리를 비롯하여 신사에 참배하는 일이 모두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원하는 기복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무엇보다도 이모님은 지극정성으로 말벗이 되어 주고 어디를 가게 되면 꼭 나를 데리고 가는데,새로운 풍물과 사물에 대해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나에게는 둘도 없는 좋은 기회였던거 같다.

 

오쿠니가 첫 번째 친구가 되고 촛페이,케이,도미코 등의 친구가 생기게 되는데,새로 전학온 이성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다른 친구들의 시샘을 받던 것도 내 어릴 적 희미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된다.학습지체가 있어 선생님께 학습독려도 받지 못한 나는 난산으로 몸이 수척해진 어머니를 위해 바닷가 마을에 요양을 가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십대 후반이 될 무렵,나를 보살피고 길러 준 이모님을 찾으러 시골집을 찾아 가는데 폐허가 되다시피한 집에 귀가 먼 이모님이 혼자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일찍이 청상과부(이모부가 콜레라로 사망)가 된 이모님을 보면서 나는 한없는 슬픔과 인생의 쓸쓸함을 동시에 느낀다.이모님은 나를 알아보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데 얼마 가지 않아 이모님도 저 세상으로 떠난다,자비로운 부처님의 품으로.

 

이 글은 유년시절 및 초등학교 시절을 묘사하고 있는 전편과 십대 후반을 묘사하고 잇는 후편으로 나뉘고 있다.전편이 1912년에 출간되고 후편은 1913년에 출간된 것을 합본화하여 한국의 독자들에게 나카 간스케의 성장담을 수채화보다 더 서정적이고 카메라의 렌즈보다도 더 정밀하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나'의 눈높이에 맞춰 잘 묘사해 주고 있다.또한 일본 어느 중학교에서는 국어교과를 3년 내내 『은수저』하나만 배우고 터득시킨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일본의 전통적인 의식구조와 예의범절,때묻지 않은 동심의 세계를 자연과 어린이의 내면세계,당대의 사회상을 촘촘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일본의 각계 거물급들도 『은수저』의 작품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이는 어린이의 때묻지 않은 심성이 잘 배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나 역시 이 작품을 통해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일본사회와 한반도,중국 등을 교차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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