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양장)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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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불면 동네처녀,총각들의 몸이 꿈틀거린다.꽃샘추위가 지나고 담장 너머로 앵두꽃이 피어나고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만개하면 젊은 처녀,총각의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 것이 몸의 섭리가 아닐까 한다.특히 봄이 올 무렵에는 꽃샘추위와 함께 살짝 찾아 왔다 금방 사그라드는 것이 짧은 여운을 남기는 봄이다.

 

이 글은 작가의 고향이고 어린 시절 삶의 터전이었던 1960년대 진도 섬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주인공은 훈필이고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로 열세살 소년이다.훈필이는 공부보다는 짝사랑하는 연주에게 다가가려 무진장 애를 쓰고,애지중지 키우는 염소와 자연을 벗삼아 성장해 가는 순수한 소년이다.나중에 커서 푸른 목장을 운영하면서 연주와 함께 살아가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그런데 서울에서 전학을 온 서울소녀로 인해 연주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서리를 맞고 자라는 들국화를 꺾어 서울소녀에게 꽃다발을 바치면서,훈필이가 서울소녀를 좋아하게 된다는 발없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지게 되고,연주도 약간 토라지게 된다.

 

훈필이의 고향에는 정신은 멀쩡한데 동냥으로 생활을 해 가는 꽃치와 정신병이 있는 연주 고모를 바라보면서 둘이 어떻게 엮어지기를 바란다.꽃치는 1년을 가도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데 누군가 그에게 일거리를 부탁하면 육중한 몸으로 일을 처리해 주고 허기진 배를 채워 나가고 잠은 연주네 담배 건조장에서 해결하고,연주 고모는 미친 병이 발광하면 옷을 홀라당 벗고 동네방네를 길길이 뛰고 날며 고래고래 춤을 추기도 하는데,문제는 자신이 누운 똥을 온몸에 칠을 하며 볼썽사납게 행동한다.연주 고모를 달래고 위로하는 것은 연주의 몫이기에 훈필이는 연주의 착하고 여린 마음씨가 가상하고 좋았던거 같다.

 

훈필이가 내내 좋아하던 대상이 연주에서 서울 소녀로 바뀌면서 내면의 비밀이 탄로가 나면서 훈필이는 섬마을 촌놈에서 벗어나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섬마을 탈출을 결행하는데 엄마가 생활비(500원)을 훔쳐 읍내로 나가고 읍내에서 할머니를 만나 목포로 몸을 옮기지만 '어서 오세요'라고 반기는 사람은 없다.훈필이는 건달에게 돈을 빼앗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연주와 서울 소녀와의 사랑과 추억,그리고 일장춘몽으로 끝난 희망과 성공은 훈필이에게는 커다란 삶의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내가 자라나던 곳과는 다르지만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도장포장이 안되었던 시절에는 꽃샘바람이 한바탕 지나가면 뿌연 먼지가 소용돌이를 이루고,마당에 널어 놓은 빨래들은 켜켜이 먼지가 쌓인다.봄부터 겨울까지의 훈필이의 봄바람과 같은 이야기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따뜻하고 훈훈하기만 하다.산비탈에 염소 목장을 만들어 연주와 함께 살아 보고 싶은 훈필이의 가슴에는 어느덧 사랑의 씨앗이 뿌려진거 같이 늘 쿵쿵거리고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내게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면서,누구나 한 번쯤 다가오는 이성에의 야릇한 감정을 열세살 훈필이를 통해 다시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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