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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ㅣ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언덕배기,들녘의 풀밭에는 누런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해가 질 무렵에는 주인이 소를 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소의 왕방울만한 눈동자는 무심하지만 선한 모습으로 풀을 뜯으며 길고 넓은 혓바닥으로 되새김질 하고, 멀리서 날아온 파리들은 소 꼬리나 등에 다닥다닥 딱딱하게 말라 붙은 소똥을 핥기라도 하면 누런 소는 꼬리로 파리들을 쳐내고 얼씬도 못하게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추위가 닥쳐 오면 소들도 자기집인 외양간에서 겨우살이를 하게 된다.주인은 소먹이인 짚이나 풀을 작두고 잘게 잘게 썰어 아랫방 큰 솥에 집어 넣고 푹푹 끓여 낸다.어느 정도 소여물이 익어 가면 짚이 익는 냄새가 수증기가 뒤섞여 벼잎의 구수함을 더해 가고 아랫방의 구들장은 열기를 더해 가는 시절이 있었다.주인이 소죽을 솥에서 꺼내어 외양간으로 갖어 가면 음식 냄새를 맡고 반가운 기색을 한다.
그런데 힘겹게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던 순박한 농촌의 모습은 이농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농사일은 소에 의존하지 않고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된지 오래 되어 버렸다.어린 시절 소몰이를 하고 소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시절은 고단하고 고달펐던 시절이었지만,소가 인간에게 주는 협업과 생업의 정신은 보배로운 존재이다.
이순원작가의 '워낭'은 옛 시절로 되돌아 가게 하고 항생제를 집어 넣고 조속한 시일내에 육우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상업적인 현대사회와 비교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인간의 편리함과 이기적인 본성은 어디가 끝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목에 놋쇠형질을 띤 방울모양의 워낭은 소의 신분을 알려 주는 신분증이나 다름없다.워낭도 이제는 인식표로 바뀌어 몸값이 나갈 무렵에는 우시장에 팔려 나가는 신세일 뿐이다.
구한말 갑신정변(1884년)부터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회고하면서 쓴 이 작품은 작가의 고향인 강을 차부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작가의 백호가 차무집인데 그의 조상이 조선시대 정3품 관직인 참의직을 했다고 한다.참의직이 차무집으로 발음이 와전된듯 하다.12대 소의 가계와 소의 12대 동안 4대가 소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가슴 뭉클하고 감동어린 이야기이기에 나에겐 각별한 추억과 향수가 밀려 온다.
어미소와 생이별한 송아지인 그릿소가 아기를 낳아 자손 12대까지 차무집을 든든하게 지켜 주던 존재였다.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그릿소를 키우고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받아 키우게 되는데,여기에 나오는 소의 이름도 다양하고 재미있게 지어졌다.아마 소의 생김새,특징을 따져 직관적으로 지어졌던 모양이다.그릿소-흰별소-미루소-버들소-화둥불소-흥걸소-외뿔소-콩죽소-무명소-검은눈소-우라리소-반제기소가 그릿소를 내리 잇는 소의 가계도이다.잘랑잘랑 맑은 소리가 바람을 흔드는 워낭은 주인과 소가 일체가 되고 소는 주인에게 아무런 군담과 불평불만없이 묵묵한 순종과 충성심으로 주인의 생업에 커다란 보탬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죽어 태어난 어린 소는 땅을 파서 매장해 주고,늙은 소에게는 교미를 붙여 주지 않은 세심한 배려심을 갖은 차무집 소 사랑 이야기는 훈훈한 감동을 준다.다른 동물과 달리 소는 자기 밥값은 물론 주인에게 한없는 순종으로 일관하고 믿음직한 머슴으로 그 옛날 농부들의 반려이고 조력자였던 것이다.허허벌판 대자연을 벗삼아 풀을 뜯고 논과 밭을 갈며 무거운 짐들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의 삶은 경이롭고 고맙기 이를데 없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