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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평소에 글을 쓰는 작가들에 대한 이미지는 글의 토양이 되는 소재 발굴과 글을 쓰기 위해 시난고난을 무릎쓰고 글쓰기에 몰두하는 철저한 작가 정신이 경이롭기만 하다.글이 세상에 빛을 발하기까지는 작품의 특징과 작가의 솜씨,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려야 비로소 잘 발효되어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만 때로는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매도,무관심을 받기도 한다.
작가는 흔히들 일확천금을 거머쥐는 화려한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수많은 시간을 책을 통해 자양분을 배양하고 글쓰기가 막히면 어디론가 '훌쩍' 막힌 머리를 식히러 바람이라도 쐬러 나간다.바람 쐬러 나가지만 마음 속에는 글을 쓰기 위한 주제와 소재거리를 찾기도 하고 번뜩 떠오른 영감이나 소재거리,기억할 만한 것들이 햇빛 속의 이슬마냥 사라지기라도 할까 밥주머니와 같은 수첩에 빼곡하게 뭔가를 적어 나가기도 한다.
작가들은 일종의 자영업자들이기에 자신을 사랑하고 제어하며 주위와 세상과 균형과 조화,소통을 잘 해나가야 하는 직업이 아닐까 한다.글쓰기를 할 때에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한 채 은거에 들어가야 하며,바깥과 소통을 할 때에는 사색과 고뇌의 빛이 찬란한 빛으로 발화하여 세인들에게 잔잔한 감성과 생각의 깊이를 느끼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작가는 참으로 고단하지만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량과 솜씨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성품과 기질,작품의 완성도,사회에 주는 영향도 정비례할 거같다.
작가는 아픔과 상처,소외되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아픔을 치유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다독이고 위무하는 전령사가 아닐까 싶다.현실과 가상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읽어 가다 보면 인간의 희노애락이 온전히 묻어 나기 마련이다.주인공의 심경,이야기의 사건,시간과 공간의 무대 등이 밝기도 하지만 일관되지 않고 어둡게 반전되다 또 밝게 변하기도 한다.작가는 이러한 글의 구성을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를 수도 없이 고민과 사유,결정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오르한 파묵 작가가 하버드대에서 소설과 소설가를 주제로 강연한 강연록을 읽어 가다 보니,작가로서의 다양한 이력과 에피소드,글쓰기의 노하우가 무엇인지를 들려주고 있어 글을 좋아하는 내게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그중에 무엇보다는 긴 시간 명작을 읽어 내려 가는 독서근육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단어와 문장을 하나 하나 음미하기 보다는 글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사건의 추이,결말 등을 자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음미하고 반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즉,등장인물의 특징(캐릭터)는 독자 스스로가 개연성있게 추측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부분이고 주제는 독자에 따라 수용의 정도가 다르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서양의 작품보다는 국내소설 쪽을 좋아하는 편인데,오르한 파묵의 글을 읽다 보니 편독을 한거 같아 자격지심이 든다.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스탕달,디킨스 등의 거장들의 작품에도 시선을 돌려야 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읽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생각과 감정,상상력의 발현이 누군가에게 영향과 공감,치유와 소통이 된다면 작은 이야기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