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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평점 :

시서화(詩書畵)를 떠올리게 되면 예스럽고 기품이 있으며, 겉에 드러나지 않은 속살을 헤집어 내는 묘한마력과 환희가 있다.특히 그림은 시나 글과 같이 글에 나타난 행간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지만 그림은 화가의 심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배경,초목,동물,날씨 등을 잘 헤아려야 그림의 의미를 짐작할 수가 있고,화가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상과 연결하여 읽어내는 독화술을 갖었다면 그야말로 그림에 대한 심미안과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에 나뉘고 계절별로 17점 총 68편의 옛 그림을 작가의 자연스러운 해설과 함께 옛 그림이 시복을 안겨 주고 있다. 즉 조선시대 화원들이 그린 화폭을 응시하면서 일상 모습부터 화원의 심경,동.식물들이 뿜어내는 자태,사람과 동물간의 교호 작용 등이 매우 인상적이고 조물주가 내린 자연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에 순수한 그 자체로 다가온다.그 옛날 사람들의 모습 역시 계급에 따라 다르게 묘사하고 있지만 짚신,흰 광목,초립,버선을 걸치고 신은 옛날 조상들의 숨결이 아롱새겨져 있다.
유교를 국체로 삼던 조선시대에서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라고 불렀나 보다.신분은 중인층으로서 사농공상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대접을 받지 못한 계층이었던거 같다.그러나 그림 그리기가 천직이고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배기지 못할 정도로 그림에 미친 환쟁이들의 그림은 근엄하고 응결된 자세로 붓과 벼루의 농담,상상력,그림을 그리는 의도를 한 폭에 모두 쏟아 냈던 것이다.그래서 보면 볼수록 애달파지기도 하고 정감이 가기도 하고 잊혀진 영감이 다시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인생무상같은 더없음도 느끼게 한다.
표지의 그림이 신윤복이 그린 <처네 쓴 여인>이고 작가는 헤어진 여인의 뒷모습으로 제재화했다.나부죽한 천생 조선 아낙의 모습으로,남정네를 만나고 헤어져 귀가하는 모습이다.뒷태가 시름겹게 다가오고 홀로 가는 길이 외롭기만 하다.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살짝 다가가서 헤어짐의 아픔을 달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한다.
특기할 점은 옛 그림을 해설하면서 사어(死語)가 되다시피한 예스러운 말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가끔 들어봄직한 말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말들이 사용되고 있기에 그림도 예스럽지만 작가의 해설도 예스럽고 정겹기만 하다.예를 들어 윤똑똑이는 자기 혼자만 잘난 체하는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말로 가끔 듣고 있는 말인데 반해,몸의 일부를 가볍게 흔들며 촐싹거리는 모양을 욜랑욜랑이라고 한다.그 시절에는 그러한 말들이 예사로 쓰였을 거라 생각하니,타임머신을 타고 화폭으로 쏙 말려 들어 그들과 살짝 말을 걸어 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양지바른 언덕에서 나물을 캐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담은 봄,수박 파먹는 쥐를 그린 여름,달밤의 솔숲을 그린 가을,작가미상의 백학도가 담긴 겨울은 각계절에 따라 화원의 심미안과 심경 등이 혼을 쏙 빼놓고 있다.검은 색과 흰 색,누런 흙색이 위주가 되어 농담이 잘 배합되어 독자들에게 옛 그림을 선사하고 있다.전생에나 있을 법한 옛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내 직계선조들은 당대 무엇을 하고 살았을지를 옛 그림들을 통해 깊게 유추해 본다.그립고 다정다감하고 애달프고 고독하지만 아름다움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전해져 온다.작가의 해학에 가까운 멋들어진 해설도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