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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뭔가를 보고 듣지 않더라도 애매하게나마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지상의 노래]라는 제목을 보자 마자 현세에 있지 않은 망자의 원혼 내지 망자가 남겨 놓은 유서와 같은 느낌이 직감적으로 다가 왔다.지상에서 못이룬 한을 내세에서 이루고야 말겠다는 망자의 한서린 몸부림과 의지를 영혼에 담아 이를 남아 있는 자들에게 남기려는 구슬픈 망자의 노래가 담겨져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적 끊긴 깊은 산중의 '천산 수도원'이라는 곳에 정돈되지 않고 휑하게 난잡스러운 벽에 화려한 장시과 신비로운 그림들이 남겨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시대적 상황과 등장 인물들의 언행과 표현 등이 일관되게 전개되는듯 싶었지만(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음) 완독을 한 뒤에는 역시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 초의 소용돌이쳤던 국내 정세와 깊게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감지하였다.
이승우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대산,현대,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인지도 높은 작가인 줄을 이제야 알았다.좀 일찍 알아서 그의 다채로운 작품을 접했다면 어느 정도 그의 문체와 구성력을 이해하기가 수월했을텐데 어구와 문장에서 독자들에게 느껴지게 약간의 수사학적인 기교를 부린 흔적이 많았다.예를 들어 시간이 필요했고,자기 기억과의 거리가 필요했고,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P87 하단에서 6번째줄) 또한 후와 누나 연희를 길러준 양부인 삼촌이 박중위와 겁탈을 하는 비윤리적인 욕망을 그려낸 점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이면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지고지순으로 사랑하고 아껴줄테니 후의 누나 연희와 함께 살도록 허락해 달라고 후의 삼촌에게 조르던 박중위는 연희에게 욕망을 채우고 비겁하게 도망가는 신세가 되고,장부장,한정효,대장 등 군인들이 수도원을 점거하여 수도원의 식구들에게 벌이는 일련의 도발적이고 악랄한 자행 등이 광주 민주화 운동 뒤에 숨은 비화(秘話) 이상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처연하여 이렇게 비애스러울 수가 없었다.그리고 천산 수도원에 교회사 강의로 등장한 '차동연'교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데 그는 신학과 역사학 강의자로서 그 자신의 입담을 뽑내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는 점이었다.
속세의 삶이 버겁워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위무받고 싶어 수양하는 수도원은 독특한 믿음을 가진 종교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곳이었던 천산 수도원은 전두환세력에 의해 힘없는 가엾은 수도원의 수도인들은 군화발과 총칼에 의해 처참하게 희생이 되고 그 시신을 각 방의 흙을 파고 그대로 매장했다는 점에서 가증스럽고 치가 떨린다.희생된 자들은 군부에서 내린 부적격자,비수도사 등을 솎아 내라는 명령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지만 이는 종교가 아편 쯤으로 생각하고 종교 행위마저 억압하고 말살하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 군부들의 정상적인 인간의 뇌가 아닌 야수의 본능에 다름 없다.
여행작가 강영호의 메모에 적힌 것을 토대로 천산 수도원,후와 연희 누나,박중위의 얘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군부 실세들이 줄줄이 나오고 차동연이라는 강의자가 등장한다.얘기의 중점은 빗나간 욕망과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어처구니없게 희생된 수도원의 종교인들이 주를 이룬다.군부 실세는 아직도 정정하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데 민주화 운동을 부르짖었던 민초들은 저 세상에서 아직도 풀지 못한 한을 어떻게 달래고 있을지를 생각하니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