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간의 화합은 멀다고 느껴진다.돈과 물질,개인의 명리에 집착한 나머지 국가의 올바른 정체성 및 역사 인식 등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근자에는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후보자간에 '역사 바로 세우기'에는 중점을 두지 않는 점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에 소홀해지는 원인이 될뿐더러 그들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위치에 있을 때에 과연 지난간 한국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정립해 나갈지가 의문스럽기만 하다.
삼국시대 이래로 왜구의 침략,임란,정묘호란,한일합방 등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려던 인물들은 개인의 명리를 위한 정파를 초월하여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국민을 떠받들려는 확고한 의지와 신념으로 가득했던 것을 보면 현재의 위정자들 대다수는 단지 명예와 권력,부를 일구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본심을 속이고 국민들에게 위장처세하는 것은 아닌가 한탄스럽기만 하다.
현대사에 있어 장준하 선생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이지만 항일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섰던 진보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그는 인생의 전반을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바쳤고 후반은 출판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또한 그의 청년시절은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놓이고 대동아공영권의 일환으로 강제 징용을 해야만 했는데 동료들과 일본 군영을 탈출하면서 중국 충칭 임시정부로 향하는 6,000키로의 대장정이라는 간난신고와 같은 대장정과 해방이후 남북통일이라는 대의명분하에 김구 선생 밑에서 봉직을 하기도 했다.잠깐 그가 이범석 장군으로 몸을 옮긴 것에 뒷날 매우 후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임시 수도 부산에서 사상계(처음에는 사상이라 명칭함)라는 잡지사를 창간하여 당시 한국 사회에 불모지와 같았던 인문 사상에 주력하면서 사상계 문학상 및 동인문학상 등을 제정하기도 하면서 걸출한 인물들의 등용문이 되어 주기도 했다.그의 이념과 사상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그러던 중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정권이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전불사의 양상으로 번져 가는데,특히 장준하는 박정희의 독재와 인권 탄압 등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경한 자세로 일관해 나갔다.
1967년 삼성 제일제당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이맹희회장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는 박정희를 향해 '밀수왕초'라는 독설을 퍼부어대면서 연행 및 옥살이가 이어지고 옥중 당선 등의 이변이 일어나지만 당시 공화당과 중앙정보부는 그에 대한 회유와 압력,탄압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상계를 고사시키려는 작전은 철저하게 진행된다.결국 자금이 바닥이 나면서 그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제대로 위상을 보여주지도 못하게 된다.그에 대한 말과 행동은 중정의 감시로 이어지고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로 운명을 달리한다.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미제이고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데 안타까운 점은 당시 장준하선생의 의문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미 고인이 되고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증발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혁명가적인 기질로 중국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임시정부,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사상계 창간,이승만 정권 비판,5.16 비판,한일굴욕회담 저지투쟁(당시 한일회담의 실무 책임자는 김종필로서 일본에 굴욕적인 의정서를 체결),3선개헌 반대투쟁,반유신항쟁,100만인 서명운동에 이르기까지 '금지된 동작'을 줄곧 이행해 왔다.그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나라의 독립과 일본군 출신이 대통령으로 자리를 잡아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것에 강한 반발과 독설로 박정희와 한 판 승부를 불살랐던 것이다.
김구선생의 비서에 이르기까지의 독립운동가,사상계를 통한 민주언론운동가,반독재 민권 운동가 및 헌정질서 회복 등으로 이어져 온 장준하선생의 일대기는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한 몸을 바쳤던 고귀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겉으로는 온유하게 보이지만 내면은 차갑고도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불이 솓구쳐 오르는 강렬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 분이다.생전 그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안타깝기만 한데 석연치 않은 죽음의 원인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반드시 가려내야 할 부분이고 뜻있는 분들이 줄기차게 의문사를 캐내야만 할 당위성을 갖고 있다.그것은 나라의 정체성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