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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시간과 세월이 켜켜히 쌓여 가면서 삶의 연륜도 연한 새싹이 줄기와 가지를 키우면서 하나의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그만큼 시간과 세월의 이면에는 희노애락이 하나 하나의 장면이 모여 인생 극장이 된다.특히 지난 젊은 날의 혈기왕성하고 꿈많던 시절의 기억이라면 누구나 몇 개씩은 소중한 기억과 추억이 교차해 나갈 것이다.나 역시 대학을 마치고 사회 초년생이 되려던 무렵에는 늘 긍정적이고 낭만적이며 모든 것이 내것이 될 수 있다는 자만심도 꽤 컸던거 같다.되돌아 보면 무모한 허영심에 가득찼던 때도 있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내면의 고백'을 담아 편지를 써서 상대에게 보낸 적도 있었다.고통과 아픔이 아물어 들고 새살이 돋아나듯 그때는 부딪히고 보자는 심산이 앞서상대에게 실망을 안겨준 적도 있으나 상대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이해해 준다면 하늘 아래 같은 땅에 살아가는 자체로 마음이 정화되고 편안하게 변해리라 생각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내게는 처음이다.그녀의 연륜을 살펴보니 어느덧 중년의 한가운데에 있고 그녀가 살아온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고 추억하며 그 시절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다가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작가가 여성이다보니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정을 풀어 놓고 있다는 점과 젊은 시절 살짝꿍하듯 이성과의 만남과 사랑,헤어지는 과정이 남성이 직선적이고 저돌적이라면 여성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통해 상대의 진실을 알아가는 시간이 더디지만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되었을 때 아무런 기약도 없이 다시 헤어져야 했던 시절을 그려내고 있다.일종의 남녀가 만나 눈이 마주치고 느낌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삶의 반려자가 되지 못하고 아침 이슬마냥 무로 끝나 버리는 허무감과 그 허무감에서 오는 헛헛함을 시간과 세월의 두께만큼 아픔과 상처도 긴 인생의 물결 속에서 반짝 빛나는 물보라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령의 집,엄마!,따뜻하지 않아,도모 짱의 행복,막다른 골목의 추억 모두가 일본적인 협소한 공간 배경과 은근하게 다가오는 일본인의 심성이 잘 녹아져 있다.여자는 남자가 자상하고 성실하며 아내를 따뜻하게 대해 주는 타입이 좋은거 같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애처롭게 일이 꼬여가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동정심이 피어나는거 같기도 하며 홀어머니로 자식들의 교육과 생계를 꾸려 가는 엄마에게 각별한 사랑과 고마움이 짙게 묻어 나기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은 어느 나라나 다가오는 감정이 같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나아가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알게 된 사람과의 기억과 추억도 행복감으로 번져 간다.
시간과 인생이 영원할거 같이 느리게만 흘러가던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대상과 함께 시간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고 싶으며 대상과의 영혼이 하나라도 될거 같이 기다리고 설레이며 하루라도 못만나면 어디에 덫이라도 날거 같은 상사병 아닌 상사병에 걸리는 시절이 청춘남녀의 특권이고 기쁨이며 환희이다.그 시절은 척박하고 메마른 삶의 대지에 터를 잡아 건축자재를 잘 요리하여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둘이서 어떻게 지혜를 짜서 집을 짓느냐에 따라 몇 십년이 갈 수도 있고 강풍과 태풍에 밀려 금방 무너지는 집이 될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젊은 시절의 기억은 모든게 좋을 수만은 없다.좋은 일은 켜켜히 삶의 지혜로 변해가고 좋지 않았던 것들은 뼈아픈 경험으로 남아 있기에 모두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