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 본문 -

 

 

농경사회가 끝나고 산업화,탈산업화라는 미명하에 자식들은 도회지로 몰려 들고 시골은 집집이 텅텅비어 마치 폭격을 맞은듯 고가(古家)들이 무너지고 지붕엔 쑥부쟁이들이 무성하고 헛간 벽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 컴컴한 밤이 되면 정체 모를 유령이라도 나타날 것같은 분위기이고 어쩌다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이 눈치가 보여 여생을 시집와서 살던 고향을 지키고 안분지족하면서 살아나는 늙으신 어머니들은 젊은 시절엔 온갖 시집살이를 겪고 늙어서는 외롭게 혼자가 되어 생의 끝자락을 쓸쓸하게 이어가는게 보통이고 현대판 풍속도라고 생각된다.

 

 

하루 일을 고단하게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 단잠에 빠져 있을 무렵,집안에 작고(作故)소식이 들려오면 가슴이 덜컹 내려 앉기도 하고 불가항력의 체념을 고이 접고 상을 치루기 위해 내려 간다.별별스런 회한이 먹구름마냥 가슴을 저미기도 하고 잘했던 일보다는 못한 부분에 대해 침묵이 요동치키도 할 것이다.

 

 

나 어릴 때는 본처와 사별,갈라서기 등으로 작은 각시,재취,계모라는 이름으로 같은 동네 또는 같은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일이 예사였다.심지어는 처제에게 욕정이 끌려 자식을 낳으면서 혼인식도 치르지 않은 채 한집에서 언니와 여동생 사이에 낳은 자식들이 동일한 형제로 형,누나,동생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던 시절도 있었다.그 내막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친구,형,누나들이 장성하여 그 옛날 아버지,어머니와의 관계가 법의 테두리보다는 정분으로 맺어진 것이 흉이 되지도 않지만 형부뻘되는 사람이 처제와 몸을 섞어 배다른 아이들까지 낳았다는게 소문이 났을때 처가에선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지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글에선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고 부모 덕을 못본 채 일찍이 도회지로 빠져 나와 먹고 살기 바쁜 채 홀로 된 노모를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한 채,시골에서 함께 사는 남동생에게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맡긴 것이 4,50년이 되고 본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잃고 가세도 어려울 뿐 아니라 여자 혼자서 자식들 뒷바라지가 어려워 큰 딸 애숙이를 먼 타관으로 보내버리고 혼자가 되신 어머니를 주인공 '배경원'은 육십대 초반의 노인이 되어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원망이 교차하고 먹고 살기 바쁜 어머니는 이웃집 품앗이를 다니기에 안사람인 어머니의 다정다감한 훈육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래도 주인공 배경원은 그시절 어머니가 고백조로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하시던 말씀을 반추해 본다.

 

 

 

"니가 너무 밖으로 쏘다니면,배는 더 고프기 마련이다.그렇다 치더라도 니한테 무슨 허물이 있겠노.허물이 있다면 모두 나한테 있다. (중략) 철부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올곧은 정신 목 가진 바로 내다.지난날에 저지른 허물도 많은 내가 또다시 니 새아버지와 허물을 저지르게 되었으니 남에게 험담을 듣는다 해도 가슴 아프게 생각할 일이 아니지." - 본문에서 -

 

 

 

주인공 배경원은 아버지,어머니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사춘기 시절을 배회하고 방황하기만 한다.게다가 마음의 벗으로 생각했던 정태와 누나 애숙이의 가출,배다른 남동생과의 애틋한 우애도 없는 가운데 그의 청소년,성인 시절 살아가는 내내 메마른 정서에 인간적인 미(美)는 싹틀 수가 없었으리라,하물며 현재 사는 아내와의 사이도 퍼석퍼석한 모래알과 같은 관계이다 보니 어릴 적 가정 환경과 부모의 사랑이 섞인 훈육은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삶의 커다란 밑천이 되고 자양분이 될 것이다.

 

 

어머니에게 애틋한 정도 없이 부음을 듣고도 가슴에서 울컥 내려 앉는 서글픔과 회한도 없던 주인공에겐 가족장을 마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분골이 풀풀 흩날리고 남동생 무릎 위까지 내려 앉는 것을 보면서 "잘가요 엄마'라는 남동생의 울컥하는 소리에 나를 낳아주셨지만 애정까지 듬뿍 쏟을 수 없었던 엄마의 고백을 생각하니 회한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던 것이리라.

 

 

나는 평소에 비유선조 아신갈생(非有先祖 我身曷生)이라는 한문을 자주 상기한다.먼저 돌아가신 조상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 몸이 어찌 태어났으리오.나를 낳아주신 부모의 마음은 겉으론 표현하지 않을지언정 자식이 나쁜 길로 빠져들고 못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형편과 처지가 여의치 않아 속으로만 자식을 거두는 마음이 가득할 뿐 못해준 것이 죽도록 한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아흔이 넘은 엄마는 앙상한 뼈와 쪼그라진 삭정이가 되어 화장을 하고 그 혼은 구천에 떠돌겠지만 그래도 마음과 정은 큰자식인 주인공(배경원)에게 가고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리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