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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동어미전
박정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5월
평점 :

유교를 국체로 삼고 남존여비사상이 사회적 분위기였던 조선시대에서는 여인들은 바깥으로 출입도 제한되고 오로지 한 남자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자유와 이상을 맘껏 펼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시골에서든 도회지에서든 아기에게 젖먹이고 논과 밭으로 일을 나가고 집에 돌아오면 밥하기,빨래하기,어른 모시기,경조사 챙기기,궂은 일 하기 등으로 여인들은 청춘을 숨죽이고 중년과 말년은 병에 들어 골골하니 어느 세월에 바깥 출입을 하고 이웃들과 회포를 풀었을까.고작 밭메고 빨래하면서 앞집,뒷집 누구네 엄마와 이런 저런 신세타령이나 하고 살았겠죠.
박정애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다.고향이 경북 청도이시고 이 글의 모태가 <소백산 대관록>의 필사본 시가집에 실린 <화전가>를 바탕으로 덴동어미가 등장하면서 여인들의 한많은 시간과 세월을 농밀한 경상도(영주.안동,경주.울산 일대) 사투리를 구성지게 풀어 놓으니 몇 십년 묵은 마음의 상처와 체증이 일소가 되는거 같다.
봄이 오지만 똑같은 봄은 아닐테고 다음해 봄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에 하늘과 땅,산과 물이 봄빛으로 물들어가는 봄의 정취를 완상하러 덴동어미를 비롯한 안동댁,단양댁,달실댁,골내댁 등이 주고 받는 얘기는 조심스럽지만 화전 놀이날만은 해방의 공간이 되고 여인들이 물만난 물고기와 같이 생동감과 발랄함,구성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엿장수인 덴동어미의 구성진 노래가락은 듣는 아낙네들로 하여금 신명을 불러 일으키고 덩실덩실 춤사위까지 유혹한다.또한 일찍이 어린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아온 청상과부들의 마음과 가슴 속에는 말도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 나고,아낙네들이 준비해 온 갖가지 음식 재료로 솥뚜껑 위에 지저대는 화전의 향기는 진달래꽃과 어우러져 감미로운 화음을 연출하고 해가 질 무렵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막막하기도 막막하고 섧기도 서러웠지마는 해 뜨면 한 그릇 밥나눠 먹고 해 지면 끌어안고 살 붙일 사람 하나 곁에 있으니 그 온기로 살 만했네. - 본문-
사회 구조가 여인의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일상을 일구어 나가야 하니 그 많은 시간과 세월의 응어리를 화전 놀이에서는 유감없이 마음껏 그 스트레스를 풀었으리라.화전 놀이가 여인들의 해방 공간이라면 사람구경,물건 구경하는 유일한 낙은 각고을마다 정례적으로 서는 장날일 것이다.안동장,풍산장 등의 벅작벅작한 시장터에 떡,국밥,방물,옷감,자반 장사가 있고 덴동어미는 평생 엿장수가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부분에서 굴곡진 삶이 언제 어느 시절에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명 치마,무명 저고리를 입고 머리는 비녀를 꽂은 채 봄바람에 치마폭이 나폴거리고 바둑이도 함께 하는 화전놀이는 여인들이 족쇄에서 해방되는 날이었다.남자는 술로 회포를 풀고 여자는 수다로 회포를 푼다는 말이 화전놀이에서도 그랬을 것이다.별미는 작가가 풀어내는 본토박이 경상도 사투리를 잘 구성하여 읽는 내내 재미와 흥미를 몇 곱절 안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