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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세상을 더듬다
저우쭝웨이 글, 주잉춘 그림, 장영권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5월
평점 :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이 책표지와 같이 하얀 도화지로 되어 있어 몸과 마음마저 순수,평화,사랑으로 가득한 온전하고 이상적으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인류가 시작되면서 국가발전과 생활수단으로 투쟁과 이동,권력의 축적을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어지다보니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강자가 약자에게 늘 강요와 감시,견제를 해왔는지를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미물(微物)인 달팽이가 바라본 세상살이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다.태생과 유전자가 느리게 살아라고 점지해 놓았기에 달팽이는 밤이나 낮이나 등껍질을 달고 이곳 저곳을 쉼없이 기웃거리고 꼬물거리다 생각치도 않은 천적을 만나 죽음의 고비를 맞이하기도 한다.보는 사람이 아슬아슬하다.운이 좋게 살아 남아 또 다른 길을 떠나다 보면 좋은 벗도 만난다.그 벗은 달팽이에게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달팽이는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됨을 알게 된다.
달팽이의 이러한 일련의 삶의 과정이 인간 개개인에 비추어 보아도 마찬가지이리라.가만히 누워 떠먹여 주는 밥만 얻어 먹고 살 수는 없기에,부단히 몸을 움직이고 두뇌를 사용하면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좌절을 느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론 나를 진실로 알아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의 동행자가 있기에 삶은 그 자체로 힘들기도 하지만 축복의 한마당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늙은 달팽이 할머니는 등껍질이 누군가에게 짓밟혔다든지 낙상을 했는지는 몰라도 상처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게다가 흉칙하게 난 상처 틈새로 개미들은 달팽이의 살점이라도 뜯어 먹으려 달라들고,지나가던 달팽이는 자신에게 들이닥칠 위기의 순간을 본능적으로 알고나 있듯 주춤주춤 꽁무니를 빼는 모양이다.

애벌레와 풀잎 가지에서 희롱거리다 보니 어느새 벗이 되고 혼자일 때의 외로움과 공포심을 사라졌다.그런데 어느새인지 사마귀 한 녀석이 두 발에 힘을 주고 서서히 다가오지 않는가?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이 순간을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무척 힘들 것이다.애벌레가 달팽이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달팽이에겐 개미는 무서움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생 경험이 많은 멘토일 때도 있다.무더운 찜통 더위가 시작되면 으례 한줄기 소나기가 내릴 거라는 예언은 곧이어 적막을 깨우고 쏟아지는 단비에 달팽이는 찌든 때를 말끔히 씻겨 내고 내일을 위해 또 어딘가로 향하여 도전해 나갈 것이다.

그가 만난 수많은 군상 중에서도 맑게 개인 밤하늘에 외로이 떠있는 달님은 말은 하지 않지만 더 없이 반갑고 정겨우리라.달님이 세속의 오욕칠정에 대해 하나 하나 가르쳐 주는거 같다.두 촉수를 안테나마냥 반듯하게 세우고 달님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는거 같다.
북디자이너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주잉춘은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서방국가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그는 <나는 한 마리 개미>로 도서계에 총아로 떠오르고, 저우쭝웨이의 글솜씨까지 잘 결합되어 이 글은 짧은 시와 같이 전해져 오지만 느리면서도 움직여야 살아갈 수가 있는 인간의 본질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도 있을 테고 해꼬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바람과 비 등의 궂은 날씨도 어떻게 적응하고 대처해 나갈지를 달팽이는 이미 깨닫게 된거 같다.하찮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미물를 보면서 인간의 이기적 본능과 대립,갈등 관계도 조금씩 완화되어 가는 사랑스런 세상이 펼쳐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