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의 집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조남선 옮김 / 뿔(웅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몇 편째 읽어 가고 있는데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상실한 인간성을 되돌리고 감성과 순수함을 자극한다.시간과 세월 속에 빛이 바래고 인간의 육신의 한 조각 한 조각 주름이 패이고 기억의 회로도 사그라지겠지만 깊은 장롱 속에 숨겨 둔 아롱지는 다이아몬드의 빛깔마냥 반짝거리는 존재가 있으니 산업화와 개발 이전의 시대에 소꿉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짚으로 엮은 초가집과 장독대 뒤 새파랗게 자라나고 있는 옥잠화,봉숭아,채송화,향나무의 향기가 그리움을 더하고 돌담 위엔 호박꽃이 활짝 피어 벌들이 윙윙거리며 수줍게 아기호박이 호박꽃 꼭지를 떨구는 시절이 내게는 '오로라'의 존재가 아닌가 싶다.

 

 순수하고 맑고 경쟁과 긴장감이 덜했던 시절이기에 눈을 감고 회상에 젖어 들면 산과 들,바람과 물,사람과 동물들이 그저 한가롭기만 하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태어나고 자라며 세상에 부러울게 없던 마음의 여유와 풍요가 내 어린 시절에는 많았던거 같다.초가집은 할아버지께서 엮으시고 짚과 용마루를 착착 만들어 지붕을 이어 나가고 다음 해가 되면 비와 눈,풍화에 의해 썪은 짚 속에서는 굼벵이가 득실거리고 그것으로 허약해진 몸을 보신용으로 사용했던 어르신들의 민간 지혜는 지금은 먼 옛날의 이야기이고 청소녀들에겐 생소하기만 할 것이다.

 

 언덕 위에 우뚝 솓은 오로라의 집은 종려나무 밑동과 우거진 수풀에 반쯤 가려져 있고 나뭇잎이 드리우는 그림자와 함께 찰랑거리는 하얀 구림 빛 궁전,오로라와 빌라 오로라의 주인에 대한 얘기를 할머니로부터 듣고 자랐던 제라르와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고 개발로 사라져 가는 얘기를 아나느 <세상 밖으로 또는 오클라몽드>에서 들려 주고 있다.

 

 산업화와 개발은 삶의 질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고 윤택을 안겨 주지만 개발로 인해 대지는 몸살을 앓고 생태가 사라져 가며 구획은 획일화 되어가고 공동체간의 소통은 단절되어 가고 만다.인간과의 관계는 돈과 물질로 대별되고 신분과 위상만이 존재의 값을 매기며 닫혀진 인간의 내면과 진실은 왠만해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저 포장된 진실과 위선만이 가득차 있을 뿐이다.

 

 엊그제와 같은 내 어린 시절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거 같아 서글프기만 하다.명절이 되면 선산 가는 길에 잠깐 보는 옛 마을의 모습은 산과 들만이 그 형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고 사람과 집들은 모르는 이방인과 사각으로 둔갑한 슬라브 집과 딱딱하게 범벅된 아스팔트가 그 산골 마을에도 고스란히 산업화의 징표를 안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오므라들 뿐이다.어느 한 구석에도 내가 살았던 흔적과 다시 밟아 보고 싶은 누런 대지의 모습이 보이질 않고 그저 눈을 감고 추억의 타임머신을 타야만 아스라하게 그 시절의 오로라가 빛과 바람,구름,꼬물꼬물하는 동네 사람들이 희미하게 다가올 뿐이다.인간에게 편리함 못지 않게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통감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