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북성로의 밤(체험판)
조두진 / 한겨레출판 / 2012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일제 강점기 국내에 들어온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펼쳐 가는 사랑과 갈등,명예와 질투,개인의 정체와 존재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뇌리를 관통해 나갔다.나라 잃은 서러움도 크지만 국가의 혼과 이념,사상마저도 빼앗긴 채 철저하게 일본인의 생각과 지시,조직에 의해 휩쓸려 가는 세태를 꼬집고 사랑은 이념이나 국경을 초월하여 순수하고도 애틋한 정념이 싹트어 간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마저도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배제되는 가슴 아픈 시절의 이야기가 대구의 북성로(北城路)의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을 중심으로 당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자본과 물자를 내세워 국내에 들어온 일본 오우미상회(近江商會)의 미나카이 백화점이 포목점으로 시작하여 일본의 대동아공영과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치닫을 무렵의 대구 북성로의 낮과 밤과 조선인과 일본인의 정체과 존재에 대해 현장감 있게 거침없게 스토리텔링이 질주하고 있다.

 

 일본 오우미(近江)는 시가(滋加)현 지역을 중심으로 상혼이 발달되어 온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듣기로는 '파리가 어깨에 달라 붙어도 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장사 수완과 상혼이 깊게 배여져 있는 곳이다.이 지역의 미나카 형제중 셋째인 나카에 사장이 조선에 일찍이 발을 들여 놓고 포목점으로 사업을 시작한다.조선에 들어와 36년이 흐를 무렵 일본은 진주만 공습에 유럽에선 독일에 연합군에 패하고 종전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일본 경찰과 헌병대에 의한 노무 보국회라는 이름하에 조선의 젊은이들이 다시 못 올 전장터로 나가고 미나카이 백화점은 군대와 관청의 지원이 컸으며 지나,중국,조선에 20여개의 커다란 사업장을 거느리고도 남았고 나카에 사장 역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빗자루로 백화점 앞을 청소하는 것을 하루의 일과로 시작하여 근면.성실로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 그가 사업장을 진두지휘하고 휘하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점에서 오우미상회의 사업근성과 상혼을 본받을 만하다.

 

 나카에 사장에게는 외동딸 아나코가 있다.그녀는 청춘의 싱그러움과 순수함, 아카시아 향이 솔솔 풍기는 상큼함이 판매부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정주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나코는 순수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노정주에게 먼저 아는 체를 하고 밤이 되면 노정주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기도 하는데 노정주는 일을 마치고 마음이 꿀꿀해지면 여학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그녀와의 미래를 혼자서 그려 보는데,아나코에게 침을 흘리고 있는 헌병대 구로가와(黑川)는 나카에 사장에게 그의 딸과의 맞선을 요구하지만 아나코는 어쩔 수 없이 선 아닌 선을 보게 되고 마음 속의 뜨거운 연정과 사랑은 노정주에게 이미 간 상태이고 구로가와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자존심과 명예를 내세워 아나코에게 스토커마냥 치근덕대고 강간마저 서슴치 않는 등 그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나라를 잃고 조선의 젊은이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은 가운데 노정주의 사촌형은 소학교 시절 그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야마모토의 후광을 입고 일본 경찰에 투신하게 되고 치안과 사상범들을 가려 내고 일본인으로 거듭 살아가기를 원한다.나라를 빼앗기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의 경찰관으로의 행색은 어찌보면 친일파이고 혼(魂)마저 일본화한 저주받을 인물이지만 가난에서 벗어나 윤택한 삶과 명예를 거머쥐고 싶었던 생각과 신념이 뇌리에 있었을거 같다.반대로 바로 아래 동생 치영은 '의열단' 소속으로 조선의 해방을 위해 조직원으로 일하면서 그의 형을 처단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고,일본이 저지른 2차 세계대전은 패색의 기미가 짙어가고 결국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육성에 의해 전쟁 종지부를 찍고 전쟁에 대한 책임에 대해 규명을 하면서 조선에 와있던 일본인과 사업장들이 문을 닫고 '걸음아,나 살려라'는 식으로 서둘러 몸만 빠져 나가게 된다.

 

 거의 36년간을 미나카이 백화점에 전심전력했던 나카에 사장은 미나카이 백화점만은 내놓을 수 없다는 일념이었지만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미군정에 양도를 해야 되고,백화점 주인을 조선인으로 내세우려 그의 딸 아나코와 조선인 사위 노정주를 콩 볶아 먹듯 혼인식을 올리지만 이미 미나카이 백화점은 그의 손에서 멀어져 가게 된다.나카에는 귀국길에 오르지만 몸과 마음이 미나카이 백화점에 머물고 그의 부인과 아나코만 귀국하게 된다.훗날 대구를 찾아 온 아나코는 우연찮게 노정주를 대구역 앞에서 만나게 되지만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노정주의 삶도 별볼일 없는 처지로 나락하게 되지만 아나코는 북성로에서 알콩달콩 나누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개인은 나라의 이념과 체제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는 극히 현실적인 만남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나라를 빼앗기고 주객이 전도되었던 일제 강점기의 조선의 산하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도 대다수의 조선인은 초근목피로 어렵게 연명했으리라.노태영과 같이 기회주의적이고 약삭빠르게 처신하며 개인의 삶과 명예를 이끌어 가려 했던 부류도 있었을테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의열단을 조직하여 해방 조국을 염원했던 피끓는 청년들도 있었으리라.나아가 나라는 다르지만 순수하고 정념적이고 미래를 약속할 남녀사이만큼은 제대로 지켜주어야 했겠지만 노정주를 이등국민으로 치부했던 일본인의 오만과 편견이 아나코와 일찌감치 하나가 되지 못한 점이 가슴이 아려오고 애틋하기만 하다.대구의 북성로는 이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신천,향촌동,수성 지역은 군대생활을 대구근처에서 했기에 귀에 익은 지명이기도 해서 읽어 가는 재미와 연상 작용이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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