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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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절의 어둡고 아픈 기억은 지워질거 같으면서도 비가 오면 허리가 쑤시고 무릎 마디마디가 저려오는거처럼 그러한 시절을 체험하고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때론 악몽같기도 하고 때론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이만큼 먹고 살 수가 있었다고 회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고통을 서사적이고 사실감에 비중을 두고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조정래작가는 과거의 통증을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기에 작가가 그리고 있는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든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이든 대한민국 하늘아래 사는 같은 사람으로서 서로가 같은 입장이 되어 이해하고 배려하는 휴머니즘을 일깨우고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론 소설 모음집은 좋아하지 않은 편인데 이번 작품만큼은 기시감도 들고 실제 보았음직하고 겪었던 시절의 이야기라 아픔이 희망이 되고 추억의 편린이 되기도 하며 옷장 구석에 묵혀 두었던 옷가지들이 새롭게 세상의 빛을 발하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또한 작가가 혈기왕성한 삼십대에 그려진 작품이다보고 1970년대 중반의 갖가지 사건.사고를 반추하기에 글의 전개력도 박진감이 있고 작가만의 토속어(전라도 사투리)는 언제 들어도 친근감있게 다가온다.

 

 "내 생각으론 꿈이란 야망하고 가가운 것이 아니라 상처하고 친구예요.아픈 과거의 되풀이가 꿈인거 같아요." - 본문에서 -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일어났던 한국의 그늘진 구석과 현대화의 추동력이 발빠르게 흘러가고 내겐 생소하게 느껴지는 일도 있지만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고 전기밥솥,텔레비전이 들어오는 광경은 전근대적인 농촌풍경에서 탈피하여 매체와 친해지고 가족간의 대화가 조금씩 단절되어 가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선명한 기억으로 부각된다.수출 100억불을 달성하면서 한국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고 내 어릴 적 전기가 들어오면서 전구(전기다마)의 촉에 광선이 빛나면서 내가 느낀 황홀감과 이채로움은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는 유신헌법 파동과 민주화의 운동으로 나라가 일률적으로 정한 사상범 아닌 사상범들이 많았고 이 글에 실린 사상범은 바위 덩어리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층층으로 감방을 만든 교도소에서 간수의 마음을 휘어잡고 자유의 희망을 잃지 않고 간수와 함께 어슴푸레한 파도를 헤치며 비둘기처럼 마음껏 훨훨 날아가고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동호의 구차하고도 고달픈 삶,고아로 살아 온 미스 김의 유서없는 자살 소식, 아파트에서 노인이 죽게 되고 가정의례준칙에 의해 곡(哭)도 마음대로 못하는 아파트문화의 비정함,한국의 혼혈아들이 겪는 인종차별과 그들(하파:한국혼혈인회) 나름대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귀신 소동을 빙자하여 남의 묘를 파헤치는 마을 이장 부부의 야누스적인 모습 등이 이 글을 관통하고 있다.

 

 총 8편의 글 속에서 모두가 아프고 어두운 과거이지만 좁은 땅에서 외국인과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천대하고 이질적으로 대하며 고용면에서도 차별을 두는 등 같은 국민이면서 편 가르기와 사회 구성원간의 부조화를 조장하는 문제가 당시 정부의 중국인 및 미군과의 사이에 낳은 후세들이 겪어야 했던 다난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어둡고 아픈 과거를 퍼올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작가의 취지만큼 이젠 어둡고 아픈 미래보다는 밝고 건강한 한국의 미래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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