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부천 원미동은 원미산과 더불어 공기 맑고 인심이 후한 동네였던거 같다.산업화와 투기열풍이 불면서 월세와 전세를 살던 사람들이 살기 좋고 개발이 일어나리라 예상되는 외진 곳으로 이동의 꼬리를 물고 이동하게 된다.개발에 대한 얘기는 신문지상보다는 유력한 자의 한마디에 소리 소문없이 발빠르게 번져 나가고 호시탐탐 엿보고 있던 투기꾼들은 빚은 내서라도 가난만은 면하고 대대손손 부를 거머쥐기 위해 생사쟁탈전을 벌인다.그러한 광경은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 가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일부 계층이 꼭 있게 마련이다.그러한 사람들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내 돈으로 내것을 산다는데 누가 간섭할 권리가 있냐는 식이기에) 과열이 되다보면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대다수의 서민들은 허탈감과 상실감만 누적되어 가고 삶의 질이 떨어지며 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 역시 증폭되어 가기 때문이다.

 

 나 역시 투기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대학시절 120만원의 전세에서 신혼초 2,400만원의 전세에 이르기까지 십회에 가까운 이사를 왔다 갔다 했다.혈혈단신이었던 총각 시절엔 세간살이가 단촐하여 리어카 하나와 친구,가족이 도와주면 이사는 수월하게 끝이 났지만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새간살이가 늘어나고 챙길 것도 많고 이사하는 장소가 먼거리였기에 이사 비용은 나가지만 이삿짐 센터를 불러 이사문제를 해결해야 했다.이 글에서도 재미있게 묘사했듯 이사할 때에는 피아노가 가장 골치가 아프다.인부들고 낑낑 거리며 혹시 모서리에 상처라도 날까봐 좌우 앞뒤를 신중하고도 힘을 주어 보물다루듯 옮기곤 한다.그래서 이사를 여러번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정처가 없어지고 가재도구들은 폭격에 맞고 폭풍에 휩쓸린 물건마냥 앙상하게 변하고 몰골이 영 말이 아니다.

 

 부천 원미동은 개발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가롭고 평화로움이 넘쳤던 전원적인 시골마을의 상징이었던거 같다.글에 등장하는 '강노인'처럼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전답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모습에서 진정 전형적인 농부이고 농촌을 지키겠다는 숨은 파수꾼이지만 나라에서 개발을 확정하고 밀어 붙이기 식으로 나오면 공권력에 당할 장사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개발은 인간에게 편리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지렛대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론 삶의 터전을 잃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야만 하는 촌부들의 가련함과 정부의 냉정함이 극명하게 대조가 되며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너무도 씁쓸하다.

 

 주인공인 내가 원미동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지물포,형제슈퍼,사진관,써니전자,강남부동산,정육점,미용실,화장품 가게가 생겨나면서 가게들은 저마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한 가격경쟁을 이어나간다.또한 다방이 성행하던 시절이어서인지 다방레지들의 발빠른 배달과 애교섞인 콧소리 등도 간지럽게 다가오는데 내가 대학시절(1980년대)의 풍경은 원미동 뿐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일상에서 보고 지나쳤음직한 추억의 장소들이다.경호네와 형제슈퍼 김반장이 슈퍼를 운영하는데 '싱싱청과물'이 새로 들어서면서 가격경쟁이 치열해 지고 종국에는 들여오는 가격(본전)도 뽑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경호네와 싱싱청과물 주인은 육탄전을 벌이는데 동네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사건은 불상사로 이어지고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원미동 23통 근처는 하루가 멀게 이런 저런 가게가 생겨나고 동네 사람들의 이런 저런 얘기가 입이 가벼운 아낙네들의 안주거리가 된다.행복사진관 주인이 유부남으로서 여성과의 교제로 인한 썸씽이 스캔들로 비화되어 주민들의 입에 오르게 되고 통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작가는 11편의 단편 소설을 원미동 사람들과 연관성 있게 풀어 나가고 있으며 '한계령' 편에서는 원미동 사람들의 인생 역정을 총괄적으로 정리한다.'86아시아 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원미동은 개발붐과 투기의 장으로 변하게 되면서 고만고만하게 일상을 꾸려가고 삶을 이끌어가던 가게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어디론가 새 삶의 터전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질곡과 같은 인생의 역정을 시대와 사회상을 들추어 내고 1980년 당시를 혈기왕성하게 살아왔던 세대들에겐 비록 아날로그와 같던 시절이고 궁색하고 비좁은 불편한 삶이었지만 지나간 시절 서민들이 질펀하게 울고 웃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나도 그런 때가 있었구나'라고 회고해 보는 추억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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