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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나무 여행 ㅣ 내 마음의 여행 시리즈 2
이유미 글, 송기엽 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어릴 적 놀이터가 산이고 들판이었다.꽁꽁 얼었던 대지가 녹으면서 보리밭엔 보리싹들이 두터운 땅을 어렵게 뚫고 파릇파릇 고개를 내밀고 여름이 되면 말 그대로 산과 들은 온통 녹음방초로 치장을 하여 마음마저 생동감과 에너지를 안겨 주었다.오곡백과가 익어가는 가을엔 나무마다 고유한 성질을 뿜어 내고 색색으로 시복을 안겨 주고 긴 겨울을 앞두고 초목들은 한 해살이를 마감하면서 잎을 땅으로 떨구고 다음 해를 기다리곤 했기에 자연 속의 초목들의 삶을 보고 만지고 응시하면서 생각과 감성,생명력이라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땔나무를 하고 내려 오는 산비탈 구석진 곳엔 돌돌돌 흐르는 조그마한 계곡이 있다.계곡 옆은 갖가지 이름 모를 나무와 푸석푸석한 잎새들이 봄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푸르른 기운을 선보인다.얼어붙었던 냇물이 꺼지면서 시원하고 유유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굴에 송글송글 맺혔던 땀과 먼지를 씻어낼 땐 말 그대로 청량수이고 그냥 마시는 약수와도 같았다.산을 내려 오면서 뭐가 그리도 정겨웠는지 산정상부터 산아래까지를 한 번 쑥 훝어본다.산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정겹고 고맙기만 한 존재이다.
사계를 인생의 성장과정으로 본다면 봄은 유소년기이고 여름은 청년기이며 가을은 중.장년층일 것이고 겨울은 노년에 비유할 수도 있다.자연과 인간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존재이지만 살아가는 과정은 모두가 시기가 있고 그 시기에 따른 특성과 고유의 빛깔을 띠고 있다고 생각된다.
올컬러로 봄에서 겨울에 이르기까지 시기와 계절에 따른 초목들의 면면을 보노라니 너무도 그립고 정겨우며 금방이라도 내가 살던 고향 마루에 앉고 다시 산과 들을 바라보면서 추억을 되씹고 싶어진다.내 기억 속에는 몇 십년된 마을 초입의 살구 나무와 뒷집의 다닥다닥 심어져 있는 감나무,과수원집의 탱자나무,뒷산지기의 밤나무,그리고 본가의 은행나무,리기다 소나무가 마을을 감싸고 앞 냇가는 저수지가 있어 사시사철 고인물 없이 흐르고 흘러 도회지 시민들의 상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봄이 되면 하얗게 피어 나는 살구꽃의 화사함과 이른 여름의 감꽃(시골에선 감또개라고 함)과 새색시 면사포와도 같이 길게 늘어뜨린 밤나무 꽃의 향기,과수원집 탱자가 익어갈 무렵 탱자 하나 따서 즙을 입에 넣으면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시고 신 맛과 늦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 떨어진 밤을 주우러 가고 뒷집에선 감들이 꼴과 색깔도 다양하게 변하여 가니 마음은 풍성하기 이를데 없다.우리집의 은행나무도 한 몫 한다고 주렁주렁 은행열매를 매달고 힘이 없어 떨어진 은행을 주워 껍질을 벗기면 구린내가 징하게 코를 쏘아댄다.흰 눈이 소복하게 내리면 계절과 관계없이 리기다 소나무는 군소리 없이 그대로 눈을 맞아주고 세상의 모든 진토를 걸러내 준다.
그렇게 산과 들을 벗삼아 오래도록 살것만 같았지만 삶의 여정은 이동인거 같다.추석 명절이나 되어야 살짝 고향 마을을 스쳐갈 뿐이고 대부분이 고속화 도로,외지인들이 들어와 살 뿐 그 옛날 싸우고 토라지고 함께 성장했던 선배,후배,동네 어른들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혹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슬픈 소식과 쓸쓸한 고향의 모습이 외롭게만 느껴진다.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앞산과 뒷산,앞동산의 초목들의 의연하게 쓸쓸한 시골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대견스럽고 고맙기만 하다.
산림생물조사과에서 근무하는 저자와 사진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 도서는 내겐 향수와 추억을 되살려 주고 시기,철마다 변화하는 나무들의 특징과 색깔,성질 등이 인간에게 한없이 고맙고 든든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또한 환경파괴와 생태계가 어느때보다 강조되고 회자되고 있는 시기에 비지니스라는 명목으로 산림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몰지각하고 사리에만 눈이 먼 일부 부류들이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존하는 각성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