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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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직접 부딪히면서 친밀해지기도 하고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 연모의 정과 우상이 되는 존재가 있기도 한다.좋은 관계로 이어지고 오래 함께 있을거 같지만 서로의 삶은 갈 길이 다르기에 어느 순간 멀고 먼 뒤안길이 되어 버려 빛바랜 앨범 속의 추억물쯤으로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는데 그러한 관계가 애틋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다시 만나 진한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따뜻한 마음과 끊겨버린 관계를 복원해 가려는 인간의 심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나아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과 마주보면서 대상을 탐색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해타산이 생기면서 이것 저것 재보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는 한차례 뒤숭숭하면서 튕기기도 하고 마음을 쉽게 열기까지 다소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나는 평소 말이 많지 않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고 내 입장이라면 어떻까?라는 생각과 배려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어린 시절 부모님이 객지에서 '양은 그릇,건채물'등을 장사하였기에 주로 조부모님의 잔소리와 부지런함,예의범절들을 듣고 배우면서 사회적 질서와 겸양의 미덕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배였다.특히 할아버님의 인자하고 과묵하며 성실한 촌부의 모습과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로 세상을 관조하고 매사를 소걸음마냥 묵묵히 임하셨던 생전의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아직도 할아버지의 인자하신 모습은 불현듯 꿈 속으로 날아오셔서 나를 건강하고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듯 굵은 손마디와 고개를 숙이고 밭과 논의 풀을 뽑으시고 몸에서 발현되어 오는 구슬땀을 수건으로 훔치시는 모습이 가끔 꿈 속에서 할아버지님의 생전 모습이 선연하게 다가오고 꿈에서 깨어나면 왠지 그립고 슬프며 인생이 너무 짧다는 감정이 복받친다.나는 쉬지 않고 조금씩 일해 가는 모습과 부처님마냥 인자한 미소가 좋다.그러한 모습 속에서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어린 시절 담배 냄새,땀냄새로 가득했던 할아버지가 꿈 속에 보이면 내 마음은 촌가의 마당과 들판으로 팔랑개비마냥 빙글빙글 돈다.

 

신경숙작가의 단편 모음집 <모르는 여인들>을 읽다 보니 옛 추억이 농밀하게 그리워진다.누구를 닮고 싶고 00상회에서 주인을 속이고 슬쩍 껌 한통을 훔친 일,절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가족이 하와이로 이민을 가게 되어 비포장 도로 위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던 기억,친구가 이종사촌 여동생을 소개해 주었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아 그녀를 차버리게 되고 친구는 내게 배신감이라도 들었던지 영영 연락을 끊게 된 사연,나보다 머리도 좋고 공부를 잘해서 그의 모든 것을 모방하고 그와 똑같이 되려고 했던 중학 시절의 나의 승부욕,내 밑으로 여동생만 줄줄이 셋만 태어나니 할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또 딸이냐!"라고 자조섞인 말씀과 그리고 바로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나니 할아버지의 이젠 됐다라는 표정 등이 내가 살아오면서 가족과 친구,나의 내면속의 기억을 끄집어 내게 한다.

 

낙천 아저씨의 신발 이야기,화분을 돌보는 이야기,왼손과 오른손의 다른 인격체를 갖고 있는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사이코패스마냥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인을 일삼는 주인공이 가족이 모두 사라진 뒤 그에게 남은 일말의 양심과 회개,지나가는 행인을 따뜻하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찰의 여인,외국으로 떠난 친구의 친구가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남편에게 몇 마디 남기고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실종당일 사라진 A와 나와의 편지가 남편에게 발각되고 고양이를 집에 들이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이야기,수술을 받는 남편을 병원에 두고 귀가하던 날 젊은 시절의 연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고 재회를 하면서 흘러간 시간과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곱씹는 스토리로 이루어진 그녀의 전반적인 스토리이다.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 및 진행형,앞으로 다가올 일들은 모두가 인과관계가 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사적인 것들이다.그러한 이야기들이 보다 나은 삶을 이끌어주기도 하고 다시는 생각조차 꺼내기도 싫은 것도 있을 것이다.평생을 함께 살거 같은 대상도 언젠가는 진토가 될 것이고 연애와 같은 설레이고 실연에서 오는 상처와 트라우마 등도 나이와 세월의 무게만큼 침잠해지고 자유스러워지는게 중년의 모습일 것이다.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존재들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빛이 바래져 간다.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고독한 존재로 거듭나 살아가는 시기가 중년이후의 삶이다.나 자신만의 기억과 추억,관계를 통해 내 자신이 거듭나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고 싶고 고독의 절망이 아닌 고독을 이겨내는 행복하고 후회없는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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