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894년 여름 -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지음, 정현규 옮김, 한철호 감수 / 책과함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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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壁眼)의 오스트리아 여행가에 의한 19세기말 조선의 기행문은 호기심으로 가득차기도 하지만 당대 조선 국내 사정이 개화파와 수구파,외세의 부침 속에 샌드위치에 있었던 터라 후대의 한사람으로서 조금은 우려스러운 면도 있었다.바르텍이 본 1894년 여름의 조선의 국내 모습은 부산과 제물포,서울이 주가 된다.당시 상황은 외세의 힘을 빌려 동학혁명이 일어나며 그로 인해 불붙은 청.일전쟁으로 조선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볼피첼리의 <청일전쟁>과 부르다레의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을 통해 구한말 조선의 실상과 백성들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도 했지만 이번 견문기는 당시 조선의 모든 분야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그 느낌을 소상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그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는지는 모르지만 구한말 조선의 교역량(1883~1893)에 상품과 화폐를 대별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도 역사를 연구하고 관심있는 이들에겐 커다란 자료임에 틀림없다.

 

그는 나가사키를 떠나 부산에 상륙한 다음 부산에서 몇 일 머물다 제물포로 이동하고 다시 한양(서울)로 이동하는 과정을 그린다.하얀 광목과 짚신을 신은 조선의 백성과 청.일전쟁의 와중에 조선에 상주하는 청국민과 일본인 그외 선교사로 들어와 포교활동을 하는 서양인들은 마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거 같이 다가온다.길을 가더라도 일본인이 앞장서고 다음은 중국인 맨 마지막엔 조선인은 짐 끄는 마차처럼 터벅터벅 걷고 있는 점이 한스럽기도 하고 애달프기도 하다.

제물포는 왜색보다는 유럽 스타일의 호텔과 상점,우체국과 영사관 건물이 세워지고일본인 구역과 유럽인 구역의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는 점도 특이하다.또한 일본인들이 사교모임으로 당구장과 끽차점(喫茶店:다방)이 있었다.조선인은 얼씬도 못하고 밥이 보약이라 밥을 주식으로 하고 후식은 숭늉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제물포에 살던 백성들의 주된 일은 고기잡이,노 젖기,짐 나르기 등 고단하고 티가 지 않은 일용직이 위주가 됨을 알게 된다.

 

제물포에서 한양까지는 30마일 정도이고 영등포에서 마포까지 가려면 돛단배를 타야 하고 홍수가 나면 통나무로 얽어 놓은 다리를 떼어야 홍수에 휩쓸리지 않으며 그가 본 조선인의 체격은 중국,일본인보다 골격이나 신장면에서 월등하다고 한다.행차는 조랑말을 이용하고(지체 높은 사람),짐은 인력거나 지게를 이용한다.그가 한양에 도착해 가장 인상적인 점은 사대문을 지키는 성문의 열고 닫음이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다.이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켱 하고 해가 진 뒤에는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노숙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가 한양의 풍경을 맛보고 기록하기 위해 남산 정상에 올라 바라본 모습은 커다란 분지와 같고 그 분지 안에 빼곡히 집들이 맞붙어 있었다.그 초가들은 납작한 오둑막의 초갖붕 1만여 개가 마치 공동묘지의 회색 봉분처럼 다닥다닥 늘어서 있고,도로도 없고 눈에 띄는 건물이나 사원,궁전,나무,정원이 없었다고 한다.마치 몰락해 가는 조선 최후의 숨결이 소리없이 전해져 오는거 같다.

 

음식에 대해선 구역질 나는 것이 많다고 소감을 피력하고 왕이 먹는 음식의 종류와 식사 시간만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임금만 우유를 마실 수가 있다는 점이다.또한 불상사나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나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전국 여덟 곳에 봏화(熢火)를 지핀다는 점이고 내시와 시동(侍童),여인들이 궁궐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면서 그는 조선의 백성만큼 순박하고 온후한 민족이 없는데 국정을 관할하는 왕조 및 사대부의 무능으로 인해 거짓과 범죄적인 곳은 없을거라고 술회하고 있다.

 

조선의 다양한 계급 중에 단연 가장 높은 위치는 귀족(사대부)이고 가장 낮은 계급은 상인,선원,간수,짐꾼,중,백정,무당으로 소위 '일곱 가지 천한 직업'으로 분류하고 있다.봉건적인 위계질서와 신분이 정착한 당시 조선에서 노예와 몸종 제도로서 많은 귀족들이 몸종을 거늘리며 종의 자식을 매매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자유로운 신분의 남자가 여종과 결혼은 할 수 있되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은 마음대로 사고 팔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서적 인쇄술과 금속 활자,도자기,채색 백자,닥나무로 만든 종이 등 조선인의 손길과 숨결로 만들어진 창조적이고 독특하며시대를 앞서가는 우수한 점이 많은데도 외부 세계와 철저히 폐쇄시키고 탐관오리의 억압과 착취,무능력한 왕조 및 사대부의 이권 다툼 탓에 명맥을 유지하던 산업마저 뒷걸음을 치고 조선의 운명은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고 황혼의 제국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이고 국가의 수장은 민본위주가 되어야 한다.모든 일은 절대다수를 차짛는 민초들로부터 발생하고 기인한다.민초들의 말을 경청하고 국가의 대계를 수립해 나갈때 비로소 그 나라는 발전할 수밖에 없다.현재 정치권을 볼 때 갑론을박하면서 자리다툼이나 이권 챙기기에 바쁘기만 할 뿐 민생문제나 서민들의 고초를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분노가 치밀 뿐이다.조선말 벽안의 한 여행가가 보고 듣고 발굴해 낸 자료를 정리한 '조선 견문기'는 조선의 전체는 아니더라도 조선의 심장을 통찰력있게 그려낸 글이기에 사료 및 학습연구로써 전혀 손색(遜色)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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