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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삶이 팍팍하고 질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백수가 넘쳐 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못해 비관한 나머지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비정규직 인구 비율이 높다보니 사회 구성원들간의 화합과
통합은 요원하게 보여지고 마치 견원지간(犬猿之間)과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그것은 사회 지도층의 정책부실과 민생을 외면한 돈과 권력,명예를 갖춘
자들끼리만의 한마당쯤은 아닐까 한다.나아가 생계에 영향을 주는 유가와 공과금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오르고 손에 쥐어지는 경제적 수입은 늘
그자리에서 맴돌 뿐이니 중산층 이하가 절대다수인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정부 및 갖은 자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팽배하고 돈이라는 생활 수단을
찾기 위해 경제 사범이 증산되고 있는 것이 단지 한 개인의 문제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정권을 쥐고 있는 윗분들게게 담백하게 묻고
싶다.
개인의 삶은 태어나면서 죽음의 순간까지 '고통'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태어나면서 좁은 산도(産道)를 뚫고 세상의 축복을 받지만 그것은 잠깐이다.말을 배우고 사람과 사물,학습을 통한 인지와 공감,안목,통찰력이
배양되고 사회인이 되고 나면 그야말로 황야에서 스스로를 개척하는 1인의 독립자로서 세파를 이겨내고 견디며 손과 발에 옹이 생길때까지 각고의
의지와 열정,노력을 통해 개인과 가족,사회의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게 사회인이 되기 위한 수순이고 여정이 아닐까 한다.그리고 일찍 찾아오는
'사오정','오륙도'와 같은 씁쓸한 사회의 퇴역과 불안하고 우울한 노후를 얼마만큼 견디어 내야 할지 불안감과 고독,인생의 황혼이라는 외로움을
달래며 죽음의 문턱 앞에서 또 한 번의 고통을 맞이하게 되는게 인생이 아닐까 한다.
그럼,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참된 길이고 정석(定石)일까? 이에 대해 신앙인으로서
<무지개의 원리>로 잘 알려진 차동엽신부님이 빚어내는 삶의 길은 크게 네 개로 분류하여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삼성을 창설한
고(故)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인간이 영원에 대한 궁금증을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24가지이 질문이 오래도록 묵히게 되었지만 차신부의 신앙 생활 고백과 명언 등의 인용을 통해
인간의 영원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지금 한국 사회엔 거목과 같은 정신적
지주의 부재와 물질 숭배사상이 지배하다 보니 참된 인성과 삶의 질의 제고,행복이란 무엇일까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반향 (고요한 수면
위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언제 어디서든 불청객마냥 찾아 온다.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고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자포자기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모든 문제 해결은 이미 알고 있고 관성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나도 그렇지만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났을 경우에는 허둥지둥댈 때가 많다.좀 더 침착하고 냉정하며 일의 처리 과정을
면밀하게 인지하고 이해해서 다음엔 그 전철(輾轍)을 밟지 않는 지혜를 터득해 가는 것이 요체라고 생각한다.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말씀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심미적인 삶을
추구하다 절망의 늪을 벗어나게 되면 윤리적인 삶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인간이 갖추어야 할 보편적 가치와 윤리에 따라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그러나 현실은 도덕에 이르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 및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부딪히게 되면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최종단계로 종교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비록 나는 무종교인이지만 힘들고 일이 꼬일 때에는 내 정신적 지주에 대해 진심으로 성찰의 뜻을 전하고 보다 나은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머리 숙여 빈다.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순종할 때 인간으로서의 무력감과 허무감을 불식시키고 마음이 평온과 평정심이 제대로 정립되어 갈 때가
있다.
현대인은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채 매체나 게임에 의지하여 혼자 논다든지 무위적인 삶을 사는 이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이렇게 어느 부류나 단체생활에도 끼이지 못하고 홀로 되어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삶은 자존감과 자신감의 부족이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누구나 혼자가 되고 만다.하지만 스스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외로움보다는 고독(孤獨)으로 승화하여 매사 매시간
'지금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나는 오래사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등' 자문자답하는 독백을 통한 자신과의 소통을 통해
원숙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 나가야 하리라 생각된다.그럼으로써 외로움과 외톨이에 지쳐 스스로의
삶을 마감케 하는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연이 최소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 난사람,든사람,된사람이라는 말을 도덕시간에
배웠다.돈이 많은 난사람,학식이 많은 든사람,학식과 인격을 고루 갖춘 된사람 중에서 단연 된사람이라는 말에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돈이 많아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싶기도 하고 많이 배워 학식과 명예를 한 몸에 받고 싶기도 하지만 진정 내 내면에는 양심에 기초한 선함과 냉철한 지성이
살아 있기에 불의를 보면 참을 수가 없고 사회의 부조리와 부조화의 문제에 대해선 늘 분노가 치민다.사회의 잘못된 점에 대해 마음만은 동지를 갖은
분들과 함께 연대의 힘을 실어주고 싶다.또한 인간답게 살맛 나는 세상이 그렇게도 어려운지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이 혼탁하고 물과 기름마냥 사회
구성원들의 이지러진 현상은 사회나 국가를 위해 모두 손해라고 생각한다.양심과 긍휼이라는 숭고한 마음 자세로 모두가 영적인 신에게
맡기고 스스로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정진해 나가는 1인 독립정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어찌되었든 개인의 발전을
비롯하여 사회와 국가이 계속 존속되고 항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뇌와 가슴 속엔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누구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긍정의식은 나를 비롯하여 주위를 아름답고 활기차며 인간본연의 사랑과 용서,관용의 틀이 짜여져 나가리라 생각한다.부정적인 감정이 한동안 내 주위를
맴돌고 결국 답답증까지 찾아온 나는 일도 제대로 못하고 늘 병원을 주기적으로 찾아 다닌 적이 있다.되돌아 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은
신체를 망가트리고 발열과 답답한 가슴,심장의 고통,소화 불량,수면 방해 등으로 내 몸과 영혼을 죽이는 독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속에서 사람을 잘못 만나고 돈과 얽혀 마음 고생과 답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나에겐 늘 내 방식의 마음 다스리기를
하고 있다.매일같이 단지 주위의 공원길을 산책하고 마음의 독이 되는 것은 생각의 생자도 꺼내지 않으려 독서와 클래식 음악과 (누군가를)연민하고
배려하려는 착한 마음을 배양해 나가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웃는 얼굴보다는 심각하고 짜증 섞인 말투와 고성과 시비거리로 넘쳐 나고
있다.분명 사회의 독소라고 생각된다.슬프고 기분 나쁘고 두려우며 열등감을 느끼며 불안하고 무능하다고 느낄 때 내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행복을 위해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전환하는 성숙한 계기를 모두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지난 시절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노와 화,불용서는 창살없는 '과거의 감옥'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삶이 힘들고 절망적이며
답답하다고 느낄때 나 자신에게 무엇이 어떠한 계기로 이렇게 되었는지를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새롭게 거듭나는 전향적인 실천적인 삶의 자세야말로
인생의 영원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깨닫게 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