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중반 영국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유괴사건'을 둘러싸고 사건 해결을 맡고 있는 담당 변호사와 주변 인물들,언론사들이 펼치는 문체와 내용은 미스터리에 걸맞게 미로를 헤매기도 하고 진범이 나왔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까지 합쳐져 흥미를 더해 주었다.여성의 섬세한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되고 뛰어난 문체가 읽는 내내 반전을 기다리는 들뜬 마음보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 갔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다.게다가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사람과 차들로 북적대는 도회지가 아닌 영국의 한 시골마을이고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언론사들의 등장도 눈길을 끌만 했다.
법률사무소에서 주로 형사사건을 맡고 있는 로버트블레어는 한 통의 유괴사건을 의뢰받게 되는데 내심 내키지 않지만 맡을 사람이 없었던 탓인지 유괴사건에 충실하게 된다.조용하고 한적한 밀퍼드 거리에서 좀 떨어진 프랜차이즈 저택(邸宅)사건은 메리언 샤프 모녀가 살고 있는데 평소 커다란 구형차를 몰면서 주위의 시선과 회자의 대상이 되곤 했다.피해자는 16살의 베티케인으로 메리언 샤프 모녀에게 납치되어 하녀 취급과 폭행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고 진술하는데,샤프 모녀는 베티케인을 본 적이 전혀 없다고 딱 잡아 뗀다.베티케인의 기억력과 정확한 진술이 샤프 모녀를 옴짝달짝 못하게 하는데 로버트 변호사는 메리언 샤프 모녀를 두둔하는 듯한데 이는 당시 사건을 맡은 변호사와 경찰이 유괴사건에 커다란 무게중심을 두지 않은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애크에머>라는 신문사는 베티케인이 프랜차이즈 저택에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소녀의 친척들을 만나고 소녀가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건이 있던 기간 중에 밀퍼드 노선에 2층 버스가 다녔다는 것과 X의 존재를 밝혀 낸 것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는데 이는 신문사가 정황만 갖고 세인들의 관심을 끌게 함으로써 상업성에 너무 기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현대 범죄사건에 대한 수사는 치밀하고도 정교한 수사방식에 의하기 때문에 자칫 억울한 누명을 받을 수도 없겠지만 당시엔 주로 탐문과 편의주의적인 수사 방식이었기에 강렬하게 다가오는 수사과정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수사과정이 대화체로 되어 있고 섬세하고 유머 넘치는 세련된 문장이 압권이다.게다가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도회지를 벗어난 시골 마을이기 때문에 약간의 정중동(靜中動)의 부산스런 울림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한 문체라고 여겨진다.미스터리는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사건의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조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각자의 '지성의 힘'이 요구되는거 같다.임팩트한 요소는 없지만 몇 세기전의 얘기라 그런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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