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이 맞는거 같다.반면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다는 말도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세상은 늘 부유한 자와 빈한한 자로 나뉘어져 왔고 빈한한 자들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 부유한 사람들을 지탱해 주고 그 부는 세습적이고 대대로 물려줄 수있는 삶의 막강한 원천이 되지만 빈한한 자는 늘 제자리 걸음일 뿐이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가면 다행일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없이 살고 못 배운 시골 농부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단지 이야기의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서민들이 사회의 소외층에 속하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없이 그저 막노동과 허접스레한 일들로 연명을 해가던 해방후,경제개발이 실시되던 무렵이라면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고 자식들만은 가난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고 눈을 감으면 한(恨)이 없겠다던 옛 어른들의 되뇌임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은 그다지 산업개발과 도시화,문명의 혜택이 어두웠던 시절이었다.한가롭고 순박하며 공동체 생활이 두드러졌던 당시는 소득수준의 고하를 떠나 오손도손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던 시절이었다.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살아가던 이웃들은 농한기가 되면 마을 사랑방에 모여 술내기 화투를 치기도 하고 겨울나기용 땔나무 준비로 허청은 땔나무로 그득했던 시절은 그 자체로 수분지족을 누리고 살던 농촌 어른들은 자식들의 앞 길만은 열어주어야 한다고 초,중학교를 면소재지를 떠나 큰 도회지로 유학 아닌 유학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 글의 주인공 복천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갔던 사람이다.이야기의 싯점이 1960년 5.16혁명 당시 복천씨의 나이가 45세였다면 인생의 한창 때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한국 전쟁등으로 몸과 마음에 커다란 멍이 많이 박혀 있으리라.특히 변강쇠같던 복천은 주구장천 일만 하였으리라.20대에 박진사 댁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해방후 결혼을 하여 세 자녀를 두었지만 큰 자식이 돈벌러 서울로 가는 바람에 가슴앓이를 하던 아내마저 병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병원비로 생명처럼 가꾸어 왔던 논밭마저 다 날리고 동네 소를 훔쳐 판 돈으로 자식들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몸을 실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도회지는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고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그래서인지 인정은 박하고 낯선 외지인에 대해선 경계의 눈초리가 심할 수밖에 없는거 같다.복천씨의 노가다판에서 쫓겨 났던 얘기,떡장수의 조언에 따라 칼을 가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수입은 그다지 많지 않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공치게 된다.그의 머리 속에는 자식들을 위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평범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 준다.또한 외롭고 힘들 땐 죽은 아내와 함께 살던 단란한 시절을 떠올리고 돈벌러 집을 나간 큰 자식의 안부를 걱정한다.돈이 되는 일이라면 빈 병,폐품이라도 주워 팔려고 했고 복권 파는 아가씨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와 배려에 복천씨는 굳었던 근육이 살살 녹아지게 되고 복권의 마력에 빠지게 되지만 그것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게 된다. 조정래작가의 작품은 현대 한국사회의 소외층과 힘없는 자들을 대변하는 아픈 역사를 대변해 준다.복천씨와 같이 가난과 무지를 면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던 1960년대의 외지인들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거처럼 부산하게 움직이고 힘들여 일을 하지만 그들에겐 입에 풀칠 하기 바쁜 가련한 서민들이 대부분이었다.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같은 인간인데 신분과 부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거같다.가난의 설움과 못 배운 한을 되물림 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썼던 부모,조부모 세대들의 간난했던 시절과 그들이 가정과 자식들을 지켜 주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모습을 복천씨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깊이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