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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버먼의 자본론 -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리오 휴버먼 지음, 김영배 옮김 / 어바웃어북 / 2011년 6월
평점 :

세상은 어떻게 나뉘어 지고 있는가
현대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이상적이고도 행복하게 살아가고픈 마음은 나만의 꿈은 아닐것이다.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기회의 균등을 부여한다는 법 조항은 어디까지나 사회 구성원을 위한 의례 조항이고 항목일 뿐이다.현실은 극상반적이라고 생각한다.인간은 역사 이래로 힘과 부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사실이 아닐거라고 믿고 싶지만 그러한 힘과 부가 부모로부터 세습되어지고 경제적인 힘과 권력은 좋은 부모를 만나 뒷받침을 톡톡히 받고 성장한다면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제 과거의 일이고 구태의연한 발상이며 현실에선 그다지 적용이 안될 것이다.그만큼 현대 사회는 신자본주의를 숭배해야만 하고 신자본주의는 갖은 자와 생산 수단을 쥐고 있는 자본주의가의 편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미국의 진보적인 이론가이며 실천가로서 자본과 노동,소유와 분배에 관하여 독보적이고도 진실되게 설파하고 전달해 주는 인물이기에 이 도서는 물질적 풍요 속에 빈곤함을 피부로 느끼는 이들에게는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또한 1950년대에 쓰여진 이 도서가 현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질적으로 낮은 삶이 어디에서 발생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각 항목에 맞게 이분법적(자본가와 노동자)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단점이며 이를 극복할 방법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기에 누구든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고 자본가는 생산 수단의 주체 및 고용주이고 노동자는 손과 발을 이용하여 노동의 댓가로만 살아가는 존재이며 자본가는 이윤과 자본 증식을 위해 될 수 있는 한 적게 월급을 지급하고 초과시간 노동에 대해서도 수당을 주지 않는등 노동자에 가해진 가혹성은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이에 노동자는 가정의 생계를 위해 들어온 수입이 겨우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일 뿐이며 높아져만 가는 교육비,의료비,여가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오로지 노동 수단이 유지되기만을 바라면서 천민으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미국이 1,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서방 자본주의국가중 가장 부유한 나라라고 자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막을 들여다 보면 미국인의 10%만 경제 대국에 걸맞게 생산 수단 및 자본가로서 처세를 할 수가 있었고 나머지는 노동자로서 극빈 내지 현상 유지의 생활만이 가능했을 뿐이고 이러한 경제적 빈한이 세습되어지며 사회적 양분화 현상,사회구성원간의 위기감,사회 불안 요소의 증폭등으로 이어져 감을 알게 된다.
자본가는 계습,잉여가치,부의 축적,독점 면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노동자들의 안녕등은 도외시한 채 최대한 많이 부려먹기에만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현대 한국사회에서도 노동 조합에 의한 노동쟁의와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이는 자본가 즉 생산 수단을 쥐고 있는 CEO이하 경영진들의 사복 채우기와 잉여 가치의 축적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제자리 수준 내지 밑도는 상황이고 사회가 요구하는 공공요금,세금,물가등은 갖은 자와 동일한 잣대로 재고 요구하기에 이는 사회 불평등 요인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1935년 미국 '와그너 법'에 의해 노동자들은 조합을 결성할 수가 있었고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을 막을 법적 권리를 더 이상 갖을 수가 없게 되었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회사측에 빌붙어 지내는 어용 노조를 비롯하여 고용주들의 주요 인물 감시,정보를 빼내는 스파이 활동,노조 가입 포기를 조건으로 채용하는 횡견 계약,물리적 폭력 행사등이 있었음에도 시대와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다.한국의 경우에도 100%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에 노동자들의 삶의 질적 향상과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바람이 간절하기만할 뿐이다.
사회주의의 특징과 노동자들이 나아갈 길
어렵지만 가능한 사회주의를 살펴 보면 국가가 소수 사람들에 의해 소유되고 그들만의 이익을 의해 그들에 의해 관리되는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며 국가는 국민들에 의해 소유돼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에 의해 관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또한 국가는 "국민들에 의해 소유 된다"는 점인데 생산수단의 주체가 독점적이고 편향적인 것이 아닌 공적 소유를 지닌다는 점이다.이는 마르크스의[자본 -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잘 나타나 있으며 마르크스는 역사를 고증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과거 사회'및 '오늘'의 경제 체제를 비판하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는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탈바꿈시켰으며 노동계급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노동계급 스스로 자신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질서의 설계사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와 중앙집권적인 계획 수립에 바탕을 두고 '사용'을 목적으로 삼는 생산시스템이며 가장 큰 특징은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일한 만큼'받는다는 점이다.고용주이며 생산 수단의 주체가 과연 노동자들에게 일한 만큼 급여와 수당을 제공할까? 이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 및 기업주의 뇌의 구조상 시기상조이고 커다란 반발과 사회 혼란이 가중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와 같은 이분법적이고 '주인과 머슴'이라는 관계가 지속된다면 현재뿐만 아니고 뒤를 이어 오는 노동자들의 후대들 역시 천민 내지 노동자의 신분으로 살아가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주의 지식에 대해 일천하지만 사회주의가 생산 주체가 된다면 이는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일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절실하게 느끼는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에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풍요로운 수준에 도달하고 인생관을 숭고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여진다.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자본주의의 해악에 대해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사회주의의 실천을 둘러싼 의견 합일에는 실천하지 않았다는 점과 마르크스도 '사회주의의 체제'를 위한 청사진이 그의 분석 작업 속에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바라보며
개인의 태도와 신념에 따라 자본주의가 우선이냐 사회주의가 우선이냐가 머리 속에 그려질 것이다.그러나 역사는 늘 좋은 방향으로 혁신되어 오고 있고 창조되어 갈것이다.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분법적 해악과 명암은 자본가에게는 대대손손 생산 수단을 빼앗기를 두려워할 것이고 노동자는 노동자들의 나아지지 않는 삶의 질적 수준을 누구와 어떻게 손을 잡고 생산수단의 주체가 될것인지를 심도있게 고민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