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방이후 현대사에 대한민국을 이끌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개선장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물은 과연 몇이나 될까? 베이비붐  세대,386세대로서 한국사를 바로 보는 시각과 현상은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려운 건 나만의 체감만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 전직대통령에 대해서 자서전격인 ’운명이다’를 읽기 전에 ’정치 권력과 시민 권력’ ’이상(진보)과 현실’ ’원칙과 타협’등이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그리고 그의 삶의 역정은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피어난  불굴의 화신으로 비춰지기도 하고,특히 삼해산업에 다니면서 우연히 봤던 ’사법과 행정 예비요원’을 뽑는다는 한 줄의 기사를 보고 헌 책을 구해다 열심히 도전했던 결과 예비시험,나아가 고졸학력이었지만 하면 된다는 정신을 사법고시 합격으로 당당하게 보여주며 공부하는 목적과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는 귀감이 될만한 것이다.

3남2녀중 막내로 태어나서인지 부모님의 내리사랑을 받으면서 엄한 규율과 책임의식은  몸에 배지 않았던 것 같으며,1960년 이승만대통령에 대한 글짓기 대회에서 백지로 내고 말았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깨우친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시대적 상황과 연계해 보기도 했다.또한 초등학교 6학년시절엔 수줍음이 많았는진 모르지만 담임선생님에 의한 자의반,타의반에 의해 회장에 뽑혀 훗날 대중을 이끄는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는 1981년 그 유명한 부림(釜林)사건을 맡으면서(부산에 있는 대학생들의 사회과학 독서 토론모임회가 사회를 비판하니 정부전복세력이다라고 규정함),사회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드러내며 각광을 받게 된다.그러면서 그는 발로 뛰는 변호사,인권변호사로서 뜻을 세우며 젊고 유능하며 촉망받는 민주인사들과 교류를 하게 되며,노동사건과 시국사건의 변론으로 동분서주하던 그는 부천성고문사건,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등을 맡으면서 ’운동 전문변호사’로 탈바꿈하게 되며 젊은이들과 최루탄을 맞아가며 길거리에서 부른 <어머니>라는 노래에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를 부르며 우리 사회의 진정한 정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그의 정치적 이념으로 되새김질 시켰을 것이다.

우리가 특히 잘 알고 있는 5공의 청산작업으로서 청문회가 1988년 가을에 열리면서 그는 증인들을 앉혀 놓고 사실에 입각하여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과 열혈성을 보이며 세인들의 뇌리에 청문회 스타로서 각인시켜 준다.인상적인 부분은 고정주영 회장의 첫 질의 답변에서 ’안 주면 재미없을 거 같아서 줬다"고 5공의 정경유착의 실상을 인정하고 ’강제성’을 시인한 대목이다.질의 자료를 산더미처럼 준비해온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 되었던 것이다.인상깊었던 대목이다.

그리고 6공 노태우와 김영삼,김종필이 3당합당을 특별한 목적없이 담합으로 처리하자 그는 "이견 있습니다,반대토론 합시다"하지만 묵사발되고 결국 YS와 결별하게 된다.용기있고 소신있는 행위에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YS와 결별한 꼬마 민주당이 DJ 와 동거에 들어가면서 그는 DJ의 대통령만들기에 헌신을 하고 당선이 되자 그는 해양수산부장관으로 발탁되어 정치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행정 고위관리자로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게 된다.

그는 나아가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어 지방자치 이론이나 선거 실무교육등 필수 서비스와 선거 준비,선거 전략과 선거운동에 관한 교육을 하면서 e-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2002년 국민경선 선거캠프 역할을 100% 소화해 내는 기량을 발휘했던 것이다.시대를 내다볼 줄 아는 천리안의 혜안이 있었던 것이라 믿음이 갔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동서화합의 실현과 자신의 정치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분인거 같다.특히 당색이 짙은 부산에서 시장과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해타산을 떠나,자신이 속한 당의 이념과 원칙,소신을 굽히지 않으려 낙선을 각오하고서라도 그의 본모습을 보여준 그가 바보스럽기도 하고 이상주의자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그런 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네티즌끼리의 모임인 ’노사모’가 2000년 6월 대전 PC방에서 60여명이 모여 결성을 한 것이 그가 대통령이 된 원동력이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겉으로는 졌을지 몰라도 민심은 그의 이념과 소신을 예쁘게 보았던 것이다.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면서 공약 실천을 지키려 했으며,그가 기치로 내세운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지켜지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나라","정경유착,반칙,특혜,특권이 없는 사회",였고 국정 원칙은 원칙과 신롸,투명과 공정,분권과 자율,대화와 타협을 들었는데,회고담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안 되는게 현실정치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그가 민생 문제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점에 성찰과 미안함을 나타냈다.특히 부동산 정책,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저 자신도 민감하게 주시했고 피부에 와 닿지 않은 허탈감등을 많이 느꼈던 적도 있다.

그외에 남북정상회담,한미 자유무역협정,국정원장 독대,검찰 개혁의 실패,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대연정 제안,원칙 잃은 실패,퇴임 순으로 엮어져 있다.특히 정치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단절하고 언론이 누리는 부당한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는데,언론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책임의식의 결여와 시민의 권력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시민을 대신하여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감시.제어함으로써 권력이 시민의 권리와 가치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언론관을 직시하고 있다.

그의 퇴임은 그가 태어나서 자랐던 봉하마을로 귀향하여 여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유기농법을 이용해 질좋은 쌀을 생산하고 숲 가꾸기를 통해 생태계를 보호하며,화포천을 청정화하여 민물고기들이 마음대로 유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전념했고,인터넷으론 네티즌과 열린 소통을 통해 정책과 민원등을 청취하기도 하면서 실패한 대통령이 아닌 성공할 수 있는  시민이 되고저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런데 그의 퇴임과 귀향에서의 그린 이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국가기록물 불법유출사건(?),그와 관련되고 그가 다녔던 식당까지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맘대로 실시하며,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참여 정부 비판세력내지 배신자들의 고발,검찰 수사는 그를 더욱 옥죄게 하고 정치자금법으로 그의 그의 측근들이 줄줄이 법망에 잡히고 그의 아들(건호씨)마저 검찰에 소환되는등 그는 사면초가에 몰리고 그의 이상인 원칙과 소신등이 깡그리 무너지고,그의 영혼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나날이었던 것이다.그가 이명박대통령에게 한 인간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보내려다 만 청원서(본문 P327~P328참고)는 인간의 고뇌를 넘어 국가의 비운이고 권력의 이동은 그리도 가공할 만하고 엄청난 파괴력을 갖은 지뢰와 같구나라고 생각하니 소름마저 끼침을 느꼈다.특히 그의 봉하마을 사저 주변은 온통 CCTV로 중무장을 해놓아 가택연금을 넘어서 산송장 같은 비애와 통탄을 느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매체 앞에 모습을 보인 2009년 4월 30일의 검찰청 앞에서의 그의 모습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하고 초인이 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또한 그가 유죄가 확정되어 감옥의 수인으로서 그의 옥방과 구조등도 매체를 통해 접했던 거라 모든  명예와 욕심,자존감등을 깡그리 버렸을 것이다.

그는 세상과 하직하는 날 아침 일찍 자신의 유지를 컴퓨터에 저장한 것으로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그러면서 작고한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면서 고향 산하의 붉은 태양을 그리며 그는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전 노무현대통령을 청년의 이미지에 세련되지 않은 경상도 말투,걸음걸이가 약간 구부정한 듯한 모습에 컴퓨터를 이용한 신감각주의자,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이념과 소신의 정치가,후한 점수를 매길 수 없는 대통령의 경제 정책등으로 그려진다.이 도서는 그의 자서전격인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차마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부분은 그의 유가족과 참모진들이 생각을 대신하여 엮어져 갔던거 같다.또한 마직막까지 헌신적으로 그를 지켜주고 보호하려고 했던 분이 과연 있었을까 안타깝지만 자탄해 본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평가의 명암이 엇갈리지만 전직대통령으로서의 예우,명예등은 그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그의 이상과 철학에 충실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소신이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과 귀가 먹먹해지는 아연실색함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역사는 물이 흐르듯 흘러가고 뒤를 이어가는 우리 후세는 그를 제대로 조명하고 평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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