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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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하면 누가 밥을 먹여 준다니? 밥그릇과 전혀 상관없는 학문을 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고리타분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을 왜 하냐고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주위의 반응과 시선은 그리 따스하지 않다.아마도 신자본주의에 따른 좋은 대학,인기학과,좋은 자리 차지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나 또한 어쩌다 철학 관련 도서를 읽다 보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수많은 철학 현인들의 이론과 담론등이 이해력이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당장 눈앞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없어서인지 생각과 지혜가 짧아서인지 ’강 건너 불구경식’의 학문쯤으로 지내왔던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철학에 대한 오류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친근하고 익숙한 것에만 관성적으로 반응하고 나르시즘에 빠지며 익숙하지 않은 낯선 환경에 사물,사람에 대해서는 호기심보다는 두려움과 도피 의식이 앞서지 않은가 생각한다.강신주저자는 우리가 먹고 자고 활동하는 모든 소소한 일부터 대사에 이르기까지 맹목적인 삶은 없다고 한다.현재 일어나고 앞으로 일어나리라 예상되는 온갖 천태만상을 무의미하게 대처하고 살아간다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삶이 한갖 본능에만 작용하는 동식물과 별반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살아 있는 가운데 조금 더 풍성하고 의미있으며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삶을 영위한다면 ’낯선 모든 만남’을 통하여 보다 성찰하고 지혜를 가꾸어 가는 이성적이며 온전한 인간됨이 돋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며 딱딱한 철학이라는 명제가 조금은 내 곁에서 숨을 쉬고 다독이며 나와 친해지는 순간이 지금부터가 아닌가 자문자답해 본다.

 #철학적 사유의 비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되는 서양의 철학에서 보여지듯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항상 생각하면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하이데거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과 조우했을때 우리의 뇌는 생각 모드로 전환을 하게 ? 문제해결을 위한 생각과 사유의 시작을 한다고 한다.또한 새로운 개념 즉 예기치 않았던 마주침과 비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하여 생각이 작동한다고 보여진다.예를 들어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아내의 홍조,흥얼거림,치장,타인의 죽음등에서 ’왜 그럴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탐색,추리,알리바이등을 조사해 보는 낯선(사건,마주침,기호) 시간 속으로 빠져 들게 되고 감정도 요동을 치게 될 것이다.에피쿠로스의 지적에 의하면 나와 제3자의 죽음보다는 너,당신을 통한 예견되었든 예견되지 않았든 죽음은 충격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고 나의 죽음은 죽을 것이라는 예상이 고통스럽다는 헛된 생각이 앞서고 모든 사람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죽음이 오면 이미 생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 덧붙인다면 노자의 필연성의 법칙과 장자의 우연성의 법칙일 것이다.두 남녀의 만남은 전생이나 운명과 같은 필연적인 것으로 귀속시키지만 장자는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왕 만나 눈이 마추치고 필이 왔기에 사랑을 나누고 그들의 의지에 따라 혼인의 예를 갖추어 생의 동반자로 이어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사랑,가족,국가,자본주의의 프레임을 보면 우선 가족이라는 최소 단위체에서 사랑은 어떠한 것인지를 헤겔은 잘 말해주고 있다.사랑은 일반적으로 나와 타자 사이에 통일이 이루어져 있다는 의식과 내가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하고 이 타자 안에서 인정을 얻는다는 것이며 타자도 내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을 얻는다는 데 있다.도대체 ’사랑’이나 ’가족’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을까?를 묻고 숙고하는 시간을 갖었을때 비로소 사랑과 가족을 낯선 것으로 삼을 수가 있다고 본다. 가족이라는 공간은 모순과 대립을 화해시키고 솔직하고도 친숙하고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알려진 인질과 인질범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인질은 인질범을 잡으려는 경찰보다는 인질범에게 잘 보여 인질범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방어기제를 편다는 것이다.즉 인질과 인질범들 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또한 국가는 위기에 처하면 전쟁을 통하여 위기를 무마하려고 했음을 알 수가 있다.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를 외치던 인사들을 무차별 억압과 탄압을 했던 기억보다는 보릿고개를 없애주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케 했던 분으로 이성적이고 냉정한 역사 평가보다는 아려한 향수,기억으로 그를 미화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어찌보면 스톡홀름 증후군과 가깝다고 판단이 든다.

 자본주의를 살펴 보면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으로 나뉘는데 상업 자본에서는 화폐의 우월성과 무한 가치를 꼽고 있으며 산업 자본은 국가,거대 기업이 노동력과 자본을 앞세워(혹은 매판자본) 인간을 단지 상품으로 취급하고 돈을 신격화하며 산업자본이 가속화 될수록 환경 오염과 생태 파괴로 얼룩져 가는 지구를 어떻게 되살릴지는 국가와 기업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을 해나가야만 할 과제이기도 하다.또한 세계화의 가속화도 대세이고 막을 길이 없는 가운데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를 군림하고 있으며 인간을 단지 상품으로 만들고,인간의 행복을 잠식해 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으며 우리의 행복을 지켜내지 못하면 나의 세대를 비롯하여 후대에까지 계속 불행한 삶을 되물림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작가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집착을 버리는 방법으로 8정도(八正道)를 제시하고 있다.바른 견해,바른 사유,올바른 말,올바른 행동,올바른 생활,올바른 노력,올바른 집중,올바른 참선이 바로 그것인데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어떠한 대상,사물에 대한 미련이나 집요한 집착에 의하여 생기는 증상이라고 생각한다.이루지 못할 사랑,소유하지 못할 물건등으로 마음 고생과 함께 우울증,자살,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통뿐만이 아니고 주위에 끼치는 영향 또한 심대하다.이러한 고통은 누구나 한 번쯤 찾아 오기 마련인데 어떻게해서 최소화해 나가느냐에 따라 마음의 평정과 다음 단계에 이르는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고 관계도 훨씬 순조롭게 이어나가리라 생각한다.(고통 - 집착 - 소멸 - 방법)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인이 되고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저자는 땅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한 사람과 잃어버린 사람의 양심적인 보편적 원리에 의해 주운 지갑을 잃어버린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는 양심의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특히 방을 지저분하게 어지럽히는 아이에게 강압과 강요에 의한 방정리보다는 스스로 우러나오는 양심에 의해 자신의 방을 정리하고 자기 내면의 명령을 듣는 쪽이 삶의 즐거움이고 주체자가 되지 않을까 한다.물론 깨우치고 자발적으로 실천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주체가 되고 부지불식간에 자율적인 인간이 되며 유사한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하리라 판단된다.

 타자와의 관계를 보면 나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인 타자가 나와 삶의 규칙이 완전히 동일하다면 그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도 없을 것이다.사랑의 힘이란 바로 상호 ’차이’에서 비롯됨을 이해하게 된다.사람은 상대방의 외모를 한 번 보고 ’내 사람이다’라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만나서 부딪히고 지속적인 과정을 통하여 ’그 사람이나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타자의 삶의 규칙,타자성을 오롯이 알아가는 것만이 즐거운 주체로서 진정한 사랑,애정,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

 하루 24시간 가운데 무심코 관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행위는 이성적인 생각과 감정을 갖은 인간에게는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낯선 만남,기호,부딪힘 속에서 즐거운 주체를 발견하고 사유하는 과정 속에서 보다 성숙한 인격을 함양할 수가 있고 나와 타자,사회,국가,자본주의에 이르든 점층적인 단계에 이르러도 이성과 배려라는 균형잡힌 가운데 삶 가운데 만나는 철학은 소중한 삶으로 연결되고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는 나와 너의 의지와 결단의 증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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