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멍청이
원행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아직까지는 뚜렷하게 갖고 있는 종교가 없다.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신앙심이 깊고 종교의 본래의 정신,교리,이념을 실천하고 묵묵히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하여 애정과 사랑으로 일관하는 신자가 최고라고 생각한다.자신의 종교가 최고여서 믿어야 하고 타종교를 배타시하는 생각과 가치관은 오늘날과 같이 복잡다단한 환경하에서는 상생할 수가 없고 이전투구의 양상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어릴적 할머님과 함께 사월초파일에 자주 절에 다니고 연등 행사를 구경한 적이 있으며 49제에는 으례 절에 가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산자와 죽은 자와의 고별식을 행하면서 절과 스님,청정무구한 산세를 떠올려 보면서 불교가 추구하는 중생구제와 보시의 정신을 깨달아 가기도 한다.불교는 그런 면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보듬고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사랑하며 측은심과 겸양심마저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원행 스님,아명이 ’멍청이’라고 사부 탄허스님으로부터 붙여지고 그 멍청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순박하게만 들린다.무욕과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의 표출인 화와 노,누군가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해코지할 법한 요소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멍청이’는 일자무식에서 비롯되는 지식적인 요소와 잘난 체하는 느낌도 또한 느낄 수가 없어 소처럼 우직하고 충성하며 불자로서의 묵묵히 제 갈길을 걷는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대가가 될 수 없는 법이듯이 자신을 키워주고 계도해 주는 사부의 엄한 가르침과 규율을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이라도 여기고 원행 스님은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스님의 길로 발을 들여 놓은 후 매일 새벽 3시(인시)에 몇 리나 되는 곳을 뚜벅 뚜벅 걸어가서 사부님의 세숫물을 받아 오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됨을 알게 되는데 그것도 혹한의 날씨라고 한다면 아무리 젊고 의지가 투철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결심에 회의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원행 스님은 왜 하필이면 새벽 3시의 물을 받아오라고 했는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나,인시는 가장 고요하고 정기어린 이슬을 받은 계곡물이야말로 가장 청정하기 때문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진리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삼불휴(三不虧)가 가장 가슴에 와닿고 새겨 나가려 한다.첫째는 공든 탑이 무너지랴의 공이고 둘째는 만고의 불변인 덕이며 셋째는 성경이나 불경등성인이 말씀하신 입언(立言)이라는 대목이라고 한다.역시 세세손손 썩지 않을 진리이고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역시 과정이라고 본다.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결과보다는 과정을 진리로 보며 성공후엔 내리막길 만이 존재하는 법이고 정상까지의 과정 속의 땀과 노력이 소중함을 새삼 고귀함을 느끼게 하고 인생에서의 만족은 없으며 수분지족으로 대신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인생이고 진리인가를 생각케 한다.

 현재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사로 봉직하고 계시는 원행 스님은 1980년대 사회 정화운동의 일환으로 스님들이 정부로부터 수난을 당할때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위기와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그러나 그의 불교에의 투철한 믿음과 불교 정신을 온 몸으로 일관해 왔기에 그는 늘 보살과 신도들 앞에서 인생의 향기가 되고 살이 되는 법어를 설파하시면서 중생 구제를 실천하려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 온다.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원행 스님이 말씀하신 해당 종교만이 갖고 있는 정신과 취지를 실천하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인격완성이 아닌가 생각한다.인격완성과 무관한 종교적 요소가 범람하는 현실의 종교적 정화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대찬성이다.이는 종교가 혼자의 힘으로만은 아니될 것이다.국정을 쥐고 있는 위정자와 종교가가 손을 맞잡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행해야 할 것이다.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P353인용

 그렇다,먹을 게 적은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게 나누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일 것이다.한 사람이 1백만 명 먹을 것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정치부재의 사회임에 틀림없다.정치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묵살하고 권력쟁취에 혈안이 되어 투쟁으로 일관한다면 그 사회의 전도는 암울하기만 할 것이다.정치인은 나라의 어른이 아니다.그저 심부름꾼이다.아울러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수립된 기강에 따라 위민 철학을 제공하는 분이다.그 명령과 호령은 각계 지도자와 가정의 부모들이 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불교의 중생 구제,해량같은 보시의 마음,인욕정신의 수행 정신,참된 종교인의 자세,참된 진리,밝은 미래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한 스님의 제자로서 묵묵히 수행하고 무욕의 정신으로 참된 종교인의 자세와 모습을 보여주는 원행 스님의 멍청이 정신은 물질 문명과 줄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혼탁하고 답답한 한국 사회에 맑고 정기어린 실천적인 법어가 새삼 세인의 그릇된 정신을 일깨워 주는거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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