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인연은 친족인 경우엔 '피보다 진하다'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을거 같다. 하급 공무원직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그 옆에서 내조를 하면서 자식을 낳아 고이 기른 어머니,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이끌어 가는 주연이다. 공무원 세계의 치부이겠지만 권력을 이용한 눈 감아 주고 받는 사례금을 상납한 죄로 무거운 형을 받으면서 나의 아버지는 수감생활을 달게 받고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살뜰한 정은 없는지 수감생활을 하는 남편에 대한 관심은 없어 보인다. 나 또한 아버지가 바깥 일로만 맴맴 돌고 집에 와서는 같이 놀아 주면서 부녀지간의 정을 쌓을 시간도 없이 어느덧 성인이 되고 텅빈 마음 속에 수목원에 '세밀화 작업'을 하는 곳에 계약직으로 취직하게 된다. 휴전선 이남 민통선 쪽 수목원 안에서 꽃과 나무,한국 전쟁시 산화한 각국의 무명 용사들의 유골들을 수거하고 분석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몰두하게 되는데 나는 내 곁에 머물다 홀연히 떠난 이름 없는 인연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릴적 할아버지의 죽음,이옥영 유치원 원장의 자살,안실장의 이혼으로 인해 자폐증에 걸린 아들을 떠나 보내기,그리고 아버지의 고혈압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인연이기 보다는 인연 없는 쪽이 낫다고 할 것이다.인연 없는 것들이 나의 생애 변방에 다가와 얼씬거리다가 다시 인연 없는 곳으로 흘러 갔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부부라는 미명하에 몇 십년을 살아도 덤덤하면서 남보다 못하는 경우도 있다.먹고 살기가 빠듯한 것은 둘째치고 일종의 가부장적이고 바깥 일로만 신경쓰다 보면 아내의 마음은 골이 패이고 살가운 맛은 희미해질 것이다.남편이 벌어다 준 돈이 어떻게 되었든 그 몇 십년간의 세월 속에선 한 가정의 희노애락이 고이 묻어 날 것이다.남편이 특가법으로 구속이 되고 홀로 된 어머니는 마음 달랠 길이 없어 늘상 밤이 되면 "너,자니? 난 잠이 안온다"라는 넋두리를 늘어 놓는데 남편과 못다한 정을 나에게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그게 허전함이고 빈 자리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제 밉든 곱든 아버지는 불귀의 객이 되고 화장을 하여 유분은 사찰의 밥과 버물려져 새들의 밥이 되어 머나 먼 저 세계로 가고 굴레를 벗어난 새 세상의 자유를 누릴지도 모른다.어머니는 이제 아버지와의 미운 정이 더 그리웠는지 모른다. 피와 살이 섞인 내 가족 무심코 대하고 말하지만 관심과 애정이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기나긴 인내와 배려가 중요하다.댓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적인 사랑은 가족이라는 업과 인연을 한층 깊고 진하게 그려 나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