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살았던 시골의 덕지덕지 처마가 길게 이어져 있는 고가의 뱀이 기어가는 좁다란 골목길,대학시절 할머니와 함께 자취하면서 걷던 경사진 시멘트 골목길,비가 오면 흙탕물과 함께 금방이라도 우루루 밀려 내려 올거 같았던 고교시절의 자취집 언저리등이 지나간 추억과 함께 이 도서는 산업화와 개발붐으로 인해 사라져 간 우리네의 정겨움과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잔영이다.

 어느 나라이든 개발로 인해 서민들의 애환과 어린이들,고양이들,강아지들이 맘껏 얘기하고 뛰놀며 동심과 미래를 꿈꾸었던 휴식처이고 일상의 보금자리였건만 지금은 개발제한이나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그나마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골목길의 모습일 것이다.

 24곳의 옛 정취와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라면 삭막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요즘의 몰인정한 세태에 견주어 본다면 보다 아늑하고 느린 시간 속에서 자아를 찾고 추억을 곱씹어 보는 재미도 쏠쏠할거라 여겨진다.개발과 도시화로 인해 젊은이들은 도시로 세계로 달려나가고 골목길에는 찌그러진 문짝,재래식 화장실에서 풍겨져 나오는 암모니아 냄새,도배가 덜 된 창문,누구하나 손볼 여력이 없어 넘어져 갈듯한 스레트 지붕위의 폐타이어등이 뒹글고 을씨년스럽게 연출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골목길의 서민들을 만나면서 읽을 수 있는 풍경이다.

 골목길은 추억과 정한을 남겨 주었다.객지에서 자취하는게 안스럽고 고생스럽다고 서울까지 올라와 밥을 해주시던 저의 할머님은 늘 골목길 정상에서 다리에 힘이 없으셨는지,한쪽 다리를 비스듬하게 땅에 내딛고는 "열심히 배우고 꼭 챙겨 먹어라"고 하시던 말씀이 어른이 되니 어른의 심정을 이해를 하고 끝없는 자애로움을 느끼게 된다.왜 그랬는지 할머님은 큰 손자인 저를 그리도 애지중지하셨는지 모르겠다.하해와 같은 할머님의 사랑에 고맙고 가끔은 꿈 속에서도 골목길에 흰머리 휘날리며 성치않은 자세로 손을 살랑살랑 흔드신다.

 다 쓰러져 가는 골목길의 살풍경을 액막이라도 하려는듯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는 미술학도들을 대동하여 담벽,가정집벽,전봇대등에 이런 것 저런 것등을 그려 놓는다.그나마 살풍경이 진풍경으로 둔갑이라도 한듯 한층 미관이 좋아보이기는 하다.또한 도시화가 진전되기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동네,골목길에 전망이 좋고 사진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 하여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이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앵글을 맞추느라 원주민들과 말씨름을 하기도 한단다.원주민들의 가슴 속에는 귀찮기도 하지만 없이 살다보니 사진으로 그들의 몰골과 추풍경을 남긴다는게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 속에 갖은자에 대한 응어리도 있을 듯하다.

 도서 전체가 올 컬러로 치장되어 있어 읽는 내내 지루한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24곳의 지명과 유래,원주민들의 삶의 이정표,내가 살았던 길목길을 다시 밟고 가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특히 ’대전 복지관길’의 흰 머리가 성성한 한 할머니가 담배를 한 손에 쥐고 약간 경사길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에서는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간듯 했다.

 인류문명의 진화와 발전은 어디까지 향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냄새가 나고 원활하게 소통이 되며 서로가 이웃이고 가족같은 정념을 지닌 골목길의 추억은 단지 기억으로만 남는게 아니고,예나 지금이나 우리네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정부에서도 꼭 개발해서 개발자들의 이익만 챙기고 도시미관이라는 미명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가꾸어 시(視)행복을 더욱 더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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