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 - 현대 일본의 숨겨진 내면을 읽는다
미야자키 마나부 지음, 강우원용 옮김 / 이다미디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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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이 글을 읽게 된 동기는 황석영작가의 <강남몽>속에서 조직 폭력배들의 세계를 읽어 가면서 야쿠자의 원류 및 그들이 일본 사회 속에서 어떠한 역할과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어렸을때 마피아 영화나 친구들 사이에서 오야분이니 고분이니 하는말을 들어 오면서 야쿠자라는 조직의 생리를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것같고 일본 매체를 통해 ’야마구치구미’등의 야쿠자들이 일본 공안세력에 의해 사무실 수색과 체포되는등의 그들의 쓸쓸한 말로의 단면을 알게 되기도 했다.

 저자 ’미야자키마나부(宮崎學)씨는 부친이 야쿠자의 거대 세력중 하나였던 야마구치구미의 수장이었던 연고로 그에게는 야쿠자의 세계를 암암리에 알게 되었던 거같고,그가 일본 야쿠자의 원류부터 현대 일본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일본인의 사고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야쿠자의 원류는 일본 근대로 거슬러 올라 가는데,법과 체제 안에 수용될 수 없었던 세력,즉 시대가 낳은 낙오자들이 사회로부터 낙오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 모여 하나의 단체(구미)를 형성하고 또 다른 단체와의 구역과 이해 관계로 대립하고 피튀기는 혈전도 보여 왔다.특히 도박 싸움판의 이야기나 폭력단 항쟁의 역사가 야쿠자의 원형이라도 할 수 있다.

 근세 야쿠자의 시원으로 가부키모노, 반권력의 기치를 내걸은 마치얏코와 마치비케시도,노름꾼 출신의 무법자 바쿠토,노동력 중개업자 히토이레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이들은 일본 조정의 권력을 모방하기도 하고 반항심도 갖게 되었으며,사회적 권력으로 공인을 받기도 했다.

 *야쿠자라는 존재의 특수한 성격 


 1.폭력을 배경으로 한 집단이었다
 2.폭력적인 배경은 지역 우두머리로서의 사회적 권력의 획득을 의미했다 .
 3.그들은 동일한 공동체 안에서 뿐만 아니라 향촌이나 도시,번의 행정구역을 초월한 독자적인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국강병,식산흥업을 기치로 내건 메이지 정권은 산업화를 강력하게 진행시키면서 산업도시가 탄생했고,신흥도시는 새로운 형태의 야쿠자를 낳았던 것이다.그들의 세력 발판이 농촌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야쿠자의 세력이 형성되면서 그들은 석탄 광부,항만 하역등을 하면서 조합장과 조합원의 수직관계를 형성하면서 오야카타(오야분)와 고카타(고분)의 관계를 맺어 갔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인 제도와 시스템에 속하지 못하고 하루 푼팔이로 살아갔던 조합원들은 몸뚱이 하나만 믿고 떠도는 거친 사람들이 모여들자 치안은 극도로 악화되고,문신을 새긴 도카타(노가다)와 잡역부가 상점이나 회사에 들어가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위협을 하는등 돈을 뜯어 내기 일쑤였고,명목은 지역 주민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스모와 예능계는 원래 야쿠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스모 선수는  근세이후 등장한 야쿠자의 일종이었고,메이지 시대에 시작한 대중 예능인도 제도권 밖의 존재인 근대 야쿠자와 마찬가지로 하층 사회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야쿠자 스스로 어떤 공동체 안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소속감을 느끼는 곳은 하층사회 공동체였는데,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의해 헌신하기도 했다.이러한 정체성을  ’분권 야쿠자’라고 부르는데 피차별 부락민이나 재일교포등이 대표적이다.

 야쿠자는 또한 법이 아니라 그들의 나와바리,니와바라는 상권을 형성하고 그들이 정한 규율에 의해 야쿠자의 세계를 존속시킨 것이다. 그들의 세력 범위는 실력으로 유지해야 했고,발생하는 분쟁은 자력으로 처리해야만 했다.이 영업권 유지는 야쿠자 조직 모두가 사활을 건 문제인 것이다.

 또한 야쿠자의 2대 사업은 노동력 공급과 예능 흥행의 전도사였다.특히 야쿠자의 오야분의 가오(얼굴 드러내기,체면)가 지방 흥행의 보증수표인 점이 인상적이다.

 야쿠자의 얼굴만 이용하면 극장과의 관계,지역사회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이끌며 흥행을 추진할 수 있었는데 흥행사는 누구나 야쿠자 오야분을 믿고 인정과 의리로 돌아가는 일본사회의 대중 예능 흥행을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었음을 인정한다.

 야쿠자의 세력이 승승장구만 했던 것은 아니다.메이지 정권이 탄생하고 농민의 경제적 요구와 자유민권이라는 정치운동이 결합하는 것에 야쿠자가 개입될 가능성을 일본 정부가 두려워한 나머지 바쿠토 대소탕 작전을 치렀던 것이다.

 일본이 종전과 함께 산업 고도성장기를 구가하는데 1963년이 최전성기가 된듯하다.경제적 고도성장과 함께 야쿠자의 세력은 항만 하역작업의 기계화와 화물 포장의 획일화,규격화등으로 야쿠자(야마구치구미)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예능 흥행도 TV 예능의 시대가 도래하자 방송국과 대규모 프로덕션이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야마구치구미와 같은 야쿠자를 예능계에서 배제시키는 바람에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이렇듯 경제면에서나 정치면에서 대기업과 정부는  더 이상 야쿠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그런 흐름 속에 폭력단 전국일제검거가 시작되면서,일본 정부는 각 조직의 구미초(組長)나 간부 등 정상에 위치한 인물을 체포해 야쿠자 조직을 와해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야마구치구미는 해산하지 않았는데,구미초 다오카는 자본과 권력의 의도를 정확히 꾸게뚫어보았도,야쿠자 조직의 존재의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그들의 존재의의는 야쿠자로 살아가는 길 외에는 삶을 영위할 방도가 없는 자들,그리고 생존을 위해 모여든 자들에게는 야쿠자라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야마구치구미초는 야마구치구미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자각은 했지만 책임의식을 결코 표명하지는 않았으며 그들의 공동체로서의 둥지(고베 지역사회와 항만업계,예능 공동체와 야마구치구미와의 연결고리)를 잃고 이익사회형 야쿠자가 된 야마구치구미는 변질될 수밖에 없었고 시대의 변화라는 큰 흐름을 이기지는 못한거 같다.

 일본의 야쿠자가 사회적인 틀,제도권 안으로 못들어 오고 사회권 밖에서 생존하기 위해 모여 든 조합원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일본 사회의 한 부분을 형성해 왔다.현재 그들의 세력은 거의 제로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야쿠자의 이념을 통해 일본 사회의 의식과 정념,윤리,논리등을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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