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와룡동의 아이들 1
전하리 글.그림 / 북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1960대말 서울 와룡동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잘은 모르지만,아마 겨울이 되면 연탄으로 방을 따뜻하게 하고 방을 짓고 대문 앞에는 연탄재가 층을 이루어, 눈이 오면 연탄재를 찝개로 탁탁 때려 가루어 만들어 빙판길이 되기 전에 보행자들의 안전을 생각했던게 아닌가 싶다.

 제가 살던 1960대말은 사방이 남쪽만 확 트인 공간이고 서남북이 산으로 뒤덮혀 산과 들판을 바라보며 유년의 꿈을 키워 나갔던 시절에,겨울이 오면 소리 없이 오기도 하고,싸락눈은 사각사각 초가지붕의 처마 밑을 간지럽힌다.요근래는 사시사철 내복을 입지 않고도 거뜬하게 겨울을 나기가 가능하지만,지구 온난화가 덜 되었는지 겨울은 말 그대로 겨울답게 매섭고 덜덜 떨게 만들기에 오바로크로 안쪽을 박아낸 두툼하고 튼실한 내복을 입어야만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함박눈의 푸근함과"’내년 농사는 풍년이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며 세차게 내리는 듯하다 조용한 자태로 바뀌어 1시간 정도만 내려주면 금세 산과 지붕,앞 마당,들판은 하얀 솜옷으로 변해 마치 은세계를 연상케 하고 고요하면서도 평온한 느낌을 갖게 된다.꼬맹이,강아지들은 눈만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뜀박질을 해가며 눈사람을 만들고,한쪽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황량하게 변한 논바닥 위에서 신나게 눈싸움을 하며 서로의 기세를 앞다투게 된다.
아주까리 나무 둥지 한 켠에서는 까치마저 눈이 온 세상을 알리기라도 하듯 까~악 까~악 목청껏 소리를 내며 다음 농사가 풍년이 될 것을 암시라도 하는 거 같다.

 연탄불에 올려 놓은 찌개와 밥이 어느 정도 되어갈 무렵,따뜻한 아랫목에서는 아들은 실타래를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돌려가며 실타래를 풀어주고 어머니는 실을 감는다.털옷과 털장갑,털목도리를 손수 어머니의 손으로 만들어 놓으면 모양도 좋고 따스한 감촉마져 드는 것이 명품은 저리가라일 것이다.6남매를 둔 어머니는 지극히 자애로운 심성으로 몇 날 몇 일을 손이 얼까봐 손장갑을 짜시고 밤잠도 고사하는등 자식들의 건강을 챙겨 주신다.

 고무신만 신고 맨손과 맨발로 추운줄 모르고 눈사람,눈싸움을 마치고 집에 온 아이들은 바깥의 매서운 기온과 방 안의 따뜻한 기온이 만나 언 손과 언 발은 어느덧 냉동실에 나온 아이스크림처럼 피부 겉면이 사르르 녹는듯 하더니 가렵고 빨갛게 변한 손.발등을 어머니는 안스럽게 바라보며,"추운데 누가 나가서 고생하라고 했니?"하면서 가벼운 질책을 한다.

 1970년대초 서울 와룡동의 첫눈 오던 모습은 시골이나 별차이가 없었을거 같다.핵가족시대에 접어 들기전이기에 대략 방2개 많은 집은 3~4개였을테지만 대부분 2개 정도에 어두침침한 부엌 한 켠,대문 쪽에 나있는 재래식 변소등이었을 것이다.그나마 연탄불의 기운이 흘러가는 방은 6남매의 체온과 숨소리로 모여 비좁지만 서로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미운 정,고운 정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명호네는 그리 부유한 집은 아니었나 보다.아버지는 하루 벌어 생계를 근근히 이어가는 빈민중의 하나였나 보다.일 갔다 온 남편의 신발이 눈에 젖어 연탄불 언저리에 올려 놓았는데,그만 피곤했는지 연탄불이 다 타고 없어진 것을 알아채지 못한 어머니는 다음 날 아침 연탄이 떨어지고 덜 마른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어머니의 머리칼은 눈빛처럼 하얗게 물들어 갔을 것이다.

 흔히 ’노가다’라고 하는 곳은 일당제이기에 십장이나 현장소장이 제 날짜에 급료를 주지 않으면,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 될수도 있고 서러움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아버지는 어떻게든 가족의 생계와 건강을 챙기기 위해 연탄을 마련해 온다는 출근길의 인사말로 가난함 속에서 부모님의 온정과 책임감등을 느끼게 된다.

 6남매는 어찌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냥 눈이 온 세상이 신이 나고 뛰놀며 성장하는 자체가 그들의 희망이고 낙이었을 것이다.제법 묵직하게 내려 앉은 처마에는 맑고 투명하게 역삼각형으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고드름은 그 당시 입안이 칼칼하고 심심할땐 차갑고 시린 고드름을 입안에 질겅 집어 넣고 한참을 혀끝으로 돌돌 말아가면서 녹이고 청량감을 맛보곤 했다.

 그런데 딸이 많은 6남매의 맏이 ’명호’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것이다.하루 종일 내린 눈이 날이 저물어 갈무렵엔 살을 에는 한파로 변해 어머니는 ’명호’때문에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을 못한다.명호는 맏이로서 연탄이 없어 밥도 못짓고 추위에 떨것을 생각하니 안됐다라는 생각이 한 모양이다.그간 받은 용돈과 모아 놓은 신문지를 팔아서 하룻밤이라도 따뜻한 방 에서 지내고 엄마,아빠께 대견스러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눈발이 휘날리는 골목길을 헤치고 연탄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온것이다.어머니는 아들 명호의 생각지도 않았던 행동에 얼마나 감동을 했을 것이며 가난하지만 착한 심성을 갖은 아들의 행동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 것인가? 아마 아버지는 그날도 목수 일을 하고 나서 받는 급료를 받지 못하고 자책감 때문에 밖에서 서성거리고 배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지나간 어려웠던 시절을 첫눈이 오던 1960년대말을 회상하면서 그린 이 글은 살아왔던 환경에 따라 받아 들이는 입장이 다르겠지만 갖은 거 없고 고단했던 시절에는 그나마 우애가 있고 인정이 살아있었다고 생각한다.물질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돈과 명예등이 우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돈과 명예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살아있는 따뜻함과 가족을 사랑하는 가족애가 물씬 전해져 오는 어른들이 봐야만 할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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