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이래서 요즘 인기가 많은 책인가보다. 기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공감하며 다음 여행을 상상할 수 있는 책책에서 여행자를 ‘노바디’, ‘아무 것도 아닌 자’라고 지칭했다. 평소 여행= ‘익명성’이라 생각했던 지점을 짚어줘서 마음에 든 표현이다.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되어 오직 오늘 하루만 생각하며 지내는 생활. 불편한 일이 발생해도 어차피 지속되는 불편함이 아니기에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나(대인배인 줄 착각)여행을 하는 많은 이유가 떠오르지만, 익명성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기 위해 3번 시도(?)했다. 작년 가을,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첫번째 시도. 그 때는 종이가 두껍게 느껴지면서 어찌나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던지. 두번째 시도는 책꽂이에 있는 책이 눈에 밟혀서 꺼냈다가 마찬가지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실패했다. 아무래도 초반부터 느껴진 우울감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사둔지 꽤 시간이 지난 책이라 이번에 다시 큰 맘 먹고 읽었다. 잘 안 읽혀도 읽어야지, 라고 마음을 먹어서인지. 은근히 몰입이 되는 책이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책은 잘 맞지 않는데 가끔 이렇게 몰입이 될 때가 있다.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서 그런걸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냥 다 비슷해져서 그런걸까. 읽다보니 요조의 오늘도 무사랑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상적으로 느낀 감정을 감성적인 글로 표현한 점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무나 예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오래 전에 산 책인데 이제서야 꺼내 읽었다. 최근에 미술사 연수를 들었는데 스페인과 러시아 미술을 접해서 흥미로웠다. 그로 인한 영향인지 책꽂이에 있는 이 책이 떠올랐다. 그림에 대한 설명도, 시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다른 두 영역이 만나는 공통점도 조금 얕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림과 시의 만남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른 인생을 살았던 화가와 시인을 연결지어 떠올리고, 어울리는 두 사람을 연결짓는 것도 깊은 내공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림도 좋아하고, 시도 좋아하려고 하는 내게 색다른 영감을 준 책. 가장 인상에 남은 작품은 역시 고흐와 윤동주
작년과 사뭇 분위기가 달라진 학생을 보았다. 배시시 잘 웃던 학생인데 표정이 어둡고 딱딱해졌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아닐까 짐작만 할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야기를 해볼까 싶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던 중 인간에게 다양한 감정이 있으니 웃음만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상식을 뒤집으며 등장한 이야기. 흔히 알고 있는 속담이나 상식을 다르게 해석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야기도 있고,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은 이야기도 있고, 나를 반성하게 한 이야기도 있었다. 결과보다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강조했던 (그 것도 나름 쿨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지난 발언도 점검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