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하 - 창비장편소설
윤정모 / 창비 / 1992년 8월
품절


"농민 여러분, 오늘 열릴 집회는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물세며 의료보험 문제 등 여러가지 이약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자고 지은 쌀값은 어째서 제자리걸음인지, 농가부채는 어째서 해년마다 느는지 궁금한 분은 따라오십시오. 시원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등이 가려워도 긁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들의 고통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 서로 이야기나 나눠봅시다...."-22쪽

재현이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철문 밖으로 나가 보니 그 풍경 또한 가관이다. 군데군데 불을 피워 두고 모두 비닐 한 장씩을 뒤집어쓴데다 이마에는 빨간 띠를 두른 채 스티로폴을 깔고 앉아 이야기마당을 펼치고 있는데 그 눈빛들만은 노인들도 반짝거리는 것이 언제까지나 버티겠다는 뚝심들이다. 재현은 왈칵 눈물이 날 것 같다. 자기 주민들이 이렇게 강인했던가.-188쪽

"글을 배울 땐 정승처럼 점잔하고 일을 할 땐 머슴처럼 씩씩해야 하는겨." 하던 어머니...-259쪽

상황이 주어지면 이 형수 역시 남미의 여성들처럼 젖먹이를 업고도 총을 들까?-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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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상 - 창비장편소설
윤정모 / 창비 / 1992년 8월
품절


산의 살과 뼈로 이루어진 한반도, 잘 보면 호랑이 골격 같은 이 땅은 태초에 바다에서 왔다던가. 너무도 열정적인 가슴이라 차고 어두운 바닷속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그렇게 불쑥 솟아올랐다던가.-6쪽

그래서 일반 민중들에겐 가난이 채찍이고 부자들에겐 권태가 채찍이며 허영이나 안일에 병든 사람에겐 충격이 채찍이라고 했을까.-179쪽

형권은 용접봉에 전기를 올린다. 파랗게 쏟아져나오는 강렬한 불꽃, 두뇌가 일시에 정돈되면서 어떤 희열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이 용접봉을 쥐어본 지가 정말 얼마만인가. 작년 해고된 이래로 처음 잡아보는구나. 그것도 시골에 와서 뜻하지 않은 계기로... 그의 손은 가늘께 떨리는데 불꽃은 강하게 춤을 춘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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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0월 6일] 잘 팔리는 일본의 포켓판 신쇼


김범수 도쿄 특파원 bskim@hk.co.kr  



해가 갈수록 책 판매가 부진하기는 출판대국이라는 일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창간 수십년, 길게는 90여년을 헤아리는 명성 있는 잡지들이 시사, 여성, 만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올해 들어 줄줄이 휴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출판협회 통계로는 2003년부터 5년 동안 문을 닫은 서점이 5,600개를 넘는다. 영화 붐에다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의 인기로 수많은 잠재 독자들이 책에서 멀어지는 데다 저출산으로 절대 독서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전문가 필자ㆍ발빠른 기획이 특징

그렇다고 일본 출판시장이 낙담한 채 주저앉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서적 판매가 부진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신쇼(新書)'라는 판형의 책은 무척 잘 팔리고 있다. 문고본보다 약간 홀쭉하고 긴 모양(가로 10.5㎝, 세로 17.3㎝)으로 주로 시사ㆍ교양을 주제로 하는데, 200쪽 안팎의 부담 없는 분량이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 들기에 간편하고 직장인 대학생들이 자투리 시간에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다.

신쇼를 처음 낸 것은 일본 진보 출판을 대표하는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이다. 이와나미가 고전 위주의 기존 문고본과 다른 '현대인의 현대적 교양을 목적'으로 '이와나미신서'를 기획한 것은 1938년이다. 판형은 한 해 전에 먼저 창간한 영국의 펠리컨북스를 참고로 했다. 펠리컨북스는 1935년 세계 처음으로 염가본 페이퍼백을 본격 출판한 펭귄북스의 자매 서적이다.

하지만 신쇼는 일본에 등장한 뒤 전후까지 수 십년 동안 특별히 눈에 띄는 출판물은 아니었다. 첫 인기 몰이는 1954년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주오코론샤(中央公論社)의 <여성에 관한 12장>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부터다. 이후 일본 출판계에서는 신쇼 창간 붐이 일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80년을 전후해 두 차례 더 붐을 맞았고 2003년 <바보의 벽>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와나미를 필두로 주오코론샤, 고단샤(講談社), 신초샤(新潮社), 고분샤(光文社) 등이 주도하는 신쇼는 현재 150여 종에 해마다 2,000종이상이 출간되고 있다. 안정된 유통망을 가진 대형출판사 중심으로 초판 발행부수만 7,000~1만부 정도. 한 해에 2,000만 부 가까이 팔려 전체 시장 규모가 130억엔(1,300억원)을 넘는다.

신쇼 인기의 비결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독자들이 요구하는 정보면 무엇이든 제공한다는 점이다. 최근 베스트셀러를 꼽아보면 420만부 넘게 팔린 <바보의 벽> 같은 실용서를 비롯해 <야스쿠니(靖國)문제> <국가의 품격> 같은 시사평론서, <웹 진화론> 같은 정보사회평론서 등 다양하다.

독서인구 줄지만 개발하기 나름

필자를 학자로 한정하지 않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동원하거나 월간지나 계간지의 특집을 연상할 정도로 빠른 기획과 출판도 인기의 동력이다. 정보를 독자들이 원할 때 바로 제공하는 데다 일반 단행본의 절반 이하인 700엔 안팎의 저렴한 가격도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신쇼 붐으로 일본 출판시장이 다소간 활기를 찾은 것은 물론이다. 소설로만 치닫는 독자들을 논픽션으로 끌어들이는 데 신쇼가 한 몫하고 있다며 출판의 성공이 영화나 인터넷의 인기와는 다른 의미의 사회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책만 좋다면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는 여전히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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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주) 이 글은 2008년 7월 29일자 <경제시평> 특집으로 발표된 자료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께서는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경제를 선순환의 성장궤도에 올려 놓기 위해서는 올바른 경제정책이 필수적입니다. 올바른 경제정책이란 경제구조 변화에 선제적이어야 하며 경제환경 변화에 능동적이고 순응적인 정책을 말합니다. 반대로 나쁜 경제정책이란 경제구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의 관습과 경험에만 의존하며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경제환경 변화에도 역행하여 거꾸로 가는 정책을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난 IMF사태 이후 한국경제는 경제구조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경제환경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순응하지도 못했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책은 정치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정책이란 국민의 행복과 국가발전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책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치적 역량에 따라 정책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 무능하거나 사리사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로부터 나오는 그 어떠한 정책도 국민의 행복과 국가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국민의 행복과 국가발전에 해를 끼치게 되고 급기야 위기를 불러오게 됩니다.

한국이 지난 IMF사태 이후 올바른 경제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오지 못한 것은 바로 정치권과 정부관료들의 무지와 사익집단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와 정부가 시대의 변화와 경제구조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3,40년 전의 무지로 넘쳐났습니다. 경제환경의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10년 후 지금의 한국경제가 당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정부는 경제성장 또는 기업의 성장 목적이 모든 국민들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생산성과 임금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경제정책의 목표이며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 나라들에서도 현실적으로는 많은 혼란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정부와 정치권이 한국처럼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데 혈안이 되고 사람의 가격을 떨어뜨리는데 앞장서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론 사태의 근원은 미국 연방정부가 중하위 저소득층을 위해 주택공급사업을 확대한 데 기인합니다. 정책적 의도는 좋았으나 그 추진 방법이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시장의 경계선을 올바로 구분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주택을 공급하면서 주거가 아닌 재산증식 수단과 시장논리로 공급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버블 붕괴로 더 이상 주택이 재산증식 수단이 아니라 부채로 바뀌자 저소득층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시장도 경제도 함께 무너질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부와 정치권이 아파트 투기를 방치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는 이웃 일본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부와 정치권이 아파트 가격 올리기에 환장한 나라에서는 절대로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머슴으로 아는 경제는 절대로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머슴 경제는 착취로 일시적인 성장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절대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뿐인 나라에서 사람을 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사람을 키우지 못하며 사람의 가치를 우습게 아는 한 절대로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경제정책으로 아파트 투기부양을 일삼는 나라에서는 성장 잠재력은커녕 양극화나 빈곤 문제도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2001년에서 2003년까지 부동산 붐은 시장금리 급락에 따른 가계의 부적응에 기인한 면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도 아파트 담보대출을 무차별적으로 확장했습니다. IMF사태로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자기방어를 위해 재테크 붐도 일었습니다. 이 때의 부동산 투기는 서울의 재건축 아파트에 집중되었고 정부의 수도권 신도시건설 사업에 집중되었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투기대책이 투기를 더 부채질한 것입니다.

2006년부터 2007년 초까지의 2차 부동산투기 붐은 수도권에서는 뉴타운과 재개발에 기댄 ‘이명박 버블’이, 지방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행복도시·혁신도시 개발에 뿌리를 둔 거품이 일었습니다. 2차 부동산투기 역시 정부의 정책에 의해 촉발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투기버블은 이제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볼 때 거품 붕괴 초기단계에서는 거래가 크게 줄어들고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기간이 1년 반에서 2년 가량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폭락하게 됩니다. 한국은 2007년부터 거래가 급감해서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부동산거래가 다소 거래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의 부동산투기 부양책에 대한 일시적인 기대심리와 2007년 12월의 분양가 상한제 시행전 건설업체의 밀어내기 분양 등의 영향으로 사실 허수에 불과합니다.

반면, 아파트 건설은 전국에 걸쳐 재개발 사업이 넘쳐나 급증하고 있습니다. 2007년아파트 건설 물량은 56만호에 달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63만호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40만호 전후 수준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2007년 초부터 거래가 급감하여 투기적 가수요는 말할 것도 없고 실수요조차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재개발이다 뉴타운이다 신도시 건설이다 하여 마구잡이로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2007년부터 미분양이 급증한 것입니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도 미국과 일본의 경우처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 약 1년 반 동안 거래량 급감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에서 가격하락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조차도 모른 채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아파트가격을 올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니 위기론이 난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60년대 이후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7,80년대 군부독재정권 시기와 90년대 3김 시대, 그리고 2000년 이후의 포스트 3김 시대로 나뉘어볼 수 있습니다. 7,80년대 군부독재정권이 끝나고 90년대에 YS와 DJ의 10년간에 걸친 3김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3김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의 포스트 3김 시대가 막을 열었습니다.

90년대 3김 시대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워온 민주화 운동 세력입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온갖 악습과 폐습을 일소하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기본토대를 다지며 21세기를 준비하는 전환기적 정부로서의 역할을 했어야 했습니다. 나름대로 정치적인 면에서 민주주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기여한 바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3김 정부는 IMF사태와 카드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낙제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이끌어 갈 자식세대 중심의 정치적 세대교체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들 3김 시대의 한계이자 과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포스트 3김 시대의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는 혹평하자면 로또 당첨과 같이 우연히 대박 터진 운 좋은 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정부는 3김 시대 이후 정치적 세대교체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에 생겨난 사생아 정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두 정부는 3김 시대를 한 단계 뛰어넘지 못하고 여전히 7,80년대 이념적 대결의 연장선상에 머무른 시대착오적인 정부였던 것입니다. 이들 정부는 경제정책 면에서는 무엇이 올바른 정책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휩쓸려 정권 내내 우왕좌왕 해오고 있습니다. 이들 정권에서 세상의 변화와 정책이 서로 맞지 않고 어긋나 경제적,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3김 시대 이후 출범한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의 시대적 사명은 21세기 세계경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경제환경도 급변하고 있는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구조 변화와 경제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경제발전을 정착시킬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7,80년대와 3김 시대의 이념투쟁과 결별하고 자식세대 중심의 새로운 민주주의 시장경제 게임의 규칙을 확립했어야 했습니다. 재벌그룹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혁파하고 기술벤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산업구조 기반을 구축했어야 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과감히 차단하여 지속가능한 생산적 성장경제의 기반을 구축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들 정부에서 과거의 특권세력은 여전히 치외법권적 특권세력으로 남아 있으며 정경관언사법의 유착구조 역시 여전히 온존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정권 내내 DJ정부와의 차별성을 내세우면서 싸우다가 그쳤습니다. DJ정부를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명박정부는 그보다 더 심하여 정권 시작부터 시대착오적인 냉전 이데올로기와 7,80년대 독재정권 시절의 제왕적 권력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정권 시작 전부터 노무현정부를 팔아 정권을 잡았으며 정권 출범 이후에도 계속 이미 끝나버린 노무현 정부의 유령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노무현정부를 뛰어 넘기는커녕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지 못한 채 7,80년대의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도 시원찮을 판국에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정부는 3김 시대로, 이명박정부는 무엇이든 무조건 반노무현 식의 7,80년대 냉전적 권력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경제는 7,80년대 자본집약적 성장 시대를 지나 90년대에 기술집약적 성장 시대로 진입했어야 했습니다. 기술집약적 성장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재벌 중심의 지배구조에서 기술벤처 중심의 산업구조로 환골탈태하는 기반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술벤처 중소기업의 강건한 기반을 구축하지 않고서는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도 기술집약적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술벤처 기반을 구축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변화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재벌들에게 무차별적인 차입경영과 순환출자에 의한 기업확장을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 IMF사태가 발생했으며, 상위 재벌들은 말할 것도 없고 10-60위권의 중간 재벌그룹들 대부분이 공중분해 되고 말았습니다. 한번의 금융위기에 한국의 재벌들이 대부분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상위 재벌그룹은 그나마 살아 남았지만 중간 재벌그룹은 거의 공중분해 되어버렸습니다. 한 경제의 핵심인 중간 기업층이 거의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것은 한국경제가 산업구조적 측면에서 기술벤처 중심의 중간 허리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나스닥 시장은 온갖 기술벤처 기업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론 창립한지 100년이 넘는 GE나 GM 또는 엑손모빌과 같이 전통적인 대기업들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나스닥 시장에는 1970년대 이후에 탄생한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시스코시스템, 지넨텍, 구글, 퀠컴, 오라클 등과 같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술벤처 기업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밑에서부터 신생기업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경제의 역동성은 아직도 건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술벤처 기업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1947년에 창립한 소니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후 맥아더 미군정에 의해 재벌해체가 이루어진 일본의 중소 및 중견 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본은 중견 중소규모의 기술벤처 기업층이 매우 두터우며 상위 대기업과의 유기적 공생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0년대 장기불황의 어려움 속에서도 일본의 산업기반이 붕괴되지 않고 안정적인 고용을 유지하면서 버텨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지난 IMF사태 때 10-60위권의 중간 재벌기업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위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한국경제의 중간 허리 역할을 해주는 기술벤처형 기업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중간 재벌그룹들은 기술벤처적 뿌리가 없었던 탓에 단 한번의 외풍에 모두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IMF사태 이후에도 산업의 중간허리 부분은 여전히 취약하여 역동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위 10위 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국 코스닥 기업들의 상당수는 거의 사기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지난 2000년의 IT버블과 최근의 코스닥 시장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도 여전히 일본에 200억 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기술벤처 중간허리가 없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산업구조가 중간층 기술벤처 기업기반이 취약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산업의 최정점에 있는 재벌들의 잘못된 지배구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재벌들은 일제 시대에 약탈적 상업자본 형태로 출발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는 정경관 유착과 관치금융을 바탕으로 차입경영 방식의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기술적 뿌리가 취약한 탓에 상위 재벌그룹이든 중간 재벌기업이든 거의 무차별적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의 관심이 기술개발에 쏠리면서 기술개발 국책사업 지원의 대부분이 상위 재벌그룹에 집중되었습니다. 그 기술개발 성과 역시 결과적으로 상위 재벌그룹에 집중되었습니다. 기술벤처 기업 기반을 구축하고 이로부터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산업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위 재벌기업이 기술개발의 모든 것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그 결과, 밑바닥에서부터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나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성장가능성이 있는 기술벤처 기업이라고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술을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방해를 넘지 못하고 잡혀 먹히고 마는 구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기술벤처 기업이 재벌 하청기업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고 역동적으로 커갈 수 있는 기술벤처가 성장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산업의 중간 허리를 절대 키울 수 없습니다. 산업의 중간 허리가 튼튼하지 못하는 한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절대로 일자리를 역동적으로 양산해낼 수 없습니다. 대덕과학연구단지를 만든 지 30년이 지났지만 대덕연구단지에서 제대로 된 기술벤처 기업이 과연 얼마나 나왔는지를 보십시오! 재벌중심의 최상위 승자독식의 산업구조로는 절대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려면 재벌 지배구조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입니다. 그래야 기술벤처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고 50년 100년을 갈 수 있는 성공적인 기술벤처 기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최소한 몇 건의 성공사례가 나와야만 그 성공사례를 보고 기술벤처 기업가정신이 왕성해질 수 있으며, 한국경제의 중간 허리층이 두텁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경제환경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일해서 먹고 사는 경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는 이런 문제의식 자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재벌그룹들의 잘못된 지배구조를 옹호해주는 것이 경제 살리기이며 친기업정책이라고 착각을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재벌오너들은 극히 적은 지분으로도 여전히 21세기 글로벌화된 세계경제 속에서 제왕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재벌그룹들은 기술벤처적 뿌리를 깊이 내리기는커녕 제조업을 떠나 금융산업에 진입하려고 혈안이 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제왕적인 재벌오너와 그를 옹호하는 정경관언사법의 특권 유착세력들이 국민들을 머슴으로 알고 국민들 위에 초법적으로 군림하려는 나라에서는 절대로 기술벤처 뿌리가 내릴 수 없습니다.

제조업은 중국에 밀려 더 이상 안되니 금융과 부동산 등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금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금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폐지하고 재벌그룹들에게 넘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재벌그룹의 오너에게 넘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융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주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관료 그리고 정치권은 앞장서서 재벌들을 위해 주인-머슴론을 경쟁적으로 합창하느라 눈이 뒤집혀 있을 정도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무지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있다는 재벌그룹의 제조업이 안 된다니 그래서 금융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소리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말입니다. 

부동산업의 육성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미명하에 부동산 투기경제를 조장하기 위한 기만적인 온갖 개발정책들을 남발해오고 있습니다. 기술벤처 기업군의 중간 허리가 없는 산업구조를 구축하는 것보다도 100층 200층짜리 빌딩 짓는 것이 더 중요하고 수백 개에 달하는 마구잡이 식의 뉴타운 사업을 질러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초고층 빌딩을 여기 저기 짓겠다고 난리며 100년 도시계획은 온데간데 없이 뉴타운 사업만이 넘쳐나는 그런 경제가 과연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으며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겠습니까!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와 수요공급의 기본원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정책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을 말해 봅시다. 작금의 한국경제는 위기인가요? 위기라면 왜 위기인가요? 사람의 가치보다도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데 혈안이 된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 그 자체가 바로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뿐인 경제에서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은 오직 사람과 지식과 시간뿐입니다. IMF사태 이후 사람은 아파트보다도 못한 똥값이 되고 있으며 지식은 기술벤처로 발전할 수 없고 시간은 헛되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위기이며 이런 낭비를 조장하고 선동하는 포스트 3김시대의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위기의 근원인 것입니다.

부모세대가 늙어 죽어 무덤에 갈 때까지 무지하고 부도덕한 권력욕에 사로 잡혀 자식세대의 장래를 모조리 말아먹는 정책남발을 계속하는 한 한국경제의 위기는 결코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20-40대 자식세대 중심의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하여 과감하게 세대교체를 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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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막연히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조급함의 표출이라고 생각했던 MB정권의 몇 개월,

'촛불집회의 순수한 열정을 단 한번이라도 들어줄 용기만 있다면' 하는 희망도 가져보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럴 경우에는 이런 수가 가장 악수일 것 같다'는 생각을 기가 막히게도 선택하는 정권에 희한하다는 느낌만 더했을뿐이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노정권의 산물'이라는, 어찌보면 훗날에나 써먹어야 효용이 클 수도 있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그들을 보면

많은 것들이 명백해진다.

단지 우둔한 2MB가 아닌 그들만의 정권이라는 것.

 

과거나 현재를 바라보는 평가가 아니라 한 시민으로써, 아니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써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

 

어제 통화한 벗의 이야기가 단지 정치권에 대한 비야냥은 아닌 것이다.

"1,340. 환율과 코스피의 만남. 우이할꼬. 정말 , 처 자식 빼곤 다 팔아야 할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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