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35', 혁명가 이재유를 기억하라
[오마이뉴스 2006-08-12 15:28]    
[오마이뉴스 박현주 기자] 내 '독서일기'의 첫 작품은 안재성의 소설 <경성 트로이카>(2004, 사회평론)다.

이 책은 1930년대 젊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고난에 찬 삶과 죽음을 담담하고 차분한 필체로 전하고 있다. 격동하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실존인물 이재유와 그를 중심으로 모인 수많은 경성 트로이카 활동가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 <경성 트로이카>의 표지
ⓒ2006 사회평론
나는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주말 드라마 <서울 1945>를 열렬하게 시청하고 있다. 주말엔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밤 9시 30분을 중심으로 시곗바늘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헌영·김삼룡·여운형 등 실존했던 혁명가들을 탤런트들이 버젓이 연기하고 있으니, 시대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해방공간의 '왼쪽' 사람들을 그린 드라마가 한국방송공사에서 만들어지리라고 꿈에라도 기대했겠는가.

극중 인물 최운혁은 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 사무국장이었던 이강국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일본강점기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출중한 이론가였는데, 남한에서는 혁명가 이강국보다는 '여간첩' 김수임의 연인 이강국으로 더 잘 알려졌다. 김수임은 이강국을 숨겨주고 월북을 도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이승만 정권 때 사형당했다. 원로 수필가 전숙희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소설로 그리기도 했다(<사랑이 그녀를 쏘았다>, 2002, 정우사).

이강국과 김수임처럼 조국의 해방을 꿈꾸며 1930년대 식민지 서울 거리를 활보하던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만큼이나 열정적인 삶을 살았고, 이들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던 그들, 바로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

이재유. 이름은 아주 오래전에 들어봤다. 대학 2학년 때니까 1993년이던가. 학술서 형식의 <이재유 연구>(김경일, 창비, 1993)가 단행본으로 출간됐을 때, 학생조직에 있던 나의 동기가 그 책을 읽는 걸 보았다. 나도 읽어 봐야지 하면서 읽지 못했다. 그 후 책이 절판돼 이재유를 만날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운 좋게도 소설 <경성 트로이카>로 이재유를 만날 수 있었다.

소설 <경성트로이카>는 어떻게 나왔나

나는 짧지 않은 서문을 읽고 '열정'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열정'에 꽁꽁 묶인 건 작가 안재성씨였고 난 그 열정에 감염됐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게다.

작가의 이력도 눈에 띈다. 그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과 동시에 대학에서 제적당한 후 20년간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낙향하여 경기도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한기엔 굴착기 운전을 하며 가계를 꾸리는 가난한 소설가다.

그를 '열정'의 바다로 이끈 것은 인사동 작은 화랑의 조각 작품이었다.

사실적이면서도 애끓는 비통함을 주는,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은 여인상을 보면서 그는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작가는 그 조각상의 주인공을 만나면서 잊힌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930년대 경성 거리를 활보하던' 경성 트로이카를 건져내게 된다.

작가는 경성 트로이카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조각상의 주인공인 이효정 할머니를 만나면서 그 때의 진실을 복원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산에 살고 있는 이효정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이재유 연구>를 쓴 김경일 교수를 찾아가고, 서울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일본강점기 사상범들의 재판 기록을 샅샅이 뒤지며, 퍼즐을 맞추듯 경성 트로이카 조직의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하다 이름도 명예도 사라져버린 '유령'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그 '유령'들과의 약속의 소산이 바로 이 소설, <경성 트로이카>다.

이야기는 개마고원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유가 집을 떠나 삼수갑산의 고산준령을 넘고 넘어 경성으로 오는 긴 여정으로 시작된다. 이재유는 당시 사람들보다 키가 크고, 갸름한 얼굴형에 미소가 환한 미남이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가수 비와 조금 닮은 것도 같다.

이재유가 서울에 와 정착한 곳은 농촌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빈민가가 형성된 토막촌이다. 토막은 건축 자재가 없어 땅을 파서 벽을 대신하고 지붕은 거적이나 짚으로 대충 덮은 집을 말한다. 어린 이재유는 그 토막에서 혼자 살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학비를 조달할 수 없어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70번이나 경찰에 체포되는 기록을 세운다. 일제는 그를 관부연락선에 태워 조선으로 압송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이재유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함께 할 운명적 동지를 만난다. 훗날 그와 함께 경성 트로이카의 지도력이 된 이현상과 김삼룡이 그들이다.

식자층 위주로 구성되었다가 하릴없이 무너진 조선공산당을 이재유는 노동자를 기반으로 탄탄하게 재건하려는 꿈을 품는다. 그리하여 그 전위조직으로 1933년 경성 트로이카를 결성한다.

1933년 경성에서 만난 젊은 혁명가들

▲ 1937년 12월 이재유가 체포되자, 각 신문사들은 호외를 발간했다.
이재유는 낭만과 인간미를 지닌 혁명가이면서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했고, 천부적인 조직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노동자였다. 그래서 공장노동이든 막노동이든 농사든 거뜬히 해내며 활동한다.

경성 트로이카가 흥미로운 것은 '트로이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지 않고 조직원들이 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쟁쟁한 여성 운동가를 많이 키워냈다는 점이다.

경성 트로이카에는 남성과 비슷한 수의 여성 운동가들이 활동했다. 그동안 나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 중에 여성이 없었을까 늘 궁금했다. 1996년 창비에서 나온 <사회주의 인명사전>을 보면, 가뭄에 콩나듯 여성 운동가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성 트로이카>에서는 많은 여성 활동가들의 이름뿐 아니라 출신과 성격과 활동상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작가에게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이효정을 비롯하여, 김월옥·박진홍·심계월·유순희·이병희·이순금·이종희·이인행·초영·허마리아 등의 여성운동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활동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활발했다.

일본강점기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던 원산과 함흥은 중공업 지역이라 남성 노동자들이 많았던 반면에, 경성과 인천 등 경인지역의 공장은 경공업 위주였으므로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 값싼 임금에 퇴사마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어린 여공들을 조직하려면 비슷한 나이의 여성 활동가들이 필요했다.

광주학생봉기를 겪으며 동맹휴학을 하고 일제에 항거하던 여학생들은 여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으로 위장 취업해 들어갔다. 이들은 이재유의 지도를 받으며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해나갔고, 파업을 이끌었다.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는 8시간 노동,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실시, 아동 노동금지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강령을 선택했다. 이같은 의제들이 현재 모두 실현된 것을 볼 때 놀라운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이재유의 연인, 혁명가 '박진홍'

여성 활동가 중에 '박진홍'이란 여자가 있다. 경성 트로이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40년대 전쟁의 광풍 속에 한반도 전체가 일본의 병참기지가 되어 모든 운동세력이 힘을 잃고 와해하고 잠적할 무렵에도 경성 트로이카의 부활을 꾀했던, 경성 트로이카 계열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박진홍 말이다.

이효정의 증언에 따르면, 박진홍은 좌우익을 통틀어 가장 똑똑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수재보다는 천재에 가까웠다고 사람들은 평가했다. 성격이 외향적이라 무척 쾌활하였다고 한다.

박진홍은 장차 평화시대가 오면 소설가가 되려고 하던 문학처녀였다. 일본경찰에 쫓길 때에도 문학작품의 한 장면에 빗대어 말하길 좋아했다. 그런 박진홍과 이재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최운혁과 김해경처럼, 이강국과 김수임처럼 그들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고단한 청춘을 서로에게 기댔다.

경성 트로이카의 동지들은 1940년대 운동의 암흑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1945년 드디어 해방을 맞이한다. 일제 경찰에 쫓기며 투옥과 출옥을 반복하고, 고문과 가난을 견디던 사회주의자들에게 해방공간은 비로소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 얼마나 가슴 벅찼겠는가. 그들은 건국준비로 밤낮없이 일했다. 박진홍도 이순금도, 이관술·이현상·김삼룡·김태준도 집에 자주 못 들어갈 정도로 바쁘게 일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지하 활동가였던 그들은 이제 자유롭게 경성 거리를 활보하며 공식적인 단체의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일할 수 있었다.

 
▲ 큰 사진 이재유. 맨위부터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아래 왼쪽부터 이현상, 김삼룡, 이관술.
그러나 평화로운 세월은 길지 않았다. 자유의 공기를 마신 것은 채 1년도 안 되었다. 1945년 9월부터 1946년 6월 정판사 사건으로 줄줄이 구속되기 전까지 꼭 10개월이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은 조선 공산당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당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본강점기보다 더 참혹한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은 왔지만...

일본은 사상범들에게 3~5년 정도의 징역형을 선고한 데 비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무기징역 혹은 사형을 선고했다. 독립운동으로 젊음을 바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교수대였던 것이다.

이관술·이주하·김삼룡·김태준이 남한의 이승만에게 죽임을 당했고, 박헌영·이승엽·이강국은 북조선의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한다. 마음씨좋은 아저씨 같았던 김삼룡이 친일경찰의 고문 틀에 묶여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은 참으로 슬프다

"일정 때 우리가 놈들의 힘을 빼앗으려고 싸우는 동안 당신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웠소. 우리가 학업과 생업을 포기하고 공장과 감옥을 떠도는 동안 당신들은 국가를 운영할 기술을 배우고 사람 고용할 돈을 모았소. 일제가 물러나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가 없고, 당신같은 사람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구려. 참 허무한 일이오."

경찰이 왜 북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북으로 간 박헌영 동지가 저렇게 모진 천대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가겠소? 우리는 남과 북 어느 곳에도 갈 곳이 없소."

조선 공산당 총비서였던 박헌영은 6·25 전쟁 중에 간첩죄를 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는 죄를 인정할 때까지 맹도견에게 물어뜯기는 고문을 당했다.

평생을 조국에 바쳤던 노구가 동지였던 김일성이 풀어놓은 개에게 뜯기는 신세가 되고 없는 죄를 고백하도록 강요받았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 것인가. 차라리 적의 총에 죽는 일이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마지막까지 경성 트로이카를 지켰던 '경성콤그룹'의 이관술은 정판사 사건으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6·25 직후 처형당했다. 아마도 대전의 산내학살 사건 때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한다. 박진홍은 이효정에게 북으로 가겠다는 말을 남긴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을 알 수 없는 인물이 됐다. 북한의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전쟁 때 죽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체포, 고문, 사형... 이름없이 스러지다

이 책의 주인공 이재유의 투옥으로 박진홍과의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산산이 깨어지게 된다. 그리고 신출귀몰하게 유치장을 탈출한다. 그는 박진홍이 그리워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근교에서 농사지으며 2년간 숨어 살았다. 박진홍이 옥중에서 아들을 출산했지만 만나러 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신문에서 오린 흐릿한 아들의 사진을 오래오래 바라보던 이재유.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우울한 얼굴로 술을 마시던 이재유. 경성콤그룹을 만들고 조직을 다시 규합하다가 투옥된 뒤 재판정에서 당당하고 기지 넘치는 항변을 하던 이재유.

그 이재유는 1937년 다시 체포되어 8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다. 가족 이외에는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다. 32세의 젊은 혁명가는 고문 후유증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빛나는 지성과 따뜻한 감성, 환한 미소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던 부지런한 손발이 쇠사슬에 묶여 쇠약해져 갔다.

그리고 40세 되던 해인 1944년에 숨을 거두었다. 폐병과 각기병,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육신은 병감에 옮겨진 지 얼마 안 되어 지켜보는 이도 없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재유는 해방 1년 전에 죽었다. 해방 1년 후엔 그의 동지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6·25때 보도연맹 가입자 학살로 사회주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죽었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씨가 말랐다. 완전 궤멸이었다.

순수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지닌 젊은 그들, 1930년대와 해방공간의 사회주의자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폄하되고 고난을 당하며 기억해 주는 이 없이 사라졌다. 해방공간에서 조국이 분단될지도 모른다는 고뇌로 밤을 지새우던 그들의 어깨 위에 얼마나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었던가.

60여년 만의 명예회복, 이재유 훈장의 의미

지난 8일 국가보훈처는 올해 광복 61주년을 맞아 일제하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313명의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발표했다. 놀랍게도 그 명단에 이재유와 이효정의 이름이 있었다. 이재유는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이효정은 건국포장 포상이다.

정말 기쁜 일이다. 60년 후에야 회복되는 그들의 명예. 감개무량하다. 이제야 대한민국이 서서히 양쪽 다리로 땅을 딛고서는 것일까.

해방공간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까지도 명예회복되려면, 골 깊은 좌우갈등이 해소되는 시대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좌우 갈등의 해소. 이것은 모든 사람의 소원처럼 평화롭게 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효정 할머니가 여든을 넘어 쓴 시를 읽어본다. 젊은 시절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참 고결하다.

내 영혼 떠나버린 빈 껍질
활활 불태워
한 점 재라도 남기기 싫은 심정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라도
쓰일 데가 있다면
꼭 쓰일 데가 있다면
주저없이 바치리라
먼 젊음이 이미 다짐해둔
마음의 약속이었느니

- 이효정 '약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강의 아이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
김재홍 지음 / 길벗어린이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날 엄마는 깨랑 콩을 팔러갔어요. 돌아올땐 순이색녀필하고 동이 운동화를 사온댔어요. 순이가 큰새한테물어봤어요. 큰새야 큰새야 우리엄마 언재오셔~~~~순이색연필 사갔고 오시는 중이래 순이는 아기곰한테 다시 물어봤어요. 아기곰아 아기곰아 우리엄마 언제오셔 아기곰이 그러는데 지금 오빠운동화 사가지고 오신는중이래 순이는 신이났어요. 쉿쉿 큰새와아기곰은 지금 자고있데 순이도집에가서잘까? 싫어싫어엄마중나갈거야~~~~으앙~~~알았어 알았어 그럼오빠가 물수제비뜨는거 보여줄게 그런데그때 엄마가오신거였어요.^^

 

                                                                  추천많이해 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심해서 그랬어 - 여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199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 아빤 밭을매러 가시고 동히만 혼자나맜다, 동히는 심심했다, 동물들이 동이를 웃으며 처다봤다, 동힌는 동물들 닭,토끼,소,돼지,염소. 를 우리 에서 풀어주었다, 닭들은 고추밭으로가 고춧잎을 쪼아먹고 토끼들은 무밭 으로가 무잎을먹고 소들은 배추밭으로 가~~~배추를 뜯어먹고 돼지들은 감자밭을 파헤치고 염소들은 호박밭으로가 호박잎을 뜯어먹고 동히는 엄마한테 혼날까봐 나무밑에서 울엇는데 스르르 잠이들었습니다.  

 

                                                                 추천많이해 주세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미가 왜 문제인가
홍성태 지음 / 당대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2003년 4월에 같은 출판사에서 발간된 [생각하는 한국인을 위한 반미교과서]의 개정판이다. 나는 이 [반미교과서]로 이 책을 보았다.

이 책에 대한 읽은 소감보다는 몇 가지 사실의 나열이 필요할 듯하다.(이 책에 대한 '밑줄긋기'에도 추가로 내용을 정리해두었다)

* 전세계에 매설된 지뢰현황(단위: 만개, 자료: 국제적십자위원회, 출처 [한겨레] 1996.5.5)

이집트 2,300/이란 1,600/앙골라 1,500/이라크,아프간,캄보디아,중국 1,000/에티오피아 500/보스니아 300/크로아티아 200/모잠비크 200/우크라이나,에리트레아,소말리아,수단 100/요르단 20... 그리고 베트남과 한국은 그 수치가 파악되지 않는다!

* 전세계 미군주둔현황(단위: 명, 자료 [밀리터리 밸런스] 2002. 2003)

독일 68,950/일본 38,450/이탈리아 10,790/영국 9,400/포르투칼 7,800/사우디아라비아 4,408/터키 3,860/쿠바 2,039/아이슬란드 1,478/벨기에 1,290 그리고 한국은 37,140 (독일과 일본은 아다시피 2차대전 패전국이다)

제주 4.3, 노근리, SOFA, 그리고 미선과 효순..

저자 역시도 '교과서'가 주는 어감과는 다르게 감성적으로 상당히 고양된 문체로 일관하고 있다. 차분히 돌아보기에 미국와 미군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참고자료)  '9.11테러는 미국 자자극?' 관련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39352.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미가 왜 문제인가
홍성태 지음 / 당대 / 2004년 1월
장바구니담기


1897년에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진실로 확신하건대... 나는 거의 어떤 전쟁이라도 환영할 것이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전쟁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때문일세."(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당대, 2001, 125쪽)-43쪽

200년 전에 원주민들은 전체 아메리카합중국 땅의 3/4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금 원주민들은 단지 2%의 땅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한겨레],2000.7.3)-46쪽

우리가 아메리카합중국에 바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아무것도 없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당신들의 군사행동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기만 하면 우리는 아메리카합중국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마음 편할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군사적 현실이며 우리는 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C. 라이트 밀스, [들어라 양키들아], 아침, 1985, 76쪽)-50쪽

2000년 아메리카합중국의 국방예산은 2,806억 달러로 세계 군비지출의 37%를 차지했다. 2위인 러시아는 439억 달러로 6%, 13위인 우리나라는 100억 달러로 1%를 차지했다.(SIPRI, yearbook 2001; yearbook 2000) 2002회계연도 국방예산안에 따르면, 전체 국방예산은 3,180억 달러(420조원)이고 여기에는 미사일방어망구축계획 개발비용 83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국방예산과는 별도로 테러대책과 재건비용으로 200억 달러가 책정되었다.([한겨레], 2002.1.12)-56쪽

200년 전에 원주민들은 전체 아메리카합중국 땅의 3/4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금 원주민들은 단지 2%의 땅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한겨레],2000.7.3)-46쪽

우리가 아메리카합중국에 바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아무것도 없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당신들의 군사행동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기만 하면 우리는 아메리카합중국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마음 편할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군사적 현실이며 우리는 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C. 라이트 밀스, [들어라 양키들아], 아침, 1985, 76쪽)-50쪽

2000년 아메리카합중국의 국방예산은 2,806억 달러로 세계 군비지출의 37%를 차지했다. 2위인 러시아는 439억 달러로 6%, 13위인 우리나라는 100억 달러로 1%를 차지했다.(SIPRI, yearbook 2001; yearbook 2000) 2002회계연도 국방예산안에 따르면, 전체 국방예산은 3,180억 달러(420조원)이고 여기에는 미사일방어망구축계획 개발비용 83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국방예산과는 별도로 테러대책과 재건비용으로 200억 달러가 책정되었다.([한겨레], 2002.1.12)-56쪽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학교의 인문대 학장인 아드난 무살람은 [한겨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랍과 팔레스타인은 왜곡된 이미지를 바꿀 만한 능력과 수단이 없다"과 말했다. 그 까닭은 "미국인과 서방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정당성을 알릴 만한 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한겨레], 2002.1.26). 오늘날 세계의 정보흐름을 아메리카합중국의 대중매체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CNN은 세계뉴스의 가장 두드러진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정보는 물론이고 북한에 관한 정보도 아메리카합중국의 대중매체에 크게 의존한다. 무살람 학장의 말은 씁쓸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점에서 카타르의 독립위성방송국인 '알 자지라'는 크게 돋보인다. 이 방송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텔레비젼 회견을 방영했으며 "미 주류언론의 틈새를 뚫고 사상 처음으로 제3세계 언론의 목소리를 전세계에 보도"했다.(이흥환, <9.11테러에서 아프간 함락까지: 미국의 테러전쟁>, [신동아] 2002년 1월호)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역부족이다.

; 전쟁력 구비의 5대 조건 => 물리력, 경제력, 과학기술력, 정보력, 매체력
-93쪽

1999년 국감자료에 따르면, 199년 8월 현재 아메리카합중국 군대가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땅은 94곳, 7339만 평인데, 부분적 사용권리를 가지는 지역공여지의 면적은 1천여만 평, 임시공여지의 면적은 2800여만 평이다. 이 땅의 재산가치는 공시지가 12조 6300억 원, 연간사용료 4500억 원에 이른다. 물론 미군은 모두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반환할 경우에는 어떤 복원의 책임도 가지지 않는다.(황숙희, <한반도의 미군 기지>, [함께 사는 길] 2001년 9월호)-135쪽

영국의 BBC방송은 2001년 한 해 동안 노근리학살사건을 취재하여서 <다 죽여버려>(Kill'em All)라는 기록물을 만들어 2002년 2월 1일에 방영했다. 이 기록물은 1950년 한국전쟁 초기에 충북 영동군 노근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미군지휘부가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상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BBC는 미군지휘관들이 "모든 피란민에게 발사하라"(Shoot all refugees), "피란민들은 대포를 포함한 화기를 이용하면 흩어질 것이다" "모든 피란민들은 사냥감"이라는 등 민간인에 대한 발포명령을 내린 사실이 생생히 기록된 미군문서들을 찾아냈다.-164쪽

2000년 7월 13일, 용산미군기지에서 시신 방부처리용으로 사용되는 독극물 포름알데히드 용약을 한강에 무단방류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용산미군기지측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는 더욱 놀라운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중략) 2월 9일, 주한미군 용산기지의 영안소 부책임자인 민간군속참모 11등급 앨버트 맥팔랜드가 제보자에게 포름알데히드 용액 15박스를 영안소 내 하수구에 버리도록 지시했다. 각 박스에는 시신 방부처리용 용액 12, 16온스들이 병 180개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제보자는 당연히 이 지시를 거부했다. 그러자 맥팔랜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씨발, 하라는 대로 해, 너 바보 아냐?"

"Do what the fuck I tell tou, are you stupid?"-190쪽

반달리즘은 약탈과 파괴, 그것도 문화에 대한 약탈과 파괴를 뜻한다. 5세기 무렵에 흉노족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반달족이 서쪽으로 쫓겨오면서 로마와 스페인의 도시들로 쳐들어가 약탈과 파괴를 저질렀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반달족에 대한 저주가 섞인 용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도적인 문화의 약탈과 파괴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크루세이디즘;(crusadism)을 쓰는 편이 옳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십자군전쟁이야말로 비잔틴문화에 대한 의도적인 약탈과 파괴였기 때문이다.-2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