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1)] 미디어 전문 ‘커뮤니케이션북스’
“시장만 좇다간 단명…전문성으로 승부”

언론, 영화, 광고 등 미디어 관련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커뮤니케이션북스’. 이곳 업무의 대부분은 사내 인터넷망인 인트라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직원끼리 굳이 얼굴을 맞댈 필요 없이 모든 일은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회의는 각자의 자리에서 정면의 화이트보드에 쏜 빔프로젝터 화면을 보면서 하죠.” 이 회사 박영률(朴泳律·48) 사장의 말이다.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은 인터넷 카페와 같은 형식으로, 업무일지, 업무매뉴얼, 회의록, 출간제안서 등 17개의 독립 게시판으로 이루어졌다. 업무일지 게시판을 클릭하자 직원별로 그날의 업무내용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사원들은 자신이 계획한 일정에 따라 당일 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신입사원은 지나간 업무일지를 통해 업무를 익힐 수 있다.

사장을 포함한 사원간의 커뮤니케이션도 게시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원 개인별 게시판에 들어가 할 말을 남기면 게시판 주인이 댓글을 통해 대답하는 형식이다. “얼마 전부터 사내에서는 이메일이나 메신저의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다른 사람을 배제한 채 개인간에만 이루어질 경우 작업상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업무에 대해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얘기하자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사내의 모든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고 쌓여가게 된다. 회사 내에서 창출되는 지식과 노하우를 전사원이 공유하는 소위 지식경영이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업무관리 시스템은 사장을 포함한 23명의 직원이 올 한 해 무려 280종의 책을 출간, 2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미디어의 실제’ ‘텔레비전 카메라연출’ ‘디지털 시대의 지역방송 편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 관련 학술·전문서적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제목만 듣고 알 만한 베스트셀러도 없다. 하지만 1998년 창업하던 해 15종으로 시작한 책의 가짓수가 이제는 800종을 넘어섰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는 전문출판사로서의 입지가 굳혀졌다.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원고가 입고돼 책으로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주일. 보통 출판사의 경우 책 한 권 나오는 데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고가 들어올 때쯤에는 이미 기본적인 편집은 완료된 상태입니다. 사전에 편집자가 작가와 접촉하면서 기본 틀을 다 잡아놓는 거죠. 이 기간이 6개월~1년 정도 걸립니다. 일단 원고가 들어오면 게시판에 일정이 공개되고 44단계로 세분된 공정에 따라 편집자는 물론 마케팅, 제작팀이 함께 작업을 해나갑니다. 보통 출판사가 원고가 들어온 후 편집-제작-마케팅의 단계를 차례대로 거치는 데 비해 저희는 모든 게 한꺼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죠.”

이 모든 시스템을 직접 고안해냈다는 박 사장의 이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고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손을 뗐지만 한때 부동산 잡지를 만들어서 경영했어요. 지금은 커뮤니케이션북스 외에 ‘지식공작소’ ‘박영률출판사’라는 두 개의 종합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종합출판사를 운영하던 박 사장이 전문출판사인 커뮤니케이션북스를 창업하게 된 것은 사업다각화의 일환이 아니다. 출판시장에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전문출판만이 살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별도로 운영되는 다른 두 개의 출판사는 점차 사업을 축소해나가는 중이다.

“지식공작소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린 ‘일본은 없다’ 같은 책도 내봤지만 회의가 들더라고요. 종합출판사의 베스트셀러는 수명이 짧기 때문에 매번 히트작을 내야 합니다. 마치 사냥 같죠. 20~30대에는 곰도 잡고 멧돼지도 잡겠지만 40대를 넘기면 허탕치는 날이 많아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매번 모험을 하는 대신 예측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제대로 된 사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종합출판과 달리 전문출판은 어떻게 제대로 된 사업이 될 수 있을까? “사업이란 것은 계획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엔 몇 종의 책을 내서 얼마의 이익을 내고 몇 명을 채용하겠다 이런 식이죠. 나아가 5년, 10년 후의 장기계획까지 세울 수 있어야죠. 전문출판은 시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합니다. 특히 저희 책을 많이 사보는 신문방송, 영상, 광고홍보 등을 전공하는 학생은 대학 1학년 때 처음 인연을 맺고, 관련업계에 종사할 경우 길게는 30년 이상 고객관계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필자가 나올 수도 있고요. 오랜 기간 관계를 맺다보면 자연히 독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직원들도 전문가가 되면서 앞으로의 사업 환경을 예측하기가 쉬워집니다.”

▲ 커뮤니케이션북스 박영률 사장
미디어를 전문영역으로 삼은 이유는 “시장성장성이 좋고, 정보혁명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을 낼 때의 선정기준은 전문성과 독창성, 단 두 가지다. “시장성은 완전히 무시합니다. 시장성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책이 오래 못가요. 저희 같은 전문 출판사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합니다. 단기간에 몇 개의 책을 많이 파는 대신 많은 종류의 책을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팔아서 점진적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죠. 이것이 가능하려면 책 한 권이 최소한 10년은 생명력을 가지고 꾸준히 팔려줘야 합니다. 전문성과 독창성이 갖춰지지 않고 시장성만 좇는 책은 절대로 그 정도 생명력을 가질 수 없어요.”

그렇다고 해도 시장을 무시하고 어떻게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이익을 내느냐, 못 내느냐는 마케팅의 문제예요. 매출이란 게 팔린 개수에 가격을 곱한 거잖아요. 과거 5년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슷한 책을 구입한 독자 수를 분석해보면 몇 부 정도 팔릴 지가 나오죠. 거기에 맞춰서 가격을 정하는 거예요. 1000부가 팔릴 것 같으면 1만원을 매기면 되고 100부밖에 안 팔릴 책이라면 8만5000원쯤 매기는 거죠.”

적게 찍는 책에 대해선 너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닐까? “물론 저희의 가격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100부 팔릴 책의 가격을 1만원으로 매기면 그 책은 영영 세상에 못 나옵니다. 전문책 시장의 특징은 그 지식을 발판으로 해서 2차, 3차 파급효과가 있다는 점이에요. 그저 한번 보고 소모되는 지식이 아니죠. 따라서 이런 지식이 빛을 보기 위해선 비싼 값을 매기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이런 부분이 전문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여타 전문출판사와 다르게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23명의 직원 중 마케팅 팀원만 9명이다. 박 사장이 말하는 마케팅의 핵심은 고객관리다. “저희의 제1고객은 독자가 아닌 필자입니다. 특히 필자 중에는 저희 책을 보고 공부하는 분이 많아요. 이런 분들은 필자인 동시에 독자가 되는 거죠. 이런 필자·독자 고객이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입니다. 이런 고객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고객의 요구보다 한발 앞선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박 사장은 요즘 앞으로의 회사 운영방식을 놓고 고민 중이다. “더 많은 직원이 고객과 직접 접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그런 인원이 절반 정도밖에 안돼요. 기존의 기능적 분류를 폐지하고 앞으로는 모든 직원이 편집과 마케팅을 동시에 배움으로써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세계 축구의 흐름도 토털 사커로 바뀌고 있잖아요.”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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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0)] 역사 전문 ‘푸른역사’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역사 개척”
시장의 흐름을 좇기보다 시장을 만들어가야...넓이와 깊이를 함께 담아내야 진정한 대중화

▲ `푸른 역사` 박혜숙 대표
서울 용산구 동자동 남산을 등에 두고 언덕가에 자리잡은 ‘푸른역사’. 출판사명이 말해주듯 ‘푸른역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다. 이곳에서 만난 박혜숙(朴惠淑·45) 대표는 본인의 말처럼 남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인상이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역사 대중화’란 명제가 새로울 게 없지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괴롭히고 있는 과제입니다. 그저 읽기 쉬운 대중적인 역사책을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딱딱한 학술서도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만들고,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주제를 역사와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역사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푸른역사’가 책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대중적 글쓰기의 문제다. “대중적 글쓰기를 깊이 없이 쉽게만 풀어쓰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이미 번역서 등을 통해서 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독자 수준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대중적 글쓰기는 깊이와 넓이를 함께 담아야 합니다. 역사책이라고 해서 역사만 얘기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죠. ‘미쳐야 미친다’ 같은 책이 히트할 수 있었던 것도 ‘미쳐야 성공한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넓은 키워드를 깊이있는 역사적 사실에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른역사’는 1997년 출판계의 거목인 ‘푸른숲’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경영과 관리는 ‘푸른숲’에서 맡고 기획과 편집은 현재의 박혜숙 대표가 전담하는 시스템이었다. “실용서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에서 6년 정도 경험을 쌓다가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역사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야 나중에 망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또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던 저희 세대 독자들이 사회주의 몰락 이후 어디로 눈을 돌릴까 생각했더니 역사서로 갈 것이라는 판단이 섰지요. 그런데 경영 쪽은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당시 출판계에는 자회사 붐이 일고 있었어요. 마침 푸른숲의 김혜경 사장을 소개받게 되어서 푸른숲 자회사로 출발하게 됐죠.”

여느 신생 출판사가 그렇듯 시작단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작가를 발굴하는 일이었다. 기존의 검증된 작가들은 이미 계약을 맺고 있는 출판사가 있었다. 결국 작가를 직접 발굴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 발굴을 위해선 학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지를 탐독하고 세미나 등에 참가하면서 현재 논쟁이 되는 점이 무엇인지 파악했어요. 또 시대별, 주제별로 누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나름대로 학계의 계보도를 그려봤죠. 이런 학계의 움직임이 대중에게는 어느 정도 전달됐는지 체크하면서 구체적인 기획으로 전환시켰습니다. 특히 역사 대중화를 이끌어갈 30~40대 소장파 학자의 움직임에 주목했습니다.”

전문지, 세미나를 통해 학계의 흐름을 짚어내는 것이 정공법이라면, 학계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측면 돌파법이었다. “술자리에 가면 비공식적인 고급 정보가 흘러다녀요. 생각지도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도 많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고 관련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을 소개받기도 했죠.”

이런 식으로 맺어지기 시작한 작가 인맥은 ‘푸른역사’의 커다란 자산이다. 인맥이 어느 정도 쌓이자 함께 일했던 작가, 사학자 등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정해 난상토론을 벌이는 ‘사랑방’ 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은 한때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가질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디어가 기획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이곳에서 맺어진 인맥이 새로운 저자 발굴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관리하기에 벅찰 정도로 참가자 수가 늘어나 부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2000년 모회사인 ‘푸른숲’으로부터 독립한 ‘푸른역사’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선의 뒷골목 풍경’ ‘미쳐야 미친다’로 이어지는 5만부 이상 판매된 히트작을 매해 한 권씩 내놓으며 성공적인 독자적 행보를 내디뎠다. “몇몇 유명해진 책들이 푸른역사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몇 권의 베스트셀러가 푸른역사를 대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 책의 70%는 학술서예요. 많이 팔리진 않지만 푸른역사의 기반을 탄탄하게 해주는 학술서를 통해 역량이 쌓여야 틈새를 개척하는 새로운 시도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일찍이 자신의 출판사가 가야 할 길은 전문출판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 역사서 한우물만 팔 것, 그리고 규모를 함부로 늘리지 않을 것. 그래도 가끔은 다른 분야에도 눈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왜 유혹이 없었겠어요. 되겠다 싶은 원고를 받아보게 되면 우리 분야가 아니더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죠. 그래도 결국 역사라는 저희 이미지에 맞지 않으면 다른 출판사를 소개해줬습니다. 한두 번 원칙을 수정하다 보면 결국은 푸른역사라는 브랜드를 깎아먹게 되잖아요. 애초에 출판사 이름을 푸른역사로 지어놔서 이름 때문에라도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게 된 것도 같아요.”

대신 푸른역사의 이미지에 맞는 욕심이 나는 원고에 대해선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기도 했다. 풍속사를 다룬 책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에 얽힌 일화는 출판업계에서는 유명하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 중 ‘혜원전신첩’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이었어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을 포기한 상태였죠. 도저히 편집기획자로서 욕심을 접을 수 없어서 일단 일을 저질렀습니다. 책 출간 후 미술관을 방문해 돈 벌려는 욕심에서 한 것이 아님을 설명드리고 ‘혜원의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나오면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라는 변명으로 용서를 구했죠. 결국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직접 제목까지 달며 편집에 참여하는 실무형 사장을 포함, 직원수는 7명. 작년 10월부터는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학 박사인 백승종씨를 주간으로 영입했다. 이들이 지금까지 출간한 책은 112종, 규모를 함부로 늘리지 않는다는 처음의 원칙을 꿋꿋이 지킨 까닭에 지금껏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소규모 전문출판사들이 한두 번씩 경영상 위기를 겪게 마련인데, 부침(浮沈)이 없었다는 건 시장의 흐름을 발빠르게 좇아가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출판을 하는 데도 시장의 논리가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시장을 좇아가기보다 시장을 만들어가는 측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의 경우 역사 대중화란 모토를 내걸고 다양한 형식의 역사서를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사서의 외연을 확대하면서 아직 개척되지 않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던 거죠.”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외길을 걸어오면서 어느덧 출판업계,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푸른역사’라는 이름을 알렸다. 평생 역사 출판을 하겠다는 박 대표의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일본만 봐도 역사책의 분야가 엄청나게 세분화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통사(通史)도 다 정리가 안되어 있는 실정이죠. 궁극적으로 역사에 관해선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푸른역사란 이름을 단 책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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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출판사를 찾아서 (9)] 오디오북 전문 유미디어
“쉿! 눈 감고도 읽는 책 들어보세요”
가수 유열이 아닌 CEO 유종열의 도전… FM 프로의 ‘책 읽어주는 남자’ 코너서 아이디어 얻어

▲ 유미디어의 대표인 가수 유열.
지금껏 출판사 대표들을 인터뷰하면서 취재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는 있어도 스케줄 때문에 인터뷰 날짜를 잡지 못해 애를 먹은 적은 없었다. 사장은 으레 회사에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꽉 찬 스케줄 때문에 약속을 겨우 잡고도, 만나기로 한 당일 막판에 약속시간이 또 1시간 미뤄졌다.

서울 서초동 반포의 사무실에서 만난 오디오북 전문출판사 ‘유미디어’의 유종열(柳鐘列·44·예명 유열) 대표. 유미디어은 2003년 5월 ‘비즈니스 협상론’과 ‘TV동화 행복한 세상’이란 오디오북을 제작해 출시한 이래 오디오북을 전문적으로 출간해오고 있다.

“책이 눈으로 읽는 개념이라면 오디오북은 귀로 듣고 감상하는 방식이에요. 책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전체 내용을 2분의 1 정도로 요약해서 들려주죠. 보통 책 한 권 읽는 데 5~6시간 이상 걸리지만 오디오북으로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해서 출퇴근 시간 차 안에서 한 권을 마스터할 수 있죠. 아직 우리나라에는 오디오북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지만 외국의 경우엔 서점에 오디오북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요. 음반가게에서 음반을 들어보고 구입을 결정하듯이 오디오북도 들어보고 구입할 수가 있죠. 외국에는 오디오북 시장이 전체 책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디오북은 보통 CD 혹은 테이프의 형태로 판매된다. 최근엔 MP3 형식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국내 오디오북 시장의 규모는 수십억원 수준. 아직 시낭송, 동화구연 등과 뒤섞여 있어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태다. 1999년쯤부터 오디오북을 출시하는 업체들이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했지만 1~2년 만에 문을 닫는 등 아직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엔 출판 쪽보다는 IT업체들이 휴대폰, 인터넷 등을 통해 오디오북을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화제가 되는 책은 출간과 동시에 오디오북이 함께 나오기도 해요. 클린턴 자서전의 경우 저자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이 책과 함께 발매됐습니다. 책 읽어주는 사람을 ‘북 텔러(Book Teller)’라고 해요. 유명 배우나 성우가 하는 경우가 많지만 개중에는 배우로서보다 북텔러로 성공해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오디오북이 시리즈물로 출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수 출신이라면 음반이나 연예기획 쪽에 손을 대게 마련인데 다소 의외의 길을 갔다. 유 대표는 “지금은 모두 그만뒀지만 1997년에 회사를 설립하고 처음엔 공연기획 일도 조금 하고 연예인의 동영상을 CD에 담아 판매하는 nCD라는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했었어요. 요즘 CD에 동영상을 같이 담아서 출시하는 일이 많은데 어떻게 보면 선구적인 길을 갔다고 할 수 있죠”라며 웃었다.

오디오북 사업을 구상하게 된 데에는 그간의 이력이 한몫했다. “데뷔한 지 19년이 됐는데 그 중에 17년 정도를 라디오 진행을 했어요. 현재 FM방송에서 ‘유열의 음악앨범’만 12년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프로에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보니, 뭐랄까, 책을 맛있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이런 걸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외국에서는 이미 하나의 출판 장르로 자리잡았고,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유미디어의 직원은 5명. 이 중 4명이 출판업계에서 일했던 경력자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오디오북 시장에 발을 들였다는 편동원 기획팀장은 “오디오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출판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시장성 있는 작품을 선정해서 내용을 재구성하고 말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오디오북에 맞는 원고로 다듬는 과정이 기획·편집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제작비는 보통 기존 출판물보다 1.5배 이상 듭니다. 북텔러를 누구를 쓰느냐, 배경에 쓰이는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제작비가 많이 차이 날 수 있죠. 저희는 음악에 특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유미디어에서 출시한 오디오북은 아직 8종 13권이다. “아직 오디오북의 시장성에 대해 못미더워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기존에 출시된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해당 출판사에 오디오북으로 출시하자고 문의하는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질 않아요. 어떤 때는 무리한 계약조건을 요구해서 포기하게 되죠. 아직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외국의 경우엔 책을 사본 사람이 오디오북을 구매하기도 하고, 반대로 오디오북으로 먼저 듣고 직접 책을 사서 보기도 해서 책과 오디오북이 상호 윈-윈하는 경우가 많아요. 출판하시는 분들이 열린 마음을 갖고 오디오북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유 대표의 말이다.

▲ `뮤동이의 뮤지컬동화` 시리즈.
유미디어의 대표작은 지금까지 5편이 제작돼 모두 작년에 출시된 ‘뮤동이의 뮤지컬동화’ 시리즈다. 기존의 동화를 뮤지컬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전문 뮤지컬 배우 5~6명이 각자 배역을 맡아서 동화를 뮤지컬에 담아 들려준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 북텔러 역할은 최수종, 김용만, 신애라 등 유명 연예인이 담당했다. 유 대표의 연예계 인맥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를 가진 부모였던 까닭에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뮤지컬 동화의 경우 단기간의 이익을 좇기보다 새로운 형식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을 했죠. 마침 뜻있는 분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어서 제작비를 좀 많이 들였습니다.” ‘뮤동이의 뮤지컬동화’ 시리즈는 제작비가 편당 1억원 가까이 투입됐다. 톱스타들을 참여시킨 까닭일까?

“작곡료, 녹음 스튜디오 사용료가 많이 들었습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경우 아랍의 신비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배경음악을 아라비아 음계로 표현했어요. ‘브레맨 음악대’에서는 전체적으로 재즈를 사용했고 ‘미운아기오리’는 낭만주의 시대풍의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죠. 아이들에게 웬 재즈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3세에서 6세 사이가 소리에 가장 민감한 시기예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면 흡수가 빨라서 그만큼 교육적 효과가 높아요. 스타급 연예인들의 경우 출판처럼 인세 형식으로 계약을 해서 막상 지급된 돈은 얼마 안돼요. 아직 많이 팔리지 않아서 돈을 많이 못드렸죠.”

한 해 매출액이 5억원 정도라는데 작년에 뮤지컬 동화를 제작하는 데만 5억원 가까이 들었으니 투자를 받았다고 해도 회사운영은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서점에서조차 오디오북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을 정도로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규모가 미미한 실정이에요. 하지만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출퇴근 환경이나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쉽게 다운받아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일단 오디오북에 대한 붐이 형성되기만 하면 금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종류를 늘리기보다 1년에 한두 편 정도 양질의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데 매달릴 생각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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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출판사를 찾아서 (8)] 수학 전문 경문사
“난해한 기호 속에 답이 숨어있지요”

▲ 박문규 사장
서울 신촌에 위치한 경문사(京文社). 4층짜리 건물의 두 층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3층엔 편집부가 있고, 1층에는 도서전시실과 함께 한쪽에 영업·관리부원이 사용하는 사무실이 있다. 도서전시실은 아무나 와서 책을 둘러보고 즉석에서 구입해갈 수 있는 곳이다. ‘선형대수학과 응용’ ‘복소함수론 강의’ 등 책제목이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한 권 가져다 보세요”라며 책을 빼주려는 관계자에게 강하게 양손을 내저었다. 수학책의 경우 이곳은 대형서점보다도 많은 종류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경문사는 수학 서적을 전문으로 펴내는 전문출판사다.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수학을 전공으로 한 사람치고 경문사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수학 전공서적 시장의 60% 이상을 경문사에서 차지한다. 1979년 박문규(朴文圭·55) 사장이 창업해 1980년대 초반부터 수학의 외길을 걸어왔다.

한 해에 이곳에서 새로 출간하는 책의 종류는 100여종. 중·고등학생용 수학 문제집은 출간하지 않는다. 전체의 80% 정도가 번역서 위주의 대학 전공서적이지만 최근에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수학책의 비중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회사설립 전에 출판영업 일을 했던 곳에서 공업·기계 쪽 도서를 주로 다뤘어요. 그러다보니 처음 회사 시작하고도 산업공학, 조선, 항공 같은 공학 쪽 책을 주로 냈죠. 당시에 카이스트(KAIST)에 책을 많이 댔는데 그쪽 사람들 하고 접촉하다보니 공학에 비해 순수 수학 책이 너무 부족하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마침 서울대 수학과 지동표 교수가 수학책 보급에 열의를 가지고 계셔서 뜻있는 교수님들과 함께 한 권, 두 권 외국서적을 번역해 들여오기 시작했죠.” 박문규 사장의 말이다.

수학책만 팔아가지고 이익이 날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책이 전문적이다보니 수요가 너무 적어요. 당연히 처음엔 수지가 안 맞죠. 그런데 주위에서 ‘이런 책은 꼭 필요하니까 출간해야 한다’고 하는 책은 큰맘 먹고 출판해보면 시장조사 때하고는 다르게 책을 찾는 분이 많이 생겨요.”

경문사에서 발행하는 전공서적의 경우 1000부 정도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단행본의 경우 초판으로 3000부 정도를 찍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공서적의 특성상 몇백 부 정도를 찍는 것이 고작이다. 초판이 다 팔린다고 해도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대신 ‘수학사’ ‘현대대수학’ 같은 책처럼 10여년에 걸쳐 수차례 판(版)갈이를 해가며 1만부 이상 팔린 책이 여러 권 있다. 올해 뿌린 씨앗이 5년, 10년 후에 결실을 맺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사장을 포함한 15명의 직원이 한 해 올리는 매출액이 현재 30억원 정도다.

25년 이상 출판사를 운영하다보면 우여곡절이 있을 법도 한데 큰돈을 번 적도 없지만 크게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적도 없었다고 한다. 충분한 여유자금이 확보된 다음에야 규모를 조금씩 키워나갔기 때문이다. 이 회사 편집부 박수연 실장은 “사장님이 원체 꼼꼼하시고 절대 모험을 안 하시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수학책의 경우 다른 일반 책의 출판에서 볼 수 없는 제작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선 고대문자를 방불케 하는 갖가지 수학기호를 저자가 요구하는 대로 채워넣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일반 조판기계에는 없는 수학기호가 사용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아무 데서나 인쇄할 수 없는 거죠. 개중엔 비슷한 기호로 대체하고 넘어가는 분도 있지만, 수학하는 분 중엔 꼼꼼한 사람이 많아서 자기가 원하는 기호를 그대로 찾아 써야 직성이 풀리죠. 이런 책일수록 사가는 사람은 적은데 책을 찍는 데 드는 비용은 더 많이 들죠.”

교열도 어려운 부분이다. 현재 수학과 출신 편집자가 2명 있긴 하지만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보니 세세한 내용까지 잡아내는 것은 무리다. “한번은 어떤 교수님이 자신이 번역할 책의 번역을 다른 사람한테 일부 맡겼다가 책이 나온 다음에야 그 부분의 수학적 해석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배포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해서 전부 수거했어요. 우리 쪽 교열이 이해하고 잡아내기 어려운 내용이었죠. 애초부터 제대로 번역하거나 집필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여년 전부터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수학책도 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수학이 학문으로서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교양으로까지 저변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출판업계에서는 경문사하면 수학 전공책만 취급한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혀있어요. 그러다보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단행본을 내도 서점에서 자꾸 전공서적 칸에 진열해놓는 거예요. 그래서 1998년에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단행본을 전문으로 펴내는 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자회사의 이름은 ‘일공일공일(10101)’. 경문사보다 더 수학 냄새가 나는 이름이다. ‘10101’은 이진법 숫자로, 이를 10진법으로 바꾸면 ‘21’이 된다. 21세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지은 이름이란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브랜드로 책을 내니까 이번에는 모르는 회사의 책이라고 해서 진열을 잘 안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경문사에서 내는 거라고 사정설명을 해주면 그제서야 믿고 진열해주더라고요. 장기적으로는 경문사라는 이름으로 다같이 안고 가야 할 것 같아요.”

홍보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광고는 거의 하지 않고 대신 각종 수학학회에 참석하고 수학 선생님, 교수님들을 만나 1 대 1 면담을 하는 식”이라고 한다. “한번은 신문에서 우리 책 소개가 한면 절반 정도로 큼지막하게 나간 적이 있어요. 야, 이거 광고효과가 꽤 있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판매에는 별로 영향을 못주더라고요. 이쪽 책이 전문적이다 보니까 여러 사람에게 노출된다고 해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옆에 있던 박수연 실장이 “우리는 책 한 권, 한 권을 광고할 게 아니라, 경문사라는 기업 이미지를 광고해야 돼요”라고 거든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단행본 ‘웃기는 수학이지, 뭐야’다. 10만부 정도 팔렸다. 현재 중국과 일본에도 번역되어 수출되고 있다. 박 사장은 “이 책도 따로 홍보를 하지는 않았다”며 “운좋게도 경기도와 충청도 교육청 선정 ‘청소년이 읽어야 할 도서’에 포함되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앞으로의 사업 전망은 낙관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고 국내에 필요한 책을 들여오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저자가 요구하는 수학기호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챙겨서 책을 펴낸 것이 결국 신용을 쌓게 해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수학책 분야에서는 특별한 경쟁자가 없어요. 금방 이익을 내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수학책 시장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요.” 일종의 블루오션(Blue Ocean)인 셈이다.

“수학전공자뿐 아니라 관심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준있는 수학교양서를 발간한다는 취지에서 1994년부터 ‘수학 산책’ 시리즈를 내놓고 있습니다. 11월에 30권이 나와요. 아직까지 외국저서를 번역해서 출간하는 데 만족하고 있지만 언젠가 국내 저자가 집필한 ‘수학 산책’을 내놓는 게 경문사 대표로서의 바람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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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출판사를 찾아서 (7)] 여행 전문출판사 성하
낯선 세계 열어주는 든든한 가이드
여행 관련서적으로 한우물 10년, 80여종 펴내···제대로 된 세계여행 전집 만들고 싶어

여행 전문출판사 ‘성하’.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서울 을지로 3가의 사무실엔 사장이 마침 전화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을 쭉 훑어봤다. 열 평이 안돼 보이는 공간에 책꽂이 가득 ‘○○여행’이라고 적힌 책이 늘어서 있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여행과 관련된 단서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던 찰나, 창가 쪽 책꽂이 위에 놓여 있는 술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삼 두 뿌리가 통째로 든 인삼주, 러시아산 보드카, 조롱박 모양의 나무로 된 술병 하나는 취권(醉拳)을 구사하는 소림사의 노승(老僧)이 옆구리에 차고 다닐 것만 같았다. “사장님이 술을 꽤나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말하자 막 통화를 끝낸 김창년(金昌年·55) 사장이 “여행작가들이 여행 다녀올 때 한 병씩 사다준 것을 모아놓은 겁니다”라고 받았다.

성하출판사는 지금까지 여행 관련 서적만 80여종을 펴낸 여행 전문출판사다. 출판하는 책의 종류를 나누자면 크게 두 가지다. 흔히 모르는 곳을 여행할 때면 불안한 마음에 한 권씩 들고 가는 가이드북과 작가가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바를 사진과 함께 담은 여행 에세이가 그것이다.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의 비율은 최근 1~2년 사이 해외여행 쪽 비중이 크게 늘어 70% 정도를 차지한다. 한 해에 출간하는 책의 종류는 10~15권 정도.

1997년 처음으로 여행 가이드북이란 것을 출간하고 여행관련 서적만 전문으로 내자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여행에 관한 콘텐츠가 없었다. “당시엔 여행 관련 정보래봐야 잡지에서 여름특집 부록으로 내는 책자나 신문에 1주일에 한 번 실리는 여행기사 정도가 전부였어요. 물론 지금처럼 여행작가라는 것도 없었죠. 원고를 구할 수가 없어서 신문사 레저 기자들을 쫓아다니는 게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1년에 2~3권 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고 걱정은 없다. “여행 전문 출판사라는 명성이 쌓인 덕분인지 2~3년 전부터 원고를 보내오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보통 20건 이상 들어오고 특히 사람들이 여행을 제일 많이 다녀오는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엔 아마추어까지 가세해서 하루에 2~3명씩 원고를 보내옵니다.”

이제는 발품을 팔며 여행작가를 따라다니는 대신 사무실에 앉아 들어온 원고를 검토하고 기획을 하는 일이 주가 되었다. 국내 여행에 대한 기획은 김창년 사장이 맡고 해외 여행에 대해서는 이상희(38) 기획팀장이 담당하고 있다. 특히 이 팀장은 최신 여행 트렌드를 발빠르게 포착해 ‘성하’가 새로운 감각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를 알려주는 가이드북이 중심추 구실을 하지만 여행책 시장에도 흐름이란 게 있어요. 얼마 전까지는 여행 에세이가 강세를 보이다가 요즘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심도있게 파고드는 스타일이 어필하는 추세예요. ‘중국 무림기행’ ‘파리 예술 까페기행’ 같은 책이 그런 경우죠.” “여행도 좋고, 책도 좋지만 글쓰기가 싫어서 여행작가가 아닌 여행서적 기획자가 되었다”는 이 팀장의 분석이다.

성하가 처음부터 여행 관련 서적만 취급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시집(詩集) 중심의 문학작품을 출판하던 것을 1994년 당시 인쇄기획 일을 하던 지금의 김창년 사장이 인수했다. 처음 3년 동안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인작가의 소설을 발간하거나 외국의 문학 작품을 번역해 출간했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김 사장이 말을 이었다.

“회사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서 4~5년 내로 회사를 정리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주변에서 누가 여행 관련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여행 문화랄 게 없었지만 선진국 사람은 여행할 때 책 한 권씩 들고 다닌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작비 부담이 컸지만 한번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여행서적은 컬러사진과 종이질 때문에 인쇄비가 소설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든다. 보통 재판(再版) 6000부 정도는 팔려야 현상유지를 할 수 있다. 노심초사(勞心焦思),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1997년에 펴낸 ‘주제가 있는 여행’이란 첫 번째 여행 가이드북이 1만5000부 가까이 팔려나가면서 김 사장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처음엔 그저 자구책 마련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출판업계에 발을 들인 이래 처음 맛본 성취감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또 흑백의 활자로 된 책만 내다가 생생한 컬러 사진이 담긴 책을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친김에 여행 전문으로 한우물을 파기로 했다.

“원래 ‘성하’라는 출판사 이름은 먼저 회사를 경영하던 분의 따님 이름이었어요. 여행 전문출판사로 거듭나면서 나름대로 ‘무성한 여름’이라는 의미에서 ‘盛夏(성하)’란 뜻을 담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기 전에는 여행하면 여름휴가 다니는 거였잖아요. 여름이 무성해지면 사람들이 여행도 많이 가고 여행책도 많이 팔리지 않겠습니까.”

여행 전문출판사로 전업, 외길을 걸어온 지 10년이 다되어가는 동안 굴곡이 없었을 리 없다. “한동안 현상유지 수준을 맴돌다가 은행권을 중심으로 주5일 근무제가 처음으로 실시된 2003년엔 매출액이 전년의 두 배 수준인 6억원 정도로 뛰었습니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사람들이 주말을 이용해 평소 잘 모르던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려다보니 자연히 여행 가이드북을 찾게 된 거죠. 정말 그때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주5일 근무제 특수도 잠시, 작년부터 상황이 반전되었다. “성하에서 10년 가까이 여행서적만 내니까 주위에서 ‘저게 돈이 되는구나’하고 생각했는지 1~2년 사이에 여행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어요. 그런데 이쪽은 시장이 작아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이래봐야 전체 책 순위 50위 안에 명함도 못 내밉니다. 2001년 발간돼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제주 토박이의 발로 쓴 제주여행’이 4만부 정도 나갔을 겁니다. 또 가뜩이나 불황인 데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여행 정보를 얻는 게 일상화되다 보니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매출이 2003년의 절반 수준인 3억원 정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사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5명. 보통 출판사라면 그리 나쁜 실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제작 단가가 높은 여행책의 특성상 이 정도 매출로는 적자를 면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성하’는 외국의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과 같은 제대로 된 여행 가이드북 전집을 내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다음달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이은 6번째 작품, ‘유럽편’을 출간하는 ‘알짜배기 세계여행’ 시리즈는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내딛는 또 한걸음이다.

“지금은 여행서적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양질의 서적만 살아남는 식으로 시장이 정리될 것으로 봅니다. 또 인터넷이 아무리 최신 정보를 금방금방 날라준다고 해도 여행하는 사람들은 여행책 한 권씩 옆구리에 끼고 가지 않으면 불안해 하지 않습니까? 지금 어려운 시기에 꾸준히 여행 전문출판사로서 역량을 키워놓으면 언젠가 독자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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