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영화, 광고 등 미디어 관련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커뮤니케이션북스’. 이곳 업무의 대부분은 사내 인터넷망인 인트라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직원끼리 굳이 얼굴을 맞댈 필요 없이 모든 일은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회의는 각자의 자리에서 정면의 화이트보드에 쏜 빔프로젝터 화면을 보면서 하죠.” 이 회사 박영률(朴泳律·48) 사장의 말이다.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은 인터넷 카페와 같은 형식으로, 업무일지, 업무매뉴얼, 회의록, 출간제안서 등 17개의 독립 게시판으로 이루어졌다. 업무일지 게시판을 클릭하자 직원별로 그날의 업무내용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사원들은 자신이 계획한 일정에 따라 당일 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신입사원은 지나간 업무일지를 통해 업무를 익힐 수 있다.
사장을 포함한 사원간의 커뮤니케이션도 게시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원 개인별 게시판에 들어가 할 말을 남기면 게시판 주인이 댓글을 통해 대답하는 형식이다. “얼마 전부터 사내에서는 이메일이나 메신저의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다른 사람을 배제한 채 개인간에만 이루어질 경우 작업상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업무에 대해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얘기하자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사내의 모든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고 쌓여가게 된다. 회사 내에서 창출되는 지식과 노하우를 전사원이 공유하는 소위 지식경영이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업무관리 시스템은 사장을 포함한 23명의 직원이 올 한 해 무려 280종의 책을 출간, 2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미디어의 실제’ ‘텔레비전 카메라연출’ ‘디지털 시대의 지역방송 편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 관련 학술·전문서적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제목만 듣고 알 만한 베스트셀러도 없다. 하지만 1998년 창업하던 해 15종으로 시작한 책의 가짓수가 이제는 800종을 넘어섰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는 전문출판사로서의 입지가 굳혀졌다.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원고가 입고돼 책으로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주일. 보통 출판사의 경우 책 한 권 나오는 데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고가 들어올 때쯤에는 이미 기본적인 편집은 완료된 상태입니다. 사전에 편집자가 작가와 접촉하면서 기본 틀을 다 잡아놓는 거죠. 이 기간이 6개월~1년 정도 걸립니다. 일단 원고가 들어오면 게시판에 일정이 공개되고 44단계로 세분된 공정에 따라 편집자는 물론 마케팅, 제작팀이 함께 작업을 해나갑니다. 보통 출판사가 원고가 들어온 후 편집-제작-마케팅의 단계를 차례대로 거치는 데 비해 저희는 모든 게 한꺼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죠.”
이 모든 시스템을 직접 고안해냈다는 박 사장의 이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고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손을 뗐지만 한때 부동산 잡지를 만들어서 경영했어요. 지금은 커뮤니케이션북스 외에 ‘지식공작소’ ‘박영률출판사’라는 두 개의 종합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종합출판사를 운영하던 박 사장이 전문출판사인 커뮤니케이션북스를 창업하게 된 것은 사업다각화의 일환이 아니다. 출판시장에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전문출판만이 살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별도로 운영되는 다른 두 개의 출판사는 점차 사업을 축소해나가는 중이다.
“지식공작소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린 ‘일본은 없다’ 같은 책도 내봤지만 회의가 들더라고요. 종합출판사의 베스트셀러는 수명이 짧기 때문에 매번 히트작을 내야 합니다. 마치 사냥 같죠. 20~30대에는 곰도 잡고 멧돼지도 잡겠지만 40대를 넘기면 허탕치는 날이 많아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매번 모험을 하는 대신 예측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제대로 된 사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종합출판과 달리 전문출판은 어떻게 제대로 된 사업이 될 수 있을까? “사업이란 것은 계획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엔 몇 종의 책을 내서 얼마의 이익을 내고 몇 명을 채용하겠다 이런 식이죠. 나아가 5년, 10년 후의 장기계획까지 세울 수 있어야죠. 전문출판은 시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합니다. 특히 저희 책을 많이 사보는 신문방송, 영상, 광고홍보 등을 전공하는 학생은 대학 1학년 때 처음 인연을 맺고, 관련업계에 종사할 경우 길게는 30년 이상 고객관계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필자가 나올 수도 있고요. 오랜 기간 관계를 맺다보면 자연히 독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직원들도 전문가가 되면서 앞으로의 사업 환경을 예측하기가 쉬워집니다.”
 |
| ▲ 커뮤니케이션북스 박영률 사장 |
미디어를 전문영역으로 삼은 이유는 “시장성장성이 좋고, 정보혁명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을 낼 때의 선정기준은 전문성과 독창성, 단 두 가지다. “시장성은 완전히 무시합니다. 시장성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책이 오래 못가요. 저희 같은 전문 출판사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합니다. 단기간에 몇 개의 책을 많이 파는 대신 많은 종류의 책을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팔아서 점진적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죠. 이것이 가능하려면 책 한 권이 최소한 10년은 생명력을 가지고 꾸준히 팔려줘야 합니다. 전문성과 독창성이 갖춰지지 않고 시장성만 좇는 책은 절대로 그 정도 생명력을 가질 수 없어요.”
그렇다고 해도 시장을 무시하고 어떻게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이익을 내느냐, 못 내느냐는 마케팅의 문제예요. 매출이란 게 팔린 개수에 가격을 곱한 거잖아요. 과거 5년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슷한 책을 구입한 독자 수를 분석해보면 몇 부 정도 팔릴 지가 나오죠. 거기에 맞춰서 가격을 정하는 거예요. 1000부가 팔릴 것 같으면 1만원을 매기면 되고 100부밖에 안 팔릴 책이라면 8만5000원쯤 매기는 거죠.”
적게 찍는 책에 대해선 너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닐까? “물론 저희의 가격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100부 팔릴 책의 가격을 1만원으로 매기면 그 책은 영영 세상에 못 나옵니다. 전문책 시장의 특징은 그 지식을 발판으로 해서 2차, 3차 파급효과가 있다는 점이에요. 그저 한번 보고 소모되는 지식이 아니죠. 따라서 이런 지식이 빛을 보기 위해선 비싼 값을 매기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이런 부분이 전문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여타 전문출판사와 다르게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23명의 직원 중 마케팅 팀원만 9명이다. 박 사장이 말하는 마케팅의 핵심은 고객관리다. “저희의 제1고객은 독자가 아닌 필자입니다. 특히 필자 중에는 저희 책을 보고 공부하는 분이 많아요. 이런 분들은 필자인 동시에 독자가 되는 거죠. 이런 필자·독자 고객이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입니다. 이런 고객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고객의 요구보다 한발 앞선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박 사장은 요즘 앞으로의 회사 운영방식을 놓고 고민 중이다. “더 많은 직원이 고객과 직접 접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그런 인원이 절반 정도밖에 안돼요. 기존의 기능적 분류를 폐지하고 앞으로는 모든 직원이 편집과 마케팅을 동시에 배움으로써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세계 축구의 흐름도 토털 사커로 바뀌고 있잖아요.”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