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0)] 역사 전문 ‘푸른역사’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역사 개척”
시장의 흐름을 좇기보다 시장을 만들어가야...넓이와 깊이를 함께 담아내야 진정한 대중화

▲ `푸른 역사` 박혜숙 대표
서울 용산구 동자동 남산을 등에 두고 언덕가에 자리잡은 ‘푸른역사’. 출판사명이 말해주듯 ‘푸른역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다. 이곳에서 만난 박혜숙(朴惠淑·45) 대표는 본인의 말처럼 남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인상이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역사 대중화’란 명제가 새로울 게 없지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괴롭히고 있는 과제입니다. 그저 읽기 쉬운 대중적인 역사책을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딱딱한 학술서도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만들고,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주제를 역사와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역사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푸른역사’가 책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대중적 글쓰기의 문제다. “대중적 글쓰기를 깊이 없이 쉽게만 풀어쓰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이미 번역서 등을 통해서 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독자 수준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대중적 글쓰기는 깊이와 넓이를 함께 담아야 합니다. 역사책이라고 해서 역사만 얘기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죠. ‘미쳐야 미친다’ 같은 책이 히트할 수 있었던 것도 ‘미쳐야 성공한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넓은 키워드를 깊이있는 역사적 사실에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른역사’는 1997년 출판계의 거목인 ‘푸른숲’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경영과 관리는 ‘푸른숲’에서 맡고 기획과 편집은 현재의 박혜숙 대표가 전담하는 시스템이었다. “실용서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에서 6년 정도 경험을 쌓다가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역사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야 나중에 망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또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던 저희 세대 독자들이 사회주의 몰락 이후 어디로 눈을 돌릴까 생각했더니 역사서로 갈 것이라는 판단이 섰지요. 그런데 경영 쪽은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당시 출판계에는 자회사 붐이 일고 있었어요. 마침 푸른숲의 김혜경 사장을 소개받게 되어서 푸른숲 자회사로 출발하게 됐죠.”

여느 신생 출판사가 그렇듯 시작단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작가를 발굴하는 일이었다. 기존의 검증된 작가들은 이미 계약을 맺고 있는 출판사가 있었다. 결국 작가를 직접 발굴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 발굴을 위해선 학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지를 탐독하고 세미나 등에 참가하면서 현재 논쟁이 되는 점이 무엇인지 파악했어요. 또 시대별, 주제별로 누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나름대로 학계의 계보도를 그려봤죠. 이런 학계의 움직임이 대중에게는 어느 정도 전달됐는지 체크하면서 구체적인 기획으로 전환시켰습니다. 특히 역사 대중화를 이끌어갈 30~40대 소장파 학자의 움직임에 주목했습니다.”

전문지, 세미나를 통해 학계의 흐름을 짚어내는 것이 정공법이라면, 학계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측면 돌파법이었다. “술자리에 가면 비공식적인 고급 정보가 흘러다녀요. 생각지도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도 많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고 관련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을 소개받기도 했죠.”

이런 식으로 맺어지기 시작한 작가 인맥은 ‘푸른역사’의 커다란 자산이다. 인맥이 어느 정도 쌓이자 함께 일했던 작가, 사학자 등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정해 난상토론을 벌이는 ‘사랑방’ 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은 한때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가질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디어가 기획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이곳에서 맺어진 인맥이 새로운 저자 발굴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관리하기에 벅찰 정도로 참가자 수가 늘어나 부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2000년 모회사인 ‘푸른숲’으로부터 독립한 ‘푸른역사’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선의 뒷골목 풍경’ ‘미쳐야 미친다’로 이어지는 5만부 이상 판매된 히트작을 매해 한 권씩 내놓으며 성공적인 독자적 행보를 내디뎠다. “몇몇 유명해진 책들이 푸른역사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몇 권의 베스트셀러가 푸른역사를 대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 책의 70%는 학술서예요. 많이 팔리진 않지만 푸른역사의 기반을 탄탄하게 해주는 학술서를 통해 역량이 쌓여야 틈새를 개척하는 새로운 시도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일찍이 자신의 출판사가 가야 할 길은 전문출판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 역사서 한우물만 팔 것, 그리고 규모를 함부로 늘리지 않을 것. 그래도 가끔은 다른 분야에도 눈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왜 유혹이 없었겠어요. 되겠다 싶은 원고를 받아보게 되면 우리 분야가 아니더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죠. 그래도 결국 역사라는 저희 이미지에 맞지 않으면 다른 출판사를 소개해줬습니다. 한두 번 원칙을 수정하다 보면 결국은 푸른역사라는 브랜드를 깎아먹게 되잖아요. 애초에 출판사 이름을 푸른역사로 지어놔서 이름 때문에라도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게 된 것도 같아요.”

대신 푸른역사의 이미지에 맞는 욕심이 나는 원고에 대해선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기도 했다. 풍속사를 다룬 책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에 얽힌 일화는 출판업계에서는 유명하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 중 ‘혜원전신첩’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이었어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을 포기한 상태였죠. 도저히 편집기획자로서 욕심을 접을 수 없어서 일단 일을 저질렀습니다. 책 출간 후 미술관을 방문해 돈 벌려는 욕심에서 한 것이 아님을 설명드리고 ‘혜원의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나오면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라는 변명으로 용서를 구했죠. 결국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직접 제목까지 달며 편집에 참여하는 실무형 사장을 포함, 직원수는 7명. 작년 10월부터는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학 박사인 백승종씨를 주간으로 영입했다. 이들이 지금까지 출간한 책은 112종, 규모를 함부로 늘리지 않는다는 처음의 원칙을 꿋꿋이 지킨 까닭에 지금껏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소규모 전문출판사들이 한두 번씩 경영상 위기를 겪게 마련인데, 부침(浮沈)이 없었다는 건 시장의 흐름을 발빠르게 좇아가는 남다른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출판을 하는 데도 시장의 논리가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시장을 좇아가기보다 시장을 만들어가는 측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의 경우 역사 대중화란 모토를 내걸고 다양한 형식의 역사서를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사서의 외연을 확대하면서 아직 개척되지 않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던 거죠.”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외길을 걸어오면서 어느덧 출판업계,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푸른역사’라는 이름을 알렸다. 평생 역사 출판을 하겠다는 박 대표의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일본만 봐도 역사책의 분야가 엄청나게 세분화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통사(通史)도 다 정리가 안되어 있는 실정이죠. 궁극적으로 역사에 관해선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푸른역사란 이름을 단 책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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