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출판사를 찾아서 (9)] 오디오북 전문 유미디어
“쉿! 눈 감고도 읽는 책 들어보세요”
가수 유열이 아닌 CEO 유종열의 도전… FM 프로의 ‘책 읽어주는 남자’ 코너서 아이디어 얻어

▲ 유미디어의 대표인 가수 유열.
지금껏 출판사 대표들을 인터뷰하면서 취재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는 있어도 스케줄 때문에 인터뷰 날짜를 잡지 못해 애를 먹은 적은 없었다. 사장은 으레 회사에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꽉 찬 스케줄 때문에 약속을 겨우 잡고도, 만나기로 한 당일 막판에 약속시간이 또 1시간 미뤄졌다.

서울 서초동 반포의 사무실에서 만난 오디오북 전문출판사 ‘유미디어’의 유종열(柳鐘列·44·예명 유열) 대표. 유미디어은 2003년 5월 ‘비즈니스 협상론’과 ‘TV동화 행복한 세상’이란 오디오북을 제작해 출시한 이래 오디오북을 전문적으로 출간해오고 있다.

“책이 눈으로 읽는 개념이라면 오디오북은 귀로 듣고 감상하는 방식이에요. 책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전체 내용을 2분의 1 정도로 요약해서 들려주죠. 보통 책 한 권 읽는 데 5~6시간 이상 걸리지만 오디오북으로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해서 출퇴근 시간 차 안에서 한 권을 마스터할 수 있죠. 아직 우리나라에는 오디오북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지만 외국의 경우엔 서점에 오디오북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요. 음반가게에서 음반을 들어보고 구입을 결정하듯이 오디오북도 들어보고 구입할 수가 있죠. 외국에는 오디오북 시장이 전체 책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디오북은 보통 CD 혹은 테이프의 형태로 판매된다. 최근엔 MP3 형식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국내 오디오북 시장의 규모는 수십억원 수준. 아직 시낭송, 동화구연 등과 뒤섞여 있어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태다. 1999년쯤부터 오디오북을 출시하는 업체들이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했지만 1~2년 만에 문을 닫는 등 아직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엔 출판 쪽보다는 IT업체들이 휴대폰, 인터넷 등을 통해 오디오북을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화제가 되는 책은 출간과 동시에 오디오북이 함께 나오기도 해요. 클린턴 자서전의 경우 저자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이 책과 함께 발매됐습니다. 책 읽어주는 사람을 ‘북 텔러(Book Teller)’라고 해요. 유명 배우나 성우가 하는 경우가 많지만 개중에는 배우로서보다 북텔러로 성공해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오디오북이 시리즈물로 출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수 출신이라면 음반이나 연예기획 쪽에 손을 대게 마련인데 다소 의외의 길을 갔다. 유 대표는 “지금은 모두 그만뒀지만 1997년에 회사를 설립하고 처음엔 공연기획 일도 조금 하고 연예인의 동영상을 CD에 담아 판매하는 nCD라는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했었어요. 요즘 CD에 동영상을 같이 담아서 출시하는 일이 많은데 어떻게 보면 선구적인 길을 갔다고 할 수 있죠”라며 웃었다.

오디오북 사업을 구상하게 된 데에는 그간의 이력이 한몫했다. “데뷔한 지 19년이 됐는데 그 중에 17년 정도를 라디오 진행을 했어요. 현재 FM방송에서 ‘유열의 음악앨범’만 12년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프로에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보니, 뭐랄까, 책을 맛있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이런 걸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외국에서는 이미 하나의 출판 장르로 자리잡았고,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유미디어의 직원은 5명. 이 중 4명이 출판업계에서 일했던 경력자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오디오북 시장에 발을 들였다는 편동원 기획팀장은 “오디오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출판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시장성 있는 작품을 선정해서 내용을 재구성하고 말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오디오북에 맞는 원고로 다듬는 과정이 기획·편집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제작비는 보통 기존 출판물보다 1.5배 이상 듭니다. 북텔러를 누구를 쓰느냐, 배경에 쓰이는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제작비가 많이 차이 날 수 있죠. 저희는 음악에 특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유미디어에서 출시한 오디오북은 아직 8종 13권이다. “아직 오디오북의 시장성에 대해 못미더워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기존에 출시된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해당 출판사에 오디오북으로 출시하자고 문의하는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질 않아요. 어떤 때는 무리한 계약조건을 요구해서 포기하게 되죠. 아직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외국의 경우엔 책을 사본 사람이 오디오북을 구매하기도 하고, 반대로 오디오북으로 먼저 듣고 직접 책을 사서 보기도 해서 책과 오디오북이 상호 윈-윈하는 경우가 많아요. 출판하시는 분들이 열린 마음을 갖고 오디오북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유 대표의 말이다.

▲ `뮤동이의 뮤지컬동화` 시리즈.
유미디어의 대표작은 지금까지 5편이 제작돼 모두 작년에 출시된 ‘뮤동이의 뮤지컬동화’ 시리즈다. 기존의 동화를 뮤지컬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전문 뮤지컬 배우 5~6명이 각자 배역을 맡아서 동화를 뮤지컬에 담아 들려준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 북텔러 역할은 최수종, 김용만, 신애라 등 유명 연예인이 담당했다. 유 대표의 연예계 인맥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를 가진 부모였던 까닭에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뮤지컬 동화의 경우 단기간의 이익을 좇기보다 새로운 형식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을 했죠. 마침 뜻있는 분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어서 제작비를 좀 많이 들였습니다.” ‘뮤동이의 뮤지컬동화’ 시리즈는 제작비가 편당 1억원 가까이 투입됐다. 톱스타들을 참여시킨 까닭일까?

“작곡료, 녹음 스튜디오 사용료가 많이 들었습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경우 아랍의 신비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배경음악을 아라비아 음계로 표현했어요. ‘브레맨 음악대’에서는 전체적으로 재즈를 사용했고 ‘미운아기오리’는 낭만주의 시대풍의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죠. 아이들에게 웬 재즈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3세에서 6세 사이가 소리에 가장 민감한 시기예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면 흡수가 빨라서 그만큼 교육적 효과가 높아요. 스타급 연예인들의 경우 출판처럼 인세 형식으로 계약을 해서 막상 지급된 돈은 얼마 안돼요. 아직 많이 팔리지 않아서 돈을 많이 못드렸죠.”

한 해 매출액이 5억원 정도라는데 작년에 뮤지컬 동화를 제작하는 데만 5억원 가까이 들었으니 투자를 받았다고 해도 회사운영은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서점에서조차 오디오북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을 정도로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규모가 미미한 실정이에요. 하지만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출퇴근 환경이나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쉽게 다운받아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일단 오디오북에 대한 붐이 형성되기만 하면 금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종류를 늘리기보다 1년에 한두 편 정도 양질의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데 매달릴 생각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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