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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진 세상 모질게 살아야 성공한다고 말하는 ‘나쁜 책’과 서로 배려하고 사랑해야 행복도 오고 성공도 온다는 ‘착한 책’이 서점가에서 맹렬히 다투고 있다. 왼쪽은 <모략의 즐거움>의 표지 그림, 오른쪽은 <인생수업>의 표지 그림. 김영사, 이레 출판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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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정반대의 베스트셀러들 경쟁
‘착한 몸매’가 유행이라지만, ‘착한 책’도 있다. ‘착한 책’이 있다면, ‘나쁜 책’도 있다. 베스트셀러 순위표를 보면 상당수가 ‘착한 책’ 아니면 ‘나쁜 책’이다. ‘착한 책’과 ‘나쁜 책’이 서로 베트스셀러 꼭대기에 오르려고 일대 결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대다수가 ‘자기계발서’에 속하는 이 책들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부터가 정반대다. 세상은 누가 뭐라 해도 착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착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고 참된 행복을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착한 책’이라면, 세상이란 착한 사람을 돌봐주지 않으며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모진 마음을 먹고 언제라도 상대를 쳐부술 태세를 갖춰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나쁜 책’이다. ‘나쁜 책’이 보기에 ‘착한 책’은 ‘바보들의 책’일 터이고, ‘착한 책’ 쪽에 서서 보면 ‘나쁜 책’은 ‘악한들의 책’일 터다. 착하게 살 것이냐 모질게 살 것이냐, 이것이 문제다.
한두 주 사이에 나온 책들만 보면, 사람들의 관심은 ‘나쁜 책’에 조금 더 가 있는 듯하다. 피말리는 경쟁이 일반법칙이 된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마음 단단히 먹는 수밖에 없다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부글북스에서 펴낸 <거짓말쟁이는 행복하다>(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지음, 진성록 옮김)는 일종의 심리학 책이지만, ‘나쁜’ 자기계발서의 성격을 지녔다. “인간의 마음은 진리를 추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렇게 던지고 시작하는 이 책은 거짓말하는 능력은 인간 심리의 진화의 산물이므로, 남을 속이는 일 때문에 도덕적 자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대담한 생각을 밑자락에 깔고 이야기한다.
착한 책은 바보책?
파프리카 출판사가 펴낸 <나쁜 여자로 사는 법>(만프레드 셰르만 외 지음, 김태영 옮김)는 “심청이처럼 살면 행복할까?”라고 묻는다. ‘착한 딸’로 인정받으려고 온갖 궂은 일을 떠안으려다 불행에 빠지고 인생을 망치기보다는 ‘나쁜 여자’가 되기를 각오하는 것이 더 낫다고 이 책은 말한다. 황소자리 출판사의 <컨닝, 교활함의 매혹>은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오래된 금언을 슬며시 비트는 책이다. 이 책은 단언한다. “정직하지 않게 사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보다 오히려 더 잘살고, 심지어 사회의 존경을 받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목격하지 않는가? 온갖 교활한 술수를 동원해서 자기 이익을 책기는 악당이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걸 뒤집어서 말하면,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바보라는 뜻이다.”
김영사가 펴낸 <모략의 즐거움>(마수취안 지음, 이영란 옮김)은 남을 해치는 모략을 즐거움으로 알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살며시 다가가 적을 낚아채고 옭아매는 12가지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이 책은 “5천년 중국사의 난세를 치세로 이끈 최고의 전략 바이블”이란다.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내준신이 쓴 <나직경>을 되살렸다는데, 말 그대로 ‘모략만이 살 길’이라고 선동한다. “군주는 권세로 신하를 다스리고 권세가 약할 때는 술수에 의지한다.” “아랫사람은 권모술수로 윗사람을 도모하며, 권모술수가 바닥났을 때는 실력으로 한다.”
서돌 출판사의 <회사가 당신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신시아 샤피로 지음, 공혜진 옮김)은 아주 빠른 속도로 종합베스트셀러 최상위에 오른 책이다. 이 책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살아남는 법을 군더더기 없는 직설로 이야기한다. “회사는 정상적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직원들의 사적인 이메일을 통해 알아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조심해서 사용하라고 경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메일을 부주의하게 사용하면 목이 달아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들은 절대로 쓰지 마라.” “전송버튼을 누를 때는 항상 주의하라.” 이 책은 회사를 살벌한 정글로 묘사한다. 생존하려면 사자가 되거나 여우가 돼야 한다.
뭐니뭐니 해도 ‘나쁜 책’의 최고 자리는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안진환·이수경 옮김)일 것이다. 지난 1월 출간된 이 묵직한 책은 아직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호언하는 이 책에는 온갖 책략이 다 등장한다. 이 책이 그리는 세계상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당신을 수세로 몰아넣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직장에서 당신의 상사는 자기만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도록 훼방 놓을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당신을 밀고 공격해, 당신을 공격에 대응해야 하는 위치로 몰아넣는다. 그들은 당신이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도록 부추긴다.” 이 ‘나쁜 책’의 23장 제목은 ‘사실과 거짓을 섞은 정보를 유포하라’다. “최상의 기만은 모호성과 진실과 허구의 교묘한 혼합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상대방은 허구에서 진실을 구분해낼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나쁜 책들’ 바로 옆에 ‘세상을 향기와 사랑과 호의와 기쁨으로 가득 채우라’고 고운 목소리로 말하는 ‘착한 책들’이 있다. 위즈덤하우스가 펴낸 <배려>(한상복 지음)는 ‘착한 책’의 대표급이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지금까지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주둔하고 있는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작은 예의’인 배려야말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아니 그럴수록 배려가 필요하다. 사소한 배려가 쌓일 때 세상은 밝아지고, 성공도 찾아온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청소부 밥>(토드 홉킨스·레이 힐버트 지음, 신윤경 옮김)도 ‘착한 책’으로 분류될 수 있는 ‘최강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다. 인생의 고빗길에 선 젊은 최고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청소부 할아버지’를 만나 인생의 뜻깊은 지혜를 얻는다는 내용의 이 우화는 승리나 성공이 삶의 본질이 아니며, ‘기쁨을 전하는 기쁨’이 일상의 순간순간을 수놓을 때 진정한 행복이 온다고 속삭인다.
착한듯 나쁜듯 ‘양서류형’도
이레 출판사가 펴낸 <인생 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류시화 옮김)은 인생이란 사랑을 배우는 일만으로도 너무 짧다고 말하는 책이다. 지난해 6월 출간돼 지금까지 내리 종합베스트셀러 1, 2위를 오르내리는 이 책은 독자에게 “당신은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 묻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상실 수업>은 말하자면, <인생 수업>의 자매편이다. <인생 수업>의 지은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을 앞두고 쓴 이 책은 삶의 최종적 상실인 죽음조차도 평화이고 축복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돈도 힘도 아니고, 오직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이 책은 기도하듯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착한 책’ 같기도 하고 ‘나쁜 책’ 같기도 한 양서류형 책도 있다. 참솔 출판사가 펴낸 <아부의 기술>(리처드 스텐걸 지음, 임정근 옮김)은 이런 유형의 책을 대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아부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기운을 북돋워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부다. ‘마음에 없는 칭찬’이 아부라지만, 그런 칭찬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이 책은 말한다. “칭찬이 전혀 없는 세계에 살든 지나치게 칭찬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든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나는 잠시의 주저도 없이 후자를 선택하리라. 칭찬 또는 아부가 없는 사회처럼 즐거움이 메마른 대지가 어디 있겠는가!” 독자여, 당신은 어느 쪽인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