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 살아야 학문도 출판도 살지요”
영어·일어·프랑스어 능통 150종 200여권 번역
생생하고 자연스런 문장으로 원저의 맛 능가
하루 8시간 작업원칙 웬만한 두께 한달이면 끝
“일본 근대화의 힘은 번역에서 나왔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 김경호 기자
» 번역가 김석희씨. 사진 김경호 기자
커버스토리 / 유려한 번역으로 제2의 창작 하는 김석희씨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1968년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일본 소설을 영어로 옮긴 미국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공로에 주목했다. 그의 번역을 놓고 이러저러한 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번역문이 <설국>에 묘사된 탐미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풍경을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일본어 원문보다 더 낫다는 평판을 얻은 영어판 <설국>이 아니었더라면, 서구인들이 가와바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번역은 일종의 문화 간 통로였던 것이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도 번역은 통로 구실을 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통로라기보다는 병목에 가깝다. 단행본 출판물의 4분의 1이 번역서이고, 자비 출판이 아닌 시장을 상대로 한 출판물만 따로 놓고 보면 번역서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더 높다. 번역서의 비중이 이렇게 큰데도, 역량 있는 번역 전문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문장의 표층뿐만 아니라 심층까지 책임지는 번역가가 드물다보니, 마음 놓고 즐길 번역서를 찾기도 쉽지 않다. 오문으로 점철돼 무슨 뜻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책들이 겉포장만 그럴 듯하게 꾸며져 독자를 유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번역서는 쏟아져 나오는데 믿을 만한 번역서는 찾기 어려운 것, 번역이 통로가 아니라 병목인 이유다.

김석희(56)씨는 이런 황량한 번역 풍토에서 자기 세계의 꽃을 피운 드문 번역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통상의 번역가가 영어면 영어, 일본어면 일본어, 어느 한 언어를 번역 품목으로 삼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는 영어·일본어·프랑스어에 두루 능통하다. 지금까지 번역한 책이 150종, 200권 남짓 되는데, 그 가운데 50%가 일본어 책, 30%가 영어 책, 나머지 20% 가량이 프랑스어 책이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국문과에 편입한 뒤 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시를 공부했는데, 근·현대시를 연구하려면 일본어로 된 1차자료를 읽어야 한다. 일본어를 그때 익혔다.” 그의 일본어 번역 실력은 <로마인 이야기>(전 15권)로 정평이 나 있다. 시오노가 직접 한국인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생생하고 자연스런 문장은 <로마인 이야기>가 인기를 얻은 또 하나의 이유다.

그는 속전속결의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웬만한 두께의 책도 잡았다 하면 한 달을 넘기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 권을 받은 게 지난해 12월 17일이었는데, 번역을 끝내고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게 1월 7일이었다. 200자 원고지로 쳐 1800장을 번역하는 데 딱 20일 걸린 셈이다.” 번역가 정영목씨는 “번역이란 머리나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김석희씨도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8·8·8’의 생활 수칙을 지키고 있다. 하루를 셋으로 나눠 8시간은 잠을 자고 8시간은 쉬고 8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번역 일을 한다. “번역이란 게 자기관리 못하면 무너지는 일이다. 나에게 번역은 직업이다. 8시간 노동제를 어떻게든 지키려 한다.”

출판 편집자들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번역문을 매끄럽게 다듬은 일이다. 비문을 바로잡고 거친 문장을 솔질하고 앞뒤가 앉맞는 문장을 가려내는 것이 편집자들이 늘상 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보면 김석희씨는 예외적 존재다. 편집자들 사이에서 그는 완성도 높은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으로 이름이 높다. 번역 원고를 그대로 조판해 책으로 만들어도 문제 없을 만큼 그의 문장은 빈틈이 없다. 편집자들이 그의 문장에 손을 대는 건 일종의 금기다. “바른 문장을 쓰고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을 지키는 건 글쓰는 사람의 기본 의무다. 그걸 편집자들에게 맡겨선 안 된다.”

서양사학자 박상익 우석대 교수는 좋은 번역을 이루는 성분을 “외국어 실력 30%, 해당 분야 지식 30%, 그리고 한국어 실력 40%”라고 이야기하는데, 김석희씨가 그런 경우다. 그의 번역문이 잘 읽히는 것은 그가 한국어로 능숙하게 글을 쓰기 때문이다. 전문 번역가로 나서기 전에도 그리고 그 후로도 한 동안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 문학청년 시절 시와 소설을 썼고,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하기도 했다. 소설 쓰기로 다진 한국어 문장 실력을 번역에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번역을 하다보면 원서의 저자가 힘주어, 공들여 쓴 단락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문장을 뛰쫓아가는 식으로 번역하지 않고, 전체 문단을 숙지한 뒤 우리 말로 다시 써본다. 그러면 문장이 훨씬 명확하고 유려해진다.”

» 번역가 김석희씨. 사진 김경호 기자
1급 번역가인 그가 볼 때 한국은 번역을 홀대하는 나라다. “가장 문제가 큰 쪽은 학계다. 전공 분야의 고전을 번역해도 연구업적으로 대접을 안 해준다. 짜깁기 논문 하나 쓰는 게 더 점수가 높다. 그러다 보니 비전공자가 고전을 번역해 망쳐놓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허술한 번역서를 읽느니 차라리 원서를 읽겠다고 낑낑거리는 게 현실이다. 먼저 학계에서 용기를 내야 한다. 전문 분야 번역을 대우해줘야 학문도 살고 출판도 산다.” 그는 일본의 예를 강조했다. “일본은 번역을 통해 근대화를 이룬 나라다. 이미 개화기 때 일본어 번역판이 나온 책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도 우리말로 나오지 않았다. 번역을 우습게 알다보니, 우리 책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도 똑같은 잘못을 범한다. 아무리 질 높은 작품도 고등학생 수준으로 번역해 놓으면, 그쪽 사람들은 ‘겨우 그 수준이야’ 하는 식으로밖에 인식 못한다. 가와바타의 <설국>을 서구에 알린 사람은 결국 사이덴스티커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김한경 이름으로 번역의 기초 닦고 소설가로서 언어 ‘세공’

김석희씨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그는 김한경이라는 필명으로 여러 번역서를 냈다. “그 필명으로 번역의 기초를 닦은 셈”이다.

그의 첫 번역서는 1979년에 낸 <아돌프>라는 18세기 프랑스의 연애심리 소설이었다. 출판사를 하는 친구가 애걸하는 바람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으로 한 건데, 그게 번역가 김석희의 첫 발자국이 됐다. 1982년 영국 작가 존 파울즈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그에게 번역가로서 자의식을 갖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그 후 두어 번 고쳐 번역했고, 마지막 판은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1987년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씨의 <화산도>를 번역한 것은 그에게 ‘소명의식’을 일깨워준 계기였다. “원고지 1만장 분량을 옮기면서 정말 번역의 맛을 느꼈다. 그때가 6월항쟁 직후였는데, 내 고향 제주도의 4·3항쟁을 다룬 내용을 우리말로 보여준다는 것이 감격적이었다. 그때부터 김석희라는 본명을 썼다.” 그 뒤로도 한동안 소설 창작에 손을 댔던 그는 1995년 가을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옮기면서 삶을 통째로 번역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1997년 그는 번역 인생 10년을 맞아 자신의 번역 후기를 모아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을 냈다. 올해 그는 그 후의 새로운 인생 10년을 정리하는 번역 후기 모음집을 낼 예정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번역가가 말하는 번역

“대리번역은 짝퉁 상품” “번역가는 투명인간이어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내는 격주간지 <기획회의>(197호)의 특집 ‘번역가가 말하는 번역’은 번역이 왜 중요한 일인지, 좋은 번역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관한 번역가들의 고민을 들려주고 있다.

박상익 교수는 “인류의 고전적인 텍스트를 우리말로 바꾸어 ‘우리의 고전’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인문학 연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학자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고전 번역이라는 말이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탱해줄 ‘텍스트’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현실을 미루어 볼 때, ‘고전적 문헌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번역·주석’이 균형감 있게 나란히 진행돼야 한다.” 그는 우리 출판의 대리번역 문제도 꼬집었다. “자기가 번역하지도 않은(또는 부분적으로만 기여한) 책에 버젓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출판하는 행위는 무엇이란 말인가. 위조 상표를 붙인 짝퉁 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씨는 번역을 ‘정밀세공업’이라고 규정하면서 우리말 실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말은 모르면서 ‘영어를 우리말보다 잘 한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양심불량이다. 번역도 글쓰기인 바에야, 영어에 대한 이해력보다는 우리말 구사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간주해야 옳다.” 그는 양심적인 번역가는 ‘투명인간’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번역가는 독자의 눈에 보이면 안 된다. 번역가의 목소리는 독자의 귀에 들려서도 안 된다.” 번역가는 원문을 돋보이게 하면서 자신을 뒤로 빠지는 ‘음지의 인간’이라는 숙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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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 사실래요? ‘착한 책’ 사실래요?
거짓말 모략 교활해야 살아남는다는 책들과
그래도 배려와 사랑이 참된 행복이라는 책들이
서로 꼭대기에 오르려 일대결전
독자여,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려는가
한겨레 고명섭 기자
» 모진 세상 모질게 살아야 성공한다고 말하는 ‘나쁜 책’과 서로 배려하고 사랑해야 행복도 오고 성공도 온다는 ‘착한 책’이 서점가에서 맹렬히 다투고 있다. 왼쪽은 <모략의 즐거움>의 표지 그림, 오른쪽은 <인생수업>의 표지 그림. 김영사, 이레 출판사 제공.
커버스토리 / 정반대의 베스트셀러들 경쟁

‘착한 몸매’가 유행이라지만, ‘착한 책’도 있다. ‘착한 책’이 있다면, ‘나쁜 책’도 있다. 베스트셀러 순위표를 보면 상당수가 ‘착한 책’ 아니면 ‘나쁜 책’이다. ‘착한 책’과 ‘나쁜 책’이 서로 베트스셀러 꼭대기에 오르려고 일대 결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대다수가 ‘자기계발서’에 속하는 이 책들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부터가 정반대다. 세상은 누가 뭐라 해도 착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착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고 참된 행복을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착한 책’이라면, 세상이란 착한 사람을 돌봐주지 않으며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모진 마음을 먹고 언제라도 상대를 쳐부술 태세를 갖춰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나쁜 책’이다. ‘나쁜 책’이 보기에 ‘착한 책’은 ‘바보들의 책’일 터이고, ‘착한 책’ 쪽에 서서 보면 ‘나쁜 책’은 ‘악한들의 책’일 터다. 착하게 살 것이냐 모질게 살 것이냐, 이것이 문제다.

한두 주 사이에 나온 책들만 보면, 사람들의 관심은 ‘나쁜 책’에 조금 더 가 있는 듯하다. 피말리는 경쟁이 일반법칙이 된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마음 단단히 먹는 수밖에 없다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부글북스에서 펴낸 <거짓말쟁이는 행복하다>(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지음, 진성록 옮김)는 일종의 심리학 책이지만, ‘나쁜’ 자기계발서의 성격을 지녔다. “인간의 마음은 진리를 추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렇게 던지고 시작하는 이 책은 거짓말하는 능력은 인간 심리의 진화의 산물이므로, 남을 속이는 일 때문에 도덕적 자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대담한 생각을 밑자락에 깔고 이야기한다.

착한 책은 바보책?

파프리카 출판사가 펴낸 <나쁜 여자로 사는 법>(만프레드 셰르만 외 지음, 김태영 옮김)는 “심청이처럼 살면 행복할까?”라고 묻는다. ‘착한 딸’로 인정받으려고 온갖 궂은 일을 떠안으려다 불행에 빠지고 인생을 망치기보다는 ‘나쁜 여자’가 되기를 각오하는 것이 더 낫다고 이 책은 말한다. 황소자리 출판사의 <컨닝, 교활함의 매혹>은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오래된 금언을 슬며시 비트는 책이다. 이 책은 단언한다. “정직하지 않게 사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보다 오히려 더 잘살고, 심지어 사회의 존경을 받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목격하지 않는가? 온갖 교활한 술수를 동원해서 자기 이익을 책기는 악당이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걸 뒤집어서 말하면,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바보라는 뜻이다.”

김영사가 펴낸 <모략의 즐거움>(마수취안 지음, 이영란 옮김)은 남을 해치는 모략을 즐거움으로 알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살며시 다가가 적을 낚아채고 옭아매는 12가지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이 책은 “5천년 중국사의 난세를 치세로 이끈 최고의 전략 바이블”이란다.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내준신이 쓴 <나직경>을 되살렸다는데, 말 그대로 ‘모략만이 살 길’이라고 선동한다. “군주는 권세로 신하를 다스리고 권세가 약할 때는 술수에 의지한다.” “아랫사람은 권모술수로 윗사람을 도모하며, 권모술수가 바닥났을 때는 실력으로 한다.”

서돌 출판사의 <회사가 당신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신시아 샤피로 지음, 공혜진 옮김)은 아주 빠른 속도로 종합베스트셀러 최상위에 오른 책이다. 이 책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살아남는 법을 군더더기 없는 직설로 이야기한다. “회사는 정상적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직원들의 사적인 이메일을 통해 알아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조심해서 사용하라고 경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메일을 부주의하게 사용하면 목이 달아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들은 절대로 쓰지 마라.” “전송버튼을 누를 때는 항상 주의하라.” 이 책은 회사를 살벌한 정글로 묘사한다. 생존하려면 사자가 되거나 여우가 돼야 한다.




뭐니뭐니 해도 ‘나쁜 책’의 최고 자리는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안진환·이수경 옮김)일 것이다. 지난 1월 출간된 이 묵직한 책은 아직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호언하는 이 책에는 온갖 책략이 다 등장한다. 이 책이 그리는 세계상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당신을 수세로 몰아넣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직장에서 당신의 상사는 자기만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도록 훼방 놓을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당신을 밀고 공격해, 당신을 공격에 대응해야 하는 위치로 몰아넣는다. 그들은 당신이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도록 부추긴다.” 이 ‘나쁜 책’의 23장 제목은 ‘사실과 거짓을 섞은 정보를 유포하라’다. “최상의 기만은 모호성과 진실과 허구의 교묘한 혼합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상대방은 허구에서 진실을 구분해낼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나쁜 책들’ 바로 옆에 ‘세상을 향기와 사랑과 호의와 기쁨으로 가득 채우라’고 고운 목소리로 말하는 ‘착한 책들’이 있다. 위즈덤하우스가 펴낸 <배려>(한상복 지음)는 ‘착한 책’의 대표급이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지금까지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주둔하고 있는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작은 예의’인 배려야말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아니 그럴수록 배려가 필요하다. 사소한 배려가 쌓일 때 세상은 밝아지고, 성공도 찾아온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청소부 밥>(토드 홉킨스·레이 힐버트 지음, 신윤경 옮김)도 ‘착한 책’으로 분류될 수 있는 ‘최강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다. 인생의 고빗길에 선 젊은 최고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청소부 할아버지’를 만나 인생의 뜻깊은 지혜를 얻는다는 내용의 이 우화는 승리나 성공이 삶의 본질이 아니며, ‘기쁨을 전하는 기쁨’이 일상의 순간순간을 수놓을 때 진정한 행복이 온다고 속삭인다.

착한듯 나쁜듯 ‘양서류형’도

이레 출판사가 펴낸 <인생 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류시화 옮김)은 인생이란 사랑을 배우는 일만으로도 너무 짧다고 말하는 책이다. 지난해 6월 출간돼 지금까지 내리 종합베스트셀러 1, 2위를 오르내리는 이 책은 독자에게 “당신은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 묻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상실 수업>은 말하자면, <인생 수업>의 자매편이다. <인생 수업>의 지은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을 앞두고 쓴 이 책은 삶의 최종적 상실인 죽음조차도 평화이고 축복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돈도 힘도 아니고, 오직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이 책은 기도하듯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착한 책’ 같기도 하고 ‘나쁜 책’ 같기도 한 양서류형 책도 있다. 참솔 출판사가 펴낸 <아부의 기술>(리처드 스텐걸 지음, 임정근 옮김)은 이런 유형의 책을 대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아부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기운을 북돋워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부다. ‘마음에 없는 칭찬’이 아부라지만, 그런 칭찬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이 책은 말한다. “칭찬이 전혀 없는 세계에 살든 지나치게 칭찬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든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나는 잠시의 주저도 없이 후자를 선택하리라. 칭찬 또는 아부가 없는 사회처럼 즐거움이 메마른 대지가 어디 있겠는가!” 독자여, 당신은 어느 쪽인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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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기러기 > 책값이 너무 비싸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동네서점에서 김훈 선생의 신작을 살펴보다  빈정이 상했다. 김훈의 애독자이지만 이번 책의 정가 11000원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다.

이전에는 대부분 소설들이 9천원대였지만 요즘은 1만원이 훌쩍 넘는 책들도 많다. 무슨 특별한 이유도 없어 보인다. 나름대로 표지에 공을 들이느라 돈이 많이 들어갔을까? 표지에 돈을 많이 쓴다고 김훈 소설이 달라지나? 게다가 겉표지가 본문보다 커서 쉽게 우그러지고 잡고 읽기에도 너무 불편하다.  이익만을 생각하는 출판사의 알량한 속셈이 뻔히 보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학고재는 완당평전 같은 괜찮은 인문서를 내던 출판사로  아는데,  이번에 뜬금없이 소설책을 내면서(그렇다고 김훈 선생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욕심이 동했는지 너무 가격을 높게 매겼다. 아무리 책가격은 붙이는 사람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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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만만세 > 은희경의 변화와 성숙에 한표~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어떤 식이라도 다 좋다, 생각하는 은희경의 팬이지만,

이런 변화와 성숙에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싶네요.


변화라고들 하지만, 사실 표현이 약간 달라진 정도만 느껴요.

워낙에도 냉소적으로, 시니컬하게 현실을 그려왔으니까,

이번에는 그보다 좀더 냉해진 느낌이 들긴 하지만,

함부로 곁을 허락하지 않는 새침한 여자친구를 만나는 기분...

그런 기분입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아주 좋았어요.

사실 주인공이 여자라고 한참을 이해하고 읽었다는. -___-

결말에 어찌나 알싸하게 찡해지던지, 눈물이 날 뻔했어요.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은 또 어떡구요.


<날씨와 생활> 말해 무엇할까 싶습니다. 다들 이 작품에서

옛날 은희경을 찾은 듯싶던데...


저는 그보다는 <고독의 발견> 같은 작품이 훨씬 좋았어요.

은희경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하는 놀람과 반가움.


암튼 다 좋았습니다.

봄날, 활력을 찾은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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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기러기 >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재담꾼,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 새의 선물 이후 한 시대를 상징하는 소설가. 

경쾌함. 발랄함. 속도감. 톡 쏘는 위트와 풍자.... 그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말.


새의 선물,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마이너리...  그의 소설을 꽤 여러 권 따라 읽으며, 그때마다 새로운 모습과 내음에 아뜩해지곤 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 은희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힘든 일상 속에서도 안간 힘을 쓰며 읽었다. 여유없는 가혹한 일상이 결코 나의 호기심을 꺽을 수는 없다. ㅎㅎ


은희경이 달라졌다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낯선 모습인 듯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은희경표는 전혀 변함이 없다. 산과 들과 바다를 흘러가면서 그때마다 다른 갖가지 향내를 포획하여 실어나르는 바람처럼, 은희경은 우리내 삶의 갈피와 진실들을 두둥실 떠올려 들춰낸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아프게.


사람은 나이들어감에 따라 진중해지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깊어진다. [유리가가린의 푸른 별]이 그렇다. 30대 이후 누구나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결이 그대로 살아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좋다.


그러나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에서 나는 여전히 젊은 은희경을 보았다. 비록 낯선 외투를 두르고 있는 듯하지만, 그 속에서는 여전히 발랄한 재기와 위트가 번뜩인다. 가벼운 듯 무겁고, 빈 듯하지만 꽉 찼다. 시종일관 무겁지도 시종일관 가볍지도 않다.


그녀는 여전히 젊다.

그녀는 고희가 넘어서도 가슴 저린 연애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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