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맛집?‘ 블루리본’에 물어봐!
나온지 2년만에 맛집 책 평정
 
 
한겨레 구본준 기자
 








 

» 〈블루리본〉
 
은근히 많은 책이 쏟아져나오는 출판 시장 가운데 하나가 맛집 길잡이책이다. 비슷비슷한 책들이 경쟁하는 이 시장에서 책의 구성과 전략을 달리해 시장을 평정한 강자가 등장했다. 매년 수록 맛집 내용과 정보를 새로 편집해 연도별로 책을 내며 이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힌 〈블루리본 서베이〉다.

출판사 클라이닉스가 ‘서울의 레스토랑’과 ‘전국의 레스토랑’ 두가지를 해마다 내는 〈블루리본 서베이〉는 2006년 처음 선보였다. 다른 맛집책들이 주로 개인이 추천하는 형식인 반면 〈블루리본〉은 외국 맛집길잡이책처럼 평가단 평점을 바탕으로 식당을 선정하고 리본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방식을 들고 나왔다. 또한 다른 책들이 맛집과 음식에 대한 수필식인 것과 달리 철저하게 정보성 내용으로 채우고 소개하는 식당 수가 훨씬 많게 꾸몄다. 〈블루 리본〉은 2006년 서울편과 전국편 합쳐 3만부가 팔렸고, 올해판은 5만부를 넘어서며 2년 연속 맛집책 1위를 차지했다. 새로 나온 2008년판도 2007년판보다 주문이 많아 출판사쪽은 10만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맛집책은 보통 5000~7000부가 손익분기점이고, 1만부를 넘기면 히트한 것으로 친다.

클라이닉스 김은조 편집장은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가이드책 〈자갓 서베이〉처럼 여러명이 평가하는 맛집책으로 기획했는데 애초 예상한 30대들 못잖게 40대들이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블루리본〉에 소개하는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평가단은 20여명으로, 이들이 식당에 손님으로 방문해 식사하고 내린 평가를 다시 전문가들이 분석해 종합한다.

〈블루리본〉의 성공에는 컨셉 차별화와 함께 독자들의 ‘착각’도 한몫 한 것같다. 이 책이 외국의 음식점평가기관이 한국 식당을 상대로 조사한 것으로 독자들이 지레 짐작해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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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뜬다
한국영화, 문학의 장르 붐
2007.11.30 / 허남웅, 송순진 기자 

장르는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불붙어 여기저기 감지되는 장르의 부상은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장르 효과'를 일으키고 있을 정도다. 즐길 만한 장르물들을 일별하고 장르가 한국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영화와 문학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장르 효과의 징후를 읽는다.

한국에서 장르는 흔히 마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양식이나 형(型)을 뜻하는 말 장르는, 영화나 문학에서 쓰일 때 비슷한 소재와 배경, 그리고 전개구조를 지닌 유사 이야기 형태를 의미한다. 공포, 스릴러, 판타지, SF(Science-Fiction) 등이 장르의 예. 장르가 굳건히 자리 잡은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비주류로 인식되던 장르가 주목받고 있다. 장르가 영화와 문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은 배경은 무엇일까?

제자리 찾아가는 장르

근년 간 대작영화 만들기에 몰두했던 한국영화계는 규모의 환상에서 탈피해 ‘장르’를 화두로 삼고 있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공포’는 제법 탄탄한 기반을 갖춘 장르이며, 올 들어선 스릴러(<리턴> <세븐데이즈> <우리 동네> 등), 시대극(<궁녀> <라듸오 데이즈> <모던 보이> 등), 서부극(<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 등 새로운 장르 발굴에 전력을 쏟고 있다.



출판계는 일찍이 장르에 눈을 돌렸다. 1990년대 중후반 등장한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판타지소설 시장이 형성된 사례가 있다. ‘셜록 홈스’ ‘아르센 뤼팽’ 등을 앞세운 고전 추리소설이 2000년대 초반부터 붐을 이뤄 현재는 미스터리물이 출판시장의 효자 품목으로 자리를 굳혔다. 2007년 5월에는 ‘장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문화지 ‘판타스틱’도 창간했다. 바야흐로 장르가 ‘문화담론’의 중심으로 자리를 이동한 셈이다.

영화든 문학이든 장르 형성의 방식엔 나름의 특징이 있다. 가령, 영화에서 장르는 하위 장르가 세분화돼 있을 만큼 장르 간의 이동이 자유로워 자기 정의가 가능하다. 그에 반해 문학은 스릴러, 공포, SF, 판타지를 제외하면 딱히 장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실체가 없어 상위 개념만 존재한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장르가 폭 넓게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장르가 여러 갈래로 잘게 나눠져 팬층이 분산된 까닭에 B급 문화 정도로 취급 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문학에서 장르가 독자층은 존재하지만 변변한 비평이 없어 마니아들만 즐기는 소수문화로 인식됐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그저 일시적 유행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장르 붐은 장르가 주류문화로 자리 잡은 징후라기보다 진행 중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장르는 태생적으로 마니아 문화를 건드릴 수밖에 없어서 수요에는 한계가 있고 파급효과 역시 주류문화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다만 장르가 척박한 한국 대중문화의 토양 위에서 다양성 확보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출판사 ‘황금가지’의 이지연 편집주간은 “장르문학이 주류문학을 대신할 정도로 크게 주목받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를 다각도로 넓히고 다양한 아이디어, 상상력을 구체화해 순수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문학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인 강유정은 “장르영화는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특정한 코드가 있다”며 “특정 문화에 대해 지식이 깊지 않고 감식안이 없더라도 코드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대중성이 강하다”고 그 잠재력을 평한다. ‘판타스틱‘의 최내현 발행인은 “대중문화가 빈약했던 한국에서 이제야 장르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최근의 상황을 설명한다. 하지만 장르가 자기 스스로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한 장르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취향은 나의 힘

장르가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심리학자 장근영은 “문화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진 탓”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문화소비 방식은 2000년을 전후해 급격한 패턴변화를 보였다. 다수가 공감하는 거대담론이 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과거 트렌드를,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수끼리 뭉치는 문화가 대체한 것이다. “경직된 사고가 지배하던 과거에는 문화가 유입되는 창구가 일원화에 가까웠다. 시대가 바뀌고 인터넷, TV 채널 증가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문화창구가 다원화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늘었다”는 장근영의 설명은 이를 뒷받침한다.
취향의 다양화를 감지할 수 있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예컨대, 인터넷을 통해 취미를 공유할 수 있게 되자 동호회가 봇물처럼 쏫아져 나왔다거나 소수의 취향을 겨냥한 상품판매가 전례 없이 호황을 누리는 것은 좋은 예다. 불륜과 삼각관계를 양산하는 한국 드라마에서 전문화, 세분화된 장르물인 ‘미드’와 ‘일드’로 시야를 넓힌 것도 취향의 다양화를 증명한다. 주류를 장악하던 문화 헤게모니가 무너지자 그 빈자리를 채울 대안이 ‘장르’라는 키워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를 소비할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는 대중문화평론가 이영재의 지적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져 개인주의가 강화됐고 남에게 구애받지 않는 활발한 소비활동을 통해 마니아문화가 늘면서 다양성에 일조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대중문화를 산업과 떼어놓을 수 없는 요즘 문화시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상품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성과 부합하는 상품은 시대가 요구하는 특성, 즉 유행에 맞춰 소비되고 이 단계를 넘어서면 하나의 ‘문화’로 생성된다.

소수의 문화가 늘어나는 건 장르가 다양해지는 기본 조건이다. 영화와 문학에서도 다양성의 징후가 뚜렷이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새로운 것을 발굴하기보다 기존의 것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 영화평론가 이상용은 “한국은 ‘다른 것’을 선호하는 문화풍토가 강하다. 원형적인 장르를 고집하는 건 한국의 패턴과 맞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다국적인 문화가 급속도로 유입되는 상황에서 한국적인 코드와 접목, <괴물> <놈놈놈>처럼 장르 변형을 꾀하는 건 대중성의 다양화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문학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지연 편집주간은 “순수문학이 강세를 보이는 한국에서 독자들은 교양을 넓히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역사추리소설이 잘 팔리는 것도 교양코드와 맞기 때문이다. 다행히 장르문학이 순수문학에 영향을 미치면서 추리소설과 일본문학처럼 다양한 장르가 들어왔다”고 말한다. 결국, 사람들의 관심사가 전에 없이 넓어지다 보니 장르의 외연이 넓어지고 장르가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갈망

장르가 부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야기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영화와 문학 모두 서사에 기반을 둔 예술이므로 늘 좋은 이야기에 목마르다. 장르는 검증된 서사구조가 있고 이 구조에 맞춰 이야기를 짤 수 있다. 더구나 나름의 서사규칙을 가지고 있어 그걸 적용하거나 배반하면서 재미를 얻는다. 한국의 경우, 장르문화가 크게 주목받은 사례가 별로 없었던 까닭에 이를 잘 활용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화와 문학이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는 흥미롭다. 장르에 대한 한국영화의 구애는 한국영화의 위기, 즉 이야기 부재를 뼈저리게 절감한 시기와 겹친다. 위기의식이 공감을 얻은 올해 <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기담>의 정가형제, <궁녀>의 김미정 등 좋은 평가를 받은 신인 감독들이 장르영화를 택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능란하게 장르를 요리하는 훈련된 이야기꾼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

이런 난관에 봉착해 충무로가 주목한 것이 장르문학이다. 장르문학은 검증된 이야기가 많을 뿐더러 한국은 물론,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일본문학까지 범위를 넓힐 수 있어 이야깃감의 보물창고라 해도 틀리지 않다. 충무로가 보내는 관심은 출판시장에서도 반갑다. 시장의 크기가 작은 출판계에서 판권 판매수입은 적지 않은 수익이다. 광고효과는 물론 새로운 독자층 형성과 다양한 장르문학 출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영화와 문학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윈윈 파트너로 손잡을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대해 이지연 편집주간은 “영화와 문학은 관계 특성상 시장요소가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잦다. 장르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인기는 장르문학 발전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세계적인 장르소설을 엄선한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은 기획단계에 추리, 공포와 함께 SF, 판타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장르문화가 변변치 못한 한국에서 관심을 유도하려다 보니 추리, 공포소설 같은 영화 원작이 주로 선정돼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어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도 생겼고 지금껏 출간된 7편 중 6편이 영화와 드라마 판권으로 팔린 상태다. ‘판타스틱’의 최내현 발행인은 “문화산업이 번창하려면 뒷받침하는 문학이 있어야 한다. 한국영화가 번창한다지만 받쳐줄 국내 문학이 드물어 이를 해결해보자는 생각에 ‘판타스틱’을 창간했다”고 밝혔다.
문화상품의 최종 기착지는 재미다. 장르가 추구하는 것도 재미다. 문화소비자들이 재미를 느끼는 가장 큰 원천은 ‘이야기’다. 영화와 문학은 사이좋게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런 이유로 이야기의 위기는 영화와 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장르 붐의 이면에는 좋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것을 즐기려는 창작자와 대중의 열망이 반영돼 있다.



장르, 대중이 원한다

장르가 한국 대중문화의 토양 위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시장이 작다는 태생적인 한계는 장르문화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한국에서 특정 문화가 뿌리내리는 과정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문화시장의 파이가 큰 나라에 비해 험난하다. 한국은 사람 사이에 영향을 받는 문화가 강해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붐을 이루다가 금세 누그러지는 경향이 짙다. 한 번 기세가 꺾이면 소수의 문화로 남아 명맥을 유지한다. 그 결과 한국 대중문화의 다양성은 동시대적이라기보다 통시적일 정도로 무의미한 목록만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시장의 규모와 환경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대중문화, 특히 장르문화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찾아 한국적인 상황에 맞춰 수정을 가하고 변화를 주는 것이 더 현명한 대처법이라는 지적들이 높은 것. 예컨대, 한국 장르문화에서 SF는 추리, 공포, 판타지와 달리 안타깝다 싶을 만큼 외면 받고 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은 “한국의 문화수용자들은 ‘현실성’에 길들여져 있다. 현실성이 없는 것에 대해 상상력을 즐기기보다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고 진단한다. 영화와 문학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시도를 보여 왔다. 여전히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지만 이를 타개할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장르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것은 영화에서는 논리적 이야기와 세련된 비주얼 접근, 문학에서는 SF 시즌을 몰고 올 스타작가의 출현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만큼, 그 이상의 시련을 거듭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실패한 시도들이 그저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접근들은 또 다른 문화가 자라날 토양이 되기도 한다.

대중문화 지형에서 장르의 융기는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대중문화라는 변화무쌍한 자장 안에 쌓이는 과정에서 장르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장르 붐이 반가운 것은 다원화된 사회를 반영하듯 취향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장르는 새로운 문화를 갈구하는 대중들의 마른 가슴에 불을 지피는 불씨다. 장르를 불러낸 것은 영화제작자도 출판기획자도 아닌 우리 시대의 문화소비자들이다.



한국 장르 영화의 오늘

지난해 한국영화의 장르 실험은 '뮤지컬'에서 도드라졌다. <구미호 가족> <삼거리극장> 같은 문제작이 있었지만 결과는 흥행참패.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 <복면달호> <즐거운 인생>처럼 좀 더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영화로 변화돼 가능성을 타진했다.

올해의 대세는 스릴러다. <극락도 살인사건> <리턴> <궁녀> <세븐데이즈> <우리동네> <가면>으로 연말까지 스릴러 붐이 이어진다. 몇 해 전만 해도 "스릴러는 안 된다"던 분위기였지만 '미드'의 인기몰이로 "관객에게 친숙한 장르"로 이미지를 쇄신했고, 덕분에 "2007년은 한국 스릴러영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십중팔구 망한다는 스포츠 장르는 드라마 완성도를 높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이 페어 레이디즈>로 또 한 번 시도된다.

아주 생경한 얼굴도 있다. <장화, 홍련>(공포), <달콤한 인생>(누아르) 등 장르성에 충실한 감각으로 독자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김지운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만주 웨스턴'으로 돌아온다.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 역시 '잔혹동화' 컨셉의 <헨젤과 그레텔>로 혼합 장르, 변종 장르를 시험한다. 새로운 소재를 담아내는 데 장르는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아니다. 한국영화 침체기를 돌파할 새로운 전략으로 장르성, 혹은 형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 장르영화,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할까?

피곤한 관객을 ‘꼬셔라’

영화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다시 듣는 게 지겨울 정도다. 최근에는 이런 상황에 쐐기를 박는 통계자료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7년 1월~10월 영화산업통계에 따르면 지난 10개월간 한국영화는 전년 대비 22.6%(서울 개봉작 관객 기준)의 관객을 잃은 대신 외화는 지난해보다 38.7% 많은 관객들을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흥행영화순위 10위 안에도 <트랜스포머>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스파이더맨 3>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300> <다이하드 4.0> <슈렉 3> 등 7편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영화는 <디 워> <화려한 휴가> <미녀는 괴로워> 단 3편뿐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발표는 더 우울하다. 고정민 수석연구원이 지난 5일 발표한 '한국영화 위기의 진단과 과제'(이하 '진단과 과제')에 따르면 한국영화 침체기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고 연구원은 "한국영화는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기 때문에 구조적인 성장둔화에 직면했다"면서 "자국영화 점유율도 높은 수준이라 향후 대폭적인 증가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단과 과제'는 앞으로 한국영화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3.6%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 13.2%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 예고했다. '진단과 과제'는 향후 네 가지 과제도 제시했다. 제작 편수와 제작비 조율을 통한 “한국인 체형에 맞는 옷을 제작하라”, 인터넷과 방송, 통신융합 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옷가게를 개설하라”, 단순 해외수출이 아닌 현지 진출과 공동제작을 독려하는 “해외에 직접 투자해 옷을 팔아라”. 그리고 “패션이 가미된 창의적인 옷을 제작하라”는 주문이다.



그동안 한국영화계는 위기극복책으로 해외시장, 각종 뉴미디어 서비스 등 새로운 채널 발굴에 주력했다. 제작 편수가 감소한 와중에 '안전한 장르'로 여겨졌던 조폭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 휴먼 드라마에 몰두하는 동안 관객들은 이제 "한국영화가 재미없다"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폭 코미디는 유통기한이 지났고, 주인공만 바뀐 로맨틱 코미디는 뻔하다는 핀잔을 듣고, 똑같은 귀신이 장소와 시대만 바꿔서 출현하는 공포영화는 "안일한 기획의 한국영화가 관객들의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있다"는 원성을 들었다. 반대로 '충무로와 다른 영화'로 인식된 <디 워>가 파격적인 지지를 얻었고, 관객층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던 스릴러 장르의 <극락도 살인사건>도 흥행에 성공했다.

할리우드의 대반격도 거세다. 그뿐인가. '미드'와 '일드', 속속 등장하는 케이블 TV 영화, 각종 UCC까지, 사방천지에 깔린 볼거리들은 영화의 경쟁상대로 입지를 굳혀갔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소재와 더불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정서적, 시각적 자극에 대한 관객의 갈증에 영화계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투자, 제작환경이 얼어붙은 상태라 선택은 더욱 신중해졌지만 옛날이라면 “장사가 잘 안 되는 장르”라서 꺼렸을 영화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이해가 생겼다. 영화 관계자들은 “예전에는 스토리가 다소 엉성하더라도 배우의 힘으로 제작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시나리오 완성도가 가장 우선시된다”며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갖췄다면 장르 역시 예전만큼 편견과 우려를 갖지 않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CJ엔테터인먼트 영화투자팀 이상용 부장은 “예년처럼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비슷한 장르와 컨셉으로 아류작을 만드는 풍토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하며 “CJ만 해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웨스턴 액션), <무방비 도시>(액션 범죄 드라마),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슈퍼히어로물), <모던 보이>(멜로 시대극), <신기전>(역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르가 한국영화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아닐지라도, 장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추세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스릴러 전성시대

2007년 하반기 활기를 얻은 스릴러는 <살인의 추억> <혈의 누> 등으로 흥행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안전망 덕분에 좀 더 과감하게 '판'을 벌이게 된 케이스다. 박진표 감독의 <그놈 목소리>, 김한민 감독의 <극락도 살인사건>이 각각 '유괴'와 '토종 스릴러'라는 코드로 스릴러의 흥행 가능성을 입증했고, 하반기에는 조선시대 궁중을 무대로 한 <궁녀>가 선전했으며, '스피드'를 핵심 키워드로 삼은 <세븐데이즈>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웃한 두 살인자의 이야기 <우리동네>, 잔혹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양윤호 감독의 <가면>도 대기 중이다. 영화사 비단길에서는 여자들만 죽이는 엽기 살인마를 소재로 한 영화 <밤의 열기 속으로>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스릴러가 성과를 남긴 것은 아니다. 김명민이 <하얀거탑>의 냉철한 의사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온 <리턴>과 스릴러와 공포의 경계에 선 <해부학교실> 등은 흥행에서 쓴맛을 봤다. 청어람의 한 관계자는 "<해부학교실>의 경우 스릴러냐, 공포냐를 두고 이견이 많았다"며 "장르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마케팅 측면에서 독이 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궁녀> 역시 초반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던 스릴러 리듬이 후반부 공포로 돌변해 깨져버린 게 아쉽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리턴>의 경우 '미드'를 통해 익숙해진 스릴러 호흡을 영화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리턴>의 제작사인 '아름다운 영화사' 강성규 대표는 "한국 관객들은 지루함에 상당히 인색하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특성상 초반 분위기를 조성하고 호흡의 강약 조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늘어지는 부분이 생긴다. <리턴>의 경우 이런 점을 개선하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릴러 장르가 관객에게 보다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지루함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살인의 추억>에서 늘어지는 부분을 송강호의 코미디가 채우고, <세븐데이즈>는 관객이 지루할 새 없이 호흡 자체를 빠르게 가는 방식과 같은, 스릴러 장르의 보완책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강성규 대표는 또 "인터넷으로 발 빠르게 정보가 오가는 요즘, 반전이나 비밀에 집착하는 스토리텔링 역시 개선해야 할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충무로에서 스릴러가 폭넓게 소비될 수 있는 대중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크다. 서스펜스와 스릴을 동반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릴러는 상업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장르다. 최근 장르문학의 저변 확대와 함께 스릴러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나리오작가와 감독이 늘어나는 상황은 저예산과 아이디어로 승부할 수 있는 공포영화처럼 스릴러 장르가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게 한다.



미래의 숙제, 형식을 고민하라

아직까지 한국영화계에서 '장르'에 대한 고민은 미미한 단계다. 장르라는 '형식'보다 '소재와 주제'라는 내적 측면, 이야기와 감동의 정서적 측면에 더 큰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계가 장르 혼합, 변형이 자유롭고 능하다는 점은 창의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낼 또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는 "그동안 장르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지긴 했지만, 올해 들어서 특히 안일한 기획을 가진 영화보다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인 영화들이 성과를 냈다"며 "지금 한국영화계에 불고 있는 소재의 다양성이 결과적으로 장르의 저변을 넓히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년필름은 현재 <불멸의 이순신> <방각본 살인사건>을 쓴 김탁환 소설가의 새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바탕으로 사극 탐정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으며, 소설가 오현종의 장편소설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를 바탕으로 로맨틱 코미디와 어드벤처를 결합한 여자 스파이 이야기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도 제작할 예정이다. 김조광수 대표는 "오히려 요즘에는 장르적으로 여타 스릴러나 수사물과 차별성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지금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시도가 공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형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김현철 프로듀서(<구미호 가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말 역시 곱씹을 만하다. 김 프로듀서는 "올해 할리우드영화들이 대단한 기세를 올린 이유는 형식실험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동안 기존 장르의 관습 안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던 할리우드가 막강한 스펙터클이나 비주얼 등 형식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줬다는 분석이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스펙터클로 돌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것이다. <트랜스포머> 같은 경이적인 비주얼, <본 얼티메이텀> 같은 창조적 스릴이 한국 장르영화가 떠안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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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구출하라]5%에 속한 20대 ‘로열 그룹’
입력: 2007년 12월 03일 18: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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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26·여)는 대학 치과병원의 인턴 의사다.

김씨는 20대의 95%가 평균 88만원을 받는다는 설명에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20대 중 일부가 비정규직 또는 실업 상태에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부각되는 것 같다”며 “88만원의 상징성은 다소 과장됐다”고 했다.

‘치·의대 졸업생, 고시합격자, 대기업 입사자….’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나이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현재 삶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전혀 다르다. 치열한 ‘배틀 로열’에서 승리해 고소득의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된 ‘로열 그룹’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88만원 세대의 좌절을 공감하는데 어려워했다. ‘88만원 세대’가 모든 20대를 대변할 수 없다는 반응도 보였다. 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유모씨(27)는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고시를 준비하거나 합격했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상위권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 20대 비정규직이나 취업난은 사실 먼 나라 이야기”라고 했다.

사법연수생 박모씨(25·여)도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실업은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했다. 박씨는 “일자리의 순서를 매겨 피라미드 형태로 나누면 꼭대기는 좁아도 밑부분은 넓다”며 “일자리가 취업을 원하는 10~20대가 다 들어가고도 모자랄 만큼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로열 그룹’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또래 문제에 대한 관심도 적어 보였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외국계 증권회사에 입사한 반모씨(25·여)는 개인의 노력이 전부가 아닌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반씨는 그러면서 “우리 세대는 각자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에 급급하다”며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각자 개인적으로 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사시 합격자 유씨도 ‘내 탓’으로 돌리는 20대의 특징에 대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따지기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따라가는 게 가장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미·유정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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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구출하라]홈에버 해고 김현주씨
입력: 2007년 12월 03일 18:25:04
 
-고졸 꼬리표 ‘알바→계약직’ 돌고 돌아도 쥐꼬리 월급-

김현주씨(25)가 고교생일 때 부모는 노동일을 했다. 부모의 월수입은 2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는 “집안은 윤택하지도 않았지만 궁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종각 집회 현장에서의 김현주씨. 홈에버 서울 상암점에 근무하다 파업에 참여한 뒤 해고당했다. 비정규직을 전전했던 그가 선 자리는 결국 이렇게 찬바람 부는 거리가 되었다. /김종목기자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 다니는 친구나 언니들이 중도 하차했다. 대학을 포기했다. “대학 나와 좋은 직장 들어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못 봤어요.” 결국 그의 학력은 ‘고졸’로 마침표를 찍고, 그 순간부터 지체없이 언제 끝날지 모를 ‘저임금’ ‘비정규직’ 인생이 시작되었다.

졸업 뒤 서울 동대문에 있는 상표 부착 업체에서 경리일을 했다. 고교 시절 롯데리아에서 ‘알바’를 했지만, 정식 직장은 처음이었다. 월급은 60만~70만원.

“매일 혼자 사무실에서 자장면 시켜먹고 일하는 생활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다닌 컴퓨터 학원에서 일하러 오라는 권유를 받고 옮겼지요.” 학원 등록을 권유하는 텔레마케터 일이었다. 인센티브제라서, 한 달에 50만원도 못 벌 때가 많았다.

그 이후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텔레마케터를 했다. 카드깡과 연관된 대출 업무도 했다. “카드깡 일로 200만원 넘게 벌 때도 있었지만 경찰 단속이 잦아 관뒀지요.”

2003년 스물두살. 그는 까르푸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한다. 주6일 근무.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마감 시간인 자정까지 일했다. 그는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에 80만원을 받았다. 계산 실수를 할 때는 그만큼 월급에서 공제했다. 그럴 때는 60만원도 못 받았다.


저임금에 업무 강도가 높았지만 초과 수당이나 주말 수당은 받은 적이 없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도 몰랐다.

“20대 초반까지 근로계약서니 각종 수당이니 말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게 뭔지도 모르고 필요한 줄도 모르고 살았죠”.

까르푸는 직원들을 레벨 1~7로 분류했다. “오래 근무하고 근무 태도가 좋으면” 레벨을 올려준다. 레벨 7에 이르면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처음엔 직원들이 레벨을 올려달라고 싸우는 걸 보고 이해를 못했어요. 몇년간 일해도 100만원도 못 받는 것을 당연한 일인 줄 알았어요.” 노조위원장으로부터 노조 가입 권유를 받았지만, 일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그런 일에 끼여들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에 동료들과 수다 떠는 게 더 좋았다.

2006년 7월 까르푸가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이랜드가 인수하면서 이름이 홈에버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고용 승계 문제 등 근로조건도 바뀌게 되었다. 파업이 시작됐다. “(홈에버에서 파업할 때) 경찰이 회사 편을 드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공권력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에 솔직히 충격을 받았어요.”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세상이 비정규직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를 놀라게 했다.

그는 “성인이 된 뒤에 투표해본 적이 없고, 정치에 대해 아는 바도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권영길을 뽑으면 세상이 달라질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아빠는 이명박이 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해요.” 그는 어느새 민노총 조합원이 되었다. 홈에버 동료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집회에 참여한다.

그는 “88만원 세대란 말에 공감한다”면서도 “내가 더 노력했으면 되는 건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고 했다. “가끔 부모님 원망도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내 책임이 더 크죠.” 88만원 세대를 배출한 사회에 맞서는 것과 자학하는 젊은이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듯했다.

꿈, 소망을 물었다. “투쟁에서 승리하고 싶어요.”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 지금 너무 힘들어요.”

〈오동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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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구출하라]전화 보험판매 최영미씨
입력: 2007년 12월 03일 18:24:50
 
최영미씨(26·가명)는 여자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여상을 갔어요. 부모님들이 여상을 권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선택했어요. 집안이 어려웠으니까요.”


아버지는 실직하고 어머니는 공장을 다닐 때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레코드 가게에서 점원을 하며 돈을 모았다. 오전 9시에 나가 오후 8시까지 일했다. 월급은 60만원. 동네 도서관에서 혼자 수능 공부를 했다. “경리일과 은행일이 싫었어요.”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고려대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스물한살 때였다. 등록금은 마련했지만 입학금은 학자금 융자를 받아야 했다. 다음 학기 등록금도 마련해야 했다. 결국 휴학하고, 이마트에서 1년 동안 일했다. 주차 도우미와 관리 총무도 했다. “한 달에 80만원을 받았는데 60만원을 저축했어요. 대학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요.”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 2003년 2학년으로 복학했다. 그러나 급등하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고, 끝내 학업을 포기했다. “영화 분야에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돈 버는 게 더 급했어요.” 돈 벌이가 쉽지 않았다.

최씨는 다시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 회사 사무직으로 들어가 매달 74만원을 받았다. 5자매 중 막내였지만 버는 돈 대부분을 집안 살림에 보탰다. 명문대 ‘중퇴’라고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력서상 김씨는 ‘고졸’. “그들(대졸자)과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었어요. 고졸 출신을 다른 사람 취급했어요.” 커피와 잔심부름도 해야 했다. 커피를 탈 때면 여상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차 대접 법을 배우던 악몽이 떠오르곤 했다. 이 회사는 6개월 뒤 부도가 난다.

세달가량을 쉬다가 전자파 차폐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 들어갔다. 기본급 84만원, 잔업 수당을 합치면 110만원을 벌었다. 저축할 여유가 생긴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우중충할 때 공장문을 나서 퇴근할 때면 대학 도서관에서 책 읽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해지곤 했다”고 한다.

공장일은 쉽지 않았다. “같은 검사 일을 하는 상급자가 심하게 괴롭혔어요. 젊은 여자애라서 마음에 안 든 건지 ‘일을 못한다’ ‘예의가 없다’고 매일 구박했죠. 못 참고 싸우다 나왔어요.”

그래서 간 곳이 과천의 화훼 집하장. 지난해 10월이었다. 카운터도 보고 관리일도 맡았다. 기본급은 110만원. 최씨는 “지금까지 다닌 곳 중에 가장 좋은 직장이었다”고 말했다. 그것도 지난 6월로 끝이었다. 해고. 사내 연애가 이유였다. 그는 “사내 연애를 핑계로 댔지만, 비수기니까 그냥 자른 것”이라고 말했다.

별 수 없었다. 최씨는 지난 8월 보험 영업을 시작했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뮤지컬 배우라고 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하고 싶다. “그러나 둘 다 물 건너 갔어요. 뮤지컬 배우를 하려고 갔더니 지원금을 50만원 주는 대신 알바 같은 걸 못하게 했어요. 그 돈만 받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소망과 꿈의 성취에 대해 “노력만으로 안 된다”면서 “집안 환경이 중요한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최씨는 보험 일을 계속 해야 한다. 싫고, 스트레스 많이 받지만 딱히 다른 일을 할 게 없다. 최씨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대선 후보 유세차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29일 신당의 정동영 후보 유세차가 와 있었다. “전화를 한창 돌리고 있는데 시끄럽게 해 짜증만 났어요. 며칠 전에는 이명박 후보 유세차가 와 무릎팍 도사 노래를 얼마나 크게 틀던지….”

최씨는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진실해 보이고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찍었어요. 그런데 실망했어요. 똑같은 정치인이었어요. 정치인들은 우리들의 문제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최씨의 비정규직 이력이 쌓이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도 멀어져 갔다.

〈강병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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