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어린이 책에 시처럼 그리죠` [중앙일보]
2007 최고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에를부르흐
볼프 에를브루흐(59.사진). 독일의 그림작가다. 이름만으로 잘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힌트 하나 더. 국내에서 70만부가 넘게 팔린 어린이책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사계절)의 그린이다.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의 2006년도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인 그는 지난달말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2007년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도서전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달 26일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 참가한 그를 만났다.

이날 행사에서는 국내에도 번역된 '생각을 만드는 책'(아이들판), '커다란 질문'(베틀북)과 함께 '식인녀(Die Menschenfresserin)' '존재, 죽음과 거위(Ente, Tod und Tulpe)'등이 소개됐다.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묵직한 작품들이었다.

'존재, 죽음과 거위'는 자기 주위를 맴도는 '죽음'을 알아차린 오리가 그와 친구가 되어 체온을 나눠주고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 어른조차 외면하는 '죽음'을 어린이 그림책에서 다루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며, 삶이란 사고나 질병까지도 품고 살아갑니다. 죽음이 마냥 갑작스럽고 공포스러운 건 아니죠."

이런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그의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각국의 책을 많이 접해 다양한 세계관을 접목할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식인녀'의 내용도 기괴하다. 동네 사람들이 문을 꽁꽁 닫아 걸고 아이를 내놓지 않자 욕망을 참지 못한 식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고는 후회한다는 프랑스의 전설을 담았다. "아주 왜곡된 슬픈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이야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비해 '커다란 질문'은 그중 어린이 책답다. '나(너)는 왜 여기 있나'란 철학적 질문에 '아빠가 널 사랑하니까'라고 답하는 식으로 존재 의미를 찾게 했다. '생각을 만드는 책'은 18세기 대표적 계몽철학가인 모리츠가 쓴 책읽기.생각하기 입문서의 고전을 독창적인 그림으로 재해석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건 존재.죽음 등의 철학적 문제다.

"그림책의 임무는 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려줌으로써 아이들의 생각을 자라게 하는 거죠."

그러나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섭고 버거운 소재가 아닐까.

"게임보다는 제 그림책이 덜 무섭지 않나요?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적을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철학적 주제로 대화와 토론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이고 무거운 주제 덕분에 그의 그림은 어린이보다 일러스트 전공자에게 더 매혹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작업할 때 책상 위에서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사용한다"며 "주변의 다양한 사물, 때론 음악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포함한 '2007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전'은 올해 연말 국내에서도 볼 수 있다. 12월 28일~2008년 2월 10일 파주 헤이리 네버랜드 뮤지엄에서 열리는 순회 전시회를 통해서다.




볼로냐=글.사진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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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나라당 최고위원 사퇴한 전여옥 의원
"이대로 가면 대선승리는 고사하고 한나라당이 망한다"
“국민의 마지막 경고 무시하고 야합으로 문제봉합… 빅2도 사라질 수 있어”
▲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4·25 재보선 참패 이후 한나라당은 격랑을 헤쳐 나왔다. 선출직 최고위원들이 잇달아 사퇴했고, 강재섭 체제 유지 여부를 놓고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가 극한 대치 상황까지 갔다. 그러다 이명박 전 시장이 강재섭 체제를 다시 받아들이면서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됐다. 과연 한나라당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재보선 다음날 강창희 전 의원과 함께 최고위원직을 던져버린 전여옥(48) 의원을 만났다. 전 의원은 내분 상태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한나라당에 “지금과 같은 체제로 가면 망한다”며 여전히 매서운 비판을 던졌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에 대해서도 “재보선 참패로 불거진 한나라당의 문제를 이번에 야합해 덮어버렸다”며 “잘못하면 ‘빅2’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보선 참패 이후의 당 내분 상황이 결국 강재섭 대표 체제 유지로 봉합됐는데.


“이건 봉합이 아니라 야합이다. 국민은 한나라당에 레드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면 국민의 뜻에 따라 치열하게 몸무림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두 대선 주자가 국민의 뜻을 소외시키고 밀실에서 야합해 문제를 덮어버렸다. 두 주자 역시 스타덤에 올라 ‘빅2’가 된 상태에서 ‘이지 고잉(easy going)’하고 있다. 그 분들이야말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 재보선 유세 과정에서 빅2를 향해 ‘사람들이 달라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유권자들의 말을 들었다. ‘다시 생각한다’는 건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박근혜에서 이명박으로 가는 게 아니라 둘 다 싫으니 무소속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보다 한나라당이 더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 허물어지고 있는 단계다. 이번 재보선 패배가 우리에 대한 마지막 경고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현 지도부가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나.


“그렇다. 지금의 집단지도부는 당원들이 뽑아준 선출직이지만 비토하고 의견을 내는 권한밖에 없다. 당을 디자인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대표의 권한이다. 그런 점에서 당을 이처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강재섭 대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임명직 당직자만 교체하겠다는 것은 지도자답지 못하다.”



이 전 서울시장이 결국 분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시각이 많다.


“이 전 시장은 이번에 지도자로서 실수한 것이다. 자기가 일각에서 오해와 비난을 받더라도 당을 위해서라면 어려운 길로 가는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강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면 바로 분당’이라는 도그마를 내세웠는데 이를 견딜 명분도, 당당함도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봉합해버렸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강재섭 체제가 한나라당을 뜻하는 게 아니다. 대체제도 얼마든지 있다. 아마 이 전 시장은 문제를 봉합하면서 경선 룰과 관련해 유리한 지분을 챙기려 할 텐데 이런 것은 국민의 눈에 다 보인다. 국민은 한나라당의 경선 룰에 대해 시시콜콜 잘 모른다. 다만 한나라당의 부패와 오만에 대해 분노하고 이대로는 한나라당에 정권교체를 시켜줄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래도 당을 깰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분당이 그렇게 쉽게 되리라 보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이 나가든, 박 전 대표가 나가든 따라 나갈 의원들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덤터기를 뒤집어쓰려고 따라 나가겠는가. 지금은 3김시대가 아니다. 독자 신당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강재섭 체제가 무너지면 분당’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대로 가면 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선출직 최고위원 중 강재섭·이재오·정형근 세 분만 남았는데 국민한테 신선하게 보이겠는가. 반성과 쇄신이 아니라 앞으로 경선 룰을 갖고 티격태격할 가능성만 더 높아졌다. 집안 싸움만 하다가는 정말 국민이 등을 돌린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31 지방선거의 공천 비리를 다 까발려야 한다고 했는데 유탄을 맞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정말 큰일이다.”



재보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나.


“공천을 정상적·상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 사람이다’ ‘이(명박) 사람이다’ 하다 못해 ‘강(재섭) 사람이다’까지 가세해 서로 갈라먹었다.”      



공천은 별도의 심사위원회에서 하지 않았나.


“물론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추천한다. 이번에는 웬일인지 나한테 심사위원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까지 왔다. 나한테 한 번도 그런 부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를 연루시켜 엉터리 공천의 명분 쌓기로 활용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정치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외부 인사에게 심사위원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한나라당이 이길 후보’ ‘반듯한 후보’를 골라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일부러 전화 한 통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심사위에 참가했던 분이 ‘한나라당 큰일 났다’고 하더라. 거의 협박하다시피 ‘이 사람 해줘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소수 의견을 묵살했다고 한다. 심사위는 핫바지였던 셈이고 지분 가진 사람들, 대표와 총장 등 집행 라인 사람들이 나눠먹었다는 얘기다. 나중에 심사위에서 올라온 명단을 보고 문제를 지적하기에 바빴다. 지방에서 전과 7범까지 공천 대상으로 올라왔다. ‘절대로 안 된다’고 얘기해 취소시켰지만 그것만 해도 힘에 부쳤다.”     



한나라당에서 왜 항상 공천이 말썽을 빚는다고 보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아다니면 왜 훌륭한 사람을 영입할 수 없겠나. 그걸 하지 않고 자기와 관계된 사람들,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 자기 식솔들만 다 공천에 박아넣으려니까 이렇게 된다. 이른바 정치의 온정주의이고, 자기네 끼리끼리 신세를 값자는 것이다. ‘내가 너를 공천에 박아줬으니까 너는 나를 계속 모셔야 한다’는 태도다. 이래 갖고서야 당이 제대로 되겠는가.”  

 

이번 선거 참패에 두 주자 간 이전투구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상당히 기여했다. 두 주자가 서로 깎아내리고, 의원들 줄 세우기 시키면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이 경선까지 가는 것인지’ ‘이러다 당이 깨지는 게 아닌지’ 많은 불안감을 가졌다. 한나라당이 정신 차리고 있고, 어떻든 경선까지는 간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공동유세를 했어야 했다. 어려운 지역에서 두 분이 함께 손 잡고 서 있는 사진 한 장이 유권자들을 위로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재보선은 오는 대선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이 전 시장은 잘 몰라 전화 걸 처지가 아니었지만 박 전 대표에게는 여러 번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 동안 최고위원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박 전 대표 측으로부터 ‘이명박 X맨’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정말 그 분들이 잘하길 바라는 심정에서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안 된다’고 하더라. 신안·무안에 갔더니 20분 간격으로 두 분이 따로 유세를 하고 박 전 대표는 유세를 양보해준 김홍업씨에게 ‘고맙다’며 악수까지 했다. 대문짝만하게 난 사진을 본 당원들이 ‘이명박씨 하고는 얼굴도 서로 마주치지 않으면서 김홍업씨 하고는 어떻게 사진까지 찍느냐. 어떤 정치적 생각이 있느냐’고 항의했다. 나름대로 변명을 했지만 군색하고 화가 난 게 사실이다. 이 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를 기다렸다가 ‘유세 잘 하라’며 한 마디 하면 안 되나. 이래 갖고는 12월 19일 우리가 원하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두 주자가 이번 내분 사태를 겪으며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두 주자한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파렴치한 형사범이나 패륜범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나. 경쟁을 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정책 대결로 가면서 서로의 잘못에 대해 30%는 감싸야 한다. 왜냐하면 두 분 다 한나라당 후보니까 그렇다. 하나의 방향을 가는 동지라는 걸 서로 잊어가고 있다.”  


두 사람 간 관계뿐 아니라 당이 아래에서부터 갈라지고 있다는 우려도 많다. 의원들과 지구당 위원장들의 줄서기로 생겨난 균열이 봉합될 수 있다고 보나.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오히려 당을 난파시켜버리면 된다. 거기에서 생존하는 사람들, 수영해서 뭍으로 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가면 된다. 그런 당원들은 깨끗하고 사심(私心)이 없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과의 치열한 연대를 통해 당의 모습을 새로 제시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가 당의 앞길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고 보나.

“빅2 때문에 한나라당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손학규 전 지사도 ‘군부 잔재’ 어쩌구 하면서 나갔는데 사실 15년 동안 한나라당에 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다. 빅2 간 경쟁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여지가 없어서 나간 게 아니냐. 손 전 지사가 ‘숨통을 틔워 달라’며 나갔으면 인간적으로 더 진솔해 보였을 것이다. 이제 당내에서도 지역구가 불안해서 나오는 주자들 말고 진짜 빅2에 맞서 될 만한 주자들이 나오고, 당 밖에서도 그런 주자를 모셔와야 한다고 본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형체도 없이 망할 수 있다. 저쪽은 분진(分進)하면서 가루로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일 태세지만, 여기는 거대한 초식공룡당으로 모여 있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 있다. "


의원들을 만나보면 줄 세우기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한나라당 의원들도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유권자들에게 떳떳해야 된다. 오래 한다고 다 정치인이 아니다. 다선(多選)이라고 지역구에서 존경 받나. 의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나도 언젠가 빅2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잘 관리하고 줄 서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다음 번 공천이 걸린 문제 아닌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공천한다는 말인가. 안 되는 사람을 밀어넣을 수 없고, 유권자들이 원하는 사람을 자를 수도 없다. 나는 오히려 이번에 굉장한 희망을 느꼈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더 정확한 정치 분석을 한다. 이번 재보선 선거 결과를 보면 ‘너희들을 응징하겠다’는 메시지가 명확히 읽히지 않나.”       


 


현 체제로 가면 대선 승리는 어렵다고 보나.

“대선 승리는 고사하고 당이 망한다고 본다. 지난 열 달 동안 지도부에 있으면서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처절하게 느꼈다. 차라리 당이 깨져서 망하면 낫다. 당을 깰 힘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자멸이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형체도 없이 망할 수 있다. 저쪽은 분진(分進)하면서 가루로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일 태세지만, 여기는 거대한 초식공룡당으로 모여 있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 있다. 바람 한 번 불면 벽제 화장장에서 풍장하듯이 다 날아갈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소수라도 치열한 소수가 있으면 이끌어갈 수 있다. 치열한 소수와 이야기해 다수로 만들 것이다. 국민을 움직이고, 외부 세력과 연대해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당이 없어지고 심판 받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좌파 정권을 종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좌파 국가로 가는 것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없어진다.” ▒


 


/ 정장열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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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nge] 한국영화 흥행성적표의 허와실
▲ illust 남지혜

장규성 감독이 만든 영화 ‘이장과 군수’의 첫 주말 성적이 40여만명으로 집계된 직후 이 영화를 제작한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를 술자리에서 만났을 때 그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떨떠름한 표정이었다는 것이 맞을까. 아니, 그보다는 차승재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이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제일 애매해.”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건 흥행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망한 것도 아냐.” 갑자기 웬 ‘같기도(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명)’람. 하지만 그가 요즘의 개그 유행어를 알 리는 없다. 하긴 최근 들어 한국 영화판에서는 이 ‘같기도’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들 이러고 있는 것 같다. “이건 한국영화가 위기도 아니고, 위기가 아닌 것도 아녀.” 거 참 헷갈린다, 헷갈려.


흥행타율 면에서 난다 긴다 하는 차승재 프로듀서가 이렇게 고개를 갸웃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 주 40여만명, 개봉 4주 만에 전국 120여만명. 그런데 들어간 돈은 총 제작비 40억원 선이다. 입장료 7000원 가운데 2740원이 투자사·배급사·제작사의 몫이니까 어떻게든 150만명을 넘어서야만 손익분기점을 넘길 테지만, 요즘 같아선 거기까지 가기가 참으로 멀고 먼 산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개봉 첫 주말 40여만명의 수치만으로 이런 상황을 예상하는 노련한 프로듀서 차승재의 한숨이 이해할 만하다. 죽도록 힘들게 만들었는데 속된 말로 ‘똔똔치기’에 급급해야 하니 이걸 가지고는 결코 성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망했다고 좌절하는 것도 그렇고. 그의 말 그대로 참으로 애매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차승재 대표의 요즘 생각은 좀 남다르다. 박박 우겨가며 스크린 수를 유지하고, 광고 마케팅을 계속 강행하는 등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기려고 애쓰지 말고 차제에 ‘그 놈의’ 손익분기점을 낮추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판단으로는 총 40억~50억원 선으로 돼 있는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를 30억원 선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제작비 30억원 운동의 시작이다.


얘기는 간단하다. 총 제작비(프로덕션 과정에 들어가는 순수제작비에 광고 마케팅 비용이 합쳐진 개념)가 평균적으로 30억원 선으로 낮춰지면 전국 100만 관객으로도 수익을 내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마침 차승재 대표는 요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국내 프로듀서의 모임인 이 제작가협회를 통해 차 대표는 평균 제작비를 줄이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모두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비용을 줄인다는 건 기본적으로 인건비 구조를 축소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모든 사람의 임금을 깎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얼마전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영화인노동조합과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해 국내 영화 사상 처음으로 ‘영화 노동자의 최저임금제’를 관철시켰다. 이 협약에 따라 30억원짜리 영화를 15회 촬영할 경우 1억5000만원의 비용이 상승하는 효과가 생기게 됐다.


때문에 비용을 줄이는 대상은 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스타의 몸값을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몇몇 제작자가 남의 돈 수십억원을 투자 받아서는 BMW나 아우디 같은 고가의 외제 차를 몰고 다니며 흥청망청 진행비를 쓰는 행태도 강력하게 지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건 어쩌면 비본질적인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20여회에 찍을 수 있는 영화를 30여회까지 끌고 가는 비효율의 프로덕션 과정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즉 영화 제작 방식에서 현대적 매뉴얼의 도입이 시급할 것이다.


국내 최고의 배우라는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도 100만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평균 제작비를 30억원으로 줄이면 “100만도 못했어?”라는 얘기가 당당히 “100만이나 했어”로 바뀔 것이다. 이제는 그런 얘기를 듣고 싶다. 그럴 때도 됐다. 정말 그럴 때가 됐다. ▒



/ 오 동 진 | 고려대 사학과 졸업, 문화일보·연합통신·YTN·문화부 기자, 필름 2.0 취재부장, 씨네버스 편집장 역임. 현 D&D 미디어 대표, 동의대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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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27년 지났다.

화인이 찍힌 80년의 광주.
망월동의 부릅뜬 눈... 핏발 선 눈...

역사는 흐르기만 흐른다. 흐리게... 느리게...

http://cartoon.media.daum.net/group1/kangfull26/200604/03/m_daum/v122448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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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노아 > [퍼온글] * 한겨레 19돌 창간특집 특별 대담: 김훈과 홍세화

* 한겨레(2007. 5. 15)  / 탐색전 없이 득달같이 ‘일합’, 글쓰기란…

[19돌 창간특집] <한겨레> 입사 동기 김훈-홍세화 6시간 대담


김 “글이 세계 개조한다는 건 위태…무장된 언어 사회 교란”
홍 “정치권력 믿는 건 순진…법조차 힘의 논리에 왜곡”

한겨레
» 소설가 김훈씨(오른쪽)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2년 2월 한겨레신문사에 함께 입사해 1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었던 두 사람은 여섯 시간 남짓 계속된 이날 대담에서 <한겨레>의 논조와 보도 태도, 한국 사회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각자의 성장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주제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겨레>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소설가 김훈씨와 홍세화 기획위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2002년 2월 김훈씨가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대우 사회부 기동팀 취재기자로 입사했으며, 홍세화씨 역시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입사했던 것. 그러니까 두 사람은 ‘입사 동기’인 셈이다. 물론 김훈씨는 2003년 1월 20일자로 사직했고, 홍세화 위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기획위원으로 계속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다. 홍 위원이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진보’에 해당한다면 김훈씨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이로 알려져 있다.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상극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고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둘의 이야기는 활발했고 흥미로웠다. 대담은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시작됐으며 찻집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인사동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김훈씨의 근작 소설 <남한산성>을 막 읽고 난 홍 위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남한산성>, 자유무역협정 관련 이해 동의 못해

홍: “<남한산성>을 잘 읽었습니다. 그 소설 속 상황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저는 거기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쉬운 이야기부터 하죠. 김 선생의 경우에는 글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김: “글이요? 글쎄요. 저는 사실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해서 아주 잔혹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에요.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내 자신을 훈련시키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죠. 글에서,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자유 같은 건 저에게 일체 없는 거예요. 이것이 저에겐 노동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밥을 벌어먹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건 끔찍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홍: “뭐, 저에게도 글쓰기가 비슷한 밥벌이의 수단인 건 사실인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죠. 역시 글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글은 밥 벌어먹는 노동이기 때문에 끔찍한 일”

글쓰기는 밥 벌어먹는 노동…펜이 칼 보다 강하다는 말 안 믿어

» 김훈
김: “저도 홍 선생께서 쓰신 책을 많이 봤는데, 역시 지금 말씀하신 소통의 문제, 소통을 통해서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 그런 것들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근데 글이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매우 아득하고 신뢰하기가 어렵고 위태로운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것은 글을 쓰는 자들의 절망적인 답답함인데, 무기는 세계를 개조하잖아요? 미국의 무기는 오늘 아침도 이 세계를 정확하게 때려부셔가지고 개조해 버리는 것이죠. 그 개조의 방향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네들의 이익에 맞게끔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죠. 근데 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거기에 비하면 참 아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안 믿는 사람이에요.”

소통의 문제 무시 못해…부당한 현실 상대 싸움의 하나

홍: “지금까지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볼 때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그러한 현실에 저항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나마 지금과 같은 정도의 이성적인 사회가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은 물론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적 이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성찰적 이성 역시 지니고 있어서 그걸 토대로 부당한 현실을 상대로 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글쓰기 작업도 그런 것의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섯달 시차로 한살 차이, 같은 서울 출신이지만…
기아 퇴치-반공 방첩이 각각 추억에 박힌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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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이들. 그러나 개인적인 글쓰기의 동기, 그 바탕을 이루는 세계관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탐색전을 생략한 채 득달같이 일합을 겨룬 느낌이었다. 과열된(?) 분위기도 식힐 겸 두 사람의 성장기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보았다. 홍 위원이 1947년 12월생이고, 김훈씨는 1948년 5월생이어서 두 사람은 5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김훈씨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두 사람은 같은 학번이 되었는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도록 한 번도 같은 학교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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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억압뿐…미군이 던져준 초콜렛 들고 사진 찍어”

가난과 억압뿐인 어린시절…등록금 없어 대학 중퇴

김: “제 어린 시절은 가난과 억압뿐이었어요.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왔는데 거기서 좀 자라서 왔어요. 거기서 미군이 철조망 너머로 던져주는 껌과 초콜렛을 얻어먹었죠. 대학 들어갈 무렵 나와 내 친구들의 꿈은 오직 하나였어요. 밥을 먹는 것. 밥. 밥을 좀 먹는 나라를 만들어서, 도대체 밥 세 끼를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간절한 소망이었죠. 우리는 고조선때부터 그 시대까지 밥을 못 먹었어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보면 해마다 굶어죽은 놈이 수만명씩 나오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렸을 때도 해마다 보릿고개만 되면 굶어죽었어요. 우리 정부의 행정구호가 ‘기아퇴치’였다고, 기아퇴치.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들려는 게 우리들의 비통한 소망이었지. 근데 우리는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대의 박정희 대통령이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든 것이고 우리는 그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어요. 마소처럼 일하고 개처럼 짓밟히면서 일해가지고 밥 먹는 나라를 만든 거예요.”

공부 잘해 빨리 출세하는 게 목표…대학 가서 붕괴

» 홍세화
홍: “전후의 상황이라는 게 대부분이 가난했고 저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나마 조금 나은 축에 속한다고 할까. 고등학교 때까지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빨리 출세를 하나 하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영어보다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갔고 공대에 들어갔는데, 바로 대학 들어간 해에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내 가족이 6.25 당시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던가를 통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아까 ‘기아퇴치’라고 하셨는데 전 그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고 대신 학교 담벼락마다 붙어 있었던 ‘반공방첩’이라는 구호가 아주 강력하게 남아 있어요. 저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 구호를 저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 가치관이 붕괴되고, 그래서 공대고 뭐고 다 재미없어지고 방황하게 된 시기가 바로 20대 초반이었어요.”

노 대통령 구조적인 악 도전했다 참패…이만한 생각 나로서는 진보

김: “전 대학 졸업을 못했어요. 영문과를 다니다가 중퇴를 해버렸는데, 그리고 다시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그때 학교를 그만둔 것은 돈이 없어서였어요. 등록금이 없어가지고. 그런데 지금 밥 얘기를 더 하자면, 밥을 먹는 세상을 만들어 놨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악과 억압과 비리를 저질러 가지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에요. 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무서운 대가가 바로 그거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우리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악들에 도전했다가 참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참패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일은 차기 정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승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박정희, 이승만 이후로 깔려버린 구조화된 악과 억압이라는 것은 정말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노 대통령 같은 낭만주의나 대중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그것은 부술 수가 없는 훨씬 더 뿌리깊고 강한 구조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어요. 이만큼 생각한 것도 나로서는 상당히 사고가 진보된 것이죠. 그 전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웃음)

자기를 뽑아주고 과반 의석 준 민중 스스로 배반해 실패

홍: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배세력들이 민중이나 이런 걸 표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분과 실리를 같이 취하려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죠. 그것이 물론 지금까지 말슴하신 대로 축적된 모순과 60년 가까이 수구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물적 토대, 각 부문별로 결합되어 있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정부를 세웠던건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과반수의 국회의석도 주었고. 근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결국 자기를 뽑은 민중을 스스로 배반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하죠.”

예상된 차이와 뜻밖의 공감…한겨레 한솥밥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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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에서 두 사람은 예상 가능한 차이와 뜻밖의(?) 공감대를 보였다. 두 사람이 공감대를 이룬 바탕에 <한겨레> 입사동기라는 인연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이쯤 해서 2002년,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보았다.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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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이·효순이 사건, 범죄는 아니었죠”

구석방에서 책만 읽다 괴멸 위기감에 입사 자청

김: “당시 저는 혼자 구석방에 들어앉아서 책만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유령 같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위기를 느꼈어요. 어디론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나 자신이 괴멸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김종구 사회부장(현 편집국장)에게 찾아가서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죠. 신문사에 들어갔더니 월드컵의 대규모 거리 응원이 벌어지고, 그 다음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어서 대통령 선거까지 대중들의 힘의 폭발이 이어졌어요. 월드컵은 놀라웠죠. 난 그런 대중의 힘을 처음 봤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과 대선 과정서 보인 대중의 맹목성에 다시 집으로

대중의 힘은 매우 맹목적인 것 같기도 했는데,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이어 대선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난 다시 집으로 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내 밀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다음날 사표를 내고 <한겨레>를 떠났죠. 미선이 효순이 사건, 그것은 범죄는 아니었죠. 사고였어요. 그런데 그것을 범죄로 몰아가고 결국 반미주의로까지 끌고 나가는 일련의 흐름에서 <한겨레>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죠.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내 생각하고는 상당히 다른 사람들의 집단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나와 <한겨레>의 큰 갈등이었어요.”

“한겨레 입사 위해 귀국…한국사회 적응않기로 각오”에 “심하다 심해”

홍: “저는 프랑스에 머물다가 귀국하게 된 계기가 바로 <한겨레> 입사였어요. <한겨레>에 입사하기 위해서 귀국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죠.”

김: “심하다, 심해.” (웃음)

사고인 건 분명하지만 한-미간 구조적 문제나 역학관계 인식 계기

홍: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말씀하신 대로 사고인 게 분명하죠. 그런데 만약 미군쪽에서 처음부터 그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점령군이 아닌 평등 차원에서의 선언이나 이런 것이 나왔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미 간의 구조적인 문제, 역학 관계에 대한 인식을 하도록 하는 데 있어서는 <한겨레>가 역할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부분을 동원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 때문에 점령군이라는 미군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죠.”

안타까운 사고 계기로 대중의 이성 마비시키는 결과도

김: “그것은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과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앞으로도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서 고통스러운 전례를 남긴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미군과 미국측의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생산적인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이성이 매우 교란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 “그것은 참 어려운 문제죠. 우리처럼 지독한 미국중심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회에서 대중의 이성은 벌써 오랫동안 마비되어 온 것이 사실이거든요. 거기에서 어떻게 균형감각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게 무척 어려운 지점이죠.”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당파성에 매몰돼 의견과 사실 뒤죽박죽…언어 소통 기능 마비

김: “아까 소통에 관해 말씀하셨죠.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말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이 되는 일이 많아요.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당파성이 지향하는 바의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언어의 소통기능은 점점 마비되고 언어는 무장하게 되는 것이죠. 무장된 언어가 사회를 막 교란하고 뒤집어엎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시대 언어의 풍경인 것이죠.”

인터넷 활성화로 소통 장 열렸다지만 회의적…생각 다르면 바로 배설

홍: “동의합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마치 인터넷이 쌍방향간의 소통의 장이 열린 것이다 라고 하지만 저는 회의적입니다. 토론이란 자기 견해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남의 견해도 들으면서 자기 견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바로 배설해버리는 식인 것 같아요. 그것은 집단의 외피를 쓴 이기적인 개인들의 뻔뻔한 때문인 것 같아요. 집단의 뒤에 숨어 있는 개인들이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게 다 경제지상주의적 가치관 때문인데, 경제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토론과 교육, 소통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요.”

» 김훈

공동체적 가치 위해 개인 이익 양보 주문은 어불성설

김: “민주사회에서 공동체적인 가치를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양보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이 사회는 이루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되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한미FTA 발효 땐 무서운 변화…문화적 측면서 접근해야

홍: “그와 관련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조금 말해 보죠.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농촌의 피폐화가 걱정이에요.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그야말로 무서운 변화가 올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성찰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죠.”

한미FTA는 잘한 일…진보 잣대로 시비 거는 건 무의미

김: “저는 한 나라는 이념이 아니라 이득을 추구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이익을 이행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도덕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도덕이나 부도덕을 말할 수가 없는,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참 따지기 어려운 것이죠. 나는 우리 정부가 그것이 결국 이득이 되게끔 앞으로 그걸 헤쳐 나가야 하고 그 이득이 제발 국민 각계각층에 골고루 미치는 이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난 자유무역협정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다음에 <한겨레>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의 일관성을 집요하게 시비한 적이 있었어요. 노무현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진보의 일관성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참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런 기사가 나올 때 <한겨레>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농민이라는 한 계층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이걸 추진한다는 것은 참 무리하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측면이 조금 있어요. 그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마땅하죠.”

한·미 FTA에 대하여

찻집 문닫아 식당으로 자리 옮겨 포도주 곁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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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와서 다시 부딪쳤다. 얘기가 다시 격렬해지려는 참에 마침 찻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 대신 적포도주가 곁들여지면서 좀 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음식을 앞에 두고 다시 배 고팠던 지난 시절을 회고한 다음, 요즘 젊은이들이 소중한 청년기를 너무 소홀히 보내는 것 같다는 데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김훈씨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표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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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그건 정치권력이 해야-거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버티고 있는사회에서 불가

김: “저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말 약자의 편이 되기를 바랐어요. 전 노 대통령 치하에서 세금 많이 냈습니다. 세금 낼 때 기분이 좋았어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책을 써서 인세를 받아서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어요. 저는 의료보험도 많이 냈어요. 우리 시대의 분배에 기여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런데, 신문 보니깐 아니더라고.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 소득세 50만원 올렸다고 시위하고 말이죠.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대통령의 리더십은 거기서 망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홍: “그렇게 당연히 사회에 내놔야 되는 사람들이 정작 내놓지 않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분노해야 되는 것이죠.”

김: “저 분노하고 있어요.”

홍: “분노의 방식이 문제인데요. 분노가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요.”

김: “그건 권력이 해야죠. 정치권력이.”

홍: “한국과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그런 일을 순조롭게 하리라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요?”

한국노동문제는 노동귀족 타락-타락할 권리도 없는 사람 있어

김: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저는 <한겨레>가 기본적인 객관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부는 악이고 빈이 선이다, 라는 이분법을 버려야죠. 노동은 선이고 자본은 악이다, 그런 이분법적 정서가 있는 거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지금 한국 노동의 문제는 노동세력 타락의 문제예요. 노동귀족들의 타락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죠.”

홍: “그걸 과연 노동귀족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구요. 또 하나, 한국 사회에서는 타락할 권리가 있는 사람과 타락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진다고 봅니다. 어느 자리에 서면 다 타락합니다.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 홍세화

똘레랑스는 본래 보수주의자의 것-수구세력의 무기에 대한 반대

김: “홍 선생의 전공이 ‘똘레랑스’입니다만, 똘레랑스라는 건 본래 보수주의자의 것이었어요. 우리가 빼앗긴 거죠. 보수주의의 관용 안에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구요. 그런데 그걸 놓친 거예요. 보수주의자가 타락해서 자기 기득권만 방어하면 된다, 이런 식이 되면서 망하게 된 거죠.”

홍: “‘똘레랑스’의 어원 자체가 참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용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거죠. 가장 정확한 것은 사자성어 ‘화이부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바로 수구세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앵똘레랑스에 대한 반대라는 측면이었습니다.”

법치주의 깨자고 들면 곤란-부는 악이고 빈은 선이라는 건 아니다

김: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똘레랑스’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봅니다. 법치주의를 깨자고 들면 곤란하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죠. 인간의 능력이나 경제적 처지가 평등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다만 법률 앞에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관찰하고 해석하는 데는 많은 부분 일치하지만 대응은 갈라져

홍: “김 선생과 저는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데에서는 많은 부분 일치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데에서 갈라지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에 힘의 논리가 관철될 때 기본적으로 그 힘은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법조차 힘의 논리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부와 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한겨레> 논조가 부는 악이고 빈은 선이다, 그런 것은 아니죠. 그것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빈곤이 죄악시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사물이라고 봅니다.”

많이 다른 줄 알았는데 기본은 같아…마음 바탕 천진해야

김: “가난은 탈피할 대상이지 장려 대상은 아닙니다. 옹호할 가치는 아니죠. 가난에 선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에요.”

홍: “우리가 공화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때, 그 핵심이라 할 애국주의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한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위함을 받았다는 경험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죠. 끝없이 관리통제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자발성이 없는 거예요. 이를테면 무상교육 얘기를 해 보죠. 그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사회가 대준다는 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계층간 연대와 세대간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데에 핵심이 있는 겁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의 비용 대주는 것이 계층간의 횡적연대라면,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을 가령 국민연금 같은 형태로 돌려주는 것은 세대간의 종적연대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나로 하여금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윗세대가 은퇴할 때 그들에게 지금의 경제활동 인구가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죠.”

불콰한 얼굴에 팽팽한 긴장 가시고 오랜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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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역시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벌써 여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보는 세상과 <한겨레>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초반과 같은 팽팽한 긴장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포도주로 불콰해진 얼굴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김훈씨가 대담을 마무리하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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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 그도 그럴 것이 삶의 여정이 매우 달랐잖아요. 그런 만큼 서로를 더 존중하고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 천진성이라는 게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거잖아요?”

» 소설가 김훈씨(오른쪽)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훈-홍세화 특별한 만남

김훈씨는 <한국일보> 기자와 <시사저널> 편집국장 등을 거쳐 <한겨레>에서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로 일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어 최근 새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발표해 서점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가 2002년 한겨레신문사 입사를 계기로 귀국했다.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등의 시평집을 냈다.

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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