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나라당 최고위원 사퇴한 전여옥 의원
"이대로 가면 대선승리는 고사하고 한나라당이 망한다"
“국민의 마지막 경고 무시하고 야합으로 문제봉합… 빅2도 사라질 수 있어”
▲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4·25 재보선 참패 이후 한나라당은 격랑을 헤쳐 나왔다. 선출직 최고위원들이 잇달아 사퇴했고, 강재섭 체제 유지 여부를 놓고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가 극한 대치 상황까지 갔다. 그러다 이명박 전 시장이 강재섭 체제를 다시 받아들이면서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됐다. 과연 한나라당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재보선 다음날 강창희 전 의원과 함께 최고위원직을 던져버린 전여옥(48) 의원을 만났다. 전 의원은 내분 상태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한나라당에 “지금과 같은 체제로 가면 망한다”며 여전히 매서운 비판을 던졌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에 대해서도 “재보선 참패로 불거진 한나라당의 문제를 이번에 야합해 덮어버렸다”며 “잘못하면 ‘빅2’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보선 참패 이후의 당 내분 상황이 결국 강재섭 대표 체제 유지로 봉합됐는데.


“이건 봉합이 아니라 야합이다. 국민은 한나라당에 레드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면 국민의 뜻에 따라 치열하게 몸무림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두 대선 주자가 국민의 뜻을 소외시키고 밀실에서 야합해 문제를 덮어버렸다. 두 주자 역시 스타덤에 올라 ‘빅2’가 된 상태에서 ‘이지 고잉(easy going)’하고 있다. 그 분들이야말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 재보선 유세 과정에서 빅2를 향해 ‘사람들이 달라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유권자들의 말을 들었다. ‘다시 생각한다’는 건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박근혜에서 이명박으로 가는 게 아니라 둘 다 싫으니 무소속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보다 한나라당이 더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 허물어지고 있는 단계다. 이번 재보선 패배가 우리에 대한 마지막 경고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현 지도부가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나.


“그렇다. 지금의 집단지도부는 당원들이 뽑아준 선출직이지만 비토하고 의견을 내는 권한밖에 없다. 당을 디자인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대표의 권한이다. 그런 점에서 당을 이처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강재섭 대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임명직 당직자만 교체하겠다는 것은 지도자답지 못하다.”



이 전 서울시장이 결국 분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시각이 많다.


“이 전 시장은 이번에 지도자로서 실수한 것이다. 자기가 일각에서 오해와 비난을 받더라도 당을 위해서라면 어려운 길로 가는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강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면 바로 분당’이라는 도그마를 내세웠는데 이를 견딜 명분도, 당당함도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봉합해버렸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강재섭 체제가 한나라당을 뜻하는 게 아니다. 대체제도 얼마든지 있다. 아마 이 전 시장은 문제를 봉합하면서 경선 룰과 관련해 유리한 지분을 챙기려 할 텐데 이런 것은 국민의 눈에 다 보인다. 국민은 한나라당의 경선 룰에 대해 시시콜콜 잘 모른다. 다만 한나라당의 부패와 오만에 대해 분노하고 이대로는 한나라당에 정권교체를 시켜줄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래도 당을 깰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분당이 그렇게 쉽게 되리라 보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이 나가든, 박 전 대표가 나가든 따라 나갈 의원들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덤터기를 뒤집어쓰려고 따라 나가겠는가. 지금은 3김시대가 아니다. 독자 신당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강재섭 체제가 무너지면 분당’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대로 가면 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선출직 최고위원 중 강재섭·이재오·정형근 세 분만 남았는데 국민한테 신선하게 보이겠는가. 반성과 쇄신이 아니라 앞으로 경선 룰을 갖고 티격태격할 가능성만 더 높아졌다. 집안 싸움만 하다가는 정말 국민이 등을 돌린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31 지방선거의 공천 비리를 다 까발려야 한다고 했는데 유탄을 맞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정말 큰일이다.”



재보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나.


“공천을 정상적·상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 사람이다’ ‘이(명박) 사람이다’ 하다 못해 ‘강(재섭) 사람이다’까지 가세해 서로 갈라먹었다.”      



공천은 별도의 심사위원회에서 하지 않았나.


“물론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추천한다. 이번에는 웬일인지 나한테 심사위원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까지 왔다. 나한테 한 번도 그런 부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를 연루시켜 엉터리 공천의 명분 쌓기로 활용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정치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외부 인사에게 심사위원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한나라당이 이길 후보’ ‘반듯한 후보’를 골라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일부러 전화 한 통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심사위에 참가했던 분이 ‘한나라당 큰일 났다’고 하더라. 거의 협박하다시피 ‘이 사람 해줘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소수 의견을 묵살했다고 한다. 심사위는 핫바지였던 셈이고 지분 가진 사람들, 대표와 총장 등 집행 라인 사람들이 나눠먹었다는 얘기다. 나중에 심사위에서 올라온 명단을 보고 문제를 지적하기에 바빴다. 지방에서 전과 7범까지 공천 대상으로 올라왔다. ‘절대로 안 된다’고 얘기해 취소시켰지만 그것만 해도 힘에 부쳤다.”     



한나라당에서 왜 항상 공천이 말썽을 빚는다고 보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아다니면 왜 훌륭한 사람을 영입할 수 없겠나. 그걸 하지 않고 자기와 관계된 사람들,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 자기 식솔들만 다 공천에 박아넣으려니까 이렇게 된다. 이른바 정치의 온정주의이고, 자기네 끼리끼리 신세를 값자는 것이다. ‘내가 너를 공천에 박아줬으니까 너는 나를 계속 모셔야 한다’는 태도다. 이래 갖고서야 당이 제대로 되겠는가.”  

 

이번 선거 참패에 두 주자 간 이전투구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상당히 기여했다. 두 주자가 서로 깎아내리고, 의원들 줄 세우기 시키면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이 경선까지 가는 것인지’ ‘이러다 당이 깨지는 게 아닌지’ 많은 불안감을 가졌다. 한나라당이 정신 차리고 있고, 어떻든 경선까지는 간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공동유세를 했어야 했다. 어려운 지역에서 두 분이 함께 손 잡고 서 있는 사진 한 장이 유권자들을 위로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재보선은 오는 대선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이 전 시장은 잘 몰라 전화 걸 처지가 아니었지만 박 전 대표에게는 여러 번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 동안 최고위원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박 전 대표 측으로부터 ‘이명박 X맨’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정말 그 분들이 잘하길 바라는 심정에서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안 된다’고 하더라. 신안·무안에 갔더니 20분 간격으로 두 분이 따로 유세를 하고 박 전 대표는 유세를 양보해준 김홍업씨에게 ‘고맙다’며 악수까지 했다. 대문짝만하게 난 사진을 본 당원들이 ‘이명박씨 하고는 얼굴도 서로 마주치지 않으면서 김홍업씨 하고는 어떻게 사진까지 찍느냐. 어떤 정치적 생각이 있느냐’고 항의했다. 나름대로 변명을 했지만 군색하고 화가 난 게 사실이다. 이 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를 기다렸다가 ‘유세 잘 하라’며 한 마디 하면 안 되나. 이래 갖고는 12월 19일 우리가 원하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두 주자가 이번 내분 사태를 겪으며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두 주자한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파렴치한 형사범이나 패륜범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나. 경쟁을 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정책 대결로 가면서 서로의 잘못에 대해 30%는 감싸야 한다. 왜냐하면 두 분 다 한나라당 후보니까 그렇다. 하나의 방향을 가는 동지라는 걸 서로 잊어가고 있다.”  


두 사람 간 관계뿐 아니라 당이 아래에서부터 갈라지고 있다는 우려도 많다. 의원들과 지구당 위원장들의 줄서기로 생겨난 균열이 봉합될 수 있다고 보나.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오히려 당을 난파시켜버리면 된다. 거기에서 생존하는 사람들, 수영해서 뭍으로 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가면 된다. 그런 당원들은 깨끗하고 사심(私心)이 없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과의 치열한 연대를 통해 당의 모습을 새로 제시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가 당의 앞길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고 보나.

“빅2 때문에 한나라당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손학규 전 지사도 ‘군부 잔재’ 어쩌구 하면서 나갔는데 사실 15년 동안 한나라당에 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다. 빅2 간 경쟁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여지가 없어서 나간 게 아니냐. 손 전 지사가 ‘숨통을 틔워 달라’며 나갔으면 인간적으로 더 진솔해 보였을 것이다. 이제 당내에서도 지역구가 불안해서 나오는 주자들 말고 진짜 빅2에 맞서 될 만한 주자들이 나오고, 당 밖에서도 그런 주자를 모셔와야 한다고 본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형체도 없이 망할 수 있다. 저쪽은 분진(分進)하면서 가루로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일 태세지만, 여기는 거대한 초식공룡당으로 모여 있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 있다. "


의원들을 만나보면 줄 세우기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한나라당 의원들도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유권자들에게 떳떳해야 된다. 오래 한다고 다 정치인이 아니다. 다선(多選)이라고 지역구에서 존경 받나. 의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나도 언젠가 빅2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잘 관리하고 줄 서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다음 번 공천이 걸린 문제 아닌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공천한다는 말인가. 안 되는 사람을 밀어넣을 수 없고, 유권자들이 원하는 사람을 자를 수도 없다. 나는 오히려 이번에 굉장한 희망을 느꼈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더 정확한 정치 분석을 한다. 이번 재보선 선거 결과를 보면 ‘너희들을 응징하겠다’는 메시지가 명확히 읽히지 않나.”       


 


현 체제로 가면 대선 승리는 어렵다고 보나.

“대선 승리는 고사하고 당이 망한다고 본다. 지난 열 달 동안 지도부에 있으면서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처절하게 느꼈다. 차라리 당이 깨져서 망하면 낫다. 당을 깰 힘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자멸이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형체도 없이 망할 수 있다. 저쪽은 분진(分進)하면서 가루로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일 태세지만, 여기는 거대한 초식공룡당으로 모여 있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 있다. 바람 한 번 불면 벽제 화장장에서 풍장하듯이 다 날아갈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소수라도 치열한 소수가 있으면 이끌어갈 수 있다. 치열한 소수와 이야기해 다수로 만들 것이다. 국민을 움직이고, 외부 세력과 연대해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당이 없어지고 심판 받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좌파 정권을 종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좌파 국가로 가는 것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없어진다.” ▒


 


/ 정장열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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