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nge] 한국영화 흥행성적표의 허와실
▲ illust 남지혜

장규성 감독이 만든 영화 ‘이장과 군수’의 첫 주말 성적이 40여만명으로 집계된 직후 이 영화를 제작한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를 술자리에서 만났을 때 그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떨떠름한 표정이었다는 것이 맞을까. 아니, 그보다는 차승재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이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제일 애매해.”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건 흥행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망한 것도 아냐.” 갑자기 웬 ‘같기도(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명)’람. 하지만 그가 요즘의 개그 유행어를 알 리는 없다. 하긴 최근 들어 한국 영화판에서는 이 ‘같기도’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들 이러고 있는 것 같다. “이건 한국영화가 위기도 아니고, 위기가 아닌 것도 아녀.” 거 참 헷갈린다, 헷갈려.


흥행타율 면에서 난다 긴다 하는 차승재 프로듀서가 이렇게 고개를 갸웃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 주 40여만명, 개봉 4주 만에 전국 120여만명. 그런데 들어간 돈은 총 제작비 40억원 선이다. 입장료 7000원 가운데 2740원이 투자사·배급사·제작사의 몫이니까 어떻게든 150만명을 넘어서야만 손익분기점을 넘길 테지만, 요즘 같아선 거기까지 가기가 참으로 멀고 먼 산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개봉 첫 주말 40여만명의 수치만으로 이런 상황을 예상하는 노련한 프로듀서 차승재의 한숨이 이해할 만하다. 죽도록 힘들게 만들었는데 속된 말로 ‘똔똔치기’에 급급해야 하니 이걸 가지고는 결코 성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망했다고 좌절하는 것도 그렇고. 그의 말 그대로 참으로 애매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차승재 대표의 요즘 생각은 좀 남다르다. 박박 우겨가며 스크린 수를 유지하고, 광고 마케팅을 계속 강행하는 등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기려고 애쓰지 말고 차제에 ‘그 놈의’ 손익분기점을 낮추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판단으로는 총 40억~50억원 선으로 돼 있는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를 30억원 선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제작비 30억원 운동의 시작이다.


얘기는 간단하다. 총 제작비(프로덕션 과정에 들어가는 순수제작비에 광고 마케팅 비용이 합쳐진 개념)가 평균적으로 30억원 선으로 낮춰지면 전국 100만 관객으로도 수익을 내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마침 차승재 대표는 요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국내 프로듀서의 모임인 이 제작가협회를 통해 차 대표는 평균 제작비를 줄이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모두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비용을 줄인다는 건 기본적으로 인건비 구조를 축소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모든 사람의 임금을 깎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얼마전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영화인노동조합과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해 국내 영화 사상 처음으로 ‘영화 노동자의 최저임금제’를 관철시켰다. 이 협약에 따라 30억원짜리 영화를 15회 촬영할 경우 1억5000만원의 비용이 상승하는 효과가 생기게 됐다.


때문에 비용을 줄이는 대상은 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스타의 몸값을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몇몇 제작자가 남의 돈 수십억원을 투자 받아서는 BMW나 아우디 같은 고가의 외제 차를 몰고 다니며 흥청망청 진행비를 쓰는 행태도 강력하게 지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건 어쩌면 비본질적인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20여회에 찍을 수 있는 영화를 30여회까지 끌고 가는 비효율의 프로덕션 과정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즉 영화 제작 방식에서 현대적 매뉴얼의 도입이 시급할 것이다.


국내 최고의 배우라는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도 100만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평균 제작비를 30억원으로 줄이면 “100만도 못했어?”라는 얘기가 당당히 “100만이나 했어”로 바뀔 것이다. 이제는 그런 얘기를 듣고 싶다. 그럴 때도 됐다. 정말 그럴 때가 됐다. ▒



/ 오 동 진 | 고려대 사학과 졸업, 문화일보·연합통신·YTN·문화부 기자, 필름 2.0 취재부장, 씨네버스 편집장 역임. 현 D&D 미디어 대표, 동의대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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