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어린이 책에 시처럼 그리죠` [중앙일보]
2007 최고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에를부르흐
볼프 에를브루흐(59.사진). 독일의 그림작가다. 이름만으로 잘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힌트 하나 더. 국내에서 70만부가 넘게 팔린 어린이책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사계절)의 그린이다.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의 2006년도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인 그는 지난달말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2007년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도서전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달 26일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 참가한 그를 만났다.

이날 행사에서는 국내에도 번역된 '생각을 만드는 책'(아이들판), '커다란 질문'(베틀북)과 함께 '식인녀(Die Menschenfresserin)' '존재, 죽음과 거위(Ente, Tod und Tulpe)'등이 소개됐다.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묵직한 작품들이었다.

'존재, 죽음과 거위'는 자기 주위를 맴도는 '죽음'을 알아차린 오리가 그와 친구가 되어 체온을 나눠주고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 어른조차 외면하는 '죽음'을 어린이 그림책에서 다루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며, 삶이란 사고나 질병까지도 품고 살아갑니다. 죽음이 마냥 갑작스럽고 공포스러운 건 아니죠."

이런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그의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각국의 책을 많이 접해 다양한 세계관을 접목할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식인녀'의 내용도 기괴하다. 동네 사람들이 문을 꽁꽁 닫아 걸고 아이를 내놓지 않자 욕망을 참지 못한 식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고는 후회한다는 프랑스의 전설을 담았다. "아주 왜곡된 슬픈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이야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비해 '커다란 질문'은 그중 어린이 책답다. '나(너)는 왜 여기 있나'란 철학적 질문에 '아빠가 널 사랑하니까'라고 답하는 식으로 존재 의미를 찾게 했다. '생각을 만드는 책'은 18세기 대표적 계몽철학가인 모리츠가 쓴 책읽기.생각하기 입문서의 고전을 독창적인 그림으로 재해석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건 존재.죽음 등의 철학적 문제다.

"그림책의 임무는 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려줌으로써 아이들의 생각을 자라게 하는 거죠."

그러나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섭고 버거운 소재가 아닐까.

"게임보다는 제 그림책이 덜 무섭지 않나요?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적을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철학적 주제로 대화와 토론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이고 무거운 주제 덕분에 그의 그림은 어린이보다 일러스트 전공자에게 더 매혹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작업할 때 책상 위에서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사용한다"며 "주변의 다양한 사물, 때론 음악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포함한 '2007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전'은 올해 연말 국내에서도 볼 수 있다. 12월 28일~2008년 2월 10일 파주 헤이리 네버랜드 뮤지엄에서 열리는 순회 전시회를 통해서다.




볼로냐=글.사진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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