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당신도 속초 바닷가를 혼자 헤맨 적이 있을 것이다

바다로 가지 않고

노천횟집 지붕 위를 맴도는 갈매기들과 하염없이 놀다가

저녁이 찾아오기도 전에 여관에 들어

벽에 옷을 걸어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잠은 이루지 못하고

휴대폰은 꺼놓고

우두커니 벽에 걸어놓은 옷을 한없이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무인등대의 연분홍 불빛이 되어

한번쯤 오징어잡이배를 뜨겁게 껴안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먼동이 트고

설악이 걸어와 똑똑 여관의 창을 두드릴 때

당신도 설악의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이며 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같이 묵묵히 등을 쓸어주는

설악의 말 없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은

바다가 보이는 여관방에 누더기 한 벌 걸어놓은 일이라고

걸어놓은 누더기 한 벌 바라보는 일이라고

 

정호승 <포옹> 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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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의 저주' - 출간에 대한 주요 사고 정리

출간 프라이팬 2007/08/17 02:32 posted by 후라이빵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 우리가 '88만원 세대의 저주'라고 부르는 출간과 배포 과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들을 정리해드립니다. 이런 이유로 아직도 소매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가 없다는...)

88만원 세대는 신문사 서평이 나가고 1주일이 넘은 시점에서도 서점에 깔리지 않은, 아마 기록이라면 기록이라는, 하여간,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

아직 제대로 깔리지도 않았는데도, 알라딘 사회과학 순위에서는 5위를 하는, 또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유시민과 김주하를 제꼈는지...)

지금 출판사에서는 토요일날에는 깔리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아직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벌써...

기다리다 지치고 지쳐서, 우리는 그걸 '88만원 세대의 저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사자의 보호를 위해서 아주 민감한 것들은 좀 빼고 주요한 몇 가지만 추려보자.

1. 출판사가 바뀌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본격적으로 에디팅 작업에 들어가려고 하는 시점에, '출간 불가' 판정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길고 긴 악몽의 시작이었다.

2. 출판사를 차리다...

내용을 놓고, 생전 처음 몇 개의 출판사와 네고를 하다, 결국 선배 졸라서 출판사를 차렸다. '레디앙' 같이 왜 초짜 출판사에서 책을 내냐고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게 아니라 출판사를 차리지 않으면 초고의 큰 줄기를 건드리지 않고 내줄 출판사가 내 주위에는 없었다 (물론 나는 C급 경제학자라서 큰 출판사는 거의 모른다.) 결국 적자 매체로, 한 달은 월급을 못주고, 다음 달에는 겨우 30만원씩 줬던 가난한 좌파 매체에서 출판사를 차리게 된다.

3. 디자인할 돈이 없다...

한 번 공개되었던 표지 디자인에 대해서 사람들이 악평이 대단했던 걸로 아는데, 디자인할 돈이 없었고, 그래서 선물 출자 형태로 디자인을 맡아줄 회사가, 이 책의 미래에 출자하는 걸로 - 사실은 나중에 돈 벌면 주든지, 그걸 이렇게 표현한다 - 정리되는 데까지 엄청 시간을 들였다.

4. 교열자에게 사고가 생기다

전문적인 교열을 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전문 교열자와 계약을 했는데, 여기에서 3주가 지나갔다. 다들 교열 오기 전까지는 할 일이 없어서 손 놓고 멍하니 있었다.

교열자는 첫 주에는 몸이 아팠는지 연락이 안되었다.

그 다음 주에는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와서, 하여간 접대 같은 일을, 자신도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중대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 하여간 자세히는 모른다 - 그래서 3주가 지나갔다.

그래서 그 달에는 월급도 못 받았던 이재영이 붙잡혀서 교열을 봐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5. 기타등등, 크고 작은 사고들...

뭐, 그 중간중간에도 감기, 몸살, 기타 등등, 저자들과 에디터들에게 생길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6. 편집국장, 차를 파시다...

돈 없는 매체에서 인쇄할 돈이 없어서, 마이너스 통장, 선배한테 돈 꾸기, 은행 대출, 하여간 가난한 좌파들이 나눠서 사채만 빼고 돈 꿀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눈물나게 400만원 정도를 겨우 마련해서, 인쇄소에 넘어갔다. 그동안 이재영은 통장에 딱 만원 밖에 없는 긴급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그날은 돈이 없어서 자전거로 여의도까지 출근했다고 한다 (딴 날은 재미로...)


결정타는, 배급사에서 처음 내는 출판사라고 보증금을 다시 요구했는데, 이건 마련할 길이 없었다. 결국 편집국장이 결국 분당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할 때 쓰던 차를 팔았다고 나중에 건네 들었다. 눈물 나는 이 출간 스토리의 결정판이다. <88만원 세대>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 중고차 한 대가 팔려나갔다. 그래서 지금도 편집국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나도 한 마디도 못한다. 가장 눈물나는 대목 중의 하나이다... 지금 한국 좌파들은 현장에서 이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7. 연이은 배달사고...

처음 배포되는 날, 파주 인쇄소에서 떠난 책을 실은 차가... 이유는 모른다. 첫 번째 배달사고가 났다. 그리고 중간 배포로 떠난 월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크고 작은 배달 사고가 연이어서... 결국 책방에는 한 권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유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만 싣고 떠나면 전혀 다른 성격의 사고들이 난다는데야... 오토바이 사고도 한 건 있었다고 얼핏 들었는데, 하여간 서평이 나온 첫 주는 배달사고의 한 주였다.

그 때부터 우리는 이 책이 세상에 깔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 파라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8. 그리고 대형 사고...

배달과 관련된 사고는 앞으로 터질 사고들에 비하면 약과이다. 진짜 대형 사고는 표지 디자인에 디자이너가 새겨넣은 바코드가 현재 출간 중인 어떤 책의 바코드와 일치한다는... 그런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 같다.



바로 상단의 이 바코드가 출간된 바코드와 일치한다는... (무섭다! 666처럼...)


하여간 기계를 거치면 다른 책으로 인식되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책들이 다시 회수되고, 1쇄로 찍었던 천권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 지난 주말에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배포망을 따라서 도로 책이 회수되고 - 그나마 소매에 안 깔린게 유일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는 후문이 - 표지 디자인을 다시 바꾸는 일이 진행되었다.

물론 '88만원 세대의 저주'는 그렇게 만만하게 풀릴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배포망과의 오래된 실랭이 끝에 겨우 회수가 되었는데, 디자인팀이 전원 휴가 중...

하여간 어떻게 어떻게 문제는 해결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인쇄소가 휴가...

이 문제도 어떻게 어떻게 해결을 해서, 1쇄 천권은 폐기되고, 급하게 새로 표지를 찍은 책들이 소매 서점까지 깔리는 것은 빠르면 토요일...

관련된 사람의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거의 처음 본 사건이 이만큼 또 있다.

그 와중에 새로 찍은 책 중 400권은 알라딘에서 먼저 가지고 갔다던데, 배포사와 우연히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다는... (하여간 거의 2주 동안 알라딘은 이 책을 독점 배포하는...)


9. 그리고 마지막 사고

편집에도 중대한 사고가 많이 있는데, 단순 오탈자 문제가 아니라 악몽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줄간격, 색깔, 등등... 2쇄 때에는 그런 걸 없애기 위해서 나도 날밤까면서 다시 책을 붙잡고 교정 중인데, 이미 출간된 책이 나가자마자 도로 붙잡혀서 에어콘 없는 방에서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면서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다.

(이 사고가 뭔지 찾는 사람 선착순 1명에게는, 내가 앞으로 낼 모든 책을 한 권씩 증정하는 이벤트를 할까... 생각 중이다. 난 찾았고, 이재영은 못찾았다.)

10. 이것도 기념이다...

저자에게 원래 20권을 주는데, 요즘 내가 정신이 없어서 몇 권 안 돌리고 그냥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니까, 이건 기념으로 둬야겠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나중에 유명한 사람이 되면, 이게 바로 '88만원 세대 저주'의 흔적이다, 내 자식들이 박물관에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경제학자라서 이런 식으로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간다.)

하여간 여러 권을 출간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태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ps. '88만원 세대의 저주'가 연장된 것인지, 거의 오탈자가 없는 걸로 유명했던 개마고원도 이 책의 2편이자 속편인 해당하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서 오탈자가 나와서, 사장님이 전전긍긍...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저주의 연장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개마고원에서 오타가, 그것도 원저자가 하지 않은 오타가 나오는 것은 정말로 이례적인 일이다. 이 2권도 심각한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었는데, 1권인 <88만원 세대>에 비하면 이 책에 딸린 사고들은 사고 축에도 못낀다.

(이 두권은 1, 2권 관계이며, 쌍둥이 관계이기도 하다. 1권의 질문에 대한 답이 2권인 것으로 두 권이 디자인되어 있다. 물론 서점에서 두 권은 전혀 다른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제 이 정도는 사고로도 안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2권인데, 출판사가 나뉘면서 2권 표시도 못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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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미래예측
제임스 캔턴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김영사 / 2007년 2월
절판


현재의 흔적과 상황, 기억의 조각들을 따라가며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일은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작업이다. 미래를 예측할 때 직관력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일깨워준 사람은 세계적인 미래학의 아버지인 앨빈 토플러 교수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그의 경고 덕분에, 인류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 그 결정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할 수 있었다. 더불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선택'이 아닌 '우연'이 미래를 지배할 수도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16쪽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의학계는 벌써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수십 억 소비자 시장을 선점하고자 맹렬히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장수의학 시대를 알리는 징후로, 장수의학은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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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리포트 - 우리의 자화상, 우리의 동반자!
김선한 지음 / 김&정 / 2007년 4월
절판


(1945년 초부터 발생한 북부 지역의 기근사태) 일본 주둔군은 프랑스 총독부의 통제를 받던 8천여 명의 병력을 일시에 무장해제한 뒤 감금했다. 또한 군수물자 공급이 여의치 않자 일본군은 주민들을 동원해 멀쩡한 논을 밭으로 갈아엎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군용기 휘발유를 대신할 아주까리를 이식하기 위해서였다. 멀쩡한 논을 밭으로 무리하게 변모시킨데다 태풍으로 인한 홍수까지 연이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농촌 거주민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하노이 등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일본군 역시 구제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결국 1945년 3월부터 전쟁이 끝난 8월 말까지 불과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비공식적으로 200만~250만 명의 북부인들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됐다.-57쪽

현지 연예계에서 '대부'로 통하는 쩐빙 국립음악무용원장도 유교권에 바탕을 둔 동질감 못지않게 찬란한 문화와 숱한 외침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한 역사적 동질감도 한류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동인이라고 지적했다.-75쪽

인도차이나 반도의 맏형 격인 베트남은 이웃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포함할 경우 거의 1억 명에 가까운 소비자들을 거느린 거대 시장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문화, 역사적 동질성을 갖고 있고 인국의 65% 가량이 한류에 민감한 전후 세대 소비자들이며 연평균 7% 이상의 경제 성장으르 유지할 만큼 역동적인 시장으로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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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레터] 동업자 정신이 아쉬운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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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에는 장사 없다고들 하지요. 우리 출판계는 이번 초여름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습니다. 크기에 상관없이 신음을 내더니만 드디어 흉흉한 소문이 흘러 다닙니다. 어느 출판사에선 직원의 30%를 감원하고도 앞으로 추가 감원계획이 있다더라, 어느 곳엔 제1 금융권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더한 소문도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는 지업사에서 종이를 대주지 않기로 했다더라, 이름이 알려진 모 출판사에선 직원 월급을 못 준다더라란 풍문까지 돕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하긴 합니다.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냐”고 항의성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설사 그런 소문들이,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럴만한 상황이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출판계의 시름은 깊어갑니다.

이런 상황에 차마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력이 있는 출판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내세워 유망 저자들을 싹쓸이하려 한다는 겁니다.

 그 조건이 기가 막혔습니다. 모모 신문에 광고를 내주겠다, 초판 판매를 보장하고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2, 3주간 머물게 해주겠다는 내용이랍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출판인은 “이제 소규모 출판사는 설 자리가 없다”며 한숨을 쉬더군요.

전해 들은 이야기라 “설마, 그렇게까지야…”싶었죠. 하지만 며칠 뒤 만난 어느 저자는 지난해 같은 출판사에서 “2만 부 인세는 보장한다”며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더군요.

 출판도 사업이니 있는 집에서 저자들을 싹쓸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준다는 데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죠. 그런데 입맛이 썼습니다. 인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다는 그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무리한 마케팅을 하자면 책값도 올려야 하고, 팔리는 책 위주로 내다보면 독서문화를 왜곡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소규모 출판사에서 키워낸 저자들을 그렇게 빼가는 것은 몰염치한 행위입니다. 남의 ‘재산’을 빼돌리는 격이니까요.

 프로 스포츠에서 빈볼이나 과격한 파울을 보면 ‘동업자 정신’이 아쉽다고들 하지요. 출판계에서도 동업자 정신을 기대하면 무리일까요? 책끼리는 어차피 경쟁관계도 아니고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마당에 말입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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