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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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님의 저서 가운데 이러한 '잠언' 형태의 책을 보다보면, 문득 예전과 중첩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또한 '잠언'란 압축된 문장 속에서 강한 울림을 주는 의미가 부각되어야 할 텐데, 극히 사견에 가까운 이야기나, 예를 들어 '여자들을 군대 보내지 말아야 할 이유' 등은 단순한 유머에 그치기도 하여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공명을 일으키는 글들도 많고, 이 책의 장점 가운데 두 가지. 언제 열어도 향기가 나는 독특한 책이라는 점과, 우리 토종물고기들을 알기 쉽게 세밀화로 그려낸 정태련님의 공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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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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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사람의 성공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99쪽

운이 꼬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초래한다. 하지만 헤어나는 방법이 있다. 일부러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무조건 베풀어라. 그러면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된다.-211쪽

(구토 유발자) 등산을 하실 때 '진달래'와 '철쭉'을 혼동하시는 것쯤은 애교로 봐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글을 쓰실 때 '하는데'를 '하는대'로 쓰시거나 '인간의'를 '인간에'로 쓰시는 경우는 참을 수가 없어요. 심지어 당신은 '은'과 '를'조차도 구분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면서도 당신이 뉴요커라는 자부심을 과시하면서 대화 중에 뻑 하면 고명처럼 삽입하는 영어. 제게는 구토감을 유발시켜요.-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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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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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저자의 죽음 운운하는 게 결국에는 노자와 장자의 딜레마를 되풀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아프리카든 어디든 똑똑한 놈들의 생각은 다 비슷하니까.
이런 사소한 부분들에서 일치할 때마다 서로에게 고무되어 마치 금방이라도 대작을 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런저런 논쟁들을 하면서 우리는 동시대의 소설가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데에도 일치했다. 그와 나는 동시대의 소설들을 분류하다가 우연히 보르헤스적, 마르께스적이라는 낱말을 사용했고, 일단 그렇게 구분을 하고 나니 모든 소설들이 그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성석제는 보르헤스로 위장한 마르께스적 소설가이고 신경숙은 마르께스로 위장한 보르헤스적인 소설가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46쪽

장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을 나오던 그의 귓불에 장의 목소리가 는질는질 매달려 있었다. 고깃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장은 물기 가득한 벌건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서 뭘 했냐고 물었지? 이래봬도 인민해방군 장교이지 않았갔어! 장은 북조선과 남조선이 전쟁을 하면 다시 인민군에 들어가서 북을 도와 남을 쓸어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조선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짐승도 이보단 낫지 않갔어? 보라우, 우리는 배가 고파도 사람을 그렇게 짐승 취급은 안해.-89쪽

그가 모르는 사이 일년마다 한번씩 계약이 갱신되었고 그렇게 두 해가 흘러갔고 삼년 전 그날, 해고를 통보받은 날 그는 자신의 몸에 깃든 뱀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다.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자각 때문이었을까. 그는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했다. 때로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잔업수당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으나, 사실은 더 싼 가격에 몸을 팔아줄 숙련공이 나타날 때까지 대체물로 살았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그도 술꾼이 되어 있었다. 그의 뱀도 그의 술을 받아먹으며 몸집을 키워왔으리라.-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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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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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고교시절 이후의 경험을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비록 시대가 이미 40여 년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도 많은 의미를 깨닫게해 줄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늘 시대상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고교시절 발표한 <입석부근>이나 <탑>, 그리고 <객지>와 <삼포 가는 길>,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기억을 풀어낸 장편 <무기의 그늘>, 80년대를 회상케하는 <오래된 정원>,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한 <손님>과 <바리데기>. 그리고 이 책 <개밥바라기별>.

아마도 이 책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삶과 생각은 <입석부근>과 <객지>의 중간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내가 그때의 그 모퉁이에서 삐끗, 했던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필연이었다. 그 길은 내가 어릴 적부터 어렴풋하게, 이건 빌딩가의 대로처럼 너무도 뻔하고 획일적이라고 느껴왔던 삶으로 가게 될 확실한 도정이었다. 그러나 벗어났을 때의 공포는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다.'(185쪽)

세류에 따라 흘러갈 것이 뻔한 삶을 거부하는 태도, 그러나 그러한 일탈이 주는 '공포' 역시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준이가 고뇌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발견해가는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 개밥바리기별은 그러한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비춰주는 '상징'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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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절판


아침에 등교할 적마다 두발검사에 복장검사를 하질 않나 어떤 교장은 부임하자마자 전교생의 바지 호주머니를 꿰메도록 지시했다. 추우면 참되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다니면 단정해 보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우리는 교복이 일제시대에 생겨난 것도 알고 있었고, 교모를 쓰고 목까지 올라오는 높은 칼라에 학년 표지와 배지를 꽂고 금속 단추를 달고 이름표를 붙이는 복장이 십구세기 유럽 제국주의 시대의 군복을 베낀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다 매주 월요일에 군대처럼 열병식으로 조회를 했다. 당연히 학생회장은 대대장이고 우리는 졸병인 셈이었다. 머리털은 죄수들같이 언제나 하얗게 속살이 보이도록 박박 깎아야했다. 어떤 애들은 괜히 모자를 찢고는 재봉실로 여러 겹 꿰매기도 하고 바짓가랑이를 나팔모양으로 늘렸다가 홀태바지로 줄이기도 했다.-49쪽

네 아버지도 어려서 만주를 여행했다고 하시든데, 거긴 땅두 넓구 나쁜 사람들두 많았으니 참 대단한 거지. 여기야 교통두 그럴듯하구 가봤자 손바닥 안이니까 다녀볼 만하겠다. 언제 떠나니?-141쪽

이런 길에서 탈락되었던 청소년기의 어느 때부터 나는 저절로 알아차렸다. 이들이 얽어내는 그물망 같은 사교가 서로 직조되어 일정한 그림으로 나타난, 이를테면 연애와 결혼, 성공과 실패, 출세와 낙오, 사랑과 야망 따위의 전형들이 결국은 한강을 둘러싼 자본주의 근대화 사회의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음을. 아니면 로스엔젤레스와 뉴욕에까지 연결되고 그 길은 더욱 확장되고 뚜렷해질 것이었다.
어쨌든 내가 그때의 그 모퉁이에서 삐끗, 했던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필연이었다. 그 길은 내가 어릴 적부터 어렴풋하게, 이건 빌딩가의 대로처럼 너무도 뻔하고 획일적이라고 느껴왔던 삶으로 가게 될 확실한 도정이었다. 그러나 벗어났을 때의 공포는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185쪽

약속된 날짜에 선창으로 가서 선주와 계약을 하고 오징어잡이배를 탔다. 대위와 나는 우의와 장화와 낚시 물레 등속을 어구상점에서 세내어 배에 올랐는데 각자가 잡은 만큼 선장과 선주에게 떼어주고 나면 나머지는 제 몫이었다. 대위가 내게 오징어잡이 요령을 가르쳐주면서 말했다.
뭘 하러 흐리멍텅하게 살겄냐? 죽지 못해 일하고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며 살 바엔, 고생두 신나게 해야 사는 보람이 있잖어.-259쪽

만선이 되어 돌아오는 새벽이면 갈매기떼가 요란하게 울면서 따라왔다. 대위와 뱃전에 나란히 서서 파랑새담배 한 대씩 물고 멀리 가물거리는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던 때, 나는 내 힘으로 살고 있다는 실감 때문에 담배연기를 길고 거세게 내뿜곤 했다.
우리 두 병이야.
대위가 회계에 얘기하고 소주 두 병을 박스에서 뽑아다 아직도 꿈틀대는 오징어 한 마리를 식칼로 쑹덩쑹덩 서너 토마그로 큼직하게 썰어서는 쟁반 위에 던져놓았다. 우리는 병째로 들고 꿀꺽이며 소주를 넘기고 오징어를 초장에 찍어 우물우물 씹었다. 그제서야 일 끝난 뒤의 나른한 피로가 기분 좋게 어깨와 장딴지로 퍼져갔다.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260쪽

대이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면 나는 좀 가만 있으라고 짜증을 냈다. 땅거미 질 무렵의 아름다운 고즈넉함을 더욱 연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라, 저놈 나왔네.
대위가 중얼거리자 나는 두리번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물어버린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리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270쪽

도심지의 불빛들이 멀어지면서 어두운 들판이 다가왔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여정에서 문득 이제야말로 어쩌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출발점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으며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따위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 기차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터널을 통화하는 중이었다.-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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