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급 앵커들 파업 참여…방송의 꽃에서 파업의 꽃으로
“정부·여당 아무런 의견수렴없이 밀어붙여”
“거대자본 방송잠식 땐 국민에 칼날 될 것”
 
 
한겨레 노현웅 기자
 








 

» 전국언론 노동자연합 SBS본부는 26일 오전 목동 SBS사옥에서 한나라당 언론 악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파업투쟁 참여하며 뉴스 앵커등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검은색 옷을 입는 ‘블랙 투쟁‘을 벌인다. 최영주 아나운서등 동료들이 악법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용일 기자yongil@hani.co.kr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왔다. 아나운서는 뉴스를 보도하는 ‘방송의 최전선’으로서 당연히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오늘부터 ‘블랙투쟁’을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노조의 뜻에 맞춰 최선을 다해 돕겠다.”(최영주 <에스비에스> 아나운서협회장, 에스비에스 파업 출정식에서)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등 방송사 중심으로 26일 시작된 총파업에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간판급 아나운서들이 대거 참여해 투쟁 열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문화방송의 경우 오전 6시 ‘뉴스투데이’를 맡은 박상권·이정민 앵커를 비롯해 ‘뉴스데스크’의 박혜진, 주말 ‘뉴스데스크’ 손정은, 평일 ‘마감뉴스24’ 김주하, 평일 낮 12시 ‘뉴스와 경제’의 최율미씨 등 시청자에게 낯익은 뉴스 진행자들이 모두 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전국언론노조 결의대회에서 사회를 본 문화방송 박경추 아나운서는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80년대로 돌아갈 것 같다. 80년대 이후로 싸움을 통해 얻어 온 민주주의가 몇개월 만에 무너지는 것 같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사회까지 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주하 앵커는 이날 결의대회에 앞서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파업이라는 형태의 투쟁이 다른 경우는 몰라도 이번만큼은 적절한 투쟁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견제장치에 대한 고려와 의사 수렴 과정 없이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앵커와 기자 활동을 모두 접고 파업에 전면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노조의 결정을 따라 (총파업 투쟁에)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쇠고기 굴욕협상 보도로 조·중·동과 정권으로부터 호되게 두들겨 맞은 ‘피디수첩’ 제작진도 파업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김보슬 피디는 “피디수첩 보도와 총파업은 별개 사안이며 한 사람의 조합원으로서 나왔다”고 담담한 심정을 밝혔다. 석달 남짓 검찰의 강제구인에 대비해 회사에서 숙식생활을 한 이춘근 전 피디수첩 피디는 “한나라당과 족벌 신문, 재벌은 문화방송이라는 존재를 항상 불편하게 생각해 왔다”며 “우리는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항상 권력을 비판하는 방송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디수첩 개편 뒤 새로 진행을 맡은 문지애 아나운서는 “파업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고 짧게 결연한 의지를 비쳤다. ‘뉴스후’ 김주만 기자는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은 문화방송의 민영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칼날이 국민과 누리꾼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파업을 결정하게 됐다. 거대 자본이 방송을 잠식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지금 당장은 경제 상황이 안좋아 그 정도 자금 동원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 문을 열어두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파업에 동참하지 못한 간부급 한 아나운서도 “87년 입사 이후 10번의 파업 중 처음으로 이번 파업에 불참하게 됐다. 후배들이 당당하게 싸울 수 있도록 팀장으로서 대체인력 지원 등에 최대한 뒷바라지하겠다”고 애정 어린 지지의 마음을 전했다.







 


노현웅 권귀순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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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12-2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넘겨주려면, 교육에 이어 언론에까지 미치고 있는 이 미친 바람의 실체를 명확히 구분해내야 한다.
 

삶의 밑불 지펴올릴 희망의 연대
올해의 책(번역서)
 
 
한겨레  
 








 

» 〈죽음의 밥상〉
 
끔찍한 사육과 도살로 파괴되는 인간성

〈죽음의 밥상〉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산책자·1만5000원

육식 위주의 ‘전형적인 현대식 식단’은 물론이고 유기농 식품을 먹고 현지재배 채소도 즐겨 구입하는 ‘양심적인 잡식주의’도 답이 아니다. 답은 생선도 우유도, 심지어 달걀이나 벌꿀도 먹지 않고 오직 채소만 먹는 ‘완전 채식주의(베건)’. 왜 그런지를 실증하기 위해 글쓴이들은 모델이 된 가족들을 관찰하고 식품 생산·유통·소비 현장을 찾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좁은 철창에 쑤셔넣은 사육동물에게 합성호르몬과 항생제를 투입하고 산 채로 도살하는 처참한 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초점은 육식의 비윤리성. 굳이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충분히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 왜 끔찍한 짓을 계속하며 인간성마저 스스로 파괴하느냐고 그들은 묻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항공사진과 사유가 결합된 ‘지구 속의 한국’

〈하늘에서 본 한국〉


 

» 〈하늘에서 본 한국〉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사진, 이어령·존 프랭클 글, 조형준 옮김/새물결·9만7000원


이방인이 상공에서 바라본 한국. 이 특이하고 전례없는 작업을 프랑스의 저명한 사진가가 5년여에 걸쳐 수행했다. 지구인의 시선으로 찍은 2만여 장의 항공사진. 이 가운데 160여 장을 골라 대형 컬러판 책으로 엮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마라도까지, 서해에서 동해로 펼쳐진 자연, 그리고 서울 도심과 세계 최대의 조선소, 거기에 깃든 사람들 모습.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이 유네스코의 후원 아래 1994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하늘에서 본 지구-우리 지구의 초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하여’의 일환이다. 이어령씨 등이 쓴 글은 단순한 사진설명이 아니라 한국을 사유하는 풍성한 에세이로도 읽힌다. 한승동 선임기자





민주주의의 토대, 유럽좌파의 역사 총정리

〈더 레프트 1848-2000〉


 

» 〈더 레프트〉
 

제프 일리 지음·유강은 옮김/뿌리와이파리·5만원

1848년 혁명에서 러시아 혁명과 1968년 혁명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유럽 좌파의 역사를 정리했다.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19세기 생디칼리즘에서 20세기 후반 신사회운동에 이르는 급진주의의 다양한 흐름을 좌파라는 범주 안에 포괄했다. ‘좌파=사회주의’의 도식에서 벗어나 포괄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틀 안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민주주의가 타협·합의·번영의 결실로 등장한 게 아니라, 투쟁·봉기·반란 같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통해 형성된 역사적 좌파의 성취물임을 긍정함으로써 사회주의 몰락으로 초래된 정치적 무력감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이슬람 역사와 정신, 문명의 세밀도

〈이슬람의 세계사 1·2〉


 

» 〈이슬람의 세계사 1·2〉
 

아이라 라피두스 지음·신연성 옮김/이산·각 권 3만3000원

2001년 9·11 사건 이후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는 책들이 여러 종 출간돼 이 문명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는 교정자 노릇을 해주었다. <이슬람의 세계사>는 이 교정 과정을 아우르고 매듭짓는 작업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좋을 책이다. 이슬람 역사에 관한 현존 최고의 권위자인 지은이는 이슬람 문명의 출생에서부터 21세기 벽두까지 1400년 역사를 통시성과 공시성의 축 위에 올려놓고 분석하고 종합했다. 복잡한 이슬람 역사의 줄기를 잡고 그 속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을 포착했다. 그 결과로 1600쪽에 가까운 이 책은 이슬람 문명에 관한 넓고도 세밀한 역사 지도가 됐다. 고명섭 기자





자연의 아들이 어쩌다 혁명가로 살았나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파블로 네루다 지음·박병규 옮김/민음사·2만5000원

네루다는 자연의 아들로 태어나 사랑의 시를 쓰고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은 칠레 남부의 개척 도시에서 태어난 네루다가 열정적인 연애시와 초현실주의적 실험시로 이름을 날리다가 스페인 내전을 거치면서 민중시를 쓰는 공산주의자로 변모하고, 1970년 대통령선거에서 좌파 인민연합 단일후보 살바도르 아옌데 지지 유세를 벌이며, 아옌데의 당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지만, 미국이 사주한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아옌데 자신은 대통령궁에서 피살된 1973년 9월11일의 상황까지를 시적인 문체로 풀어놓는다. 유려한 번역이 원작의 맛을 잘 살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카를 융의 내밀했던 시간까지 파고든 대작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


 

»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
 

디어드리 베어 지음·정영목 옮김/열린책들·4만8000원

올해는 카를 융 관련서 가운데 중요한 책들을 어느 해보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해였다. <융 기본 저작집>(전 9권·솔)이 완간됐고, 융이 말년에 쓴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김영사)이 지난해 말에 출간돼 독자와 만났다.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는 융 관련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책이다. 1166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융 전기는 분석심리학 창시자의 생애와 사상을 정밀하게 파고든 저작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보관된 융 관련 문서를 꼼꼼하게 파헤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내밀한 삶을 드러냈으며, 프로이트의 가장 아끼는 제자에서 학문적 적대자로 바뀌는 과정도 세밀하게 기술했다. 매혹적이고 압도적이고 모순적인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대작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떼 지성’이 제국의 그물을 찢으리라

〈다중-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 〈다중-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서창현·정남영·조정환 옮김/세종서적·2만5000원

하트와 네그리를 일약 세계적 이론가로 세운 <제국>의 내용을 보충하고 확장하는 책이 <다중>이다. 21세기 지구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제국 그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제국>의 진단이라면, <다중>은 그 제국 안에서 제국의 실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중이라는 개념으로 잡아낸다. 다중은 제국의 소산이지만 동시에 제국의 그물을 찢고 지구적 차원의 변혁을 일으킬 주체이기도 하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다중의 특성인 ‘집단지성’ 혹은 ‘떼지성’이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돼 새로운 차원의 집합적 지성을 창출한다는 이들의 이론은 올해 국내 최대사건인 ‘촛불저항’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고명섭 기자





지구멸망과 인류의 구원 다룬 묵시록적 걸작

〈로드〉


 

»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1000원

코맥 매카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개봉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진 미국 작가다. <로드>는 매카시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2006년 출간돼 대단한 찬사와 열광을 이끌어냈으며, 지난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얼마전 영화로 개봉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만드는 지옥도를 그린다면, <로드>는 그 지옥보다 더한 지구 멸망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암회색 풍경을 통과해 남쪽으로 가는 여정을 축으로 삼은 이 소설은 암흑과 절망의 마지막 지점까지 독자를 끌고간다. 인간성의 물기가 최후의 한 방울까지 말라버린 야수의 시대에 인류의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묵시록적 소설이다. 고명섭 기자





자본주의 경제 해부학서 ‘재번역 숙원’ 이뤄

〈자본 I-1·2〉


 

» 〈자본 Ⅰ-1·2〉
 

카를 마르크스 지음·강신준 옮김/길·3만5000원

19세기 중반 사회주의 운동의 유력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던 마르크스를, 인류사에 가장 심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 반열에 올려 놓은 ‘자본주의 경제의 해부학서’. 1980~90년대 이론과실천과 비봉출판사에서 간행된 바 있는 <자본>을, 독일어판을 모본 삼아 재번역했다. 번역자는 이론과실천판의 번역에 참여하고, 해설서를 집필하는 등 20년 넘게 <자본> 연구에 매진해 온 마르크스 경제학의 권위자다. 비봉판이 영문판을 번역한 것이라면, 이론과실천판은 독일어본에 기초했으나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간된 것이란 점에서, 재번역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세영 기자





카잔차키스, 그 투쟁과 조화의 기록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안정효 이윤기 외 옮김/열린책들·전 30권 각 권 1만800원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한 카잔차키스의 주요 작품들은 일찍부터 국내에 번역되었다. 정신과 사유보다는 몸과 행동을 중시하는 조르바의 ‘생철학’은 숱한 아류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아랍계 아버지와 그리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의 세계는 단일하다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것이었다. 남성성과 여성성, 투쟁성과 온후함, 외향성과 내향성이 카잔차키스라는 한 몸 안에 깃들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인류의 대표선수라 할 만했다. 그는 평생을 영혼과 육체의 갈등을 통한 조화를 추구했으며, 30권의 전집으로 갈무리된 그의 문학은 바로 그 투쟁과 화해의 기록과도 같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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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12-2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한 책 한 권..
 

‘어둡고 험한 시대’ 격랑 건너는 법
올해의 책(국내서)
 
 
한겨레 김일주 기자 이세영 기자 한승동 기자
 








 
지난 1년 출판계는 10년 전 외환위기 시절보다 더 험한 최악의 불황을 겪었다. 불황의 골이 내년에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사람들 가슴은 더욱 시리다. 그런 역경 중에도 출판인들은 양서로써 ‘어둡고 힘겨운 시대를 건너는 법’을 이야기하려 했고, 독자들은 이 책들과 더불어 궁핍한 시기를 견디고 용기를 얻었다.

시대를 진단하는 책, 희망을 찾아가는 책, 마음을 덥혀주는 책들이 있었다. 지난 1년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또 우리 사회에 빛과 힘을 준 책들을 선별해 국내서 10종과 번역서 10종으로 나누어 싣는다. 종수를 한정하고 장르를 안배하다보니 양서인데도 어쩔 수 없이 빠진 책들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한겨레> ‘책과생각’에 칼럼을 쓰는 과학책 번역가 김명남씨, 도서평론가 이권우씨, 출판평론가 최성일씨,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그리고 <한겨레> 책·지성팀 한승동·최재봉·고명섭·이세영·김일주 기자가 ‘올해의 책’ 선정에 함께했다.












■ 자기 객관화, 행복하자는 수작이야

〈건투를 빈다〉
김어준 지음·현태준 일러스트/푸른숲·1만5800원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가 <한겨레> ‘esc’ 등 매체에 연재한 상담 기록을 묶고 중간중간 상담 주제와 관련해 쓴 에세이를 섞어 엮었다. 주제 불문, 장르 불문 고민에 ‘따뜻한 직설법’ 또는 ‘따뜻한 독설법’으로 답하며 상담자의 심리를 냉혹하게 파헤쳐, ‘찌질한’ 자신까지 객관화해 온전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주름처럼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근육처럼 운동해야 생기는 자기 객관화 능력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행복할 수 있는 힘은 애초부터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거, 그러니 행복하자면 먼저 자신에 대한 공부부터 필요하다는 거, 이거 꼭 언급해두고 싶다.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하자는 수작 아니더냐.” 김일주 기자




■ 유머와 위트로 읽는 진화생물학





 

» 〈다윈의 식탁〉
 
〈다윈의 식탁〉
장대익 지음/김영사·1만3000원

찰스 다윈에게서 기원하는 진화생물학의 흐름과 쟁점을 ‘가상논쟁’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르원틴, 에드워드 윌슨 등 진화생물학의 고수들이, 급서한 20세기 최고의 진화론자 윌리엄 해밀턴을 기리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대 뉴컬리지 예배당에 모인다는 상황 설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굴드팀·도킨스팀으로 패를 나눠 벌이는 엿새간의 가상 논쟁은 진화생물학의 핵심 주제를 유머와 위트가 담긴 살아 있는 이야기로 전달한다. 논리와 설득력을 무기로 벌이는 학자 집단의 치열한 논전 속에서 과학적 지식 또한 끊임없이 진화해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세영 기자


■ 신자유주의 질환 ‘대중용 처방전’





 

»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부키·1만3000원

국방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불온도서 딱지를 붙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삽시에 그 책 판매량을 수만부나 늘려준 독서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무언의 저항처럼 읽혔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는 민영화 등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내세우는 갖가지 신자유주의의 장점들이 얼마나 허구인지 좀더 쉽게, 더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장하준표 신자유주의 비판의 ‘대중용 버전’이다. 쟁점 항목별로 조목조목 정리한 신자유주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안 제시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건재한, 역사적 사실들에서 뽑아올린 명쾌한 실증력. 장하준의 진단이 옳았다는 건 미국발 금융공황으로도 이미 입증된 셈이 아닌가. 한승동 선임기자


■ ‘민족사적 자멸극’ 바닥 치고 비상하기





 

» 〈밤은 노래한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작가 김연수는 실재와 허구, 진실과 거짓, 안과 밖의 경계를 끊임없이 물고늘어진다. 오랫동안 붙들고 만져 온 끝에 책으로 내놓은 장편 <밤은 노래한다>에서 그는 낮과 밤의 경계를 문제삼는다. 주인공 김해연은 사랑했던 여인이 죽음을 앞두고 보내온 편지를 보면서 익숙하고 편안한 낮의 세계에서 낯설고 불편한 밤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그것은 김해연 개인의 밤이자 민족사의 밤이기도 했다. 1930년대 만주의 조선인 독립투쟁가 사회를 강타한 ‘민생단 사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자멸극이 그 밤의 이름. 그 밤의 이야기는 해연에게나 민족에게나 몰락과 환멸의 서사이지만, 그렇게 바닥을 치고서야 비로소 비상과 희망의 꿈 역시 가능한 법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이동파·예술세계파 등 러시아 미술 1천년사




 

» 〈러시아 미술사〉
 
〈러시아 미술사〉
이진숙 지음/민음in·2만2000원

현지 유학파가 쓴 국내 첫 러시아 미술사 책이다. 12세기 이콘화에서 발원해 이동파, 아방가르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러시아 미술 1000년사를 ‘예술의 사회사’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작품 구석구석을 살피는 시선의 치밀함과 러시아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삼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누락시킨 러시아 거장들의 역작들을 21세기 한국의 독자 앞에 호출했다. 이동파·예술세계파 등 러시아 근대 미술의 정수를 풍부한 도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다져진 글쓴이의 필력이 책에 대한 몰입도를 배가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북녘 토박이말 아우른 어린이 말 사전





 

» 〈보리국어사전〉
 
〈보리국어사전〉
윤구병 감수·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보리·4만5000원

초등 교과서·좋은 어린이책·학급문고에서 모은 말과 북녘 토박이말 800여개 등을 총망라해 4만개가 넘는 방대한 낱말을 두툼한 1500쪽 사전에 실었다. 책을 감수한 윤구병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1983년 이오덕 선생이 이끌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국어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사전은 2001년부터 꼬박 7년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됐다. 조붓하다(조금 좁은 듯하다), 희붐하다(날이 새려고 빛이 희미하게 돌아 조금 밝다) 등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붙잡아 모았고, 남북이 다르게 쓰는 말도 2500개나 실어 남과 북의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사전을 만들었다. 김일주 기자


■ 단 한줄 글쓰기도 나를 치유한다




 

» 〈치유하는 글쓰기〉
 
〈치유하는 글쓰기〉
박미라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단 한 문장으로도, 서툰 글솜씨로도, 아무렇게나 끼적인 낙서로도 치유의 효과가 나타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첫 편집장을 지내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감정치유 에세이 <천만번 괜찮아> 등의 책을 쓴 지은이가 ‘치유하는 글쓰기’ 강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글쓰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들려주고 글쓰기로 치유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치유’는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히 용서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미친년 글쓰기’, ‘셀프 인터뷰’, ‘무의식적 글쓰기’ 등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의 글이 “온몸으로”, “심장으로” 글을 쓰라는 지은이의 조언과 함께 실렸다. 김일주 기자


■ 사회 파행 낳는 ‘신흥 법률귀족’ 고발





 

» 〈법률사무소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앤장〉
임종인·장화식 지음/후마니타스·1만2000원

이른바 ‘1987년 체제’ 20여년간 진행된 민주화·자유화, 신자유주의 정책 최대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다수 국민의 삶을 끝없는 불안과 곤궁으로 몰아가고 있는 구조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나가는 법률사무소의 유별난 행태를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가장 인상적으로 고발한 책. 정부 고관들과 사법 수장들, 그리고 동창과 연수원 동기들과 직장 선후배들까지 총동원해 론스타·소버린·칼라일·골드먼삭스 등의 외국 투기자본과 삼성 등 국내 부자들의 이해를 ‘합법적으로’ 대변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21세기 신흥귀족’들의 특권적 철옹성 쌓기와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파행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묻는다. 그들은 시민의 벗인가 적인가, 국가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한승동 선임기자


■ 역사에서 퍼올린 아날학파적 희망





 

» 〈대항해 시대〉
 
〈대항해 시대〉
주경철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2만3000원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유럽 문명이 전지구적 지배력을 장악한 것은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팽창은 대부분 전쟁과 폭력, 충돌과 갈등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 그럼에도 유럽의 절대 우위가 확정되는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대항해 시대>가 뛰어난 점은 그것을 추상적 언설이 아니라 방대한 사료와 이론을 구사하며 매우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은 일방적이었지만 역사의 진행은 일방적으로 흘러간 적이 없으며, 피해자들의 주체적 대응이야말로 세계사를 재창출한 동력이었다. 아날학파의 세례를 받은 지은이가 역사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한승동 선임기자


■ 다문화 가정 다룬 청소년판 난쏘공





 

» 〈완득이〉
 
〈완득이〉
김려령 지음/창비·9500원(양장)·8500원(반양장)

올해 출판계에 분 청소년문학 돌풍을 선두에서 이끈 화제의 성장소설이다. ‘난쏘공’의 난쟁이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카바레 ‘삐끼’ 난쟁이 아버지, 어릴 때 집을 나가 얼굴도 모르는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자란 완득이가 괴짜 담임 똥주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장애인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다문화 가정 문제 등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행동은 괴짜여도 속 깊고 유머 넘치는 담임 똥주 캐릭터와 열일곱 살 완득이의 꾸밈없는 서술이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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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12-2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은 두 권, 구입해놓은 책은 세 권이니...

소나무집 2008-12-2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책 두 권이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12-23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쌓아놓기만하고 읽지 못한 책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닫힌 학교’ 앞 학생·교사들 눈물바다
학교쪽 봉쇄…교장, 아이들 손팻말도 찢어

장수중, 23일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 승인
 
 
한겨레 김성환 기자 정민영 기자 박임근 기자
 








 

»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파면 통보를 받은 최혜원 길동초등학교 선생님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이들이 보내온 사진을 들어보이며 울먹거리고 있다. 닫힌 교실문과 뜯긴 컴퓨터, 셔터가 내린 복도문 등이 담겨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일제고사 해직교사’ 출근투쟁


18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초등학교 본관 건물 앞.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교사 최혜원(25)씨의 첫 ‘출근 투쟁’은 끝내 눈물바다로 변했다. 최씨는 이날 아침 8시께 학교 정문 앞에서 담임을 맡았던 6학년 2반 학생들과 학부모 등 20여명과 함께 ‘부당 해임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오전 8시40분께 집회를 마치고 학생 10여명과 함께 교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학교 쪽은 건물 중앙현관 출입구를 아예 걸어 잠갔다. 현관을 사이에 두고 30분 남짓 실랑이를 벌였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최씨와 학생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한동안 눈물을 쏟았다. 임아무개(13)양은 “아침에 가져가려고 전날부터 만들어 놓은 손팻말을 교장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다 찢어버렸다”며 울먹였다. 김아무개(13)양은 “교문 앞에서 다른 선생님에게 막힌 우리 선생님을 보면서 슬프고 무서웠다”고 했다. 이 학교 김태영 교장은 “새 담임교사가 배정된 상황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통제했다”고 말했다.


‘일제고사 교사 해임’ 길동초교 최혜원 교사 출근투쟁 첫날








최씨는 두 시간 남짓 만에 발길을 돌렸지만, 학생들은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보건실에 모여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줘 마음이 아프고 죄스러워요. 중징계를 내린 것에 화가 치밀고, 현관 안에서 팔짱을 낀 채 내다보던 동료 교사들의 냉정함이 더 서러웠어요.” 최씨는 “힘들고 괴롭지만 출근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학교 쪽이 연 6학년 2반 학부모 총회에서도 ‘부당 해임’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총회에 참석한 학부모 이아무개(38)씨는 “졸업 때까지만이라도 최 교사의 징계를 미뤄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 쪽은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회의에 참석한 학부모와 학생들 이름을 일일이 적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총회는 이번 일로 상처받은 학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쓰다듬기 위해 연 것”이라고 해명했다.

파면·해임된 교사들에 대한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와 성명도 잇따랐다.

‘일제고사 관련 부당징계 저지 장수군대책위원회’와 학부모들은 이날 성명을 내어 김인봉 장수중학교 교장 징계 움직임에 대해 “학부모들의 선택권을 존중한 장수중 교장에 대한 부당 징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전북도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이날 장수중은 23일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고 체험학습을 하는 것을 승인했다. 전교조 부산·충북·울산지부 등도 지역별로 1인시위, 농성, 모금운동 등을 벌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날 성명을 내어 “편지 형태로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안내했던 교사들을 학교에서 몰아낸 것은 학교의 자율권과 학부모·학생의 선택권을 강조해온 시교육청의 입장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며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대한불교청년회 등 10개 불교단체들은 “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겨 평화와 공생의 감수성을 죽이고, 작은 저항이나 반론은 힘으로 짓밟는 것이 교육당국이 할 짓이냐”며 비판했다. 김성환 정민영, 전주/박임근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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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14>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그들만의 경제학' 지상으로 끌어내린…'영원한 녹색당원'

관련이슈 : 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20081217003444



  • ◇생태경제학자인 우석훈 교수는 “노동 이외의 소득을 갖는 것은 개인적 신념이나 철학에 어긋난다”며 부동산 투기나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허정호 기자
    우석훈은 2008년 한국 경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젊은 지성인이다. 그가 만들고 표현한 문구들은 어느새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강력한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88만원 세대’, ‘생태경제학’ ‘8자 형 사회’라는 말들은 언론에서는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자리했다.

    그는 ‘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에서 “한국이 주거공간, 교육기관, 시장의 세 가지 부문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이 완전히 분리되는 8자 형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피라미드형 경제에서 중산층이 두터운 마름모형 경제를 지나서, 중남미형 경제의 특징인 8자 형 경제로 들어가고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이다. 최근 내놓은 ‘괴물의 탄생’(개마고원)에서는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를 인정하고 호혜성과 명예가 담보되는 3개 부문의 역할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우석훈 교수는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만난 학자 중에서 가장 젊은 학자다. 1968년생으로 86학번이다. 극단의 흐름에서 이탈한 기분 좋은 학자다. 경제분야의 책들이 딱딱한 이론을 담거나 재테크의 실용 측면만 부각하는 현실을 뛰어넘었다. 나라의 경제와 정책이 개인의 실생활에 생각보다 많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한 저자이기도 하다.

    #흔치 않은 저술 예고제

    비판적 시선이 담긴 눈으로 한국 경제와 자신의 미래를 조망하려는 이들은 먼저 그의 책을 찾게 된다. 그의 다음 저작을 기대하는 ‘기다림의 고통’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프로야구의 선발투수 예고제처럼 다음 저작물을 미리 알리고 있기에 독자와 출판계 양쪽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저술 예고제는 다음 책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독자에 대한 책임감도 가미됐을 것이다.

    ‘저술 일정표’대로라면 그는 한국 경제와 사회를 논하는 12권의 책을 내놓게 된다. 크게 세 부분이다.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에서 시작해 ‘생태 경제학’을 거쳐 ‘국가 기본 시리즈’를 통해 마무리할 생각이다. 4권으로 완간된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면 ‘생태 경제학’ 시리즈는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탐색이다. 완결판인 국가 기본 시리즈는 드러난 문제점의 해법을 제시하는 방법론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번 겨울방학에 시리즈를 내놓는 우 교수는 되도록 많은 시간과 역량을 투입할 생각이다.

    “글을 쓸 때는 한없이 편합니다. 책을 쓰면서 다시 생각하게 돼 ‘눈’이 커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제가 쓴 책을 읽고 연락하는 독자들을 생각하면 가능한 쉽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됩니다.”

    고등학생에서부터 70대 남성 독자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의 저술 태도는 될 수 있으면 도표를 많이 넣으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읽기 쉬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그는 기본서만 50종 넘게 읽고 참고한다.

    그는 전형적인 ‘올빼미 형’ 학자이며 저술가이다. 집중력 확보를 위해 그가 글을 쓰는 시간은 자정에서 이른 아침까지다. 이 시간에는 쓰는 데 온 정신을 몰입할 수 있다. 내용을 갖춘 다작을 내놓는 그가 첫 책을 세상에 선보인 것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10년이 지난 뒤였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생태경제학

    첫 책 ‘아픈 아이들의 세대’(뿌리와이파리)는 그의 주된 관심과 미래의 지향점이 드러난 책이다. 한국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사회와 경제 문제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지만, 그는 원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저술하고 있는 내용들이 녹색당의 정책 대안을 재구성해 본 것일 수도 있다”며 “이행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약하지만, 이를 적극 개진하면 현실 개입의 강도가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멸종 동물을 보호하는 등 다양성을 인정하는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경제학’을 논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특정 생물이 생태계를 파괴하면 생태계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것처럼 기업의 독과점은 호응받을 수 없다”며 “훌륭한 생태계는 멸망하지 않고 복원되듯이, 조화를 이룬 경제는 파탄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생태학을 경제학과 연결해 생태경제학을 다룬 우 교수는 이제 생태경제학에 인류학을 접목할 생각이다. 생태학과 인류학, 경제학이 만나는 접점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세 학문을 연결해 제대로 연구하면 한국을 바꿀 수 있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학’에 우정과 환대를 논하는 ‘생태경제학’은 결국 사람을 위하는 학문이지요. 이 과정에서 인류학이 역할을 할 수 있지요.”

    그는 국민이 경제에 관심이 없는 사회가 오히려 복지사회라고 설명한다. 유럽은 절반 가까운 국민이 경제에 관심이 없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먹고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두면 선진국이 결코 될 수 없다”며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극우파’도 ‘변종’도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는 ‘차이’가 ‘전체’에 기여하기도 힘든 곳이고, ‘전체’가 ‘차이’에 기대하는 사회도 아니다. 한국 사회는 ‘물이 역류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한국의 속도감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역류하는 물길에서 낙오하지 않고 그나마 그 자리에서 버티려고 해도 ‘물장구’를 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상황에 처해 있어요”

    #“언론과 정치가 제 역할해야”

    당연히 해결책을 묻게 된다. 우 교수는 “사회와 우리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줘야 한다”며 “그 시선을 바탕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문제를 보이는 것은 정치가 제대로 작동을 못했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석가모니의 말을 인용한다.

    “부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쟁을 없애려면 어른이 말을 많이 하라고요. 또 미망인과 고아를 잘 보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했어요.”

    말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는 바로 대화하고 협상하라는 설명이다. 정치가 그 역할을 하고, 언론은 그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두 부문 모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질타인 셈이다.

    냉철한 비평가가 보는 한국 경제의 현재 모습과 제안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지금 우리 경제의 치명적 약점은 ‘신뢰의 상실’이라고 단언한다. 불신의 위기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감지되고 있기에 더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활용하자고 역설한다. ‘경제 총사령탑’으로 장 교수가 제격이라고 강조한다.

    “장하준 교수는 금융계를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분이지요. 국제사회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한다면 오히려 쉽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합리적인 경제 마인드를 갖고 있기에 미국 금융계의 지지도 확보하는 등 확실한 ‘자산’을 갖고 있잖아요.”

    bali@segye.com



    ■우석훈 교수는…

    1968년 서울 출생. 성공회대 외래교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를 마지막으로 국제협상과 공직에서 은퇴했다. 원초적인 관심이 ‘생태’로 향할 만큼 ‘열렬한 녹색당원’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인문학적 여유와 상상력, 사회과학적인 통찰력이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저서

    ‘아픈 아이들의 세대’, ‘음식국부론’, ‘88만원 세대’, ‘촌놈들의 제국주의’, ‘조직의 재발견’, ‘직선들의 대한민국’, ‘괴물의 탄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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