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14>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그들만의 경제학' 지상으로 끌어내린…'영원한 녹색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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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제학자인 우석훈 교수는 “노동 이외의 소득을 갖는 것은 개인적 신념이나 철학에 어긋난다”며 부동산 투기나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허정호 기자 |
우석훈은 2008년 한국 경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젊은 지성인이다. 그가 만들고 표현한 문구들은 어느새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강력한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88만원 세대’, ‘생태경제학’ ‘8자 형 사회’라는 말들은 언론에서는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자리했다.
그는 ‘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에서 “한국이 주거공간, 교육기관, 시장의 세 가지 부문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이 완전히 분리되는 8자 형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피라미드형 경제에서 중산층이 두터운 마름모형 경제를 지나서, 중남미형 경제의 특징인 8자 형 경제로 들어가고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이다. 최근 내놓은 ‘괴물의 탄생’(개마고원)에서는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를 인정하고 호혜성과 명예가 담보되는 3개 부문의 역할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우석훈 교수는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만난 학자 중에서 가장 젊은 학자다. 1968년생으로 86학번이다. 극단의 흐름에서 이탈한 기분 좋은 학자다. 경제분야의 책들이 딱딱한 이론을 담거나 재테크의 실용 측면만 부각하는 현실을 뛰어넘었다. 나라의 경제와 정책이 개인의 실생활에 생각보다 많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한 저자이기도 하다.
#흔치 않은 저술 예고제
비판적 시선이 담긴 눈으로 한국 경제와 자신의 미래를 조망하려는 이들은 먼저 그의 책을 찾게 된다. 그의 다음 저작을 기대하는 ‘기다림의 고통’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프로야구의 선발투수 예고제처럼 다음 저작물을 미리 알리고 있기에 독자와 출판계 양쪽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저술 예고제는 다음 책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독자에 대한 책임감도 가미됐을 것이다.
‘저술 일정표’대로라면 그는 한국 경제와 사회를 논하는 12권의 책을 내놓게 된다. 크게 세 부분이다.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에서 시작해 ‘생태 경제학’을 거쳐 ‘국가 기본 시리즈’를 통해 마무리할 생각이다. 4권으로 완간된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면 ‘생태 경제학’ 시리즈는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탐색이다. 완결판인 국가 기본 시리즈는 드러난 문제점의 해법을 제시하는 방법론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번 겨울방학에 시리즈를 내놓는 우 교수는 되도록 많은 시간과 역량을 투입할 생각이다.
“글을 쓸 때는 한없이 편합니다. 책을 쓰면서 다시 생각하게 돼 ‘눈’이 커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제가 쓴 책을 읽고 연락하는 독자들을 생각하면 가능한 쉽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됩니다.”
고등학생에서부터 70대 남성 독자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의 저술 태도는 될 수 있으면 도표를 많이 넣으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읽기 쉬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그는 기본서만 50종 넘게 읽고 참고한다.
그는 전형적인 ‘올빼미 형’ 학자이며 저술가이다. 집중력 확보를 위해 그가 글을 쓰는 시간은 자정에서 이른 아침까지다. 이 시간에는 쓰는 데 온 정신을 몰입할 수 있다. 내용을 갖춘 다작을 내놓는 그가 첫 책을 세상에 선보인 것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10년이 지난 뒤였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생태경제학
첫 책 ‘아픈 아이들의 세대’(뿌리와이파리)는 그의 주된 관심과 미래의 지향점이 드러난 책이다. 한국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사회와 경제 문제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지만, 그는 원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저술하고 있는 내용들이 녹색당의 정책 대안을 재구성해 본 것일 수도 있다”며 “이행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약하지만, 이를 적극 개진하면 현실 개입의 강도가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멸종 동물을 보호하는 등 다양성을 인정하는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경제학’을 논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특정 생물이 생태계를 파괴하면 생태계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것처럼 기업의 독과점은 호응받을 수 없다”며 “훌륭한 생태계는 멸망하지 않고 복원되듯이, 조화를 이룬 경제는 파탄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생태학을 경제학과 연결해 생태경제학을 다룬 우 교수는 이제 생태경제학에 인류학을 접목할 생각이다. 생태학과 인류학, 경제학이 만나는 접점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세 학문을 연결해 제대로 연구하면 한국을 바꿀 수 있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학’에 우정과 환대를 논하는 ‘생태경제학’은 결국 사람을 위하는 학문이지요. 이 과정에서 인류학이 역할을 할 수 있지요.”
그는 국민이 경제에 관심이 없는 사회가 오히려 복지사회라고 설명한다. 유럽은 절반 가까운 국민이 경제에 관심이 없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먹고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두면 선진국이 결코 될 수 없다”며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극우파’도 ‘변종’도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는 ‘차이’가 ‘전체’에 기여하기도 힘든 곳이고, ‘전체’가 ‘차이’에 기대하는 사회도 아니다. 한국 사회는 ‘물이 역류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한국의 속도감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역류하는 물길에서 낙오하지 않고 그나마 그 자리에서 버티려고 해도 ‘물장구’를 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상황에 처해 있어요”
#“언론과 정치가 제 역할해야”
당연히 해결책을 묻게 된다. 우 교수는 “사회와 우리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줘야 한다”며 “그 시선을 바탕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문제를 보이는 것은 정치가 제대로 작동을 못했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석가모니의 말을 인용한다.
“부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쟁을 없애려면 어른이 말을 많이 하라고요. 또 미망인과 고아를 잘 보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했어요.”
말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는 바로 대화하고 협상하라는 설명이다. 정치가 그 역할을 하고, 언론은 그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두 부문 모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질타인 셈이다.
냉철한 비평가가 보는 한국 경제의 현재 모습과 제안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지금 우리 경제의 치명적 약점은 ‘신뢰의 상실’이라고 단언한다. 불신의 위기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감지되고 있기에 더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활용하자고 역설한다. ‘경제 총사령탑’으로 장 교수가 제격이라고 강조한다.
“장하준 교수는 금융계를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분이지요. 국제사회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한다면 오히려 쉽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합리적인 경제 마인드를 갖고 있기에 미국 금융계의 지지도 확보하는 등 확실한 ‘자산’을 갖고 있잖아요.”
bali@segye.com
■우석훈 교수는…
1968년 서울 출생. 성공회대 외래교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를 마지막으로 국제협상과 공직에서 은퇴했다. 원초적인 관심이 ‘생태’로 향할 만큼 ‘열렬한 녹색당원’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인문학적 여유와 상상력, 사회과학적인 통찰력이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저서
‘아픈 아이들의 세대’, ‘음식국부론’, ‘88만원 세대’, ‘촌놈들의 제국주의’, ‘조직의 재발견’, ‘직선들의 대한민국’, ‘괴물의 탄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