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인상도 진급도 안 바라요… 잘리지만 않았으면"
감원공포에 숨죽인 직장인 백태
시무식 바글바글 눈도장族… 생계형 절약 금연·금주族
이직준비·생존차원 열공族… 불만있어도 삭이는 묵묵族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올들어 기업들이 긴축경영으로 각종 경비와 복지혜택을 대폭 줄이자 직장인들이 이에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발은커녕 감원바람에서 살아 남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하다.

2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 제조업체 W사 본사 강당에서 시무식이 열렸다. 지난해만 해도 참석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았지만 올해 시무식에는 전 직원 500여명이 거의 대부분 참석했다.

김모(36) 과장은 "지난해 50명 구조조정에 이어 추가 구조조정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임원들에게 눈 도장을 찍기 위해 시무식에 적극 참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시무식에서 본사를 경기도 성남으로 이전한다는 말이 나왔는데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직원들이 관리자 눈치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조조정이나 회사 폐업에 대비, 생존차원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잡지사 직원 김모(33ㆍ여)씨는 "계속된 적자로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이직에 대비해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IT회사에 다니는 한모(38)씨는 "새해 첫 출근해 동료들과 한 이야기가 구조조정에 대한 걱정이었다"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영어학원에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에 대한 복지혜택이 줄어들자 부서마다 군살빼기에 골몰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제조업체는 팀원 1인당 매년 12만원씩 지급되던 팀 운영비를 5만원으로 삭감했다.

박모(43) 팀장은 "지난해 여름에는 팀원 전체가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했었는데 올해는 회식비로 쓰기에도 빠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불필요한 회식을 최대한 줄여 월 1회 정도만 할 계획"이라고 했다.

복지혜택 감소가 점심시간을 앞당긴 곳도 있다. 광고회사 직원 이모(41)씨는 2일 점심을 먹기 위해 다른 때보다 30분 이른 오전 11시30분쯤 회사 건물 지하상가를 찾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하상가 모든 음식점에서 회사 식권을 내면 6,000원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단 한 곳에서만 식권을 이용할 수 있어 늦으면 대기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다.

월급이 오를 기미가 없자 '생계형 금연, 금주'로 용돈을 줄이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선 직장인들도 있다. 공기업 직원 김모(35)씨는 "술과 담배를 끊어 한달 용돈을 10만원 줄이기로 했다"면서 "이 돈으로 적금을 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직원 김모(41)씨는 "담배를 사는 데 한 달 7만~8만원을 써왔다"면서 "금연하는 대신 이 돈으로 책을 사서 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6)씨는 이날 평소보다 1시간 빠른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왔다. 승용차로 압구정역 인근 사무실까지 40~50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회사가 올해부터 주차장 이용을 팀당 1대로 제한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올해 소망은 직장에서 살아 남는 것"이라며 "출퇴근이 힘들거나 윗사람이 못마땅해도 살아 남으려면 어쩌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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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01-0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소망은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참으로 절절합니다.
 



거버넌스에 관하여


[창비주간논평] 2009년을 맞이하며


기사입력 2008-12-30 오후 5: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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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거버넌스(governance)와 거번먼트(government)는 원래 '다스림[政]'을 뜻하는 동의어다. 다만 후자가 공권력을 갖고 다스리는 '정부'라는 뜻으로 자주 쓰임에 따라 더 넓은 의미의 이런저런 다스림을 가리킬 때 '거버넌스'라는 낱말을 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가 아닌 기업(business corporation)이 다스려지는 방식을 corporate governance라 하며 우리말로는 '기업의 지배구조'라고 (약간 부정확하게) 번역한다. 또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여러 세력과 협동하고 합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행태를 거버넌스라 칭하면서 더러 '협치(協治)'로 옮기곤 한다.

그러나 완전한 전제정치가 아닌 한에는 정부권력의 행사 자체가 여러 세력의 협동을 통해 이뤄지게 마련이다. 예컨대 입헌군주제만 해도 군주가 의회 등 헌법기관들과 '더불어 다스리는' 체제이며, 여기에 정당정치가 가세하면 민·관 사이에 '정치권'이라는 독특한 국정참여집단이 형성된다. 삼권분립은 국가의 입법·행정·사법부가 일정하게 분리돼서 협동하며 통치하는 체제요, 언론을 '제4부'라 일컬을 때는 언론도 국가 거버넌스의 한몫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정경유착은 정치권과 재계가 서로 상대방의 다스림에 간여하는 나쁜 체제지만 그 또한 거버넌스의 한 형태다. 이 모든 것을 '협치'라는 새 낱말을 만들어 지칭하는 데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지라도, 그것은 '거버넌스'의 특정 용법에 대한 해석이지 정확한 번역은 아닐 터이다.

나라 다스리기가 고장난 대한민국

2009년 새해를 맞으며 이런 낱말풀이를 해보는 것은 대한민국의 나라 다스리기(=거버넌스)에 심각한 고장이 난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거번먼트)의 고장 사태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의회 기능이 실종되고 독립된 사법부 권력이 위축되는 등 삼권분립이 무너져가는 가운데, 정부권한을 온통 틀어쥔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스스로 내건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태무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더하여 언론이 자신의 탐욕 때문이건 정부의 탄압 때문이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시민사회의 운동들도 국정의 방향설정에 참여할 능력을 결한 상황이라면, 나라의 거버넌스가 총체적인 위기에 들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정부의 난조는 다분히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경제 살리기' 구호 속에 묻혀버렸지만, 지도자의 도덕성을 개인윤리 차원에서보다 그의 통치능력과 연관시켜 판단할 것을 촉구하는 발언이 당시에도 없지 않았다.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너무 거침없이 한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짓이요,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부패를 척결하며 서민생활을 안정시킬 능력을 원천적으로 내팽개치는 길입니다."(각계인사 33인 시국성명, 2007.12.17)

신뢰의 결여가 통치능력의 결함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신뢰만 해주면 문제를 풀어갈 다른 능력은 있는 걸까? 함부로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세간의 불신이 '능력'에 대한 불신을 포함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CEO 대통령'의 신화는 어느새 무너졌고, 정주영 회장 휘하에서 진짜 CEO(최고경영자)가 배출될 여지가 없었으리라는 깨달음이 뒤늦게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정주영식 거버넌스가 통하는 시대도 아니지 않는가.

이명박정부의 신뢰성은 2008년 촛불시위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끝없이 꼬리를 문 촛불행렬을 청와대 뒷산에서 내려다보며 즐겨 부르던〈아침이슬〉을 들었다던 눈물겨운(?) 발언 이후에 곧 대대적인 촛불탄압이 자행되었다. 그러다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정부의 권위는 거의 완전한 파탄에 빠졌다. 정치지도자가 국민 앞에서의 말바꾸기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바람에 설혹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실효를 보기 어렵게 되었거니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빙자해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완화와 부자들의 특권강화에 몰두하는 행태는 도덕성의 문제를 넘어 초보적인 통치능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입법현안을 국회의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달성할 것을 공언하며 '전쟁'을 선포하고 '속도전'을 다짐한 상태다. 비록 국회의장의 입장표명 이후 원내대표들의 회담이 열림으로써 한 박자 늦춰지기는 했으나 다수 국민의 반대와 야당의 저항을 물리력으로 진압하고 방송법 개악 등 세칭 'MB악법'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럴 경우 대통령과 여당은 승리를 해도 이른바 '피루스의 승리'(Pyrrhic victory), 즉 전투에는 이겼으나 너무나 많은 사상자를 낸 끝에 결국 멸망하고 만 고대 그리스 피루스왕의 전례를 고스란히 재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스스로 운명을 재촉할 때 나라는 어찌되는가?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헌정위기마저 겹친다면 민생이 완전히 망가질 것은 물론, 극도로 심란해진 국민이 또 한번 불행한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막연히 4년 뒤에 보자고 벼르는 것은 4년을 어찌 견딜 거냐고 한숨짓고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한가한 짓거리다.

그러니 어찌할 건가?

유일한 해답은 남은 4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대통령에게 남겨주면서 나머지는 내각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시민사회 등의 몫으로 배분하는 정교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나라의 거버넌스 체계를 다시 짜는 일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울 수는 없다. 대통령의 '대오각성'으로 될 일이라면 애초에 사태가 이 지경에 오지도 않았을 테지만, 실은 이명박 대통령 아닌 그 어느 대통령이라 해도 자기가 획득한 권력을 그런 식으로 선선히 나눠줄 사람은 없다.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정부 내에서 책임있게 행사할 권력을 상당부분 자진해서 방기한 전례를 남기기는 했으나 정부와 비정부 분야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설계할 의지도 경륜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른 한편 민주정부 아래서는 시민사회도 거버넌스 혁신을 위해 총력전을 펼칠 동기가 약하다. 죽기살기로 달려들어도 될까 말까 한 일이건만 정부가 알아서 해주기를 촉구하거나 안해줄 때 질책하는 역할에 안주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시대야말로 획기적인 시민참여 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지금은 나라 다스리기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지고 민주화 20년의 성취, 아니 대한민국 60년의 성취마저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거버넌스의 일부를 담당할 만한 책임성과 전문성을 함양하면서, 정당·사회단체·노동조합·종교계 들이 연대하여 입법부의 활성화,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건전성 등을 확보할 범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는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이는 일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상과 열성으로 연대를 추구해야 된다는 성찰이 여기저기서 이미 시작된 것 또한 사실이다.

시민참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거버넌스'의 개편까지 안 가고 '거번먼트' 차원에서 국정위기에 대처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거국내각이다. 그러나 이따금 거론되는 박근혜 전 대표나 그 어떤 인물이 총리가 되더라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범국민적 협약이 없는 상태라면 실제로 얼마나 힘을 쓸 것이며 도대체 그 자리를 맡으려고나 할 것인가? 이처럼 거국내각도 거당내각도 안되다 보면 한국의 이른바 보수세력에도 분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신들의 단기적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세력으로서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무리들과, 대한민국의 정당한 성취를 간직하고 지키려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갈라설 때가 온다는 것이다. 당장에는 후자가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이 가세함으로써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쇄신은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어차피 선택은 파국 아니면 새로운 거버넌스다. 내년 봄에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지는 일은 그 누구도 막기는 어려울 듯하며, 정권이 하기에 따라 겨울이 채 가기 전에 그런 사태가 도래할 수도 있다. 그 주력부대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노래하는 촛불군중일지 아니면 횃불 들기도 마다 않는 배고프고 성난 군중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마도 양자의 결합으로 시작되기 십상인데, 정부로서는 후자의 '불법 폭력시위'를 오히려 선호할 가능성도 크지만 그것이 정부에 꼭 유리한 씨나리오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졸고 〈'선진화 원년'과 '잃어버린 10년'〉, 《월간중앙》 2009년 1월호 참조). 어느 경우든 2008년 초여름의 별처럼 아름다운 축제마당이 그대로 재연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관건은 '촛불소녀'로 상징되는 발랄함과 유쾌함이 한층 절박해진 군중과의 결합을 통해 또 한번 새로운 시위문화를 창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중의 토론과 합의를 이어받아 언론과 여러 전문집단, 권익집단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정당들과 함께 건설적으로 국정에 기여하는 ― 단순한 시위참여가 아니라 국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 길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길을 닦는 작업이 상당정도 미리 진척되어 있어야 하며, 그랬을 때 한국사회에서 국민주권과 민중자치, 그리고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 2009년의 새로운 촛불과 함께 큼직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물론 2009년이 종착점은 아니다. 도중의 가장 눈부신 이정표가 못 되어도 좋다. 그러나 전진이 계속됨을 실감할 때 어떤 경제위기도, 정치혼란도 견뎌낼 만해지고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백낙청 문학평론가 <창작과 비평> 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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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칼럼] ‘못난 놈들아, 이제 다시 시작이다’
곽병찬칼럼
 
 
한겨레  
 








 

» 곽병찬 논설위원
 
맞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말하지 않아도 단박에 그 시름을 알고, 가슴속 불덩어리를 느끼고, 억지로 삼키는 눈물 콧물을 눈치챈다. 고향을 따질 필요도, 출신 성분을 가릴 필요도 없다. 그저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신경림 <파장>에서)일 뿐이다.

보기만 해도 흥겨우니, 남 탓할 겨를이 없다. 거짓말로 선동할 일도 없고, 남 돈 버는 데 배 아파 할 이유도 없다. 소주에 오징어, 막걸리에 참외, 그리고 따듯한 햇볕만 있으면 됐다. 아이들 배가 부르면 만족했고, 아이들 건강하면 그만이었다. 남들만큼 공부 못 시키는 게 가슴 아플 뿐. ‘강물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봄밤>에서)는 김수영의 충고는 애시당초 그들과 무관했다.

그러나 때론 위험하다. 새벽 인력시장 모닥불 옆에 웅크린 이들, 잠긴 공장 정문 앞에 서성이는 이들, 무료 점심배급소 앞에 줄지어 있는 못난이들이 모이면 위험하다. 100번씩이나 서류를 내고도 면접 한 번 보지 못한 못난 청년 백수가 어깨를 맞대면, 갓난 송아지 보고 한숨부터 짓는 못난 농부가 모이면 위험하다. 지금 그들에겐 ‘긴 여름해 저물어,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며 돌아갈 곳도 없다.

원래 못난 놈들의 눈물엔 화약 성분이 있었다. 치명적인 폭발력과 독성이 있다. 가난하다고 터지는 게 아니다. 잘난 놈의 위선과 거짓과 기만과 파렴치가 문제다. 태풍도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작은 떨림에서 시작하는 법. 새털보다 가벼운 눈송이가 눈사태를 일으킨다. 그 눈물이 하나둘 모이면 태풍도 되고 쓰나미도 되는 것이다. 왕조가 바뀌고 정권이 엎어진 것도 그 때문이고, 민주공화국도 그렇게 세워졌다.

시작은 언제나 작고 보잘것없었다. 학교 앞 아스팔트에 쪼그려 앉아 수업하는 선생님과 아이들에게서 비롯된다. 헤어지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물방울이 모여 시작했다. 직장다운 직장에 다녀보지 못한 못난 동생들이 아스팔트 위로 내딛는 발걸음에서 시작한다. 펜을 잃은 기자들이 거리에 누우면서 시작한다. 지난 6월 광장의 찬란한 행진도 어린 누이가 켜든 작은 불씨에서 시작했다.

시인 강은교는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물이 되어>에서)라는 꿈을 노래했지만, 못난 놈은 천성이 물이다. 애써 마음을 내지 않아도 그들은 죽은 나무 뿌리까지 적시며 흐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야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을 쓰다듬고 있나니.”

겨우 1년 만이다. 못난 놈들에게 그나마 힘이 되었던 민주주의는 빈사상태다. 마구잡이로 쪽박마저 깨도록 노동관계법을 개악하고, 항의도 저항도 못하도록 집시법을 개악하고, 정보기관의 무제한 사찰을 허용하려 한다. 반면 3%만을 위한 교육·의료·조세·경제 정책 등 그들의 철옹성은 높아만 간다. 방송까지 독재자들을 찬미하던 족벌언론과 재벌에 넘기려 한다. 그들은 지금 독재자의 전철, 즉 장기집권을 위한 진지 구축에 나선 것이다. 그것도 박정희가 19년에 걸쳐 쌓아올린 파시즘의 성채를 불과 1년 만에 세우려 한다. 그러니 어떻게 물이 되어 만나기를 기약할 수 있을까.

그 꼴을 보면서도 물타령을 마저 하는 이유는 하나, 내일이면 새해이고, 이제 희망의 솟대 하나 세워,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만 리 밖의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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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들 ‘뱀파이어 미소년’에 홀리다
뱀파이어-인간소녀 사랑 다룬 영화
‘트와일라잇’ 원작소설·후속편 인기
“현실 도피 욕구 강한 세대에 어필”
 
 
한겨레 김일주 기자
 








 

» 10대 소녀들 ‘뱀파이어 미소년’에 홀리다
 
뱀파이어 미소년과 인간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다룬 영화 <트와일라잇>(사진)의 동명 원작 소설과 후속편이 십대 소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전국 주요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 도서 판매 현황을 집계해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트와일라잇>(4위)과 후속편인 <뉴문>(7위), <이클립스>(8위)가 10위 안에 한꺼번에 올라 있다. 책을 낸 출판사 북폴리오 쪽은 독자의 대부분을 10대 소녀로 보고 있다. 출판사가 만든 카페에는 1만5천명 가까운 회원들이 모여 소설 감상평을 돌려보고 국외 매체에 나온 작가의 인터뷰를 번역해 올리는 등 작품 관련 정보를 공유하거나 팬픽, 팬아트를 활발히 올리고 있다. 이들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4부 <브레이킹 던>과 번외편인 <미드나잇 선>의 원서를 구해 읽기도 한다.

<트와일라잇>은 식당 손님 역으로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스테프니 메이어의 첫 소설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로 지내다 어느 날 아름다운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꾼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트와일라잇>은 33개국에 번역 소개돼 모두 1700만부가 팔렸다. 2007년 2월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때는 주목 받지 못했지만, 영화 개봉에 즈음해 지난 7월 개정판이 나오고 영화 스틸 컷을 표지로 세운 특별판도 출간되면서 지금까지 10만부가 팔렸다. 개정판과 함께 출간됐던 <뉴문>도 10만부 가까이, 지난 22일 출간된 <이클립스>는 순식간에 5만부가 팔렸다.

4부작으로 구성된 소설은 뱀파이어 소재를 양념처럼 깔았지만 하이틴 로맨스의 공식에 충실하다. <트와일라잇>은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린 소녀가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학교 안의 계급 관계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무리를 만나 그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매혹적인 뱀파이어인 남자 주인공은 또래보다 성숙하고 예민한 주인공 소녀에게 지고지순한 순정을 바친다. <뉴문>과 <이클립스>에서는 뱀파이어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늑대인간의 후예인 또다른 소년이 전면에 나서며 이들과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 10대 소녀들 ‘뱀파이어 미소년’에 홀리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새롭지 않은 소설이 10대 소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데는 물론 영화의 힘이 컸다. 임지호 북스피어 편집장은 “하이틴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뱀파이어 소재를 첨가해 ‘잘 읽힐 만한 아기자기한’ 소설에 영화가 확실히 강조점을 찍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소설의 인기가 단순히 영화의 흥행에 힘입은 결과라고만은 보기 어렵다. <트와일라잇> 팬들은 번역 소개된 후속편은 물론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원서로 구해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로맨스 장르소설 팬들과 영화를 보고 로맨스 장르에 매력을 느낀 새로운 팬들을 규합한 모양새다.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트와일라잇>은 가장 전형적인 로맨스 장르로 일본 라이트노벨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애니메이션에 기반을 두고 있어 보통 독자들에게는 접근성이 제한돼 있던 라이트노벨과 달리 정통소설로의 보편성을 띠고 10대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며 “요즘 시국이 안 좋아 소설이 잘 팔리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현실에서 도망치고픈 욕구가 강한 10대들이 빠져들 여지가 큰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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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노인의 움막엔 다시 연기가 오르고…

정용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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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주
치악산 겨울 숲에 싸락눈이 내린다. 물을 길어다 솥에 붓고 아궁이에 장작을 태우며 부엌문 밖으로 내리는 적막과 고요의 흰 가루들을 본다. 아궁이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싸락눈, 문득 미당 서정주의 시 구절 하나 생각난다.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내 움막 500m 아래쯤에 유일한 이웃인 노 부부가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연세는 올해 일흔여덟이다. 처음 내가 이곳으로 온 6년 전에 할아버지는 염소 사료 두 포대를 지고 거뜬하게 산길 2km를 앞서 걸어가시고 나는 한 포대를 지고 낑낑거리며 뒤를 따랐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굴뚝에 흰 연기를 피워 올리며 이 숲에 살았다.

그러던 할아버지께 운명이 보내준 선물이 찾아왔다. 스무 살 무렵 사고를 당해 정신을 다친 딸을 마음에 묻었던 할아버지가 며칠 전 음성의 한 요양원에서 그 딸을 찾았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이미 쉰이 넘은 딸이 "아부지!" 하면서 헤죽이 웃더라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마당 화덕에 산당귀를 끓이고 시내에 나가서 과자와 빵을 한 아름 사왔다. 좋아하시던 술도 끊고 주름진 얼굴에는 깊은 삶의 애착이 드러났다. 더 오래 살아야 할 삶의 무게가 늙은 어깨에 얹어진 것이다.

평소에 가끔 내 움막으로 오는 오솔길을 비틀비틀 올라오셔서 "야 이놈아 술 한잔 내 와라!" 하기도 하고 삼짇날이나 음력 9월 9일에는 몇 개의 과일과 포를 가지고 바위 아래 터에서 기도를 드리던 노인. 그 가슴 깊은 곳에서 마르지 않고 흘러간 슬픔의 샘을 이제서 나는 들여다본다. 그분의 굴뚝에도 지금 느리게 저녁 군불 때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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